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스럽기만 한 로랑 그바그보의 재판
2017-12-29 파니 피조 | 언론인
2017년 11월 30일, 코트디부아르의 전직 대통령 로랑 그바그보는 헤이그(네덜란드)의 국제형사재판소(ICC) 교도소에서 복역 7년째를 맞이했다. 이곳에 투옥되기 전 그는 코트디부아르 북부에서 햇빛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태로 8개월 가까이 갇혀 살았다. 이처럼 구금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긴데도, 그바그보의 재판을 담당 중인 국제형사재판소 소속 판사 셋 중 둘은 그의 가석방 허용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모든 정황상, 2016년 1월 말에 개시된 그바그보의 재판은 검찰의 쓰라린 실패로 막을 내릴 것이 훤히 보인다. 감비아 출신의 파투 벤수다가 2002년 국제형사재판소 출범 이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히는 이 소송을 맡았다.(1) 이 소송은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몇 주 동안 재판이 번번이 중단되곤 했다. 국제형사재판소 재판소장은 재원 부족을 그 이유로 들고 있지만, 진짜 이유는 좀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듯하다.
그바그보 전 대통령은 2010~2011년 선거 이후, 현 대통령인 알라산 와타라에 대항해 코트디부아르에 갈등을 초래했다. 그바그보는 “민간인에 대한 무력사용을 포함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공공연한 계획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 측은 다음 네 가지 사건으로 적어도 167명이 사망한 것에 대해, 그바그보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2010년 12월 16일의 시위 진압, 2011년 3월 3일 친(親) 와타라 성향의 여성시위대 진압(7명이 시위 도중 그바그보 진압군의 총을 맞고 사망-역주), 2011년 3월 17일 시장(市場) 폭탄테러,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은 와타라 대통령의 군대가 그바그보를 체포한 다음 날인 2011년 4월 12일 발생한 폭력사태가 그것이다. 이런 정치‧군사적 위기로 공식집계로만 3천 명이 사망했다.(2)
그러나 2017년 12월 마무리된 증인신문에서 80여 명의 증인들은 ‘공공연한 계획’의 존재뿐 아니라, 72세의 전직 코트디부아르 수반과 공동피고인 ‘범아프리카 애국청년 회의(Congrès panafricain des jeunes patriotes)’ 설립자인 45세의 샤를 블레 구데의 혐의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하지 못했다. 증인들이 불확실하거나 서로 모순되는 진술을 함으로써, 일부 증언들은 결과적으로 피고(그바그보) 측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당시 코트디부아르군 장성들은 특히, 2010년 12월 16일의 시위가 결코 평화적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장성들은 와타라 측 무장세력이 안보군(les forces de défense et de sécurité, FDS)을 공격하기 위해 시위대에 침투했다고 밝혔다.
이 재판은 2011년 3월 3일 와타라 지지자들에 대한 무력진압 등 다른 중대 사건들의 진상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날 아보보 지역에서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하나, 이를 확인해줄 증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관련 증언을 한 군부와 경찰의 고위 책임자들은 소속대원들이 현장에 없었으며, 당시 도시는 와타라의 전투원들이 장악한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검찰 측 심문도 법정에서 유효성을 잃고 있다. 그들이 조사한 증거물들이 시위와는 무관하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증거 부족은 본의 아니게 그바그보 측에 유리한 입장을 만들었다. 그바그보 측은 2011년 3월 3일의 사건에 대해, 그바그보의 반대세력이 국제사회를 의식해 조작한 일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사건은 2011년 3월 30일,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1975호(3)를 채택할 구실을 마련했다. 프랑스가 초안을 작성한 이 문건은 ‘민간인에 대한 중화기 사용’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군사행동을 허용했다. 폭넓게 해석하자면 이로써 그바그보를 대통령직에서 축출하려는 프랑스의 군부개입이 정당화된 셈이다.
