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위한 값싼 고전전집들
누구나 중고서점에서 플라톤이나 셰익스피어, 볼테르의 책을 발견한 일이 한 번은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라루스클래식(Classiques Larousse, 1933)’, 미국의 ‘리틀블루북스(Little blue books)’, 또는 영국의 ‘펭귄클래식’ 시리즈들은 이전에 출간된 전집류들과 함께, 지난 200년간 전 세계 서민층의 지적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책 보급을 주로 방물장수가 담당했던 ‘비블리오테크 블루(Bibliothèque bleue)’가 17세기부터 전집 염가판매 방침을 도입했다고 하지만, 최초의 전집 출판사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반이다. 비블리오테크 블루가 출간한 책들은 당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교양의 주요 원천이 됐을 것이다. 1799년부터 프랑스의 식자공이자 인쇄공인 프랑수아-앙브롸즈 디도(François-Ambroise Didot l’aîné, 1730~1804)는 『프랑스 및 라틴 고전전집』을 선보였다. 여러 판형으로 나온 이 전집은 인쇄용지의 품질은 일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절한 가격에 호라티우스, 비르질, 라 퐁텐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연이어 다른 전집들이 나왔다. 1814년 이탈리아의 지오바니 실베스트리가 『고전 및 근대 이탈리아 작품선』을 선보였고, 같은 시기 독일의 카를 조세프 마이어는 『독일고전 작은문고』를 성공리에 출간했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괴테나 실러의 작품들을 읽을 수 있게 됐는데, 이에 기득권자들은 반대했다. 영국의 윌리엄 픽커링은 53권으로 구성된 『알두스판(版) 영국 시인들(Aldine Edition of the British Poets)』을 출간했다.
학교 교육의 일반화, 생산기술의 산업화, 전집의 대중화(1)와 더불어 모든 이들이 지식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신념이 확산되면서 전집 출판이 늘어났다. 영국의 라우틀리지(Routledge)와 맥밀란(MacMillan), 프랑스의 에첼(Hetzel)과 아쉐트(Hachette)는 19세기 하반기 동안 자국 내 시장 점유율을 두고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였다. 고전문학의 거장들은 이 회사들의 출판전략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피에르 쥘 에첼(Pierre-Jules Hetzel)은 1848년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비서실장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벨기에로 떠났다. 교육동맹을 창설한 장 마세와 친분이 있는 헤첼은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쥘 베른의 저서들을 출간했으며, 유년층용 문학잡지 『교육 및 휴식 상점(Magasin d’éducation et de récréation』(헤첼과 쥘 베른, 장 마세의 합작품-역주)과 청소년용 전집을 만들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출판업자 넬슨은 프랑스나 독일, 헝가리, 스페인에서 원어(또는 번역본)로 된 재판본(再版本) 전집을 전문적으로 취급했는데,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출판을 시도했다. 전집 출판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1884년 프레데릭 원 앤 코(Frederick Warne and Co.)는 15년간 자사의 전집 『찬도즈클래식(Chandos Classics)』을 350만 권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집은 셰익스피어, 월터 스코트, 비르질,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를 비롯해 작가 100여 명의 작품을 망라했다. 넬슨은 1913년 자신의 주요 인쇄소에서 정기적으로 3만 권의 책이 나온다고 밝혔다.
전집출판 열풍은 다음 세기에도 이어졌다. 전집출판은 출판업자와 책임자 간 협력의 산물인데, 20세기 초반 조제프 덴트와 언스트 라이스가 함께 펴낸 『보통 사람의 문고(Everyman’s Library)』, 1952년부터 브리태니커 출판사가 내놓은 몰티머 아들러의 『서구의 위대한 책들(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이 대표적인 경우다.(2)
자크 쉬프랭이 만들고 2차 세계대전 초기 갈리마르와 장 폴랑이 인수한 『플레이야드 총서』는 가격이 높은 편이었음에도, 위대한 작가들의 명작들을 모두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신념에서 출간됐다. 사전이나 백과사전, 통속소설과 마찬가지로 전집들은 서점판매, 서적판매클럽(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도서 정보를 보내 우편으로 판매하는 방식-역주)이나 통신판매 등 여러 형태로 대중에게 보급됐다. 저가 고전문고들은 문고판(영어로는 페이퍼백)이나 다이제스트(요약본)의 형태로,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주로 학교수업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꾸준히 판매됐다.
