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여행과 타임슬립

20세기가 항공 우주여행의 세기라면, 21세기는 시간여행의 세기이다. 고대전설, 과학소설, TV시리즈, 공상과학영화 등에서도 시간여행은 흥미로운 소재로 등장한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1993), <백 투 더 퓨처>(1990), <레트로 액티브>(1997) 등은 시간에 대한 능동적인 선택을 보여준다. 2000년대 들어 <시월애>(2000), <동감>(2000), <나비효과>(2004), <이프 온리>(2004),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5),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등 시간여행과 타임슬립에 관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한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시간여행(time travel)은 일반적으로 타임머신 등을 이용하여 시간을 넘나드는 것이다. 이에 반해, 타임슬립(time slip)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서로 연결된 타임라인을 갖는다. 판타지 및 SF의 클리셰로,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스르거나 앞질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일을 말한다. 최근에 흥미로운 현상은 시간여행보다는 타임슬립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네이버 시리즈에서 연재하고 있는 다섯 편의 타임슬립 로맨스 웹툰, 즉 《당신만의 앨리스》, 《여왕의 기사》, 《천재소독비》, 《하늘을 연모하다》를 중심으로 타임슬립 로맨스 웹툰에서의 독자의 쾌락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과거로의 시간여행과 정신/육체의 분리: 《당신만의 앨리스》와 《천재소독비》

《당신만의 앨리스》는 허윤미의 글/그림으로 웹툰에 연재된 로맨스/시대극이다. 2017년에는 『당신만의 앨리스』(서울문화사)로 11권이 출판되었다. 2013년도 만화콘텐츠 맞춤형 창작지원 중단편 만화제작 지원작에 선정된 작품이다. 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의 비서 부실장인 앨리스 한은 어느 날 의문을 사고를 당하고 19세기 중엽 조선의 궁궐에서 눈을 뜬다. 그녀는 연못에 빠져 의식을 잃은 숙원 홍서경의 몸으로 타임슬립한다.

 

홍서경의 몸으로 들어간 앨리스 한은 세 가지 문제에 봉착하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전략을 사용한다. 우선, 후궁 홍서경의 궁궐에서의 입지 문제이다. 내성적이고 소심하여 궁녀에게도 무시를 당하던 홍서경의 몸으로 들어간 앨리스 한이 자신의 강인한 성격과 정보전략을 바탕으로 궁궐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한다. 조신시대 후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조선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무수리로 변장하여 규장각에 들어가 지식을 쌓기 시작한다. 그녀는 여기에서 왕 이극을 만나게 되어, 이극으로 하여금 신분을 오인하게 만든다. 신분의 오인과 지식 공유를 강조한다.

다음으로, 왕 이극의 정국 운영에 관한 문제이다. 선왕의 후사가 없어 먼 친척으로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이극이 왕이 되면서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앨리스 한은 약초도령, 서자도령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극이 정국을 원활하게 운영하게 하는 것이 후궁인 자신의 책무이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돕는다. 그녀는 이극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최대한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정세를 파악하고 앞으로의 해결책을 강구하여 조언하여 신뢰 관계를 구축한다.

마지막으로, 홍서경의 사랑과 죽음에 관한 비밀이다. 생전에 홍서경과 연모의 정을 나누었던 이치헌이 홍문관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홍서경/이치헌과 앨리스 한/이극의 4자 관계가 얽히게 된다. 홍서경의 몸에 들어간 앨리스 한은 이극과 이치헌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되며, 앨리스 한의 존재를 모르는 왕의 오해를 사게 된다. 후궁을 중심으로 왕과 신하의 대립관계가 형성된다. 또한 그녀는 홍서경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파헤친다. 앨리스 한은 이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홍서경의 운명과 이극의 운명이 상충관계에 처해있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홍서경의 사랑과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혀낼수록 왕 이극과의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작품은 비서 로맨스, 타임슬립 로맨스, 변신 로맨스 등 여러 하부장르를 결합하여 다양한 서사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유능한 비서로서 연인의 공적, 사적 관계를 내조하는 비서 로맨스 서사를 타입슬립 서사와 결합하여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공적으로는 비서로서 조력자의 역할을 하여 사업상의 주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사적으로도 비서로서 마음을 달래주고 원하는 일을 모두 수행한다. 단순히 계약관계가 아니라 사장을 사랑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 더욱 헌신적인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다. 앨리스 한의 도움으로 무기력한 왕은 능력 있는 왕으로 변모한다.

