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비(非)개입주의는 어디까지?

2016-05-02     브누아 브레빌
2016년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2차 대전 이후로는 이례적으로 민주당 후보보다 공화당 후보 측이 미국의 군사 개입에 대해 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2009년 이후 오바마 정부가 초지일관 이어가는 비(非) 개입적 외교 정책 노선은 이제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으로까지 확대돼가는 양상이다. 

‘미온적’이고 ‘애매모호’하며 ‘교묘’하고 ‘비겁한’, 그리고 ‘경험 부족’에 ‘모순적’이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부재’한 외교 정책.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 및 그의 외교 정책에 대해 명확히 꼬집을 만한 표현이 딱히 없는 듯하다. 그저 대통령이 무력 사용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의 영향력과 신뢰를 깎아먹었다는 것이다. 공화당 경선의 1, 2위 예비 후보들은 그 동안 오바마 대통령이 얼마나 미국의 이름에 먹칠을 해왔는지 강조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 극단적인 발언들을 꽤 폭넓게 사용한 바 있다. 가령 공화당의 경선후보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지난 2015년 12월, “미친 네오콘(1)들이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을 침범하고 중동에 우리 자녀들의 목숨을 내다버리려 한다”며 거세게 비판했다.(2) 
같은 달, 극보수 성향의 헤리티지 연구재단의 연단에 오른 그는 리비아의 사례를 들면서 미국의 군사개입이 초래한 폐단을 강조했다. 이어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이 지지해야 할 편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를 듣고 있자면 앞서 2013년 9월 10일,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한 말이 떠오른다. 당시 그는 시리아 분쟁이 “어딘가의 내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었다. 중동 원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공화당의 또 다른 경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난 3월 3일, 그는 “우리가 중동에서 지출한 돈이 수조 달러인데, 정작 국내의 인프라는 무너져가는 상황”이라며 개탄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오바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십 년 간의 전쟁에서 약 1조 달러가 소요됐다. 같은 시기 미국은 부채도 급증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 이제는 국가 건설 사업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면서 아직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조만간 철수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대대로 민주당의 공천 경합에서는 미국의 군사 개입에 비판적인 후보들이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때가 많았다. 1972년 베트남전에 반대했던 조지 맥거번이나 1984년 및 1988년 (니카라과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의 공작을 비난해 입지를 굳힌)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2008년 이라크 전을 맹렬히 비난한 오바마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반면, 공화당에서는 1952년 공천에 출마한 로버트 태프트 이외에 미군의 해외 원정을 반대한 당원이 당내 경선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했던 경우가 별로 없다. 당시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이었던 로버트 태프트는 마셜 플랜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창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 두 가지 모두 비효율적인데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오로지 ‘국민의 자유’가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았을 때에만 미국이 무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아이젠하워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했다. 그 후로 공화당 예비선거에서는 전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미국의 사명을 주장하는 것이 곧 경선에서 승리하는 열쇠가 됐다. 2008년 존 맥케인 후보나 2012년 미트 롬니 후보가 내세운 대외 정책의 핵심 또한 미국의 해외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보수 진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8년 임기 내내 그의 ‘나약함’을 비난했으며, 때로는 그가 해외 다른 나라의 폭격을 주저한 것에 분개하기도 했다. 따라서 현재 공화당 내부의 이 같은 노선 변화는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원칙 없는 대통령’이라 비판 받는 오바마

2009년 이후 미 대외 정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분석해보면 공화당 내부에 왜 이러한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두 차례의 재임 기간 동안 오바마 대통령이 원칙 없는 정책을 이끌어갔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세력 확대에 제동을 건) 트루먼 대통령이나 (공산주의를 억제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냉전 긴장을 완화한) 닉슨 대통령, (인권을 중시한) 카터 대통령, (“악의 제국” 소련에 맞선) 레이건 대통령,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과는 달리,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을 딴 독트린 하나 남기지 못했으며, 그의 임기는 일관되지 못한 선택으로 점철됐다. 