다양한 전집들이 공통적으로 로열티 프리(Royalty-free: 구입 후 라이선스 계약에 기재된 한도 내에서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함-역주) 작품기금을 사용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된다. 하지만 전집들은 정해진 형식이 없어 각각 다른 형태다. 한 작품 전체를 출간하는 곳도 있고, 발췌본이나 요약본을 내는 곳도 있으며, 장대한 고증자료를 보란 듯이 내는 곳도 있다.
또한 자국의 문학에 집중하는 출판사도 있다. 프루동이나 루이 블랑 작품집을 출간한 바 있는 에두아르 당튀 출판사의 『우리의 위대한 작가들』 시리즈가 그렇다. 이 전집에는 폴 페발, 퐁송 뒤 테라이유 등 대중적인 신문연재 소설가들도 소개돼 있다. 자국인 아일랜드의 시선집(詩選集)으로 출발한 탈봇 프레스(Talbot Press)는 1915년 『모든 아일랜드인의 문고(Every Irishman’s Library)』를 출간했다. 세계문학 전문 출판사들도 있다. 1949년 설립된 ‘리졸리 세계문고(Biblioteca Universale Rizzoli)’는 알렉산드로 만조니의 『약혼자』로 문을 열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문학의 걸작이다.
얇은 종이에 가제본된 저렴한 낱권을 출간한 곳도 있다. 아티에(Hatier)의 『모든 사람을 위한 고전』, 덴트(Dent)의 『템플 클래식』이 그렇다. 어떤 출판사들은 소장하기 좋은 양장본을 내기도 한다. 미국 알버트 보니 & 호레이스 리버라이트(Albert Boni & Horace Liveright)의 ‘현대문고(Modern Library)’,(3) 그리고 스페인 브루게라(Bruguera)의 ‘고전도서’가 그 예다.
상업적 목적과 문화적 민주화를 위한 시도
전집출간 동기는 상업적 목적 외에도 많다. 대개 이런 전집류는 국가적, 언어적 혹은 문화적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일례로 1915년 두 명의 저명인사가 아르헨티나 작품들로 구성된 저가 전집 2종을 거의 동시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간했다. 리카르도 로하스의 『아르헨티나 문고』, 호세 잉헤니에로스의 『아르헨티나 문화』가 그것이다.
공화주의가 확고해지던 시기에는 과거에 저술된 명작의 시각을 소개함으로써 자국의 문화적, 정치적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집을 만들기도 했다.(4) 대중적이라고 판단되는 작품의 대립적 개념으로서 고전을 내세우는 것은 보수파가 견지해온 입장이다.(5) 그렇지만, 일부 전집은 특히 프랑스에서 대중 해방 목적을 위한 교육에 있어 선봉장의 역할을 했다.
프랑스 제2 제정 시기, 뒤뷔송 인쇄소는 자사 식자공들의 결정으로 1863년부터 ‘국립문고(Bibliothèque nationale)’를 펴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교육 대중화를 위해 사람들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외 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책 한 권 가격이 제조원가인 0.25프랑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식자공들 사이에서만 시험적으로 출간됐으나, 이후 급속히 확산됐다. 식자공들은 ‘국립문고’에 책을 공급하는 출판사들의 노동자공동체를 구성했는데, 이로써 ‘대중의 지적해방도구’로 공개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 시도는 오래 지속됐다. 특히 계몽철학, 라틴계 저자들,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이나 알프레드 드 뮈세, 반체제적인 펠리시테 로베르 드 라므네의 최신작을 우선시했던, ‘국립문고’의 책임자, 니콜라 다비드의 편집능력 덕분이다. 대중적인 책을 만드는 거대 출판사, 탈랑디에(Tallandier)는 1926년 이 전집을 다시 발간하기 시작했다. 상업적 목적이 가미된 문화적 민주화를 위한 시도였다.(6)
한편 1950년에서 1981년 사이, 에디시옹 소시알(Editions sociales: 지난 40년간 프랑스 공산당의 주요 출판사였으나 1997년 재창립 이후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서를 새로운 번역판으로 내놓고 있다-역주)의 『민중의 고전』 시리즈는 대부분 문학, 정치철학, 과학 분야의 유명 저서를 재판한 것들로, 70권 정도가 출간돼 있다.