 

홍서경과 앨리스 한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킨다. 원래의 숙원 홍서경은 여리고 부드러운 심성으로 자신을 둘러싼 규범에 짓눌려 고통 받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이루어지지 못하고 아버지의 출세욕으로 인해 후궁이 되고 권력 암투에서 희생당하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홍서경의 몸을 들어간 앨리스 한은 역사적 지식, 적극적 의지, 능력 있는 비서로서의 경험을 살려 후궁, 조정, 조선 등 점점 문제를 확대하며 해결해 나간다. 무기력한 왕을 비서로서의 조언과 후궁으로서의 따뜻함으로 강인하고 능력 있는 왕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이때 관습으로부터의 일탈 혹은 기존의 규범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등을 통해, 과거의 홍서경과 현재의 앨리스 한의 대조적인 모습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대비는 적극적인 삶의 의지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점에서 앨리스 한이 홍서경이 된 것은 하나의 운명적 힘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운명론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타임슬립 서사 중에서도 독특하게 과거 시간대의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을 보여준다. 시간여행 서사와 변신 서사가 결합되어 있으며,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앨리스 한에게는 단 한 번의 시간여행이고 그 시간여행에서 홍서경의 몸으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운명론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천재소독비》는 지에모 원작의 동명소설 소설을 웹툰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중국 연재 완결 후 조회 수 100억 뷰 돌파하였으며, 2015년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며, 중국에서 48부작 드라마 <운석전>으로 만들어졌다. 유능한 해독전문가로 현대 의학계의 유명인사 한운석은 고대 운공대륙의 천녕국 한운석의 몸으로 타임슬립한다.

 

한운석은 냉혈한 진왕 용비야와 결혼하지만, 남편의 무관심, 궁궐 내에서의 암투, 연적에 의한 괴롭힘 등의 위기를 맞이하지만, 독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용비야, 목청무, 황태자 등을 차례로 치료해 주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입지를 넓혀 나간다. 한운석은 현재 세계에서의 사적 차원의 능력이 과거 세계에서는 공적 차원의 능력으로까지 확대되며 국가 차원의 위기관리 인재가 된다. 한운석의 신체에 내재된 해독시스템으로 인해 그녀는 모든 독을 분석하고 해독제를 바로 만들어내어 명의의 면모를 보여준다. 과거로의 타임슬립과 현대 첨단의학이 함께 배치됨으로써 시간의 혼재가 동시에 존재한다. 왕비 한운석이 미래에서 온 동명이인의 한운석이라는 사실, 한운석이 첨단 해독시스템으로 독을 자유자재로 다스린다는 사실 등에 대한 비밀에 따른 정보전략으로 관객의 쾌락이 증가된다.

진왕은 차가운 모습 이면에 따뜻한 배려가 있는 성격으로 전형적인 로맨스물의 차도남의 매력을 보여준다. 한운석의 해독전문가로서의 활약과 긍정적인 성격에 정략결혼 상대인 진왕도 서서히 마음을 내어주는 이야기로 정략결혼로맨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황제와 황태자가 있지만 황제의 동생이 진왕이 카리스마와 야망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왕실 내부와 외부에서 끊임없이 권력의 견제가 발생하여 위기상황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진왕을 연모하는 여성들과의 경쟁구도, 귀족 가문이 아닌 한의학 가문 출신에서 오는 텃세, 선대의 왕을 치료해준 대가성의 낙하산 정략결혼 등으로 한운석은 배척과 고립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의학계의 지식, 밀당의 로맨스, 궁정의 음모 등이 함께 조합되고, 정략결혼으로 만나 관심 없는 부부의 합법적인 사랑이 발전하는 사랑 이야기로 흥미를 유발시킨다.

