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뮤지엄의 ‘취향저격’
2016-07-01 김지연 l 예술 에세이스트
프랑스 역사학자 도미니크 풀로(1)는, 박물관(2)의 역사와 시대에 따른 변화, 그리고 미래에 대해 다룬 그의 저서 <박물관의 탄생>에서, “박물관은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는 기쁨을 선사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이 구절에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 우리 주변의 박물관들 혹은 미술관들은, 우리 관람객들의 일상에 특별함을 선사하고 있을까? 문화적 훈련으로 오랫동안 단련된 일부 관람객들 외에, 평소에는 예술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관람객들도, 박물관이라는 공간에서 가슴 저릿한 기쁨을 느끼고 돌아가는 것일까?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줄지도 모를, 한 미술관이 눈에 띄었다. 지난 해 개관한 한남동 ‘디뮤지엄’은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라는 모토 아래, 사진·패션·디자인 등 대중적인 전시를 꾸준히 열어 온 대림미술관의 2호점 격이다. 개관전인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방>이 관람객 26만 명을 달성하며 화제를 뿌렸다. 국내 대규모 전의 손익분기점도 관람객 10만 명이라고 하니, 디뮤지엄 규모의 전시에서 26만은 놀라운 성공을 의미하는 숫자다. 또한 눈에 띄는 점은, 그 중 68%가 20대라는 점이다. 그들은 주말마다 교통도 좋지 않은 한남동 독서당로까지 찾아와 주말마다 티켓박스 앞에 긴 줄을 선다. 그리고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다. 인스타그램 검색은 20대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를 알아보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인데, ‘디뮤지엄’ 및 관련 해시태그의 검색결과는 무려 12만 건에 가깝다. 대림미술관은 17만 건 가량인데, 지난 달 16일에 새 전시 <헤더윅 스튜디오>를 오픈한 디뮤지엄이 조만간 이를 앞지를 듯하다. 서울시립미술관 4만2천건, 국립현대미술관 6만6천건, 국립중앙박물관 2만7천 건과 비교한다면, 디뮤지엄과 대림미술관이 20대에게 얼마나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의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중 취향, 특히 20대 취향의 전시로 미술관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너무도 쉬워 보이는 진부한 답이지만 바로 여기에 시사점이 있다. 디뮤지엄의 모태인 대림미술관은 예전부터 폴 스미스, 린다 매카트니 등 트렌디한 인물들의 작업이나 어렵지 않은 디자인 전시를 주로 열었으며, 대중의 눈높이와 재미를 고려한 디스플레이를 지향했다. 그리고 티켓과 미술관 내 카페, 공연이나 강의 등의 연계 프로그램을 담은 패키지 멤버십을 부담 없는 가격에 판매해왔다. 또한 사진촬영을 거부해 온 다른 미술관들과 달리 인증샷을 허용하다 못해 장려하고, 앱을 통해 오디오가이드를 무료제공하며, 아트샵에서는 대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감각적인 디자인 문구를 판매해왔다. 그야말로 20대 ‘취향저격’(3)식 운영을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디뮤지엄은, 최근 부상하는 핫플레이스인 한남동 독서당로에서 시크한 건축디자인을 앞세워, 이러한 운영방식을 극대화한 곳이다. 이들의 파격적인 행보에 젊은 관람객들은 호평일색이지만, 미술계의 의견은 조금 다른 듯하다. 미술사적 의미가 있거나, 국내 미술계 발전에 기여하는 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운영 방식이 너무 상업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소비 위주의 미술관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우려도 들려온다.
