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평화를 위협하는 대선결과

2018-08-31     로익 라미레즈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지난 6월 17일, 콜롬비아에서는 대선 결선투표가 치러졌다. 투표 결과, 과거 콜롬비아 정부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맺었던 평화협정에 대해 비판해온 우파 성향의 이반 두케 후보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한편, 이번 대선은 패배한 좌파 진영에게도 쾌거로 기록됐다. 전통적으로 우파 후보 간의 경쟁 구도였던 결선투표에 처음으로 좌파 후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범죄조직들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어 국가 정상화에 대한 기대는 벽에 부딪힌 상태다.


두 남성이 나무에 기댄 채 투표소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중 한 명인 쿠쿠타 지역의 콜롬비아공산당 소속 보좌관 마르틴 로헬리오 하미레즈는 “사람들이 입은 셔츠를 보라. 저 주황색이 그들의 표식이다”라고 말했다.

2018년 6월 17일, 콜롬비아에서는 차기 대통령을 뽑는 결선투표가 치러졌다. 노르테 데 산탄데르 주 산 마르틴 지역에서는 투표소로 지정된 학교 앞으로 많은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강경 우파 성향의 이반 두케 후보와 좌파 성향의 구스타보 페트로 전 보고타 시장이 맞붙었는데, 좌파 진영으로서는 결선투표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상당한 쾌거였다. 지금까지는 좌파 후보들이 1차 투표에서 전부 밀려나거나, 글자 그대로 ‘제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상원의원 출신의 이반 두케는 젊은 신진 정치인으로, 멘토이기도 한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우리베 전 대통령은 두 번의 임기(2002~2010) 동안 게릴라 반군을 비롯한 모든 적대세력에 대한 소탕정책을 펼쳤던 인물이지만 대표적인 친미파임에도 불구하고 1991년 미국의 정보기관이 작성한 한 보고서에서 “마약밀수에 연루된 인물”로 거론된 바 있다.(1)

 
이반 두케의 포스터가 점령한 마을

하미레즈 보좌관은 “이반 두케 진영의 색깔인 주황색으로 서로를 식별하는 것”이라면서 턱으로 한 건물을 가리켰다. 이반 두케의 소속 정당이기도 한 우파 성향의 민주중도당 측 포스터로 도배되다시피 한 건물이었다. 그 앞에는 역시 주황색 모자를 눌러쓴 남성 몇 명이 서서 입구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건물로 들어가, 이반 두케의 측근들에게 휴대폰 사진으로 이반 두케를 찍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 돈을 준다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 지역에서 우파 진영이 보여주는 위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투표소 근방에서의 선거 유세를 전면금지하고 있는 규정이 무색하게도 자동차 창문, 가게 건물, 심지어는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이반 두케의 사진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구스타보 페트로 측의 포스터나 사진은 찾기 힘들었다. 하미레즈 보좌관은 “이 도시는 우파에 점령됐다”고 결론지었다.