가령 2011년에는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동맹에 가담했다가 이후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을 끊었고, (미국 및 국제법적 시각에서 보면) 완전히 비합법적이고 자의적인 드론 폭격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란 핵 문제 협정 체결을 위한 다자간 외교 노력에 참여하는가하면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결심하며 과감한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미국의 대통령은 저마다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여러 세력들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은 채 헤매게 마련이다. 테러가 일어나거나 미국인 기자가 참수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여론은 곧 고립주의에서 개입주의로 돌아서고, 반대파 의원들은 늘 대통령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기에 바쁘다. 참모진과 각료진도 저마다 제각각의 자문을 늘어놓으며, 동맹국들은 워싱턴이 자신들의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주길 기대한다. 정적들 또한 자신들의 말을 움직이기 위해 호시탐탐 대통령의 실수만을 기다린다. 트루먼과 딘 애치슨, 아이젠하워와 존 포스터 덜레스, 레이건과 조지 슐츠처럼 일부 대통령은 국무장관과의 긴밀한 협력 하에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닉슨과 헨리 키신저, 카터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처럼 국가안보보좌관이나 국무장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대통령도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는 단독으로 결정을 내리거나 벤저민 로즈, 데니스 맥도너, 마크 리퍼트 같은 핵심 측근 참모진과 함께 의사 결정을 내리는 편이다. 50세 미만의 이 보좌관들은 냉전과 관련해선 칼을 빼들지 않았지만 9‧11 이후에는 칼을 휘둘렀으며,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대외 개입을 반대하는 입장이다.(3)
물론 지금의 오바마는 보다 경험이 많은 인사들을 외교 및 군사 요직에 임명하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리온 파네타, 척 헤이글 등을 국방부 장관 자리에 앉힌 것이나 힐러리 클린턴, 존 케리 등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2009년 힐러리 클린턴이 온두라스에서 마누엘 셀라야의 쿠데타를 지지하도록 오바마를 설득했을 때처럼 간혹 이들의 목소리가 영향을 미칠 때도 있긴 하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오바마는 늘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로버트 게이츠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오바마의 백악관은 닉슨과 키신저 이후로 국가 안보에 관해 가장 권위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정권”이라고 분석한다.(4) 
오바마와 그 측근 인사들 간의 불협화음이 처음 불거진 것은 2009년 9월, 아프가니스탄 문제와 관련해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고, 스탠리 맥크리스탈 주둔군 사령관은 주둔병력을 늘려야 이길 수 있다고 반발했다. 사령관은 약 4만 명의 병력을 늘려주길 요구했다. 3개월 간 회의를 거듭한 끝에, 국무장관과 국방부 장관, CIA 국장, 국가안보보좌관, 국내정보국장 등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 애를 썼다. “1조 달러의 지출을 원치 않는” 대통령은 “그건 국익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하며 “장기적인 국가 재건 노력”에만 매진했다.(5) 맥크리스탈 사령관이 요구하는 끝없는 병력 동원과 주둔군 철수 중에서 선택하지 못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중재안을 선택한다. 18개월 간 병력 3만을 동원해주기로 한 것이다. 2009년 12월 1일 오바마는 “미국이 그 위력을 보여주어 전쟁을 종식시키고 분쟁을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했다. 대부분의 군 전문가들은 이러한 애매한 중재안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이는 곧 그가 탈레반에 폭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라고 조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초기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벵가지 반군 세력에 대한 카다피 정권의 학살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카다피 정권 축출을 위해 이를 구실로 군사 개입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오바마 대통령의 참모진은 (힐러리 클린턴만 제외하고) 모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심지어 게이츠 전 국방부 장관은 또 다시 중동 지역 원정을 고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뇌를 검사해봐야 할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6) 하지만 언론 및 해외로부터의 압박이 이어졌다. 특히 전투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의 압박이 컸다. 이에 더해 민주당의 케리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맥케인 상원의원을 필두로 의회에서는 비행금지 구역의 신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통령은 다시금 ‘중재안’을 선택한다. 군사 개입 요구를 수용하되, 유엔에 위임해 포괄적 동맹의 맥락에서 개입을 진행하며, 군사 작전은 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유엔에 위임을 해봤자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상황은 곧 유엔의 손을 벗어난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다