 

타임슬립과 함께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설정으로 시간여행과 변신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시간여행에서 현재시대의 해독전문가인 한운석의 영혼이 자신의 전공분야를 살릴 수 있는 과거시대의 한의학 가문의 여식의 몸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운명론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때 과거시대 한운석은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자신을 괴롭히는 강압적인 아버지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얼굴에 끔찍한 상처를 안고 사는 인물이다. 이에 비해 현재시대 한운석의 영혼은 과거시대의 한운석의 신체에 들어가서 자신의 해독시스템으로 얼굴 상처를 치유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모하고, 아버지의 공격과 궁궐의 암투에 맞서 타고난 지략과 적극적인 의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3. 다른 세계로의 시간여행과 잠재력: 《여왕의 기사》와 《하늘을 연모하다》

《여왕의 기사》는 김강원 글과 그림의 단행본 만화를 웹툰으로 연재한 작품이다. 사랑과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평범한 여중생 이유나가 눈과 얼음의 나라 판타스마에 봄을 오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여왕이 되는 이야기이다. 남주인공인 둥켈 성의 영주 리이노는 차가운 성격이지만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여주인공을 구하는 반전의 캐릭터로서 로맨스웹툰에서 많이 나오는 인물 유형이다. 여왕을 지키는 세 명의 기사는 여성 독자들이 원하는 인물 유형을 대변한다. 재상의 아들 에렌은 이성적이고 냉철한 두뇌형 인물이고, 용사마을 출신의 레온은 단순하고 솔직한 터프가이형 인물이고, 빛의 종족의 쉴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버터형 인물이다. 남성인물들이 1+3 구조로 되어 있어 여성 독자들의 로맨스 환상을 충족시켜 준다. 여주인공을 둘러싸고 남주인공과 남자조연이 사랑, 우정, 질투, 경쟁 등 다양한 감정의 화음을 보여준다.

 

이 웹툰에서 여주인공은 딜레마에 빠진다. 여왕 유나는 자신이 리이노를 사랑해서 판타스마의 봄이 왔지만, 리이노의 가슴에 칼을 꽂아야만 영원한 봄이 온다는 여왕의 저주를 알게 되면서 딜레마에 빠진다. 이전의 여왕들이 리이노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 빠져 감옥에 갇히거나 정념의 화신이 되어버렸다. 판타스마의 영원한 봄을 위해서 여왕이 리이노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기사를 사랑하도록 세 명의 기사를 선발하여 여왕을 곁에서 지키게 한다. 유나는 리이노에 대한 사랑은 판타스마에 봄이 오게 하지만, 리이노에 대한 집착은 판타스마에 겨울이 오게 만든다. 즉, 여왕은 평정심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균형과 조화의 상태를 이루어야 한다.

 

리이노에게만 집착하던 이전의 여왕과는 달리 유나는 따뜻한 품성과 배려로 판타스마의 주민들을 위해 병원, 학교 등을 지으며 복지에 힘쓴다. 또한 판타스마의 봄을 위해서 리이노에게 거리를 두며 자신의 기사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유나의 노력에 얼어붙은 리이노의 심장이 녹기 시작한다. 여왕의 저주에 따른 여러 가지 비밀들이 차례차례 드러나면서 사적 갈등과 공적 갈등이 엉키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여왕이 사랑을 하게 되면 판타스마 왕국에 봄이 오는데, 여왕이 사랑을 느낄 때마다 성장을 하게 되어 머리카락을 자라난다. 여왕의 머리카락이 자라날 때마다 그 대상이 리이노인지 여왕의 기사인지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논란이 생겨난다. 이러한 설정은 감정의 영역과 현실의 영역이 혼재되는 판타지 세계를 보여준다.

