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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부패스캔들의 진실
브라질 부패스캔들의 진실
  • 페리 앤더슨 l 역사학자 겸 UCLA 교수
  • 승인 2019.08.3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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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근현대사에서 최대 규모의 부패스캔들과 관련된 ‘라바 자투' 작전(뇌물이 관행처럼 돼버린 브라질의 부조리를 라바 자투(Lava Jato; 세차용 고압 분사기)로 씻어내겠다는 브라질 사법당국의 기업 부정부패 수사-역주)은 2014년 3월에 시작됐다. 이 작전의 진두지휘는 브라질의 연방판사 세르지오 모루가 맡았다. 그는 2005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집권당인 노동자당이 야당 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한 사건인 ‘멘살라웅(Mensalão) 스캔들’에서도 큰 활약을 했던 인물이다.

 

탁월한 연출력으로 빛나는 모루 판사

2000년대 중반에 모루는 한 언론 기사를 통해 자신의 수사방식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것은 1990년대 초 수많은 이탈리아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밝혀내 실질적으로 제1공화국의 몰락을 가져온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작전의 수사과정과 닮아 있었다. 해당 기사에서 모루는 이 수사방식의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강조했다. 첫 번째는 예비구금 제도를 활용해 구속을 유도할 것, 두 번째는 대중의 분노를 유발해 용의자와 기관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방향으로 언론 플레이를 할 것이다. 그는 무죄 추정의 원칙만큼이나 언론을 통해 사건을 부각시키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라바 자투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모루는, 숨겨뒀던 흥행사로서의 면모를 마음껏 드러냈다. 기습, 대대적인 체포, 자백 등과 더불어 언론사 및 TV 채널과 직접 전화 연결까지 자처한 덕분에 그가 이끄는 작전의 모든 단계는 크게 화제가 됐다. 극적이고 감동적이기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각 수사 단계에 번호가 매겨졌고, 영화적이고 고전적이며 성서적인 상상력에서 비롯된 코드명이 붙여졌다. ‘돌체 비타’, ‘카사블랑카’, ‘알레테이아(고대 그리스어로 ‘진리’를 의미함)’, ‘최후의 심판’, ‘침묵의 계율’, ‘심연’ 등이다. 이탈리아인들이 타고난 연출 감각을 지녔다고 했던가? 모루에 비하면 그들은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1년여 간, 브라질의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전 경영진들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뒤이어 노동자당의 자금 담당인 주앙 바카리 네토와 브라질의 2대 건설사인 오데브레히트 사와 안드라데 구티에레스 사의 경영진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1) 모루를 지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열렸다. 시위대는 노동자당의 단죄, 그리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면서 의회를 긴장시켰다. 에두아르도 쿠냐 하원 의장이 대통령 탄핵을 의제로 정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궁지에 몰린 호세프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협상자로서의 노하우를 발휘해 과거 동맹관계였던 브라질민주운동당(PMDB)과 관계회복에 나섰다. 스위스 비밀계좌에 수백만 달러를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는 쿠냐 하원 의장은, 정부가 자신의 뒤를 봐준다면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를 중단하겠다며 상호보호조약을 제안했다. 룰라는 호세프 대통령에게 이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지시했지만, 이 공모가 발각될 것을 우려한 노동자당 지도부의 의견에 따라 호세프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던 쿠냐 하원 의장에 대한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가져본 적 없는 아파트 때문에 철창신세

한편, 모루는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2016년 3월 초에 그는 ‘알레테이아’ 작전을 개시했다. 룰라 전 대통령이 꼭두새벽에 체포되는 장면은 사전공지를 받고 대기 중이던 언론사 카메라들을 통해 전국에 방영됐다. 오데브레히트 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또 다른 혐의들도 줄줄이 공개됐다. 모루는 도청을 통해 입수한 호세프 대통령과 룰라 사이의 전화 통화 내용을 언론에 폭로했다. 이 둘은 2차 투표에서 내각 수반(총리에 상응하는 직책)이 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장관급 공무원과 의원들은 대법원이 개입하지 않는 한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는 만큼, 이 대화는 체포를 피하기 위한 계략을 논의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두 판사가 룰라의 내각 수반 임명에 반대했다. 한 명은 페이스북상에서 노동자당을 여러 차례 비판했던 인물이고, 다른 한 명은 사회민주당(PSDB)의 측근으로 집권당에 반대하는 인물이었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하는 시위대의 외침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의회에서는 탄핵에 필요한 정족수인 2/3가 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브라질 의원 대부분에 해당하는 200여 명의 정치인 명단과 각자에게 제공된 뇌물 액수가 적힌 오데브레히트 사의 노트가 발견됐다. 