여기에서 ‘오바마 독트린’이라 부를만한 부분이 있을까? 미국은 ‘후방에서 지휘’하며 교묘히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려 했을지 모른다. 드론으로 폭격을 가하고 간헐적으로 특수 병력을 사용하거나 다른 병력이 현장에 개입하게 두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신보수주의 기자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후방에서 지휘한다는 것은 곧 지휘를 하지 않는 것이며, 이는 포기나 다름없다”며 격분한다.(7) 시리아에서의 상황으로 보면, 이는 ‘오바마 독트린’으로 볼 수가 없다. 아프간의 경우처럼 그저 ‘상황적 선택’일 뿐이다. 오바마는 병력 동원에 찬대하는 진영과 반대하는 진영을 모두 아우르려 했고, 결과적으로는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앞서 리비아에서의 선례로 인해 오바마는 더욱 군사개입을 망설이게 됐다. 2011~2013년 2년간, 그는 수차례 규탄 발언을 쏟아놓으며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반군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는데, 그러면서도 군의 개입은 일절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리아는 리비아와 다르다. 진정한 동맹이 없는 국가는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2013년 8월, 알-아사드 대통령이 다마스 교외에서 화학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1년 전 오바마가 그어놓은 경고선(레드 라인)을 넘어서자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의 명예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 어떻게 이를 방관할 수 있겠는가? 백악관 내부에서는 알-아사드의 ‘처단’ 쪽으로 의견이 모인다. 원래 군사 원정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이었던 조 바이든 부통령조차 “위대한 국가는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고 경고했다.(8) 오바마 또한 같은 입장을 취하는 듯 했다. 심지어 펜타곤에 폭격 지점의 제안까지 요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비 간섭주의 성향의 참모인 맥도너와 상의한 오바마는 이후 돌연 입장을 바꾸고 참모진에게 퇴로를 모색하라고 지시한다. 그러자 곧 항의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프랑스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그리고 걸프 지역 국가들은 오바마의 결정에 비난을 퍼부었으며, 이 같은 결정은 공화당으로부터 ‘비겁하다’는 손가락질을 받는 동시에 수많은 민주당원의 공분을 샀다. 심지어 민주당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른다.(9) 파네타 전 국방부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오바마가 “전 세계에 잘못된 의사를 타전했다”고 밝히면서 “이 사건으로 그의 확실한 약점이 드러났다. (···) 내가 볼 때 대통령은 지도자의 열정보다 법대 교수의 논리에 치우칠 때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10)
보수 진영에서는 오바마의 결정이 하나의 티핑포인트가 됐다면서 이를 ‘제2의 뮌헨 협정’에 비유한다. 이를 기점으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만약 2013년에 미국이 다마스를 정벌했다면 IS 사태가 불거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란도 시리아 무대에서 그렇게 막대한 입지를 차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며, 모스크바 역시 그렇듯 과감하게 크림 반도를 병합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오바마는 러시아가 과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무력 대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2008년 그루지야 침공 당시에도 10만 병력에 달하는 미 주둔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고 반박한다. 오바마는 푸틴의 간계를 러시아 세력의 팽창으로 보는 것은 “대외 정책과 관련해 힘의 본질을 모르는 처사”라며 일축했다. “진정한 힘이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이를 얻어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11) 게다가 워싱턴은 우크라이나 사태 때에도 두 손을 완전히 놓고 있지는 않았다. 오바마가 중앙 유럽 지역에서 NATO의 대응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외교 및 경제 차원에서의 제재를 가하도록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2013년 8월 시리아에서의 결정은 미 외교 정책에 전환점이 되긴 했다.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오바마가 애매한 군사적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화학무기 해제와 관련한 협정을 두고 러시아와 협상을 벌이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도발’에 무조건 군사적 반격으로 대응하던 기존 관행에 종지부를 찍었다. 백악관이 ‘방어’ 전략으로 돌아섰음을 보여준다.(12) 신규 파병에 대한 거부는 물론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주둔군 철수에서 군 예산 축소에 이르기까지, 오바마 정부는 전 세계에 포진한 미군 병력을 줄임으로써 국내 문제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울러 부시 집권 때의 과격주의라는 불안 요소를 개선하는 데에 힘쓰고자 했다. 미국의 ‘방어’ 전략은 2012년 미 국방부가 발간한 ‘전략 가이드’에도 분명히 명시돼 있다. “안보 목적의 달성을 위해 우리는 비용이 별로 들지 않고 가벼운 성격의 전술을 발전시켜갈 것이다. (···) 앞으로 미국의 병력은 이제 대규모 장기전을 수행할 여력이 없다.”