이웃 마을의 상황도 비슷했다. 심지어 경찰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기동대와 장갑차들이 배치된 마을 입구 앞으로 여러 대의 버스가 오가고 있었는데, 수 킬로미터 너머에 위치한 베네수엘라 우레냐 시에서 출발해온 이 버스에는 콜롬비아인 수십 명이 타고 있었다. 타치라 강이 가로지르고 있는 이 접경지역의 주민들은 양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버스의 창문에도 이반 두케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이 정도니, 이들이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의 지지자들도 조용히 집결하고 있었다. 비야 델 로사리오 지역에서 멀지 않은 한 가정집에는 페트로 지지자들이 모여 투표소로 데려다줄 봉고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역시 베네수엘라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었는데,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통합사회주의당(PSUV) 소속 직원을 따라 왔다고 했다. 직원은 “당원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통편을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가기에는 꽤 위험한 길이었다. 실제로 이 지역은 밀수꾼들이 통로로 이용하고 있는 곳으로, 많은 범죄조직들이 주기적으로 왕래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한편 베네수엘라에서 국경을 넘어오는 것은 비단 유권자만이 아니다. 강줄기를 따라 난 도로 위에는 사람들이 약 100미터 간격으로 서서, 지나가는 차에 몰래 손짓을 하며 병을 흔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로수 뒤에 놓여 있는 휘발유 통들을 가리키며 “‘핌피네로’라고 불리는 장사꾼들이 베네수엘라에서 휘발유를 가져와 불법 판매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콜롬비아의 휘발유 값은 리터당 약 0.69유로(약 890원)로, 암거래 시장에서는 0.56유로에 팔린다. 반면 베네수엘라의 휘발유 값은 리터당 0.01유로 정도다. 휘발유의 불법유출을 막기 위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7년 1월 콜롬비아와의 접경지역의 휘발유 가격을 0.35유로까지 인상했다. 덕분에 밀수입이 감소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상설인권의원회(CPDH) 소속 인권변호사인 라파엘 제임스는 설명했다. “노르테 데 산탄데르 주는 역사적으로 불법 활동과 연관이 많은 지역이다. 국경과 가깝고 공권력이 잘 미치지 않는 지역이라 범죄조직들이 기승을 부려왔다. 우파 진영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차비스모(차베스주의의 스페인어 표기, 베네수엘라의 좌파 포퓰리즘 정책-역주)의 실패를 들어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위선이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모두 베네수엘라 덕택에 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판매되는 제품들 모두 베네수엘라에서 들여온 것이다.” 

또한 베네수엘라 위기 이후 많은 베네수엘라인들과 이민 갔던 콜롬비아인들이 콜롬비아로 넘어오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이들이 성매매나 밀수 등 범죄조직에 발을 들이거나 소소한 불법거래들로 생계를 잇는 현실이다. 이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부를 비판해온 우파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우파 진영은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를 ‘콜롬비아판 마두로 대통령’이라고 비난해 왔는데, 구스타보 페트로 측도 베네수엘라에 대한 내정간섭에는 반대하면서도 베네수엘라 정부의 위기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극도로 비판적이었다. 

콜롬비아 좌파는 자신들을 베네수엘라 정부와 연관 짓는 미디어의 공격, 그리고 지역에 깊이 뿌리 내린 무장 세력들과 맞서야 했다. 공식적으로는 우리베 전 대통령의 첫 임기 중이던 2005년 해산됐던 이곳의 무장 세력은 이후 대규모 범죄조직을 만들거나 지역 지주들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극우 범죄조직들이 마르크스주의 무장단체와 좌파 진영을 동일시하고 대표적인 좌파 인사들에게 협박과 테러, 살인 등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좌파 게릴라 단체인 4월19일운동(M-19)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장단체 출신 이력은 특히 우파 진영을 포함해 콜롬비아 정계에서는 꽤 흔한 일이다.

페트로 후보는 쿠쿠타 지역에서의 선거 유세 중 실제로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방탄차가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을 뻔했을 정도로 심각했던 이 사건에 대해 좌파 진영은 과거 쿠쿠타 시장(2004~2007)을 지낸 라미로 수아레즈 코르조가 배후에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정적(政敵)의 암살을 지시한 혐의로 수감 중인 그는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녹색당 소속 클라우디아 로페즈 상원의원은 라미로 수아레즈 코르조 전 시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보고타의 라 피코타 교도소에서도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를 하며 쿠쿠타 시 정부에 지시를 내릴 인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파엘 제임스 변호사는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분쟁의 특징은 반군세력이 공권력을 집어삼킬 만큼 강력하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지역경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반군세력은 광산업이나 대규모 단일재배에 반대하고 있는 다수의 농민 공동체에 공격을 가하고 있다. 노르테 데 산탄데르 주 카타툼보 지역의 농민연맹에 소속돼 있는 주니어 말도나도 씨는 설명했다. “두 가지 성장 모델이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 농민들이 제시하고 있는 지역적·공동체적 개발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제시하는 농업 산업화다. 반군조직은 토지를 비우고 다국적 기업들을 들여와 정착시키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들이 바이오 디젤엔진 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 야자수 재배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대표적인 예다.

