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과 농민의 위험한 ‘관계’

2018-11-29     나탈리 소에 | 기자

2018년 8월 10일, 샌프란시스코 외곽의 한 원예사가 거대 농업기업 몬산토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몬산토의 제초제 ‘라운드업’의 위험성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판결 이유였다. 1심 판결에 따라, 몬산토는 해당 제품을 사용하다가 말기 암에 걸린 원예사 드웨인 존슨 씨에게 2억 8,900만 달러를 배상하게 됐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라운드업의 주성분이기도 한 글리포세이트의 사용이 최소 2022년까지 계속 허용될 예정이다. 또한 농작에 이용되는 다른 화학물질들의 경우도 위험성이 일부 밝혀지고 있지만, 관련규제 마련이나 그로 인한 피해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농민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 국가 중 작물보호제(또는 농약) 사용량이 스페인 다음으로 많은 프랑스에서는, 관련 피해에 대한 배상문제를 농업협동조합(MSA)이 맡고 있으나, 지난 10년간 보상금을 받은 농민의 수가 모든 질환의 경우를 통틀어도 1천 명을 넘지 않는다. 농업부의 노동 안전 및 보건 분야 담당관인 안-마리 수비엘은 이를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2018년 1월 프랑스 정부에 제출된 한 보고서에서도 “현재 인정된 피해자 수는 잠재적인 피해자 수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경고했다.(1) 
 
다수의 경영 감독국이 국제적인 과학지식에 입각해 작성한 이 보고서는 실제 피해자의 수를 다음과 같이 추산하고 있다.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농업 종사자의 수는 현재 약 10만 명에 달한다. 또한 이런 노출과 질환 발병 간 인과관계가 강하게 의심되는 잠재적 피해자의 수는 약 1만 명으로, 그중 2/3는 파킨슨병, 나머지 1/3은 악성 혈액질환 환자다.”(2)
 
농민들의 피해 인정을 위한 의무적 사회보장제도가 최근 몇 년간 어느 정도 개선돼 온 것은 사실이다. 2006년에는 벤젠 기반 제품을 사용한 후 희귀 백혈병을 진단받은 농민 도미니크 마르샬 씨가 프랑스 최초로 살충제 관련 직업성 질환의 피해자로서 배상을 받았다. 또한 2012년에는 농업협동조합이 파킨슨병을 직업성 질환 목록에 추가했고, 2년 뒤에는 비호지킨림프종도 추가 등재됐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메도크 지역 살충제 정보 연합(CIMP)의 공동창립자 마리-리즈 비베랑은 간암을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포도밭을 운영하다가 간암에 걸린 친형제를 47세에 떠나보낸 그녀는 2018년에도 “농민들은 병과 싸우는 동시에 침묵에도 맞서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상을 받기 위해 넘어야 할 산들

정부 보고서에서는 현행 보상제도에 “장치적 한계”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경제적 보상은 특히 더 미미한 실정이다. 작물보호제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 수준은 법정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브르타뉴 지역농업조합(Triskalia) 소속 농민 중 작물보호제의 피해자들을 변호하고 있는 변호사 프랑수아 라포르그는 “우리의 승소율은 95%에 달하고 있다. 이는 농업협동조합이 확증된 후유증들을 제대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3)
 
피해자들의 소송제기 과정은 출구 없는 미로를 나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파킨슨병이나 비호지킨림프종을 제외한 다른 질병의 환자들은 농업협동조합과 독립된 기관인 ‘직업성 질환 인정을 위한 지역위원회’(CRRMP)에 신청서를 보내 발병 원인으로 의심되는 물질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구매 주문서, 청구서 등의 각종 서류와 의심 독성물질을 담았던 용기 등을 찾으러 다녀야 한다.
 
