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위한 악
2017-12-29 자클린 케렌 | 작가
악마는 영성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인가? 악마는 가장 믿음이 굳은 자들을 공격함으로써, 오히려 이 선택받은 ‘불운한’ 자들의 신앙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잘못된 만남이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기독교 성자의 생애나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 영성으로 향하는 그들의 앞길에는 얼마나 빨리 방해자가 끼어드는지 놀랄 정도다. 때로는 무시무시한, 또 때로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별안간 성자들의 인생행로에 불쑥 끼어드는 존재, 다름 아닌 악마 이야기다.
사실 누군가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이 악마의 역할이기도 하다. 사실상 악마를 뜻하는 단어 ‘Diabolo’는 본래 희랍어로 ‘길을 막아서는 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신의 계획에 걸림돌이 돼 인간의 영적 성숙을 가로막는 자를 뜻하는 것이다. 마치 모든 영적 구도의 길에는 악마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 혹은 일상적 동반자라도 되는 듯이 보인다. 물론 순례자의 믿음과 열의를 더욱 단단히 해주는 존재 말이다. 가장 위대한 기독교의 성자들도 생전에 모두 악마와 마주했다. 4세기 이집트 사막의 대 안토니우스에서, 아르스의 사제(성 요한 마리 비안네를 의미-역주)에 이르기까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서 파드레 피오에 이르기까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에서 아토스의 성자 실루안까지 모두 말이다.
로마의 군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성 마르티노(316~397)는 처음 사도의 길을 걸으려 했을 때 이런 경고와 맞닥뜨렸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언제나 네 앞에 악마를 대적하게 되리라.” 사실상 악마는 훗날 투르의 주교가 된 그를 한시도 놓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임종의 순간까지 그의 머리맡을 얼쩡거렸다. 사도 베드로는 첫 서신에서 신도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도 광야에서 보낸 40일 동안 악마와 대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며 끝내 악마의 유혹을 결연히 물리쳤다. 그러니 예수의 제자라고 어찌 악마와의 대적을 피해갈 수 있었겠는가?
속임수에 능한 악마는 인간에게 혼란과 공포심을 불어넣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악마는 인간의 모습으로도, 동물의 모습으로도 나타났으며, 괴물이나 천사로도 모습을 바꿀 수 있었다. 악마는 불길한 소리나 고함, 웃음, 요란한 소음, 혹은 악취로 자신의 사악한 존재를 알렸다. 파드레 피오(Padre Pio, 1887~1968)는 침대가 뒤집히거나 벽에 잉크병이 내던져지는 장면을 목격했고, 상급자에게서 받은 서한이 때로는 얼룩으로 가득해지거나 혹은 완전한 백지상태로 변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악마는 하나님에게 자신을 바친 자들의 육체나 정신을 직접 공격하기도 했다. 그들을 가격하거나 상처를 내거나, 목을 조르거나 숨을 쉬지 못하게 압박했다. 때로는 무섭게 겁박했고 또 때로는 감언이설로 꾀어냈다. 폴리뇨의 안젤라는 말했다. “악마가 마구 때리고 비트는 바람에,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시에나의 카타리나도 매일 악마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언젠가는 그가 당나귀에 실려 진흙탕 속에 내던져지는 광경을 목격한 이들도 있었다. 아빌라의 테레사는 요란한 소음과 괴기스럽게 이를 가는 소리, 혹은 지독한 악취를 고통스럽게 견뎌내야만 했고, 온몸을 구타당하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때로는 악마들이 내 영혼을 공처럼 가지고 노는 기분이었다. 결코,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악마는 그에 귀에 대고 “성모방문수녀회의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가 저주받은 자, 버림받은 자”라고 사악한 목소리로 지껄여댔다. 악마는 리지외의 카르멜 수도회에 들어간 젊은 테레사에게 “너는 결코 성녀가 될 운명이 아니다. 모든 것이 부재한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악마는 테레사의 마음을 끊임없이 공격해 그의 마음에 의심과 음란함과 산만함을 일으켰다. 미사 중 몸이 마비되거나 심한 허기에 사로잡히게 했으며, 기도와 성사를 귀찮게 여기도록 신성모독을 부추겼고, 완전한 절망에 빠뜨리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내면적 혹은 외적 사건을 단순히 시대에 뒤떨어진 믿음이나, 환각, 혹은 개인적 투사 행위로 치부하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악마의 유혹이라고 해야 할까?)을 느낄지도 모른다. 건강한 이성 사용법, 심리치료, 정신분석으로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이다. 그러나 악마가 주로 공격하는 자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지적이고, 분별력과 신앙심이 깊으며, 정신적으로 안정적이고 강인한 사람을 공격한다. 그럼에도 조심성과 겸손을 지닌 사람을 말이다. 실상 악마는 하나님의 빛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빛을 증명해 보이는 사람들을 주된 타깃으로 삼는다. 열성적이고도 맑은 영혼이 악마가 즐기는 단골 메뉴인 셈이다. 아르스의 사제는 평생 자신의 영혼을 낚아채려 하는, ‘갈고리’라는 존재에 시달렸다. 그는 자신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악마는 죄악에서 벗어나려는 영혼만을, 성령으로 충만한 영혼만을 유혹한다. 다른 이들은 이미 악마의 세계에 속하므로 굳이 유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7세기, 훗날 시나이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된 은수사 요한 클리마쿠스는 저서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에서 영적 구도의 길에는 모두 세 번에 걸쳐 악마가 개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태만한 제자의 정신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나타나고, 또다시 구도 중에 제자의 교만한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영적 단계에 도달한 자를 상대로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때는 악마들이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마구 날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악마와의 끔찍한 대면은 말하자면 아주 긍정적인 신호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영혼이 신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을 때, 악마가 더 거세게 미쳐 날뛰는 것이니 말이다.
하나님의 제자가 영적 구도의 길에서 반드시 마주치는 이 거역할 수 없는 시련은, 제자의 믿음을 더욱 깨끗이 정화해주고 단단히 한다. 즉 제자가 쉬지 않고 기도하고 선덕을 행하며, 승리자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도록 만든다. 결국, 악마는 매우 유용한 존재인 셈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나 신의 조력자로 등장하니 말이다.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위대한 주석가 디오게네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를 의미-역주)는 악마를 “죄를 지어 사회봉사 노역형에 처한, 한 마디로 공공선을 위해 일하는 인간”에 비유했다. 물론 악마와 악마의 업적을 칭송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적어도 악마가 일종의 강력한 자극제 역할을 하며 모든 기독교인에게 영적 투쟁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는 점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글·자클린 케렌 Jacqueline Keren
작가. 강사. 서구 전통 신화 전문가. 대표작으로 <악마는 성자를 좋아한다(Le diable préfère les saints>(Cerf·2016)를 저술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