“평화협정을 산산조각 내겠다”는 공약

지난 6월 17일, 대선 후 최종개표 결과 이반 두케 후보가 54%의 득표율(약 1천만 표)을 기록하며 당선됐다.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에게는 득표율 41.8%(약 8백만 표)가 돌아갔고 4.2%는 무효표로 나타났다. 젊은 콜롬비아공산당 지지자들은 개표결과에도 크게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반 두케 후보가 당선됐다는 것은 2016년 아바나에서 정부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체결한 평화협정에 반대해온 정당이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FARC는 콜롬비아공산당과도 여전히 깊은 이념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반 두케 후보는 이 평화협정을 “산산조각내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한발 물러서 협정문을 “수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한 이반 두케 후보의 당선은 콜롬비아 제2 반군인 민족해방군(ELN)과의 평화협상 역시 난항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노르테 데 산탄데르에서 집중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민족해방군은 지난 8월 7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안 마누엘 산토스 전 대통령과도 끝내 협상에 성공하지 못했다. 한 젊은이는 “정부군에게도 일이 더 많아진 셈”이라고 빈정대기도 했다.

이번 대선 결과를 보고 콜롬비아 국민들이 평화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고 해석해야 할까? 노르테 데 산탄데르의 인권보호단체 ‘프로그레사르’의 윌리엄 카니사레스 대표는 반군과의 분쟁이 표심의 결정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고 봤다. 그는 “노르테 데 산탄데르의 전체 유권자 중 70%는 쿠쿠타의 도심 지역에 살고 있다. 이곳은 반군 분쟁과는 거리가 멀다. 나머지 30% 중에서도 단 10%만이 분쟁의 피해를 보고 있는 카타툼보에 거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르테 데 산탄데르 주 전체에서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우세했던 도시는 네 곳으로, 나머지 지역에서는 큰 차이로 패배했다. 반군과의 전투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방(특히 북부 및 남서 지역)에서도 페트로 후보가 우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또한 수도를 비롯해 여러 대도시(칼리, 바랑키야, 카르타헤나 등)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단, 아직까지 우리베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큰 메데인 시는 예외였다.