주황색과 흰색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출판사의 책에 쓰인 제목들은 ‘보편적이면서 진보적인 문화유산이면서 우선적으로 프랑스의 유산인 위대한 저작’임을 드러내야 한다. 토머스 모어, 몰리에르, 라신, 루이지 피란델로,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 괴테, 폴 라파르그, 장 폴 마라의 책들이 이 전집에 수록돼 있다. 이 책들은 선집 또는 완본판들로, 유익한 머리말과 풍성한 비평을 담고 있다. 하단의 주석은 역사적 참고사항을 알려주며, 참고문헌이 이를 완성한다.
이는 명백하게 프랑스 혁명을 대표하는 위대한 역사학자, 알베르 소불을 비롯한 공산주의 역사학자들에게 있어 투쟁가들과 지지자들의 손에 재검토된 보편적 유산을 남겨주기 위한 것이다. 에디시옹 소시알은 “대학생, 고등학생, 교사, 교수, 연구자들이 이 책에서 적합하고도 확실한 연구수단을 찾아낼 것이다. 노동자, 도시와 시골 농부는 이를 통해 자신의 서가의 기본을 이루고 그럼으로써 과거의 문화유산, 그리고 인본주의의 근간인 진보적 사상을 인식하고 이해하게 될 것”(7)이라고 썼다.
출판사들이 대중용 고전전집에 뛰어들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든, 고전전집은 철학적, 문학적, 더 나아가 정치적 유산을 확립하고 공유하고 기념하는데, 특히 이 유산을 식자들만의 문화가 아닌,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누릴 수 있는 자산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글·앙토니 글리누어 Anthony Glinoer
셔브룩대학교(퀘벡) 출판역사 및 문학사회학 연구교수. 공저서로 『출판사의 탄생, 낭만주의 시대의 출판(Naissance de l’Éditeur. L’édition à l’âge romantique)』 가 있음(공저자: 파스칼 뒤랑). Les Impressions nouvelles, coll. ‘Réflexions faites’, Bruxelles, 2005.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업.
(1) Isabelle Olivero, 『L’invention de la collection(전집의 탄생)』, Editions de l’IMEC - Editions de la Maison des sciences de l’homme, coll. ‘In Octavo’, Paris, 1999.
(2) Tim Lacy, 『The Dream of a Democratic Culture : Mortimer J. Adler and the Great Books Idea』, Palgrave MacMillan, London, 2013.
(3) Jay Satterfield, 『The World’s Best Books』. Taste, Culture, and the Modern Library,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Amherst, 2002년.
(4) Fernando Degiovanni, 『The invention of the classics : Nationalism, philology and cultural politics in Argentina』, Journal of Latin American Cultural Studies, vol. 13, n° 2, Abingdon, 2004년.
(5) 가령 에세이 『Le Sablier renversé. Des Modernes aux Anciens(모래시계를 뒤집기. 근대부터 고대까지)』(Gallimard, 2013)의 저자인 Marc Fumaroli는 1997년 ‘Lisez les classiques(고전을 읽으세요)’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www.canal-u.tv에서 볼 수 있다.
(6) Matthieu Letourneux & Jean-Yves Mollier, 『La Librairie Tallandier(1870-2000). Histoire d’une grande maison d’édition populaire(탈랑디에. 대중출판계 거목의 역사)』, Nouveau Monde Éditions, Paris, 2011년.
(7) Stéphanie Roza, 『Un grand moment d’éducation populaire? ‘Les Classiques du Peuple’ et le siècle des Lumières(대중 교육의 중요한 시기? ‘민중의 고전들’과 계몽기)』, Jean-Numa Ducange, Julien Hage & Jean-Yves Mollier, 『Le Parti communiste français et le livre. Écrire et diffuser le politique en France au XXe siècle(1920-1992)(프랑스 공산당과 책. 20세기(1920-1992) 프랑스의 정책 입안과 전파)』, Éditions universitaires de Dijon,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