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에서 우파와 언론은 부패로 만난다
2018-03-29 라파엘 코레아 | 에콰도르 전 대통령(2007~2017
2007년 1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에콰도르 대통령으로 재임한 라파엘 코레아는 재출마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의 옛 동료이자 후임 대통령인 레닌 모레노와 결별하면서 다시금 전장에 나섰다. 코레아 전 대통령은 이런 맞대결을 넘어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좌파의 정권 쟁취와 퇴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보수파가 반격을 위한 정치적 무기로 거대 미디어를 어디까지 이용하는지 증언했다.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어, 1998년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라틴아메리카 우파의 성곽이 종이카드처럼 무너져 버렸다. 2009년 좌파가 중남미의 주요 8개국에서 집권하면서 이 현상이 절정에 달했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도미니카 공화국, 과테말라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파라과이와 과테말라에서는 진보파가 처음으로 정권을 잡았다.
21세기 초, 몇 년간은 주권과 존엄성, 지정학적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경제·사회·정치적으로 커다란 진보가 있었고,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를 도왔다. 이렇게 창출된 부는 국민의 ‘행복하고 안락한 생활’을 위한 것이었고,(1) 실제로도 그렇게 쓰였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세기의 변화를 겪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예전에 집권했던 (보수) 세력이나 패권을 쥔 국가들로서는 반미연대를 기치로 내거는 ‘지역 독립’을 예고하는 원동력의 맥을 끊는 것이 시급해졌다.
2002년 베네수엘라에서 실패로 끝난 반(反)차베스 쿠데타 시도를 포함해, 중남미 지역에서 불안정을 부른 여타의 시도들이 2000년대 말에 이어졌다(볼리비아 2008년, 온두라스 2009년, 에콰도르 2010년, 파라과이 2012년).(2) 재집권을 노린 보수 세력들은 2014년부터 미국과 국제자본 세력의 지원 아래 경제 불황을 이용했다. 이들의 시도는 더러 실패했으나, 지금까지도 별 제한이나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정국은 오리무중이고, 브라질에서는 의회 쿠데타가 발생했으며, 이미 권좌를 상실한 룰라 다 실바(브라질),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아르헨티나) 전 대통령들과 호르헤 글라스 에콰도르 부통령의 경우처럼(3) 진보정권에 대한 사법 쿠데타가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진보 정부가 중남미에서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우루과이 3개국밖에 남지 않았다.
보수 세력이 내세우는 반동 전략의 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좌파의 경제모델은 실패한다는 것, 둘째, 진보정부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하다는 것.
중남미 지역은 2014년 말부터 국제경제 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좌파가 정권을 잡고 있는 우루과이는 리오 그란데강(이 강을 경계로 앵글로아메리카/북미와 라틴아메리카/중남미로 구분된다-역주) 이남 지역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가 아니었던가? 또한 볼리비아의 거시경제지표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지 않은가?
다만, 에콰도르는 폭풍우에 직면했다. 2000년부터 에콰도르 화폐로 사용하고 있던 달러의 엄청난 평가절상 여파로 에콰도르의 수출이 감소했다. 2015~2016년 에콰도르를 뒤흔든 이 외부 충격은 현대사에 있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에콰도르의 수출이 2년 연속 감소했는데, 이는 에콰도르 연간 생산의 10%에 해당하는 손실이다. 2016년 에콰도르 수출액은 2년 전의 64%에 불과하다. 같은 해 1분기, 에콰도르 원유 가격은 배럴당 20달러로 바닥을 쳤다. 생산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같은 시기, 달러 가치가 1달러당 0.734유로(2014년 1월)에서 0.948유로(2016년 12월)로 30% 상승한 반면, 에콰도르의 이웃 나라인 콜롬비아의 화폐가치는 70% 하락하면서 콜롬비아의 수출 경쟁력이 제고됐다. 그러자 에콰도르 정부와 국영석유회사들 간의 돈의 흐름이 역전됐다. 정부는 국영석유회사의 파산을 막기 위해 16억 달러를 쏟아 부어야 했다. 한편, 다국적 석유기업인 쉐브론과 옥시덴탈 페트롤리움(Oxy)과의 법정 공방에서 국제중재재판소는 에콰도르 정부가 아닌 거대 석유회사들의 손을 편파적으로 들어줬다. 에콰도르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1%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이들에게 지불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우리는 항소했으나, 패소하고 말았다.(4)
설상가상으로 2016년 4월 16일 에콰도르 해안지역에 규모 8의 지진이 발생해 수백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지진과 4,000회의 여진으로 경제성장률이 0.7% 하락했고, GDP의 3%에 해당하는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2014년 4%였던 경제성장률이 2015년 0.2%로 하락했고, 2016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1.5%). 그러나 심각한 위기 상황과 고유 화폐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는 기록적으로 단기간, 저비용으로 경기침체를 극복했다. 빈곤이 확대되거나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중남미 지역에서는 전례 없는 쾌거였다.