그런데도 페트로 후보가 패배한 이유는 무엇일까? 분쟁감시기구인 ‘평화와 화해 재단’의 아리엘 아빌라 부대표는 “물론 1차 투표 당시 부정행위 논란이 불거지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 이반 두케 후보의 승리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시인하면서 “콜롬비아만이 아니라 오늘날 남미 전체가 두 가지에 사로잡혀 있는데, 하나는 베네수엘라의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투표다. 언론과 우파 진영이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가? 페트로 후보가 또 하나의 차베스가 될 것이며, 그가 앞으로 교회와 사원들을 폐쇄하고 말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많은 대중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종교적인 표만 해도 백만 표 정도는 이반 두케 후보에게 돌아갔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런 유권자들에게는 페트로 후보가 내세웠던 정책들―낙태권 주장, 성적 자유 확대 등―이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회학자 하롤드 올라베는 이번 선거에서 부정행위가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만큼 크게 미치지 않았다면, 이반 두케에 대한 지지는 결국 ‘반군과의 역학관계’와 함께 우파가 전통적으로 이용해온 ‘파벌주의와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 생겨났을 것이라고 봤다. 예를 들어 대표적 우파 정당인 콜롬비아보수당의 아이다 메를라노 상원의원은 지난 3월 치러진 총선에서 유권자를 매수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조사 결과, 바랑키야 지역 총선 후보였던 메를라노 의원은 장당 최대 4만 페소(약 15,000원)를 주고 표를 매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롤드 올라베는 “지방 권력가들은 해고를 무기 삼아 공무원들의 충성심을 확보하고 있다. 대중들에게는 신자유주의 정책들과 선물, 사례금 등을 공세하며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에 대해서는 무장단체의 힘을 빌려 좌파든 아니든 상관없이 반대세력으로 여겨지는 모든 이들에게 공격과 위협을 쏟아붓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콜롬비아 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6년 1월~2018년 7월 살해된 사회 및 인권 운동가의 수는 326명에 달하고 있다. 지역별로 볼 때 이런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은 카우카(81명 사망)였고, 안티오키아(47명)와 노르테 데 산탄데르(19명)가 그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러나 이반 두케 후보는 결국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가 내세운 주된 공약 중에는 평화특별법원(JEP)의 개혁도 포함돼 있다. 평화협정 이후 임시기구로 설립된 평화특별법원은 반군부터 정부군에 이르기까지 주체에 상관없이 전쟁 중에 일어난 모든 범죄 행위를 재판하는 곳이다. 그런데 특정 범죄, 특히 게릴라 반군과 연관된 범죄는 자동 사면되게 돼 있다. 이에 이반 두케 후보는 선거유세 중 평화특별법원에 대해 “불처벌을 위해 만들어진 기념비”라고 말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내 지난 7월 18일 민주중도당 상원의원들의 주도하에 평화특별법원 법률안이 수정됐고, 과거 법률 개정에 반대했던 산토스 전 대통령도 결국 퇴임 전에 개정안을 비준하게 됐다. 그 결과 이제 우파의 주장대로 정부군은 별도의 재판장에서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우파 상원의원인 팔로마 발렌시아는 “FARC를 위해, FARC에 의해 만들어진 법원에서 콜롬비아 정부군이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찰과 정부군은 정당한 판결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2)

이반 두케 후보가 목표한 또 한 가지는 범죄인 인도 요청에 대한 처리 방안을 개정하는 것이다. 앞으로 평화특별법원은 평화협정 체결 이후의 범죄와 관련해 타국으로부터 범죄인 인도 요청이 들어올 경우 결정권 없이 이를 확인하는 데만 그치게 될 예정이다. 이런 개정안은 FARC의 지도자 출신이자 평화협정 당시 협상단에 속해 있었던 헤수스 산트리치의 인도 여부를 결정하는 데 분명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4월 미국에 마약을 밀수한 혐의로 구속된 그는 현재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될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팔로마 발렌시아 상원의원은 “당초 목표는 평화특별법원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평화특별법원을 인정하고 앞으로 발전해갈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한다”라며 우파의 관대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패배 속에서 성장 중인 좌파 진영

한편 좌파 진영에서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전을 통해 더욱 힘을 강화할 수 있었다. 페트로 후보가 속한 ‘인간적인 콜롬비아’당에 적을 두고 쿠쿠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욜리마 고메즈는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라며 감탄했다. “이제 적어도 8백만 명은 이반 두케의 정책에 반대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이들을 한데 잘 결집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얼마나 큰 성장인가! 지금까지의 대선에서는 후안 마누엘 산토스, 알바로 우리베 같은 우파 인사들끼리 경쟁을 벌여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좌파가 하나의 선택지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하롤드 올라베 역시 “콜롬비아는 변했다. 우파가 궁지에 몰린 것은 처음이다. 모든 힘을 모아야 했을 정도로 우파에게도 위협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콜롬비아의 유서 깊은 두 정당인 자유당과 보수당 모두 1차 투표 이후 이반 두케 후보를 중심으로 우파 집결을 도모했다. 특히 자유당 소속이자 FARC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움베르토 데 라 카예 후보(1차 투표 결과 지지율 2%로 5위를 기록함)조차도 평화협정 유지를 주장하는 유일한 후보인 페트로를 지지하는 대신 기권표를 던지겠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겨줬다. 한편 그 위로는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주의극점과 녹색당 연합에 속한 세르히오 파하르도 후보가 24%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롤드 올라베는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 평화협상 과정을 꼽았다. “역사적으로 안정을 유지해온 우파가 평화협정으로 실질적인 문제들에 부딪히게 됐을 것이다. 반군이 무기를 내려놓으면서 민주적 공간에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특히 젊은 층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각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결국 지도층이 바라는 것처럼 베네수엘라 위기를 내세운 위협으로는 게릴라 반군을 절대악으로 여기던 기존의 담론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었다.” 1994~1996년 콜롬비아 부통령을 지낸 바 있는 움베르토 데 라 카예도 2008년 한 기사를 통해 “콜롬비아의 정치적 안정은 역설적이지만 FARC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말했다. 무장단체(FARC)가 사라진다면 “오히려 사회 압력이 고조되고 대립이 악화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3) 두 눈이 의심스러워지는 장면이다.