미국이 이러한 입장을 보인다고 해서 이를 고립주의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지구 상 곳곳에 수십 개 미군 기지를 두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규모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고, 각지에 정보국을 둔 상태다. 게다가 이라크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예멘, 파키스탄, 소말리아 7개국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폭격을 퍼부었으며, 계속해서 다른 나라의 일에 간섭을 하며 남미를 중심으로 한 여러 정부들의 불안을 야기하는 공작을 펴고 있다.(13)

전쟁이 아니라, 
‘어리석은 전쟁’을 반대한다

최근 들어 나타나는 미국의 군사적 소극주의는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힘의 재분배를 추구하겠다는 미국의 이상주의에 속하는 것도, 그렇다고 평화주의 노선에 따른 것도 아니다. 스스로도 거듭 강조하는 바와 같이 오바마는 전쟁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리석은 전쟁”에 반대할 뿐이다. 국익 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고 비용 대비 성과가 나쁜 전쟁만을 거부하는 것이다. 현재 난민들은 유럽이나 터키, 리비아로 향하고 있으며, 유가도 낮은 상태가 지속된다. 테러도 앙카라나 브뤼셀, 튀니스, 바마코 쪽에서 일어나는 상황에서 미국이 왜 중동 지역 원정길에 나서겠는가? 하지만 2015년 12월 2일 캘리포니아 주 샌 버너디노에서 열네 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 사건보다 더 큰 규모의 테러가 미국 내에서 일어난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오만하게 군다면 다른 나라들이 우리에 대해 유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겸손하되 강한 나라라면 우리는 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살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10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나는 우리 군이 흔히 말하는 ‘국가 재건 사업’에 동원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 9.11 테러가 일어났다!
오바마는 백악관에 입성할 때 이 같은 테러 문제를 일단락한 뒤,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이는 아시아 지역에 관심을 두겠다는 결심이 확고한 상태였다. 2010년 언급된 ‘(아시아로의) 중심축’이라는 표현도 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콜롬비아 대학의 스티븐 세스타노비치 교수가 기술한 바에 따르면, “베트남 전 말기 중국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이 방어 전략을 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균형점이 아시아 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방어 전략으로 돌아선다. 이는 닉슨의 말대로 ‘열강으로서의 미국이 사라진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14) 따라서 이 같은 방침의 일환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국빈 방문과 호주의 미군기지 개설, 태평양의 미 함대 증강 등) 여러 가지 상징적인 행동을 보여주었으며, 2016년 2월 4일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 전환 또한 그 끝을 보지는 못했다. 
사실 ‘아랍의 봄’ 사태가 불거짐에 따라 미국은 2011년부터 중동 지역에 개입한 상황이었다. 제프리 골드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이 지역에 대한 피로감은 물론 무관심까지 내비친다. 그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 지역에 대한 선호도를 확실히 표명한다. 이들 지역은 “어떻게 하면 미국인을 죽일 수 있을 것인지를 궁리하기보다 보다 나은 교육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낼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마셜 플랜에 따라 유럽 16개국에 쏟아 부었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에 지출했다.(15) 그럼에도 이 지역에서 어떤 질서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이라크 전쟁과 점령, 리비아 사태 개입 등은 더 이상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러한 실패의 연속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힘에도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미국이 힘이 있다해서 모든 걸 할 수는 없으며, 특히 중동 지역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패권은 안정적으로 유지된 시기와 그렇지 못한 시기가 번갈아 나타났다. 전쟁이 끝난 직후의 미국은 승승장구했지만, 이후 1950년대에는 그러한 미국의 패권에 의문이 제기된다. 중국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소련이 원자폭탄을 보유함에 따라 공산주의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던 상황에, 과연 미국은 제동을 걸 수 있을 만큼 강한 나라인가? 한국 전쟁에서 핵 폭격을 가하려던 더글러스 맥아더 전 동맹군 총사령관은 1952년부터 이미 “자원 유지 능력이 부족하고 병역예산 비용이 늘어가는 데다 공공부채가 아찔할 정도로 증가”함에 따라 미국이 “상대적 하향세”에 접어들었다며 경고했다. 이후 10년간은 패권 장악의 유혹이 다시금 불거진다. 이에 1961년 1월 20일 취임 연설에서 케네디 대통령도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우리는 그 어떤 짐이라도 감당할 것이며, 그 어떤 시련이라도 감내할 것이고, 그 어떤 우방이라도 지지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가 유지되고 승리할 수 있도록 그 어떤 적이라도 막아설 것이다.”
