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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의 문화톡톡] 1960년대 볼티모어와 2019년 서울에서는
[이혜진의 문화톡톡] 1960년대 볼티모어와 2019년 서울에서는
  • 이혜진(문화평론가)
  • 승인 2019.11.04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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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0년대 볼티모어에서는

 

20197월 볼티모어 출신의 CNN 뉴스앵커 빅터 블랙웰이 격한 감정을 애써 추스르며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비판했던 클로징 장면은 전 세계인들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문제인즉슨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이민정책과 이민자 아동인권 처우를 강하게 비판해왔던 민주당 하원의원 엘리자 커밍스의 지역구인 볼티모어를 가리켜 트럼프가 역겹고 쥐가 들끓는 미국 최악의 지역이라고 말한 소식을 전하던 앵커가 생방송 도중 울분을 토해낸 것. 빅터 앵커는 어떤 인간도 거기에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요? Mr. President, 거기 누가 살았는지 아세요? 바로 제가 살았습니다”, “볼티모어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일갈했다. 그러자 또 다른 볼티모어 출신의 에이프릴 라이언 CNN 기자도 이날 생방송 중에 볼티모어는 이 나라의 일부다. 내가 볼티모어고 우리 모두가 볼티모어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Baltimore - Highway sign image(출처: 구글)
Baltimore - Highway sign image(출처: 구글)

이 사태는 곧바로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볼티모어해시태그 달기(#WeAreBaltimore) 운동으로 번졌다. 시카고와 함께 살인천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볼티모어는 약 65만 인구 규모로 메릴랜드 주에서도 가장 큰 문화와 산업의 중심지이지만, 흑인 인구 비율이 60%가 넘고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빈곤층에 속해있어 현재 미국의 전 지역과 비교해 보아도 빈부격차가 극심한 지역에 해당한다. 실제로 1962년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Hairspray)>(2007)의 첫 장면에서도 볼티모어 주택가 한복판에 쥐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고 아침부터 술에 취해있는 중년의 백수건달과 거리의 중산층 부인들을 희롱하는 바바리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문배달 소년이 던지고 간 조간신문의 헤드라인 기사는 <196253, 주지사가 인종차별>. 이렇게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실업과 범죄와 빈곤, 그리고 인종분리정책(segregation)에 의한 흑인차별의식이 만연한 미국사회의 부정적 계기를 1960년대의 볼티모어를 통해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 미국 드라마 <더 와이어(The Wire)>(2002-2008) 역시 볼티모어 거주자들만이 알 법한 도시적 특징과 빈민가의 생태를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묘사했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마약, 빈부격차, 범죄, 교육 등 도시적 소외문제를 세밀하게 조명한 것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 인종 갈등 문제, 젠더 불평등 문제, 성소수자 문제, 노조 문제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F. 케네디가 집권하던 1962년의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 영화 <헤어스프레이>는 흑인민권운동의 거센 움직임들 속에서 짐 크로우법의 혐오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 백인사회의 경직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괴해버리는 10대 청소년들의 진취적인 발랄함을 경쾌하게 그린 문제적 시대극이다. 1962년이 문제적인 이유는 29세의 청년 제임스 메리디스(James Meredith)가 법무부 검사와 연방 보안관을 대동하고 연방군 1만 여명의 호위를 받으면서 미시시피 대학 개교 이래 최초의 흑인 학생으로 입학한 해(1962.9.30.)이자, 흑인의 시민적·경제적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워싱턴대행진에서 마틴 루터 킹의 기념비적인 연설 <I have a dream>(1963.8.28.)을 선보이기 바로 직전의 해이기 때문이다. 당시 흑인민권운동의 거센 흐름은 1964년 민권법안 채택으로 이어지면서 공공시설에서의 흑백분리정책이 폐지되고, 마침내 1965년 흑인들의 참정권이 허용되면서 미국사회 전반에 큰 변혁을 가져다주었다.