 

한국의 소녀 유나는 현실에 없는 판타스마 왕국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타임슬립하게 된다. 시간여행을 하는 시간대가 특정한 공간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운명론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유나는 한 번의 시간여행을 하지만, 리이노는 여러 번의 시간여행을 한다. 리이노는 마녀의 축복과 여왕의 저주로 불사의 몸이면서 판타스마의 겨울에도 잠에 빠지지 않고 유일하게 깨어 있으면서 다른 세계에서 여왕 후보자를 데려온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잠에 빠져든다는 설정은 강한 마법의 주술적 힘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동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비슷하다.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 사이에서 여왕 유나는 가슴 아픈 운명적 상대인 영주 리이노와 함께, 냉철한 지성의 에렌, 따뜻한 배려의 쉴러, 강한 지지의 레온의 도움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하늘을 연모하다》는 리치코 글, 모치즈키 사쿠라 그림의 일본 순정만화를 웹툰으로 연재한 작품으로, 시공을 초월한 운명의 중국풍 로맨스이다. 남자와는 대화하는 것조차 꺼리는 여고생 타카모리 스즈카는 어느 날 바다에서 누군가에 떠밀려 다른 세계 ‘샤오’를 헤매게 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곤경에 처한 스즈카를 구해준 것은 천진난만한 소년 가오신과 요염한 미청년 용양이다.

 

여주인공은 따뜻한 인간성과 배려로 주변 인물들을 감싸 안으면서 이방인에서 황후로 상승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잠재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샤오 세계에서 이방인인 스즈카가 관문을 차례대로 통과하여 황후의 자리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노력과 인성으로 자신에 주어진 관문을 통과한다는 설정으로 힘든 학업 환경, 대학 입시, 취업 등에 직면한 청년세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자 한다. 다른 한편 일본 소녀가 중국 청나라풍의 사요 세계에서 황후가 되는 과정은 청나라에 대한 일본의 미완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흔적을 엿보게 한다.

 

현재시대의 일본 소녀 스즈카가 과거시대의 샤오 세계로 타임슬립하여 황태자 가오신을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지고 나중에 황제의 황후 주흑조가 된다. 가오신은 황제로서 많은 후궁들이 있지만 오로지 여주인공만을 사랑하는 일편단신 남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로맨스물의 환상을 충족시켜준다. 황제를 중심으로 4개 지역이 경쟁구도를 이루고 있어서 가오신은 지역 권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각 지역에서 한 명씩 공주나 귀족을 데려와 후궁으로 삼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후궁들의 세계가 지역 간의 경쟁구도를 그대로 재현하게 되면서 독살, 음모 등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특히 스즈카는 이러한 정치적인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황제가 좋아해서 후궁으로 되었기 때문에 더욱 독살과 음모의 대상이 되어서 생명의 위협에 처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불신하기보다는 믿음과 이해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국가적 차원의 문제까지 해결하여 주흑조라는 존재를 입증한다.

 

이 웹툰의 타임슬립 구성은 다소 복잡하다. 현재세계의 소녀 스즈카는 과거시대로 타임슬립하여 소년 가오신, 어린이 가오신, 청년 가오신을 차례대로 만난다. 타임슬립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아서 스즈카와 가오신의 다른 시간대가 만남으로써 스즈카는 친구, 누나, 연인의 관계를 차례대로 수행한다. 스즈카도 과거의 상처로 인해 남자와 대화를 못 하는 콤플렉스가 있었으나, 가오신의 사랑으로 이 콤플렉스를 극복한다. 거기에 더 나아가 황제 가오신의 황후에 걸맞는 여성이 되기 위해 노력하여 용기, 소통, 배려의 주흑조가 된다. 여주인공은 냉철하고 강인한 성격의 가오신에게 쉴 수 있는 따뜻한 품이 되어주고 평화적이고 공생적인 해결책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현모양처형 인물이다.

스즈카가 타임슬립을 하는 세 번마다 모두 가오신을 만나며, 가오신도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스즈카를 주흑조를 여기며 맹목적인 사랑을 바친다. 두 사람의 운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가오신의 시간대는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데 반해, 스즈키의 시간대는 가오신의 시간대와 불규칙하게 결합한다. 과거의 가오신이 미래의 스즈카를 만난다는 설정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비슷한 시간적 구성이다. 이 영화에서 사고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 있는 20살 미오가 미래로 가서 29살 남편 다쿠미와 아들을 만나고 와서, 현재로 돌아와 다시 20살 다쿠미와 사랑을 시작한다는 설정이다. 미오와 남편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만나는 것과 미래를 통해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깨닫고 현재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 웹툰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과 운명의 상대가 정해진 방향대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인과율적 원리와 운명론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4. 운명론적 세계관과 적극적인 삶의 의지