특히나 임금생활을 하는 농민들에게는 그 과정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독성물질 노출을 입증하기 위한 서류를 작성하면서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고용주들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나아가 증빙자료를 다 갖춘 뒤에는 투병 중인 질환과 독성물질 간의 인과관계를 직접 밝혀야 한다. 안-마리 수비엘은 특히 “독성물질에 노출되고 20~30년이 지난 뒤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더욱 증명이 어렵다. 당시에는 위험성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넘어야 할 산은 의학적 확진을 받는 일이다. 사회학자이자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 소장인 아니 테보-모니는 특히 이 문제에 대한 의료진의 이해 부족 때문에 확진을 받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봤다. 질환의 원인이 직업성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확인증을 발급받기 위해 의사와 면담을 가지게 되지만, 대부분 환경적 요소보다는 개인의 생활위생적 요소―술, 담배, 비만 등―만이 언급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니 테보-모니 소장은 “의료진이 기업논리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집단요인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여러 피해자 단체들은 일부 의료진이 환자에게 호의적인 경고(“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부터 무조건적인 반대(“될 리가 없다”, “그럴 가치가 없는 일이다”)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하고 나섰다.(4)
 
반면 농업협동조합 측은 프랑스가 살충제 관련 질환에 대해 유럽 내에서 “신청인에게 가장 유리한” 보장 제도를 갖추고 있다는 반응이다. 농업협동조합 소속의 국가기술자문위원이자 자문의사인 마르크 롱도도 이런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사용한 물질이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배상 신청인이 직접 증명해야 하지만, 프랑스 농업협동조합에서는 파킨슨병이나 비호지킨림프종 환자가 1년 이내에 해당 물질을 사용했던 기록이 있다면 보상 신청이 “자동적”으로 승인된다는 것이다. 또한 농업협동조합이 살충제 피해자들을 충분히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사회가 2만 4,000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으며 농민과 농산업분야 종사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비판을 받고 있는 또 다른 살충제 관련 압력단체는 현재 시행중인 “튼튼한 규제”를 신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식물보호를 위한 산업연맹(UIPP)의 외제니아 포마레 대표는 “상용화 기준에 정말 사람을 병들게 할 위험이 있다면 심각한 상황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하면서 “식품환경노동위생안전청(ANSES)이 주관하고 있는 판매승인절차에는 10년마다 재검사를 통한 승인 갱신이 포함돼 있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축에 속한다”고도 말해 비판을 잠재우고자 했다.
 
외제니아 포마레 대표는 특히 보호 장비들도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앞으로는 농업 작업복에 코팅 가공된 원단이 사용될 것이며, 착용을 장려하기 위해 입기도 간편하고 디자인 면에서도 개선된 작업복이 제작될 예정이다. 또한 살충제에 노출되는 농업 종사자들은 올바른 작업 수칙을 숙지하기 위한 사흘간의 안전교육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게 됐다. 
 
하지만 그 주장처럼 모든 위험이 종사자 본인의 재량에 달린 것이라면 과연 그들을 피해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 외제니아 포마레 대표는 “미묘한 문제인 만큼 답변을 삼가겠다”고 일축하면서도 “그들이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는 점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환경주의자나 환경보건전문가들은 살충제 사용을 규제하는 것만으로 살충제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고 있으며,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승인 절차나 소속 전문가들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한 연합단체가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유럽식품안전청에서 살충제 혼합물이 음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전문가들 중 52%가 “업계에 관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5) 프랑스의 환경단체 ‘제네라시옹 퓌티르’도 식품환경노동위생안전청의 승인제도가 허점투성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기관은 각 제품을 개별적으로 조사할 뿐, 같은 환경 내에 존재하는 다른 화학물질들과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호작용(이른바 ‘칵테일 효과’)이나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보르도 대학의 인간공학교수이자 직업성 질환 전문가인 알랭 가리구는 작업복 착용으로는 결코 살충제 노출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작업복을 착용한다고 해도 최선의 경우 노출량을 다소 줄일 수 있을 뿐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오히려 노출량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작업복을 착용한 작업자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살충제에 더, 최대 3배까지 노출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6) 살충제가 작업복에 직접 살포되면 작업복 자체가 독성을 지니게 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농업경영인총연맹은 
농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아니 테보-모니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소장은 이처럼 농화학기업들이 보호 장비에 강조점을 두는 것은 업계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돌리려는 시늉일 뿐이라고 봤다. 
“석면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생산업체와 대표적인 일부 기관들은 노동자들이 해당 제품의 사용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문제의 책임이 농민 개인에게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게다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농민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설립된 농업경영인총연맹(FNSEA)이 오히려 살충제 규제에 반대하는 대표주자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식물보호를 위한 산업연맹의 외제니아 포마레 대표도 약 20년간 이 단체에서 ‘환경 분야’ 책임자로 근무하다가 2014년에 현재의 산업연맹으로 옮겨간 바 있다. 
 
