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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잠에서 깨어나다
프랑스, 잠에서 깨어나다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0.11.0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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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프랑스에서 지금과 같은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은 40년 만에 처음이다. ‘반대파’들을 진압하는 데만 골몰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오만한 대응에 분노한 사람들이 대규모로 규합한 것이다. 그러나 한 인물의 일시적인 변덕 때문에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럽 각국 정부는 금융위기를 핑계로 그들 맘대로 한 문명의 앞길을 결정해버렸다. 우파는 거리낌이 없고 좌파는 타협한다.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와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사회당 정부보다 더 낫거나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와 스페인의 사회당 정부 역시 공공서비스와 사회보장제도를 위험에 빠뜨린 주역 아닌가? 모두 신용평가회사에 잘 보이는 것에만 급급했다. 은행이 국가에 끼친 해악은 봉급생활자들의 돈으로 복구된다. 은행은 아무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단지 자신들의 ‘용기’와 다가올 세대에 대한 연대감을 내세우는 데 여념이 없을 뿐이다. <<원문 보기>>

프랑스의 온 ‘거리’가 동요하고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프랑스 시민이 무대 전면에 나섰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현 정부는 이런 저항을 비난할 어떤 명분도 없다. 여당이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연금개혁 의도를 숨긴 니콜라 사르코지의 대통령 선거 유세 덕분이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태도를 바꾸어 자신의 ‘임기를 걸고’ 연금개혁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 선거 4개월 전만 해도 그는 “퇴직 연령은 60살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년 후, 퇴직 연령이 연장될 수도 있다는 설이 나돌았으나 사르코지 대통령은 가능성을 일축했다. “퇴직 연령은 연장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나는 프랑스 국민에게 이미 약속했다. 따라서 내겐 그럴 권한이 없다. 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다.” 우파 국회의원은 (몇몇 사회당 의원과 함께) 국민이 국민투표를 통해 반대한 유럽헌법조약을 의회 표결로 통과시킨 적이 있다. 프랑스인은 자신이 원치 않은 헌법조약에 구속된 셈이다. 현재 진행되는 시위는 이런 냉소적이고 독단적인 권력에 대한 저항이다.

젊은이들은 어떤 미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깨달았다. 자본주의는 위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논리를 강화해나간다.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끊임없이 업무를 평가하고, 노동자 사이에 경쟁을 유발하며 더 높은 노동 강도를 강요한다. (사르코지의 정책자문을 맡은) 자크 아탈리의 최근 보고서는 식상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2013년까지 공무원 임금 동결, 장기 치료를 요하는 질병(암·당뇨병 등)에 대한 치료비 환자 자가부담률 인상, 부가가치세 인상 등…. 물론 ‘세금상한제’는 그대로 유지된다. 한때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자크 아탈리는 “앞으로 10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그 자신은 허리띠를 졸라맬 필요가 없을 터이다.

지난 10월 7일, 시위에 참가한 한 고등학생이 현 운동의 의의를 설명했다. “우선 교육을 받아야겠죠. 그러려면 학교에 가야 합니다. 그다음엔 일을 합니다. 공부보다 더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퇴직을 해서 연금을 받습니다. 일종의 보상이죠. 그런데 이런 보상마저 없다면 도대체 우리에게 남는 게 뭐죠?” 자유주의자들은 벌써부터 퇴직 뒤를 걱정하는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지난 30년간 추진해온 정책이 젊은이들의 미래 희망을 빼앗아버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미래의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시위와 파업 말고 다른 길이 있는가?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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