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에도 철학과 윤리가 있다

2018-02-28     티보 에네통

자신의 영역이 폭력에 침범당할 때, 온몸이 굳어지며 분노에 몸을 떨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여기 철학과 육체의 관계를 분석한 책 두 권이 있다.


이 책에는 충돌이 신체적·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바로 ‘순발력, 근육수축, 긴장하는 몸, 호르몬 발산.’(1)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회·철학을 가르치는 엘자 도를랭은 정치적 자기방어, 자아가 정치화되는 자기방어를 계통적으로 다룬다. “정당방위 등 법적 개념과 달리, (…) 자기방어는 역설적으로 대상이 없다. 즉 폭력에 저항하는 방어 행위가 먼저 존재하고 자기방어의 대상은 그다음이다.”

또한 엘자 도를랭은 카리브해 노예들이 품는 근육에 대한 동경, 토마스 홉스와 존 로크로 대변되는 도덕 철학자들, 미국의 소수인종과 성 소수자 결집, 프랑스 여성들이 당하는 폭력을 고발하는 사회운동, 그리고 헬렌 자하비의 소설 <최악의 주말> 등에 관심을 가진다. 도를랭은 자기방어와 윤리,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역사를 목록처럼 정리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어법까지 상세히 언급하지는 않는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돼 이스라엘에서 발달한 ‘크라브 마가(Krav Maga: 격투기 무술의 일종)’는 ‘공격적 방어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며 1980년대부터 전 세계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도를랭은 영국의 여성 참정권론자들이 활용한 주짓수를 다룬 내용에서 주장하는 것처럼,(2) 자기방어의 전략은 언제나 공격적인 방어원칙에 있다고 본다. 이런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가?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필요한 윤리는 무엇인가?

에민 보즈테페의 에세이는 이런 질문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보즈테페는 무술 유단자이자 영춘권 전문가로, 낭테르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친다.(3) 주짓수와 마찬가지로 영춘권도 환상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아시아 무술이다. 영춘권은 처음부터 여성해방 운동의 의미를 지닌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17세기 한 수녀가 고안했다는 영춘권은 신체의 힘보다는 동작의 절제와 유연함에 중심을 둔다. 영춘권이 속임수나 직관에 의존하지 않는 습관(선제공격, 공격 시 최대한 몸을 느슨하게 하기)을 종합한 이론이나 철학적 사고를 중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방어 체계에서 물리적이고 전략적인 원칙을 통합한다 해서, 제자들이 이론적으로 단단히 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무술 그 자체에서 미덕이나 정당한 의도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전과 윤리적 규범을 조화시켜야 한다. 엘자 도를랭은 폭력문제를 정치사상으로 다루는 방법을, 법칙보다는 근육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다. 도를랭은 수련에서 필요한 감정절제 연습, 혹은 아드레날린과 분노 등 흥분된 감정의 산물에 대해 논한다. 이런 과정은 보즈테페와 르노에 힘입어 근육으로 돌아가 법칙을 생각해본다. 무술 실전은 자기집중을 요구하며, 윤리적 관점에 속한다는 점을 말이다. 


글·티보 에네통 Thibault Henneton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1) Elsa Dorlin, 『Se défendre. Une philosophie de la violence(자기방어. 폭력의 철학)』, La Découverte, 파리, 2017년
(2) Daniel Paris-Clavel 다니엘 파리클라벨, ‘Suffragettes et jujitsu 영국 신여성들이 유술(柔術)을 배운 이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2월호.
(3) Emin Boztepe, 『Philosophie des arts martiaux modernes(근대 무술의 철학)』, Vrin, 파리,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