사진가들은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을까

2013-11-11     박상우

사진평론가 박평종이 두 번째 평론집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를 내놓았다. 그는 2010년 첫 평론집 <한국사진의 자생력>에서 한국사진의 핵심적인 문제점으로 우리 사진문화의 ‘주체성’의 결핍, ‘자생력’의 부족을 지적한 바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사진문화가 외국에서 사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태생적으로 서양과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하며 그 영향으로부터 “우리의 주체적인 사진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를 모색했었다. 자생력이라는 문제의식은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논점이다. 하지만 이번 평론집의 주제는 첫 번째에 비해 훨씬 포괄적이다. 저자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 디지털 시대까지 진행된 한국 사진문화의 전체 지형도를 비평하고자 했다. 비평의 톤은 책의 제목처럼 전체적으로 ‘우울’하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는 30~40대 젊은 작가들에 대한 작가론을, 2부에서는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진행된 한국사진의 전체적인 전개과정을 다룬다. 3부에서는 오늘날 디지털 사진 기술에서 오는 새로운 사진 문화현상과 사진제도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 부분은 책과 동일한 제목을 붙인, 제 3부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이다. 저자는 디지털 사진의 시대에 사진, 사진가, 사진문화는 이전에 결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아마추어 사진가의 폭발적인 증가, 여행사진의 급속한 확산, 사진 전시회의 확산, 급증하는 사진작가, 블록버스터급의 해외 사진전시회 개최 등등. 이처럼 역동적인 사진의 전성시대에 대해 저자는 왜 우울하다고 진단할까?  

독창성 결여된 ‘양산형' 작품들

저자는 먼저 디지털 사진 기술의 발달로 아마추어 사진가의 급증한 현상의 뒷면에서 사진의 ‘하향 정형화’라는 암울한 측면을 들춰낸다. 각종 사진 공모전은 참신한 아마추어 사진을 발굴하기보다는 고정된 기준에 부합하는 일정한 패턴을 지닌 사진들만 기계처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의 ‘오늘의 포토’도 비록 공모전의 형태는 아니지만 여전히 정형화의 폐단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사진기술, 사진문화, 현대예술이 모두 변해도 30년 전의 사진과 별 차이가 없는 사진들만 양산해내는 아마추어 사진에서 저자는 예술의 영원한 목표인 ‘독창성’의 결핍을 아쉬워한다. 또한 대중에게는 인기가 있으나 사진 전문가들에게서 주목받지 못하는 소위 ‘B급’ 작가의 작품이 지닌 진부성에도 일침을 가한다. 김영갑, 최민식, 그리고 외국작가인 마이클 케냐를 B급 작가로 분류한 저자는 이 작가들의 작품은 ‘보편적(대중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나 ‘새로운’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아마추어 사진가와 대중 인기 작가들의 작품을 둘 다 독창성, 새로움이라는 예술적 판단 기준으로 평가한다.

상품가치에 매몰된 문화주체성

지난 2008년 이래 대규모 해외 유명사진전이 국내에서 잇달아 성황리에 개최된 바 있다. 지금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로버트 카파전과 라이프전이 열리고 있다. 저자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이 블록버스터 전시회들을 ‘상품가치’와 ‘문화가치’라는 두 개념으로 진단한다. 이 전시들은 지나치게 상품가치에만 매몰된 나머지 중요한 문화가치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매그넘 코리아전(2008)’의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제국주의를 경계해야 하며, ‘퓰리처상 사진전(2010)’이 지닌 ‘사건의 스펙터클화’ 현상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주체성’을 강조한다. 즉 외국의 유명전시라고 해서 무작정 수입해서 전시만 할 게 아니라 우리의 주체적 전시문화를 개척하자고 제안한다. 

‘우리 사진의 풍경과 역사’를 다룬 2부는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한국 사진예술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저자는 <한국사진의 자생력>에서 심도 있게 논했던 한국 사진의 계보학을 이 책에서는 좀 더 명료하게 다룬다. 구체적으로 1920~30년대 일제 강점기에 풍미했던 살롱사진, 해방 후 1950~60년대의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 1970년대의 기록사진, 1980년대 등장한 메이킹(making) 사진, 1990년대 다양한 사진 경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지형도로 제시한다. 특히 ‘2000년도 이후 한국사진의 지형도’는 이전 저서인 <매혹하는 사진>(2010)을 관통하는 두 개의 주요 개념 축인 ‘역사적 태도’와 ‘탈역사적 태도’를 통해 최근의 한국예술사진의 다양한 경향을 분석하고 있다. 이 두 개념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의 두 가지 개념 축이기도 하다.    

하지만 2부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글은 디지털 사진 문화를 논의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무한변신’이다. 여기서 저자는 현대 사진이론에서 핵심 문제인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의 ‘연속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진의 차이만을 부각시킨 일반적인 사고와는 다르게 그는 포토샵의 리터치, 수정, 합성은 19세기부터 있어왔던 오랜 관습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아날로그(필름 잘라서 붙이기) 혹은 디지털(포토샵 이용) 기술을 이용해 제작한 포토몽타주 사진에서 각각의 조각 이미지가 공통적으로 사진이라는 지적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원형 없는 이미지’ 즉 포토샵에서 직접 그린 이미지가 과연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는 이후에 다양한 논의를 촉발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1부에서 국내 유명 작가 대신에 소위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들을 위주로 작가론을 전개한다. 이것은 <매혹하는 사진>에서 진행했던 작가에 대한 글쓰기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여기서 각 작가의 작품에 숨겨진 다층적인 의미를 예리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재현과 실재, 환영과 허구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한성필, 사진의 화두를 탈보트의 ‘포토제닉 드로잉(photogenic drawing)’에서 찾고자 하는 구성수, 무기쇼와 에어쇼에서 ‘좋은 살인’을 드러내는 노순택이 그 좋은 예이다.

또한 저자는 남북분단의 흔적을 밋밋한 중성 톤과 단조로운 프레임으로 담아낸 강용석, 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도큐먼트(텍스트, 숫자, 그래프, 사진)를 기호의 관점에서 혼합한 노상익, 전쟁의 폭력성과 동물 살상의 잔인함을 이미지의 아름다움과 결합시킨 김규식, 마지막으로 현대예술에서 중요한 개념인 우연의 미학, 오브제의 미학, 작가의 죽음을 곤충의 우연한 배열에 접목시킨 최봉림의 작품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분석한다. 이번 책은 첫 평론집과 달리 한국 사진의 주요 쟁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하지만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다. 특히 아마추어 사진, B급 작가에 대해 쓴 글에서 미학의 핵심 개념인 ‘작가’와 ‘작품’이라는 범주를 다룬다. 결국 그는 이 글에서 ‘예술’이란 무엇이고 예술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어디서 발생하는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 사진을 다루는 글에서는 결국 사진이론의 핵심인 사진이란 무엇인가(사진의 존재론)를 근본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와 아서 단토의 난해한 이론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현대 미학의 중요 개념을 비교적 쉽게 설명하는 데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글· 박상우
프랑스고등사회과학원 사진미학 박사. 2010년 서울사진축제 워크숍 큐레이터를 역임했으며, 사진학계에서는 드물게 이미지 미학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논문으로는 <롤랑 바르트의 어두운 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