재판부가 소환한 코트디부아르 장교들은 2011년 프랑스 군대의 애매한 역할에 관해 상세하게 진술했다. 그들은 좀 더 오래된 사건들에 관해서도 증언했는데, 이를테면 2004년 코트디부아르 공군 소속 수호이(Sukhoi) 전투기 2대에 의해 부아케(Bouaké)의 프랑스군 기지에 납득하기 힘든 폭발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폭발로 9명이 사망했으며, 그중 8명은 프랑스군이었다. 위키리크스와 언론들은 프랑스가 이 공격에 책임이 있는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에게 보인 관대한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그바그보에 맞선 군사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4)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선 장교들은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선거 이후 발생한 2010~2011년의 소요사태는 2002년 시도된 쿠데타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쿠데타는 그바그보에 대항해 와타라와 연합한 기욤 소로의 신흥군(Forces nouvelles) 소속 반군들이 자행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국방, 외교, 정치 당국의 진술을 들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관련 부서 대표 중 아무도 법정에 소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6년 초 논쟁이 시작된 후, 그바그보 지지 세력은 프랑스를 비판하면서 정치범 재판을 규탄했다. 2017년 10월 초 메디아파르(Médiapart)와 유럽탐사 협력(EIC)이 발표한 4만 건의 비밀문건은 국제형사재판소의 어두운 비밀을 폭로하고 있다. 프랑스 외교부에서 발송한 이메일들은 국제형사재판소 관계자의 부적철한 처신을 드러냈다. 이 문건들로 파투 벤수다 검사의 전임자인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검사가 예심 전에 매번 와타라와 소로의 부인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한 것이 밝혀졌다. 그는 (체포영장이나 국제형사재판소의 제소는 물론) 아무 법적근거 없이 2011년 4월 11일 그바그보의 구금유지를 요청했다.(5) 더욱이 오캄포가 조세회피처에 심어둔 여러 개의 회사를 동시관리하고 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2018년 초에 시작될 국방부의 증인신문은 검사 측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와타라 진영이 자행한 권력남용의 희생자들은 줄곧 기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희생자들에는 2011년 3월 29일과 30일 양일간 두에쿠에 시에서 학살된 최소 800명의 민간인도 포함된다. 한편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희생자의 가족들이 일부 책임자들의 신원을 확인해줬다”고 밝혔다.(6)
여하튼, 파투 벤수다 검사는 ‘양측’을 모두 조사하겠다고 다짐했다.
글·파니 피조 Fanny Pigeaud
언론인. 저서로 <France - Côte d’Ivoire. Une histoire tronquée(프랑스-코트디부아르. 훼손된 역사)>(Vents d’ailleurs, La Roque-d’Anthéron, 2015)가 있다.
번역·조민영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석사 졸업. 역서로 <지도로 읽는 아시아> 등이 있다.
(1) Francesca Maria Benvenuto 프란체스카 마리아 벤베누토, ‘Soupçons sur la Cour pénale internationale(국제형사재판소의 편향된 그바그보 재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6년 4월호‧한국어판 16년 6월호 참조.
(2) Vladimir Cagnolari 블라디미르 카뇰라리, ‘Croissance sans réconciliation en Côte d’Ivoire(코트디부아르의 성장에 드리워진 그림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5년 10월호‧한국어판 16년 1월호 참조.
(3)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5호의 주요 골자: 유엔헌장 7장(군사행동 허용)에 따라 행동, 와타라 대선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인정, 민간인에 대한 즉각적인 폭력 행위 중단, 그바그보 정부에 대선결과 승복 촉구, 유엔 평화유지군 및 프랑스군의 활동에 대한 전면적 협력 당부-역주
(4) Cf. 뱅상 뒤엠, ‘Bombardement de Bouaké: au cœur d’une affaire d’État(국가 사태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부아케 폭발)’, Jeune Afrique, 파리, 2017년 8월 4일, ‘WikiLeaks: les mystères du bombardement de Bouaké(위키리크스, 부아케 폭발의 비밀)’, Lemonde.fr, 2010년 12월 9일.
(5) ‘Procès Gbagbo: les preuves d’un montage(그바그보 재판, 합성의 증거들)’, Mediapart, 2017년 10월 5일.
(6) 국제사면위원회 <2016/17년도 보고서. 전 세계 인권현황>, 런던,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