에콰도르의 진보좌파 정치인들은 경제 성장기뿐만 아니라, 불황기에도 이처럼 역량을 입증했다. 2007년에서 2017년 사이에 에콰도르 경제는 중남미 지역의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성장률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에콰도르에선 최저빈곤층의 소득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2백만 명이 빈곤층에서 벗어났다.
부패에 대한 ‘이유’있는 변명
그러나 이 같은 경제 분석이 에콰도르 국민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최근 몇 년간 경기 흐름이 좋지 않고 자녀들의 취업이 예전보다 힘들며, 자신들의 소득도 예전만큼 빠르게 향상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정확한 정보 전달보다 여론 조작을 선호하는 언론은 이런 국민 정서를 이용한다. 일부 언론은 이와 같은 경기침체가 에콰도르 경제구조 자체로 인한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결과물이라고 호도한다. 그 반대로 에콰도르가 훨씬 중대한 변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에콰도르 좌파는 실패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들은 우익정부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도, 좌파정부들은 모든 것을 하지 않았다고 공격한다.
진보 정부에 대한 두 번째 비판 논거는 도덕적 측면에 관한 것이다. ‘부패’라는 주제는 국민 간의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킨다. ‘부패’하면 누구라도 브라질을 떠올린다.(5) 그러나 이제 에콰도르에서도 부패가 관찰된다. 과연 그럴까? 모든 것은 근거보다는 시선을 끄는 화려한 비방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언론의 융단폭격이 이어지면서, 선택된 희생자에 대한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진다. 우파와 언론의 압력에 굴복한 사법부가 기소된 지도자들에게 내리는 유죄 여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판사들은 입증된 증거를 토대로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증거를 판별한다.
부패 퇴치에 반대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부패 척결은 우리 좌파정권이 에콰도르에서 올린 첫 승리 가운데 하나다. 지난 10년간 우리 좌파정부는 그간 계속돼온 제도화된 부패를 뿌리 뽑았다. 그러나 우파는 ‘반부패 투쟁’에 대해 예전과 동일한 관심사, 즉 정적 숙청을 새로이 포장한 것으로 생각한다. 1990년대의 마약 밀매 단속이나 1970년대의 반공산주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안이건 간에 조직화된 정치적 공세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우리 좌파정부를 비난할 때, 규제 부족, 자유방임, 조직적 부패를 예로 언급한다. 그렇다면 좌파정부에서는, 가령 조세 피난처에서의 비밀계좌 사용이 허용됐을까? 에콰도르는 이미 까다로운 규제를 적용해, 1만 달러 이상 예금할 경우 돈의 출처를 신고해야 한다. 익히 알고 있는 ‘탈세 천국’에는 없던 의무사항이다.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공무원들과 의원들이 조세 피난처와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언론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부패는 국가, 즉 공공 시스템의 내부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상 부패는 대부분 민간 부문에서 비롯된다. 오데브레히트(Odebrecht) 스캔들(6)도 그랬고, 최근에도 독일 기업들은 에콰도르로 건네온 불법 자금에 대한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좌파 또한 부패세력의 성공으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부정적인 반향을 겪은 것임이 틀림없다. UN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경제위원회(ECLAC)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좌파정부가 시행한 정책 덕분에 9,400만 명가량이 빈곤에서 벗어나 중산층으로 진입했다고 한다.
이 같은 좌파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우파에 의해 탄핵위기에 몰린 좌파인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를 구하는데 소수의 지지들만이 결집했다. 사람들은 번영을 실제로 경험해도 주관적인 빈곤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생활수준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또는 과거에 가졌던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의해 계속 가난하다고 느낀다.