보고타 시에서 남쪽으로 약 4시간 거리에 위치한 톨리마 주에는 사회적응훈련캠프가 설치돼 있다. FARC에 소속돼 있던 전 게릴라 대원들을 수용하는 이 캠프는 콜롬비아 전역에 26개가 만들어져 있다. 지프를 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른 뒤에야 이코논조 마을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는 그 어떤 통제도 없었고 콜롬비아 정부군, 유엔군 중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유엔군은 캠프 주위에서 FARC의 전 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지대를 유지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찾아볼 수 없었다. 

캠프 책임자 중 한 명인 라우라 씨는 “기자단 방문이 이번 주만 해도 세 번째”라고 한탄하며 “다들 우리가 새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다녀간 기자가 동지들이 불쾌해할 기사를 썼다. 우리를 평화협정 이후 의욕을 상실한 무기력한 이들처럼 묘사한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기사 때문에 오늘은 다들 인터뷰를 꺼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15년 동안 게릴라 대원으로 무장투쟁을 벌이는 한편 알레한드로-나리뇨 조직의 민병대로 활동했던 라우라 씨는 날카로운 경계심을 보였다. 대선 결과에 대한 질문에도 상대의 눈빛을 다 살핀 후에야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반 두케의 당선은 예견된 결과다. 여러모로 복잡해지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평화에 대한 문제에 있어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계곡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위치한 이 캠프에는 전 게릴라 대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 이들이 사는 집 말고도 축구장, 도서관, 식당, 술집 등도 만들어져 있었다. 라우라 씨는 “모두 정부에서 지원받은 자재들로 우리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캠프 정면에는 마누엘 마룰란다 벨레즈, 알퐁소 카노, 모노 호호이 등 세상을 떠난 영웅들을 비롯해 게릴라 반군의 영광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전 게릴라 대원에게는 매달 70만 페소(약 25만 원으로 콜롬비아 최저임금의 90%에 해당하는 금액)가 개인 계좌로 지급되고 있다. 덕분에 대부분의 대원들이 통장도 개설했고 계좌관리법을 배우기도 했다. 나아가 전쟁이 끝난 지금 이들은 이제 정치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오늘날 전 게릴라 대원들은 ‘인민을 위한 대안적 혁명세력’(약자는 여전히 FARC다)이라는 이름의 합법적 정치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죽음은, 콜롬비아 모든 곳에서 도사리고 있다”

대선 이후 앞으로의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정당 FARC는 즉각 새 대통령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좌파 진영에서는 우파가 정권을 회복함에 따라 보복의 성격을 띤 정치적 암살이 증가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권보호단체들의 조사에 의하면, 평화협정이 맺어진 2016년 11월 24일부터 2018년 5월까지 살해된 전 게릴라 대원의 수가 6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의 사례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1980년대의 게릴라 반군 역시 무기를 내려놓고 민주사회에 편입하고자 ‘애국연합’을 창당해 정치 활동을 시도했지만 대선 후보였던 두 명을 비롯해 무려 3천 명에 달하는 구성원이 살해되면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좌파의 기대는 모두 꺾여 버렸고, FARC는 다시 정글로 돌아가 게릴라 활동을 재개해야 했던 것이다.