미국의 패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때는 대개 경제적 불평등이 줄었던, 즉 중산층의 미래가 비교적 밝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어 국내 상황의 전망이 어두워지면 세계무대에서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이 곧 부담으로 작용한다. 1970년대에는 가계 부채와 금리가 증가하고 두 차례 오일 쇼크로 미국 경제가 악화됐는데, 베트남에서의 참패와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 내 소비에트 세력의 확대 등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 장악에 따른 폐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외교협회 연구에 따르면 1976년 당시 미국이 “일단 국내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비율은 43%에 달했다. 1964년 맨 처음 이 조사가 실시됐을 때(20%) 이후로 최고 기록이었다. 2013년에는 이 수치가 52%까지 올라간다. 또 한 번의 신기록이었다. 2014년 3월 조사에 따르면, 만약 폴란드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의 폴란드 지원 사격 여부에 대해 단 30%의 미국인만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상대가 라트비아일 경우 이 비율은 21%까지 추락한다. 심지어 상대가 영국이라 할지라도 겨우 56%에 이르렀을 뿐이다. 계속 조사해봤자 사람들은 드론 공습이나 IS에 대한 폭격 정도에만 동의하는 정도였다. 이마저도 2014년 8월 제임스 폴리 기자의 참수 사건과 모술 함락에 따른 결과였다. 

“다시 국내 사안에 집중해야 한다”
오바마, 크루즈, 샌더스의 이구동성

물론 ‘여론은 움직이기 나름’이고, 전쟁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 형성은 얼마든지 가능하다.(16) 그러나 오바마는 그럴 마음이 없다. “NATO는 구식이고,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면서 미국의 NATO 탈퇴를 제안했던 트럼프만큼이나 말이다. 영국의 역사가 페리 앤더슨이 지적한 바와 같이, 개입주의와 고립주의는 모두 민족주의의 한 형태에 해당한다. 하나는 유일성을 내세우며 미국의 패권을 정당화하고 - 그에 따라 세상을 좋은 길로 인도할 것이라는 워싱턴의 메시아적 과격주의도 정당화하며 - 다른 하나는 예외성을 내세워 미국의 지배를 정당화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사회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17)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지배적으로 나타났던 고립주의는 냉전 기간 동안 보수 진영에서 거의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추었다가 소련의 붕괴 이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철저하게 소극적인 고립주의의 형태로서 자유지상주의를 내세우는 론 폴이 대표한다. 이어 닉슨 및 레이건 정부의 고문이었던 패트릭 뷰캐넌이 내세우는 보수적 비 간섭주의 형태로 나타나는 고립주의도 있다. (18) 
2006년 론 폴은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대영제국의 전철을 밟는다면, 우리의 말로는 대영제국과 똑같이 끝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1990년대나 2000년대만 해도 상당히 소수였던 이 움직임은 오바마의 백악관 입성과 함께 다시금 고개를 든다. 카토 연구소와 <The American Conservative(2002년 뷰캐넌이 이라크 전에 반대하기 위해 창간한 잡지)>를 중심으로 집결한 고립주의자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실패와 함께 경제적 사회적 위기 상황을 강조한다. 2011년 8월, 미 의회는 차후 10년에 걸쳐 1조 달러의 군 예산 삭감을 예고하는 긴축안을 가결했다. 이는 예산 강경파가 군사 강경파를 누르고 승리한 셈이었다.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트럼프와 크루즈가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이 고립주의 성향이 부상하고, 또 고립주의로 기우는 유권자와 기존의 외교 정책 노선 사이의 간격이 점차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도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와 펜타곤 고위 관계자, 미 국무성, <월스트리트저널>이나 폭스 뉴스, CNN등 언론 매체의 데스크는 확고한 개입주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큰 편이다. 하버드대의 벤자민 프리드만 교수는 “기존의 외교 노선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거의 우파의 신보수주의자들과 좌파의 자유주의 간섭주의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19)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이들 대부분은 크루즈나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경우 기권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아니면 차라리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시리아 및 리비아 폭격에 대해서도 지지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이란과 체결한 핵 협정이 부실하다고 생각하며, 국무성에서 나온 뒤로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최근에는 당내 반전 노선에 속하는 경쟁 후보 버니 샌더스의 공격을 견제하기 위해 어조를 완화해 표현하고는 있지만, 지금껏 외교 라인을 이끌어온 지도층에게 있어 힐러리 클린턴은 가장 마음이 놓이는 개입주의 노선의 후보다. 프리드만 교수는 “미국의 간섭에 대해 회의적인 학자와 현실주의자들이 대개 학계 쪽에 포진돼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국내 사안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크루즈 예비 후보나 트럼프 예비 후보, 오바마 현 대통령이 호전적인 열의 부족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종 입에 올리는 논거이다. 