브라질 정계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사회민주당의 고위 임원이 동료에게 “더 이상의 출혈은 막아야 한다”고 말한 내용도 도청돼 공개됐다. 상대 동료는 “대법원 놈들에 의하면 언론은 이미 호세프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에, 호세프 대통령이 집권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호세프 대통령 대신 미셰우 테메르 상원의장을 대통령직에 앉히고, 대법원과 군의 지지를 받는 통합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주가 채 되지 않아 하원은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청구를 승인했고, 이제 쓸모가 없어진 쿠냐 하원 의장은 모루에게 넘어갔다. 쿠냐는 곧 의회에서 퇴출당했으며 결국 수감됐다. 이후 상원은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가결했으며, 테메르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2017년 초에 룰라 전 대통령은 해변가의 호화 아파트를 제공받은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해당 아파트는 단 한 번도 룰라의 명의였던 적이 없었다. 그 이듬해 여름, 쿠리치바에 위치한 1심 연방법원에서 그는 9년 형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는 12년으로 늘어났다. 노동자당 출신의 첫 대통령은 철창신세를 지게 됐고, 두 번째 대통령은 대중의 야유를 받으며 불명예 퇴진했다. 노동자당의 완전한 몰락이었다.

 

경찰-검찰-판사가 뒤섞인 희한한 사건

이와 관련해, 판사의 역할에 대한 두 가지 분석이 대두됐다. 첫 번째는 부패를 처단하는 단호한 심판자로서의 역할이다. 두 번째는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는 정치적 집행자로서의 역할이다. 그러나 브라질 출신의 사회학자 앙드레 싱거는 자신의 저서 『O Lulismo em crise (Companhia Das Letras)』(2018)에서 이 두 가지 모두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에 의하면, 판사는 완벽하게 공화주의적이고 명백하게 선동적이다. 

먼저 공화주의적인 이유는, 브라질 내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이 센 기업인들을 수감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동적인 이유는, 성가신 존재가 돼버린 쿠냐를 제외하면, 다른 정당의 의원들은 모두 그냥 둔 채 유독 노동자당 소속 의원들에게만 집요하게 공격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정치인들과의 친밀함, 페이스북에 게재한 비난의 글들, 보수 정당의 로고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공화주의적인 면과 선동적인 면이 과연 동등하게 작용했을까? 브라질의 사법 시스템에서 경찰, 검찰, 판사는 각각 독립적인 조직이다. 경찰은 증거를 수집하고, 검찰은 구형을 하며, 판사는 형량을 선고한다(브라질의 경우 배심원들은 살인 사건에만 개입한다). 그러나 라바 자투 작전에서는 이 셋의 역할이 모두 뒤섞였다. 수사를 총괄하는 판사의 지시에 따라 경찰과 검찰이 함께 일했고 구형과 형량 선고도 함께 했다. 기소와 심판을 분리하는 사법권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에 엄연히 반하는 경우다(게다가 모루 판사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무시했다).