그렇다면 미술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미술관의 기본적인 기능은 수집·보존·전시이며, 여기에 연구와 교육 등이 더해진다. 그러나 디뮤지엄이나 대림미술관은 수집과 보존, 연구보다는 전시와 교육 등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실 완벽한 형태의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트렌디한 갤러리나 문화공간의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전문인력이 충분치 않은 대부분의 사립 미술관들은 모두 비슷한 사정이므로, 이를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게다가 대중적이거나 소비적인 것이 곧 저급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정수준 이상의 질이 담보되는 가운데, 대중들이 이에 열광한다는 것은 분명 시대를 읽어낸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학술적 의미를 가지는지, 기본 목적에 얼마나 온건하게 부합하는지를 떠나서 말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영혼의 미술관>에서, 미술관이 예술을 숭배할 것이 아니라 일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예술애호가라면 높은 벽 뒤에 예술작품들을 쌓아놓고 학술적 범주에 집착하는 대신, 미술관의 상대적 중요성을 낮추는 데 중점을 두고, 예술작품 가치를 세상에 더 널리 알리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술관을 과거의 창작품을 모아놓은 ‘죽은 공간’으로 만들기보다는, 공간을 개혁하고 새로운 시각을 더해, 우리와 예술의 만남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즈음에서, 앞서 언급한 도미니크 풀로의 글이 떠오른다. 미술관이 관람객들에게 제공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기쁨’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결국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공감해야 한다. 대중에게 ‘예술을 베푼다’는 시혜적인 태도보다는, 그들이 누구인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섬세하게 고민한 콘텐츠를 제공할 때 관람객의 일상에 특별한 경험을 더하고 기쁨을 끌어낼 수 있다. 디뮤지엄의 성공 포인트도 어쩌면 여기 있을지 모른다.
디뮤지엄의 행보는 우연찮게도 20대의 트렌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지금의 20대는 역사 속 그 어느 세대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왔다. 이전 세대보다 생활수준은 향상됐지만, 원하는 것을 가질 만큼의 경제력은 없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달관하고 있다. 이들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있어 보이는 연출’을 연마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특별한 취향에 목을 맨다. 그러나 학업·알바·취업 등을 감당하며, 오래 고아낸 듯한 깊은 취향까지 갖기는 녹록치 않다. 그래서 어떤 경험이나 취미를 차근차근 쌓기 보다는,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경험을 사거나 대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최근 ‘원데이 클래스’와 같은 경험의 소비가 증가하는 것에서 이러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되도록 낮은 가격에 더 나은 가치, 즉 ‘가성비’(4)를 추구한다. 그와 동시에,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은 희귀하고 특별한 것을 선호한다. 이는 예술소비가 일종의 생활습관으로 이어진 최근의 트렌드와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작은 미술관의 조금 덜 대중적인 예술, 그리고 ‘미술관에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감각적인 전시, 단돈 1만5천원에 전시 3회 관람과 함께 미술관 카페에서의 우아한 시간을 즐기며 VIP가 된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멤버십까지 갖춘, 디뮤지엄과 같은 곳은 이들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미술관들이 위치한 서촌이나 한남동은 트렌드세터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다. 전시를 관람한 후, 자연스럽게 트렌디한 맛집이나 카페로 데이트 코스가 이어질 수 있다는 이점까지 있다.
또한 아직 이뤄 본 사회적 성공도 없고, 앞으로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20대는 ‘인정’에 목말라 한다. 이는 바깥세상에서의 인정보다는 또래집단이나 소셜미디어 내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시도로 나타나며, ‘인증샷’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이들은 공개적으로 문화적 취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활동을 선호한다. 문화적 수준을 증명할 수 있을만한 퀄리티의 전시를 제공하며, 이 공간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인증샷을 제재 없이 촬영할 수 있는 미술관들은 당연히 방문희망 1순위일 것이다. 또한 친숙한 앱을 이용해 무겁지 않은 설명을 제공하는 오디오가이드는, 정보나 지식을 추구하면서도 짧고 간결한 콘텐츠를 선호하고, 스마트 기기를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이들에게 좋은 아이템이기도 하다.
사실 대다수의 대중에게 미술관은 아직도 견고한 성과 같다. 제 발로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도, 미술관은 여전히 허리 숙여 인사하거나 푸근하게 미소 짓지 않는다. 하지만 미술관의 기본 목적인 ‘전시’는 관람객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또한 미술관의 문턱을 한 번 넘은 이들은 다른 미술관을 찾기 쉬워진다. 이런 점에서,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디뮤지엄에 대한 미술계의 비판이 일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약진이 의미를 생성하는 지점이다. 물론 디뮤지엄 역시, 대기업 후원으로 운영하는데도 불구하고 저렴하지 않은 입장료나, 흥행을 염두에 둔 단발성 전시로 인해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느 한 편의 승리라기보다는, 근엄한 미술관에서 더욱 충실하고 재미있게 다가가는 미술관으로 더불어 나아가야만 한다.
