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유가를 기회삼아야

2016-03-31     주영근

 

동네 마트에서 생수는 1L 기준 800원 가량에 판매되고 있다. 에너지의 대표주자인 원유(Crude Oil)는 어떨까. 대표적 석유제품인 휘발유의 국내가격은 현재 1L에 1,378원이다(세금이 63.5% 차지). 원유 1L는 얼마일까. 고유가 시대라고 불렸던 2014년 6월만 해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이었으나 지난 1월 20일에는 최근 13년간 가장 낮은 수준인 25.5달러를 기록했다(두바이유 기준). 만일 이날 1L 페트병에 들어 있는 원유를 산다면 약 217원만 지불하면 됐다. 생수 가격의 4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1980년대 호황 이끈 저유가, 저금리, 엔저 

이렇게 유가가 급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가 원유의 공급과잉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히 공급과잉이어서 가격이 이렇게 급락한 것일까. 이를 자세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유가 급락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차 오일쇼크(Oil Shock·1978~1979년)를 거치면서 에너지 안보에 중요성을 느낀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 각국과 미국은 각각 북해와 알래스카 유전에서 원유 생산을 급격히 증가시켰다. 이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감산으로 대응하자 영국의 대처 총리는 1985년 9월 원유 가격 자율화를 선언했다. 그러자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무제한 증산에 돌입하면서 유가가 폭락했다. 1986년 봄 미국과 사우디 간의 감산 합의를 통해 영·미-사우디 간 치킨게임(Chicken Game)은 끝났지만 원유 공급과잉의 후유증으로 1990년 말까지 저유가 기조가 유지됐다. 마침 세계 경제가 침체를 겪던 시기로 원유에 대한 수요 증가세도 높지 않아 수급 불균형은 더욱 심화됐다. 당시 원유의 공급과잉으로 인한 저유가는 저금리·엔저와 함께 한국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었다. 에너지 가격 하락이 원가 절감, 즉 제품가격 하락을 유도해 실제 소비를 개선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은 저금리에 따른 투자 확대와 엔저로 인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소비 여력이 증대된 선진국에 섬유·신발 등의 소비재를 수출하며 호황기를 맞을 수 있었다.

셰일가스, 타이트 오일 등 
비전통 에너지의 부상

현재 원유의 공급과잉은 1980년대와 비슷하다.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미국의 셰일(Shale) 혁명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던 미국은 기술·자본을 기반으로 비전통 에너지, 즉 타이트 오일(Tight Oil)과 셰일가스를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에너지 가격 하락을 유도했고, 이를 통해 미국 경제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 최근 미 의회가 40년 만에 원유 수출을 허용하면서 자국의 에너지 독립을 넘어 수출까지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원유생산 카르텔인 OPEC의 입장에서 보면 1980~1990년대 저유가 시대에 어렵게 회복한 시장 점유율을 미국에 빼앗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중동의 큰형인 사우디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OPEC은 저렴한 생산비용을 앞세워 미국 셰일 업체의 퇴출을 목적으로 두 번째 원유 치킨게임을 시작했다.중동 육상 유전의 생산단가는 배럴당 평균 29달러로 미국 타이트 오일 평균 생산단가인 50달러에 비해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다(Rystad Energy Research and Analysis). 그러나 중국·미국 등의 원유 수요 증가 속도에 비해 사우디를 위주로 하는 OPEC뿐 아니라 비OPEC국가인 러시아, 최근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 브라질의 심해유전, 캐나다의 오일샌드 등으로부터 공급이 급증했다. 원유가 넘쳐나면서 유가는 급락해 배럴당 30달러 밑으로까지 떨어지게 됐다. 미국이 경기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말 금리를 인상한 반면, 중국·유럽·일본 등은 양적완화를 지속해 달러화는 강세다. 이는 유가를 더욱 빠르게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시점에서 에너지, 특히 원유에 대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유가의 불확실성이다. 세계 경기침체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 이란·러시아 등의 원유 추가 생산, 미국 타이트 오일수출 확대, 온난한 날씨 등 유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존재한다. 동시에 현실성은 부족해 보이지만 사우디-이란 간 무력충돌, 북미 및 남미 에너지기업의 줄도산으로 인한 생산급감, 중동 국가들의 재정적자, 특히 베네수엘라의 재정파탄으로 인한 디폴트 등 유가 급등 가능성 역시 잠재해 있다. 저유가의 지속 또는 초(超)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면 산유국 및 원유 생산업자들이 재정적인 압박에 직면해 소비 감소와 투자 위축이 동반될 것이다. 지난해 약 114조원의 재정적자를 기록한 사우디는 긴축재정으로 전환하면서 대규모 투자 지연 또는 취소, 증세 등을 경험하고 있다. 달러 강세로 인한 일본 엔화 등 경쟁 통화의 가치 하락으로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 약화와 사업 기회가 축소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비전통 에너지 확보에 민관이 협력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가 급락 현상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에너지 전쟁의 서막이다. 사실 원유의 역사는 IOC(민간석유기업, International Oil Company)와 NOC(국영석유기업, National Oil Company) 간 협력과 경쟁으로 만들어졌다. IOC는 원유의 탐사·개발·생산 기술과 경험을 NOC의 자원 접근성에 접목해 원유 생산을 주도했다. 그러다 NOC가 기술 및 경험을 쌓아 IOC를 배제시키자 IOC는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심해·극지방-비전통에너지 개발·생산의 상업화를 이룬 것이다. 그 역사 속에서 우리는 원유를 얻기 위해 일방적으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제 급변하는 시장 상황, 즉 저유가를 기회로 삼아야 할 때다. 재정적 압박이 심한 기업 또는 자산(광구 등)의 저가 매입을 통해 저유가를 에너지 안보, 그리고 한국에 부족한 기술, 특히 비전통 에너지 기술 확보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오일 피크(Oil Peak)’는 셰일을 비롯한 비전통 에너지로 인해 과거의 이론이 돼 버렸다. 오히려 원유 생산이 감소하지 않고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는 ‘오일 고원 이론(Oil Plateau Theory)’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비전통 에너지는 전통화석연료에서 풍력·태양광·수소 등 청정에너지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로 중기적 관점에서 에너지 시장의 주류가 될 전망이다. 캐나다의 오일샌드, 중국 및 남미의 셰일 에너지, 이스라엘의 오일셰일이 가격경쟁력을 갖춰 상업화에 성공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전통 에너지에 비해 부존량이 많고 지리적으로도 접근하기 쉬운 비전통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도 선진화된 고도의 기술과 에너지원을 갖추기 위한 기업과 정부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산업 및 기업구조 재편도 요구된다. 현 상황은 저가 원유 수입의 기회이기도 하다. 가능한 한 많은 원유를 비축하는 동시에 저가 원유 수입원 다변화에도 힘써야 한다. 단기간에 원유 같은 화석연료의 의존를 탈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비전통에너지를 확보하고 에너지의 청정화를 목표로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에너지 청정화는 국가와 기업이 공조하는 미래 과제로 민·관·공이 힘을 합쳐 저탄소사회의 로드맵을 작성한 후 그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다.  


글·주영근 youngkjoo@posri.re.kr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 9면의 글은 본지와 제휴한 <친디아 플러스> 3월호에 실린 것으로, 
상호협약에 따라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