한편, 브라질의 사법 시스템에는 ‘보상적 밀고’라는 독특한 제도가 존재한다. 다른 혐의자의 이름을 대지 않으면 중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피의자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줄곧 쓰인다. 그러나 이 제도의 허점은 라바 자투 작전의 일환으로 검찰 측에 소환된 브라질 최대 재벌 마르셀로 오데브레히트의 경우를 통해 드러났다. 그는 부패혐의로 본래 19년 형을 선고 받았었지만 이 밀고 제도 덕분에 2년 반으로 형량이 대폭 줄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수사를 진행하기 위한 요소들을 판사에게 과하게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사실 영역(Dominio do fato)’의 개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는 범죄에 가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 없이도 누군가를 처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하며,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토대로 한다. 이 개념은 독일의 법학자 클라우스 록신이 나치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해 정립한 ‘Tatherrschaft(행위지배론)’에서 나왔다. 그러나 록신은 브라질에서 자신의 이론이 인용되는 것에 반대했다. 록신에 의하면, 조직도 상의 위치만으로 범죄의 책임을 묻기에 충분하지 않다. 법원은 해당 범죄가 피고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모루 판사에게 그 정도까지의 섬세함은 없었다. 60만 달러의 아파트를 뇌물로 공여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룰라 전 대통령은 12년 형을 선고받았다.(2) 이 금액은 오데브레히트가 횡령한 액수의 2%도 채 되지 않지만 룰라의 형량은 오데브레히트 사가 1심에서 받았던 것의 2/3에 달한다. 이렇게 보면 쿠리치바 연방 법원의 판결은 싱거의 설명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공화주의적인 열의와 선동적인 전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체계상 더 상위에 있는 대법원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윤리적인 엄정성도, 이데올로기적인 의식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판결의 동기는 훨씬 더 추잡하고 비열하다.(3) 

 

원칙도, 기준도 무시한 채 법무부 장관에 

브라질 대법원은 동등한 지위를 가진 다른 국가의 사법기관들과는 달리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헌법을 해석하고, 민사 및 형사 사건에 대한 최종판결을 내리며, ‘Foro privilegiado’라는 이름의 면책특권을 누리는 정치인들(의원 및 장관)을 기소한다. 11명의 대법관은 행정부에서 임명한다. 미국과는 달리 입법부의 승인은 형식에 불과하다. 판사 경력은 필요하지 않다. 변호사나 검사로서의 경력이면 충분하다.

대법관의 임명은 언제나 이데올로기적 유사성보다는 네트워크의 논리에 따라 이뤄졌다. 현재의 대법관들 중에는 룰라 전 대통령의 변호사, 페르난도 카르도주 전 대통령의 채무자,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전 대통령의 사촌이 포함돼 있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대중들의 목소리가 최고조에 달했을 당시, 대법관 11명 중 8명이 호세프 대통령과 그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색은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어서, 노동자당 덕분에 임명된 대법관들도 곧 독립성을 주장하며 집권당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들은 충성 대상을 바꿨다. 집권당으로부터 입은 은혜는 잊고, 이제는 유력 언론에 복종하게 된 것이다. 

라바 자투 작전의 초기부터 쿠리치바 연방 법원 수사팀은 언론 플레이를 통해 정상적인 절차를 여러 번 뛰어넘었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피고인을 이미 죄인으로 낙인찍는 행위는 보통 금지돼 있다. 그러나 모루 판사는 이를 무시하고 언론에 기대어 대법원에 압력을 행사했다. 판사 한 명이 인신보호의 원칙(Habeas corpus)을 들어 페트로브라스 경영진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모루 판사는 그렇다면 마약 밀매자들까지 풀어줘야겠다며 언론을 통해 빈정거렸다. 

도청 관련 기준을 세 개나 어기고 룰라와 호세프 대통령의 대화를 언론에 폭로한 모루 판사는, “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언론에서 이미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는, 결국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브라질 대선이 끝나고 며칠 후인 2018년 10월, 자이르 보우소나루 신임 대통령은 모루 판사가 법무부 장관직을 수락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마니 풀리테’ 작전을 주도했던 판사들이, 부정부패를 없애려던 자신들의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집권을 앞당겼다는 사실을 알고는 안타까워했다. 브라질에서는 라바 자투 작전의 스타가, 베를루스코니가 차라리 호감형으로 보일 만큼 악명 높은 인물이 이끄는 내각에 합류하게 됐다. 

 

 

글·페리 앤더슨 Perry Anderson
역사학자 겸 UCLA 교수. 본 기사는 <London Review of Books>에 2019년 2월 7일자로 실렸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

 

(1) Anne Vigna, ‘Les Brésiliens aussi ont leur Bouygues 브라질에도 ‘삼성’이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10월호.

(2) 2019년 2월 판결에서 룰라 전 대통령의 형량은 12년에서 24년으로 늘었다 -편집자 주.

(3) 2019년 6월 9일 미국의 정보 사이트인 <The Intercept>는 모루 판사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라바 자투 작전을 조작했음을 증명하는, 여러 개의 암호화된 메시지를 공개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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