금융그룹 카이샤 은행이 설립한 바르셀로나의 미술관 ‘카이샤 포럼’은 좋은 사례이다. 이 곳은 소장품 800여 점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달리 하는 알찬 기획전들, 대중의 눈높이를 맞춘 개방적인 태도와 자유분방한 관람 분위기, 그리고 무료관람이라는 장점까지 더해져 시민과 관광객이 모두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공공미술관들도 최근 들어 대중적인 관심을 끌만한 전시를 개최하고, 사진을 일부 허용하는 등 새로운 변화의 수순을 밟고 있다.
반면에 청년 예술가들을 변방에 둔 기성 미술계는, 20대 문화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조만간 이들이 미술계의 중심이 되고, 관람객의 주류가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20대에 대해 한없이 비판적이지만, 조금만 관점을 바꾸어 공감한다면 희망은 금세 모습을 드러낸다. 더 나아질 것이 없을 듯한 시대 속에서도, 스스로 문화를 찾고, 잘 몰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에 덤비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청년들의 모습 말이다.
디뮤지엄의 새 전시 <헤더윅 스튜디오>에 20대 관람객들이 몰리는 것은, 헤더윅이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디자이너라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문만 활짝 열어 준다면 언제든 그 문턱을 넘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미술관들이야말로 이들 세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예술의 일상화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가치를 모르는 청년들이 잘못됐다 비판하기보다,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방법을 전환해 도울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가치가 더 낫다면 대체할 수도 있다. 이렇게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미술관에 바치는 한 편의 헌정시와도 같은 영화 <뮤지엄 아워스>를 보자. 영화 속 카메라는 도시의 사소한 풍경과 미술관의 그림을 교차하며 사진을 찍듯 하나하나 천천히 담는다. 무엇이 그림이고, 무엇이 빈의 풍경인지 혼돈스러울 즈음, 영화는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슬쩍 진실을 일러준다. 미술관은 원래 고고하고 근엄한 곳이 아니라 예술을 개방하기 위해 만든 지극히 대중적인 공간이며, 이 작품들이 우리의 삶과 다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덧붙여 미술관을 관람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예술을 잘 모르거나 품위 없게 보일 수 있지만, 그들 나름대로 예술품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귀띔해준다.
<박물관의 탄생>에 의하면, 미술관은 대중에게 개방하기 위한 공간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문화적 헤게모니를 공고히 해 버렸고, 이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뮤지엄 아워스>가 전하는 메시지처럼, “예술은 곧 삶”이다. 위대한 예술 속에 삶이 있듯, 평범한 삶 속에도 예술이 있다. 동시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삶과 더욱 유연하게 교류하기 위해, 우리의 미술관들이 다시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이다.
글·김지연
홍익대 예술학과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1) Dominique Poulot(1956~), 역사학자이자 파리 1대학 팡테옹-소르본의 미술사학과 교수. 박물관과 문화유산 연구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2) ‘미술관’을 포괄하는 용어로서의 ‘박물관(Museum)’을 의미한다.
(3) 취향을 ‘저격’당했다고 할 만큼, 취향에 꼭 들어맞는다는 뜻의 신조어
(4) ‘가격 대비 성능비’를 줄인 신조어. 가격에 비해 성능이 높은 것을 추구한다.
< 참고문헌 >
(1)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6>, 미래의창, 2015
(2) 김혜인, <2016 문화예술 트렌드 분석 및 전망>,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5
(3) 도미니크 풀로, <박물관의 탄생>, 김한결 역, 돌베개, 2014
(4) 대학내일20대연구소, <2016 S/S 20'S Trend Report>, 대학내일, 2015
(5) 대학내일20대연구소, <2016 하반기 20대 트렌드 리포트 하프에디션>, 대학내일, 2016
(6) 알랭 드 보통, <영혼의 미술관>, 김한영 역, 문학동네, 2013
(7) 이은화,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한영문화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