세 사람 모두 (걸프 지역 국가와 독일, 일본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에만 안보 문제를 일임하기보다 전 세계 안보 체계에서 각자 자신이 부담해야 할 몫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또한 이들 셋은 어떻게 해서든 이스라엘을 지키고 IS를 완전히 제압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심지어 ‘융단 폭격’까지 퍼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세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더 이상 중동 문제가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되지 않는다는 데에 생각을 같이 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들의 생각이 옳은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덕적 정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문제는 좀 달라진다. 60년간 미국이 포탄의 힘을 빌려 끌어올린 대장으로서의 지위를, 느닷없이 더 이상 원치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선언할 수 있는 것인가? 미국은 자신이 집요하게 뒤흔들어놓은 한 지역에서 (금전적 보상이나 외교적 지원, 정당한 교역에 기반을 둔 협력 관계의 구축 등) 그 어떤 후속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등을 돌려도 되는 것인가?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이자 국무부 자문인 제레미 샤피로는 중요한 것이 “(중동 지역에) 평화가 정착됐는지 여부가 아니라 미국이 역내 평화 부재 상황에 연루돼 있다는 점”이라고 잘라 말한다. 사실 미국이 손을 떼겠다고 해서 모든 일이 백지화될 수는 없다. 앞으로 세계 각지에 더 이상 병력을 배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미국이 야기한 분란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업. <22세기 세계> 등의 역서가 있다. 



(1) Neo-cons;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을 일컫는 용어. 네오 콘서버티브(Neo-conservatives)의 준말.
(2) Tim Alberta & Eliana Johnson, ‘Many GOP foreign-policy leaders are suspicious of Ted Cruz’, <National Review>, New York, 2015년 12월 14일.
(3) 쥐스탱 바이스Justin Vaïsse, <버락 오바마와 그의 대외 정책(2008-2012) Barack Obama et sa politique étrangère (2008-2012)>, Odile Jacob, Paris, 2012. 
(4) Robert M. Gates, <Duty: Memoirs of a Secretary at War>, Knopf, New York, 2014. 
(5) Bob Woodward, <Obama’s War>, Simon & Schuster, New York, 2010.
(6) Greg Jaffe, ‘In one of final addresses to army, Gates describes vision for military’s future‘, <The Washington Post>, 2011년 2월 26일.
(7) Owen Harries & Tom Switzer, ‘Leading from behind : Third time a charm?’, <The American Interest>, III권 제5호, Washington, DC, mai-juin 2013년 5~6월호에서 인용.
(8) Jeffrey Goldberg, ‘The Obama doctrine’, <The Atlantic>, Washington, DC, 2016년 4월호에서 인용.
(9) 앞의 Jeffrey Goldberg 기사에서 인용.
(10) Leon Panetta, <Worthy Fights : A Memoir of Leadership in War and Peace>, Penguin, New York, 2014. 
(11) 앞의 Jeffrey Goldberg 기사에서 인용.
(12) Colin Dueck, <The Obama Doctrine: American Grand Strategy Today>, Oxford University Press, New York, 2015.
(13) 모리스 르무안Maurice Lemoine, ‘미국이 지원하는 중남미의 소리 없는 쿠데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2014년 8월호.
(14) Stephen Sestanovich, <Maximalist. America in the World from Truman to Obama>, Knopf, New York, 2014.
(15) 산출액은 인플레이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Cf. Ian Bremmer, <Superpower. Three Choices for America’s Role in the World>, Portfolio Penguin, 2015.
(16) Cf. 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도미니크 비달Dominique Vidal, 앙리 말레Henri Maler 및 마티아스 레이몽Mathias Reymond, <여론은 움직이기 나름이다: 언론, 정당한 전쟁과 정당한 이유L’opinion, ca se travaille. Les medias, les <guerres justes> et les <justes causes>, Agone, Marseille, 2014 (초판: 2000).
(17)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 ‘미국은 어떻게 그 자신의 모습을 본떠 세계를 만들었나?Comment les Etats-Unis ont fait le monde à leur image’, Agone, 2015.
(18) Patrick J. Buchanan, ‘Why are we baiting Putin?’, 2006년 5월 9일, www.antiwar.com
(19) Benjamin Friedman, ‘The state of the Union is wrong’, <Foreign Affairs>, New York, 2014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