 

영화-헤어 스프레이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헤어 스프레이 포스터(출처: 네이버)

196210대들의 최대 관심사는 TV 댄스 쇼를 보며 로큰롤 댄스 따라하기와 한껏 멋 부리기. 한 달에 단 한 번 있었던 흑인 쇼프로그램 흑인의 날(Negro Day)’을 폐지한 백인 기성 사회에 부당함에 반발하여 슈퍼 헤비급 몸매의 백인 여고생 트레이시(Tracy)가 흑인시위에 동참하고, ‘미스 틴에이지 헤어스프레이 댄스 콘테스트에서 흑인 소녀 아이네즈가 가장 많은 시청자 득표수를 획득해 코니 콜린스 쇼(Corny Collin’s Show)’의 정식 댄서가 되는 엔딩,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흑인 남자친구 시위드와의 사랑을 선택한 페니의 결단 등은 미국사회에 만연한 백인우월주의의 편견을 가차없이 깨뜨려버린 10대 청소년들의 진취적인 행보를 잘 보여주었다.

 

영화-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서 오드리 햅번은 비하이브 헤어스타일을 세기의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시켰다(출처: Z뉴스)
영화-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서 오드리 햅번은 비하이브 헤어스타일을 세기의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시켰다(출처: Z뉴스)

하루 종일 노래하고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도 처음 상태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해주는 헤어스프레이는 당시 미국의 10대들에게 필수적이었던 패션 아이템을 상징한다. 이 영화에서 트레이시가 벌집 모양으로 한껏 위로 부풀린 비하이브 헤어스타일(beehive hair)’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마다 헤어스프레이를 뿌려대는 첫 장면은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아이템에 대한 고증이자, ‘흑인의 날시위에서 트레이시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스튜디오 무대에 잠입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수단이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여성들의 공통 헤어스타일인 비하이브 스타일은 1961년에 개봉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에서 오드리 헵번이 대중에 선을 보이면서 세기의 패션 아이콘으로 확산된 유행의 산물로서, 이 영화에서는 시대를 상징해주는 중요한 문화 요소로 등장한다. 이와 함께 백인우월주의자인 쇼 프로 PD 벨머의 강력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득표수를 획득한 아이네즈가 최초의 흑인 미스 헤어스프레이로 탄생하게 되는 결말은 당시 미국 대중음악 씬에서 틴에이저 흑인 걸 그룹 아이돌 스타가 한창 유행의 붐을 타고 있었던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2. 좋았던 옛 시절: 브릴빌딩 사운드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미국의 전례 없는 경제호황은 0%에 가까운 실업률과 임금상승을 가져왔고 급격히 인구가 팽창하게 되면서 전후의 명랑한 정서를 공유한 새로운 청년세대가 생겨났다. 1960년대 미국의 성과물을 말할 때 흔히 공민권운동이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같은 것들이 손에 꼽히곤 하지만,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급격한 격차를 반영하는 반체제문화역시 이 시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에릭 홉스봄은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된 1960년대 청년세대의 주도로 이루어진 반체제문화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영역에 걸쳐 절제와 억압에 기초를 둔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저항하고 기성세대의 전통적인 관습 및 공리주의적 가치관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새로운 요인이었음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1960년대 미국의 대중음악 씬은 냉전체제가 시작된 1950년대 아이젠하워 시대의 보수적 관례주의에 반기를 들고 전통적인 사상과 이상을 습격한 대표적인 문화전쟁의 한 사례에 해당한다.