2012년 당시 제초제 ‘라소’를 사용하다가 중독된 뒤 몬산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세계최초로 승소한, 살충제 피해자 단체 ‘피토 빅팀’의 폴 프랑수아 대표는 “그들은 편을 들어주는 기업들 없이는 회의조차 주최할 수 없을 정도”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농업경영인총연맹은 직업성 질환등재를 제안하는 책임기관인 ‘농업분야 직업성 질환 최고위원회’(COSMAP)에 피해자·의료진·공무원 단체 측으로 등록돼 있지만, 2012년 파킨슨병을 직업성 질환에 포함시키는 투표에서는 반대표를 던졌다. 그리고 2015년 비호지킨림프종을 포함시키는 투표에는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살충제로 인한 피해 문제는 정치적 차원에서도 구체화되고 있다. 현재는 농식품법 개정을 통해 작물보호제 피해자 보상기금 설립을 도입하는 방안이 상원의 심의를 거쳐 논의 중에 있다. 석면피해 보상제도를 본떠 만든 이 보상기금은, 오염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이미 살충제 판매 시 부과되고 있는 관련 세금으로 충당될 예정이다. 
 
대상 범위도 확대돼, 독성물질에 단기간 노출된 피해자들은 물론 독성물질에 노출된 부모에게서 선천성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아동들도 배상받을 수 있게 될 것이며, 나아가 작물보호제에 대한 노출과 질병 간의 연관성에 대한 검토 권한도 농업협동조합과 분리된 독립적인 조사위원회에 위임될 예정이다. 폴 프랑수아 대표는 이 개정안이 채택된다면 피해자들에게는 “역사적인” 승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여름, 글리포세이트 사용을 금지하는 안건이 하원에서 기각되면서 승부의 향방 또한 불투명해졌다. 2018년 7월 2일에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작물보호제 피해자 보상기금 설립안도 정부에 의해 2020년까지 보류된 상황이다. 기금 설립을 정당화하기에는, 해당 물질들의 영향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미 2013년에 시행된 국립보건의학연구소 공동평가에서 살충제 노출이 신경퇴행성질환과 생식기장애, 그리고 전립선암·백혈병·림프종 등 혈액생성과 관련된 기관(림프절, 비장, 골수 등)에 생기는 일부 암의 발병과 관련 있다는 결론이 발표된 바 있다. 게다가 배상 신청인의 수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실제로 2007년에는 26명에 그쳤던 신청인의 수가 2016년에는 113명까지 증가하는 등 전 기간을 통틀어 총 678명이 배상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7)  


글·나탈리 소에 Nathalie Sauer
기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미래 대예측』 등이 있다.

(1) Laurence Esloux et al., ‘La création d'un fonds d'aide aux victimes de produits phytopharmaceutiques(작물보호제 피해자 지원 기금 설립)’, Inspection générale des finances, Inspection des affaires sociales, Conseil général de l'alimentation, de l'agriculture et des espaces ruraux, Paris, 2018/01.
(2) 비호지킨림프종(악성림프종)을 포함한 모든 혈액세포 관련 암.
(3) Patrick Herman, ‘Pratiques criminelles dans l'agroalimentaire(농식품업 분야에서 벌어지는 범죄 행위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9월호.
(4) Laurence Esloux et al., ‘La création d'un fonds d'aide aux victimes de produits phytopharmaceutiques’, op.cit.
(5) ‘A poisonous injection: How industry tries to water down the risk assessments of pesticide mixtures in everyday food’, Pesticide Action Network Europe, Brussels, 2014/01.
(6) Alain Garrigou et al., ‘Ergonomics contribution to chemical risks prevention: An ergotoxicological investigation of the effectiveness of coverall against plant pest risk in viticulture’, Applied Ergonolics, vol.42, no.2, Amsterdam, 2011/01.
(7) ‘Pesticides: Effets sur la santé(살충제: 건강에 미치는 영향)’, INSERM, Paris, 201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