많은 경우, 신흥 중산층들의 요구는 최저 빈곤층의 요구와 다르지 않다. 두 계층의 요구가 때로는 대립적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부추기는 것은 우파, 언론, 그리고 상상 속의 뉴욕 생활을 꿈꾸도록 유혹하는 세이렌의 노래다. 서구 세계에서 좌파는 항상 흐름을 거스르며 투쟁했다. 좌파는 진정 인간의 천성을 거스르며 싸우려는 것일까?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역주)에 따르면, 지배 문화를 형성한 우파의 의도에 따라 대중의 욕망이 지배 세력의 이익에 도움을 주게 된다. 우리가 입법을 시도했던 상속법이 무산된 것이 바로 그 예다. 에콰도르 인구 1,000명 당 3명만이 유산을 상속받는 상황에서 새로운 상속세는 큰 금액에만 해당되는데도(상속건수의 0.5% 미만, 또는 에콰도르 인구 1,600만 중 연간 172명), 언론의 조종을 받은 많은 빈민들과 대다수의 중산층이 정작 자신들이 득을 볼 수 있었던 새로운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법치국가를 여론국가로 만드는 언론의 변신
현 시대의 민주주의는 ‘언론이 전파하는 민주주의’라고 재명명해야 한다. 언론은 선거 과정에서 때로는 정당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좌파가 집권하면 주된 반대세력으로 변신하는 언론은, 보수파와 민간 부문의 힘을 구현한다. 언론은 법치 국가를 여론 국가로 바꿔버렸다.
좌파는 정책 이행이 성공적일 때조차도 권력을 행사하는데 한계에 직면한다. 어느 누구도 집권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민에게는 발언권을, 빈민에게는 기회를, 노동자에게는 권리를, 농민에게는 존엄성을 부여했다. 수십 년 전, 반대파들은 우리가 일궈낸 성과의 반만 이루려고 해도 내전이 발발한다고 선전했을 것이다.
혁명가는 도덕성을 겨루는 데 있어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정직한 정부는 조금도 부패하지 않은 정부가 아니라, 부패한 자들을 처벌하는 정부다. 일부 투쟁가들은 이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 정적들을 만족시키는 부도덕한 상황에 휘말린다. 우리는 항상 자성(自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진보정권들은 지배세력과 언론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는다. 지배세력과 언론은 좌파정부들을 뒤흔들기 위해 좌파의 미세한 실수도 놓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순과 실수가 정치과정의 일부라고 머릿속에 품는 것이, 아마도 중남미 좌파의 주요한 ‘전략적 도전’일 것이다. 그러나 모순과 실수 때문에 우리가 굴복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글·라파엘 코레아 Rafael Correa
에콰도르 전 대통령으로 경제학 박사. 『바나나 공화국에서 비(比)공화국으로』(2013, Paris, Utopia)의 저자.
번역·조승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졸업
(1) 가령 에콰도르 정부가 보건 분야에 지출한 금액이 2000년에는 GDP의 0.6%였던 것이 2013년에는 7.5%로 대폭 증가했다.
(2) Maurice Lemoine, ‘En Amérique latine, l’ère des coups d’État en douce(라틴아메리카, 소리 없는 쿠데타 시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4년 8월호.
(3) 2013년부터 코레아 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임한 호르헤 글라스는 2017년 4월에 당선된 레닌 모레노 대통령 정부에서 전임 대통령의 지지를 받아 또다시 부통령직을 맡았다. 2017년 10월 2일 글라스 부통령은 브라질 기업 오데브레히트(Odebrecht)가 관련된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됐다. 코레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를 전임 대통령과 현 대통령 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본다. 모레노 대통령은 코레아가 시행했던 대중인기영합 정책을 서서히 없애고 우파 정치인을 비롯한 재계와의 접촉을 늘리는 등 자신만의 정치행보를 이어갔다. 코레아 전 대통령은 모레노 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의 정치 유산을 없애버렸다고 비난했다.
(4) Hernando Calvo Ospina, ‘Chevron, pollueur mais pas payeur en Équateur(다국적 석유재벌 셰브론에 맞선 에콰도르)’ 참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3월호‧한국어판 2014년 4월호.
(5) Laurent Delcourt, ‘Printemps trompeur au Brésil(브라질의 가짜 봄, 반부패 운동을 가장한 쿠데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5월호‧한국어판 2016년 6월호.
(6) Anne Vigna, ‘Au Brésil, les ramifications du scandale Odebrecht(대통령을 탄핵시킨 브라질 오데브레히트사의 부패 사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7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