타임슬립 로맨스 웹툰의 유형을 두 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과거시대의 육체와 현재시대의 정신이 결합한다. 그래서 소심하고 자신감을 상실한 여주인공이 능력과 자신감을 갖춘 인물로 탈바꿈함으로써, 관습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면서 적극적인 삶의 의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둘째, 다른 세계로의 시간여행은 다른 사람에 의해 강제적으로 타임슬립하게 되어 역사에 존재하지 않은 세계로 가게 된다. 이때 평범하거나 콤플렉스가 있는 여주인공이 다른 세계로 가서 영주나 황제인 남주인공을 만나고, 여왕이나 황후가 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타임슬립 로맨스 웹툰에서는 세 가지 욕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선,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여주인공은 전혀 다른 시간대로의 타임슬립 혹은 다른 세계로의 타임슬립을 통해 시간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그 세계를 이방인의 다른 시선을 바라보면서 기존의 규범에 갇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과거의 세계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최근 대졸 이상 고학력층의 취업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2017년 기준 대졸 청년의 평균 졸업 소요기간은 61개월이고, 2017년 현재 대졸자의 평균 취업 소요기간은 12개월이다(장민,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청년실업에 미치는 영향」, 『KIF VIP리포트』). 계속해서 휴학을 하면서 졸업을 연장한 채 취업 준비를 하는 청년세대는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해 타임슬립 서사에서 나타나는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쾌락을 얻는다.

다음으로,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타임슬립을 하는 시기가 대부분 여주인공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거나 죽었을 때이다. 《당신만의 앨리스》에서는 현재시대에서는 앨리스 한이 비밀 서류로 인해 추격 과정에서 사고를 당하고 과거시대에서는 홍서경이 연못에 빠져 죽으며, 《천재소독비》에서는 한운석이 병원 원장과의 말다툼으로 머리를 맞아 정신을 잃고, 《여왕의 기사》에서는 유나가 눈 쌓인 절벽에서 추락하고, 《하늘을 연모하다》에서도 스즈카가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진다. 이런 점에서 타임슬립은 바로 죽음의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되거나 혹은 죽은 인물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인물을 되살리기 위해 타임머신을 통해 환생의 가능성을 꿈꾸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러한 타임슬립 서사에서 특이한 점은 바로 적극적인 삶의 의지와 운명론적 세계관이다. 여주인공은 전혀 다른 시간대 혹은 다른 세계로 타임슬립하게 되면서 낯선 환경에서 위기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여주인공의 모습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청년세대의 자화상이다. 여주인공이 적극적인 삶의 의지로 위기를 극복하고 능력을 발휘하면 자아실현을 하고 사랑도 얻고 사회적 성취를 달성한다. 사랑과 일의 성취, 즉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서의 성취가 정비례 함수관계를 이룬다.

그리고 타임슬립에서의 운명론적 세계관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든다. 적극적인 삶의 의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주인공의 여정이 이미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 대중영화의 결말처럼 해피엔딩의 미래가 확보되어 있으니까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지금 현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업의 힘겨운 과정을 겪어오고 청년실업의 문제에서 지치고 탈진한 청소년세대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이다. 사랑과 일에 있어서 이미 낙관적인 미래가 정해져 있으니까 현재에서 좌절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고 용기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타임슬립은 사고에 가까운 초자연현상이라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을 이용한 시간여행과는 구분된다. 타임슬립이 타임머신류와의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은 시간을 뛰어넘는 일에 대한 제어능력이 없고, 또 그 과정을 이해할 수도 없다. 타임슬립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내던져진 청소년세대들의 불안을 담고 있다. 타임슬립 로맨스 웹툰의 서사에서 드러나는 특성은 바로 던져진 주체이자 이방인인 청소년세대가 겪는 시간, 죽음, 두려움이라는 현실의 세 가지 제한과 연관된다. 이런 점에서 타임슬립 로맨스 웹툰은 운명적 사랑을 통해 사이버 문화가 꿈꾸는 가상세계의 목표인 시간, 죽음,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쾌락을 선사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웹툰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학술출판분과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