전 게릴라 대원들은 어느 정도까지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고 있는 걸까? 라우라 씨는 “이 나라에서는, 전쟁터나 정치판 그 어디든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계급투쟁에 속해 있는 셈이다”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녀는 해산된 전 게릴라 반군을 향한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정치적 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은 잊지 않았다. 평화협정을 위반하고 있다기보다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페트로를 지지한 8백만 명이 잘 결집한다면, 정치적 암살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믿음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릴라 반군 중에도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 수가 협정 당시에는 600명 남짓했으나 현재 거의 2배인 1,200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르테 데 산탄데르 주의 경우 많은 이들이 다시 무기를 들고 있는 실정이다. 윌리엄 카니사레스 프로그레사르 대표는 “우리는 카타툼보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론트 33’과 같은 FARC 출신의 소규모 무장단체들이 새 대통령의 정책과 평화협정 위반 때문에 더 확대되는 것을 아닐지 염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의심은 다른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반 마르케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게릴라 출신 루시아노 마린 아랑고는 지난 7월 중순 상원의원을 맡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평화협정에는 게릴라 반군 출신에게 상원과 하원 모두에게 각각 5개씩 의석을 배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동지이기도 한 헤수스 산트리치가 구속된 후 미국으로의 마약 밀수에 대한 수사가 결정되면서 자신도 조사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보고타를 빠져나와 남쪽에 위치한 카케타 주에 몸을 숨기고 평화협정에 대한 ‘방해 행위’와 음모에 대해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7월 16일에는 공개서한을 통해 “콜롬비아의 평화는 배반이라는 그물에 발이 묶인 듯하다”라고 규탄했다.

이 모든 것을 마르크시즘 게릴라가 부활할 것이라는 징후로 봐야 할까? 평화와 화해 재단의 아빌라 부대표는 “정치적 폭력의 고리는 끊어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반대세력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농업개혁을 실시하거나 (평화협정에서 결정한 것처럼) 코카인의 대체작물 재배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범죄의 형태를 띤 또 다른 폭력의 고리를 피할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라고 답했다. 이 재단이 2017년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다수의 FARC 산하 조직들이 해산하면서 “무정부주의 범죄 집단”이 생겨났고 “불안정이 심화”됐다고 보고 있었다.(4) 게릴라 반군이 점령했던 242개 행정구 주변으로는 “불법 단체의 확대”로 인한 현상들도 관찰됐다.

현재 카타툼보에는 최후의 두 반군세력인 1,500명 규모의 민족해방군과 500명 규모의 해방인민군(EPL)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 FARC가 차지하고 있었던 토지의 소유권을 쟁탈하려는 것이다. 전략적 국경 지역인 이곳에서는 무장단체와 범죄조직들도 대립하고 있다. 일각에서 우려를 표했던 혼돈의 상황이 결국 또 다른 지역에서 불거지고 있는 셈이다.  


글·로익 라미레즈 Loïc Ramirez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Sibylla Brondzinsky, ‘Ex-Colombian president’s family face US extradition over drugs charges’, <The Guardian>, London, 2012/06/11.
(2) María Isabel Rueda, ‘Justicia Para policias y soldados, pide Paloma Valencia’, <El Tiempo>, Bogota, 2018/07/03.
(3) ‘Buena parte de la estabilidad politica se debe a las FARC’, <El Espectador>, Bogota, 2008/11/26.
(4) Report no.2, Peace and Reconciliation Foundation, Bogota, 2017/07, www.pares.com.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