1961년 미국 레코드 산업의 기록적인 수익률은 곧바로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콜롬비아나 머큐리 등의 메이저급 레이블은 더 이상 장사가 되지 않는 재즈뮤직을 마이너 레이블에 넘기고, 장차 팝 뮤직 무대를 이끌어갈 10대 신인가수들을 기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중음악의 주류 소비자층이 이제 10대 청소년들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1950년대 아이돌 스타들이 모두 남성 일변도였던 데 대해 가수가 되겠다는 10대 소녀들이 브로드웨이에 넘쳐나고 있었던 것은 상업적으로도 눈여겨 볼만한 현상이었다. 이때 뉴욕 브로드웨이 1619번지에 위치한 브릴빌딩(Brill Building)’은 창작자와 프로덕션이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10대들의 취향에 맞는 팝 히트곡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면서 음악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트레이시와 같은 10대들을 열광에 빠뜨린 '브릴빌딩'의 수많은 히트곡들을 브릴빌딩 사운드라고 불렀다. 그런 까닭에 브릴빌딩브로드웨이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명으로 지칭되기보다 모던팝 음악의 산실이자 1960년대 초 뉴욕 사운드를 대표하는 존재로 세간에 각인되어 있다.

 

Brill Building(출처-pinterest)
Brill Building(출처-pinterest)

브릴빌딩은 당시 미국 연예산업의 중심지 브로드웨이에 위치해 있던 한 건물의 1층에 있던 회사 이름이다. 1962년 이 건물 3층에는 싱어송라이터와 음반발매업자, 에이전트와 광고업자가 하나의 그룹을 이룬 음악회사 65개가 모여 있었다. 이들은 곡을 만들고 그것을 거래하며 광고 계약을 맺어 곡을 홍보하는 방식을 하나의 그룹이 실행하게 함으로써 히트곡들을 재빨리 순환시켜 쇼 비즈니스계를 장악했다. 이것은 히트곡을 제조하고 유통하는 데 필요한 모든 과정을 하나로 수렴하는 브로드웨이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서,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상호 의존하는 분업노동의 형태를 취한 것이었다. 이런 브릴빌딩시스템을 선도한 중심에는 탁월한 프로듀서였던 돈 커쉬너(Don Kirshner)와 그의 알든뮤직, 그리고 디멘션 레코드 레이블이 있었다.

1960년대 초 전후의 호경기는 도시의 10대 소녀들로 하여금 톱스타 가수의 꿈이 진정으로 실현 수 있다는 미국사회의 희망을 만끽하도록 만들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풍요로웠고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영화 <헤어스프레이>에 등장하는 10대 청소년들의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발랄한 일탈은 이 시기를 지배하고 있었던 아메리칸 드림이 낳은 산물이었다. 그런 까닭에 기성세대에게 이 시기는 세계 경제의 왕좌에 있었던 미국의 좋았던 옛 시절(good old days)’로 기억된다. ‘브릴빌딩은 틴 에이저 걸 그룹의 인기와 함께 10대의 취향과 감성을 완벽하게 장악해갔다. 1960년 흑인 걸 그룹 셔를스(The Shirelles)’<Will You Love Me Tomorrow>가 청소년들을 현혹할 만한 대범한 가사로 1위를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963년 영국의 비틀즈가 전 세계를 지배해버렸을 때 브릴빌딩이 만든 걸 그룹들은 미국 대중음악 씬에서 정상을 달리고 있었다.

 

Phil Specter와 Ronettes(출처-New York Times)
Phil Specter와 Ronettes(출처-New York Times)

셔를스에 이어 당시 스타 제조기로 불렸던 프로듀서 필 스펙터(Phill Spector)에게 발탁된 흑인 걸 그룹 로네츠(Ronettes)’<Be My Baby>(1963)<Baby, I Love You>(1963), <Walking In The Rain)>(1964)가 연이어 히트하자 음반기획사들은 걸 그룹의 거대한 상업성을 재확인하게 되었고, 아이돌 걸 그룹의 인기가 미국 대중음악 시장의 패권을 장악해갈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전후 호경기에 편승한 새로운 틴에이저 세대의 감성이 대중문화 씬의 판도를 바꾸었다는 것, 그리고 1960년대 흑인 공민권운동이 흑백 갈등을 완화시키고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가 작동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헤어프레이>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10대들의 감수성을 대변해주었던 1960년대 브릴빌딩의 제작 시스템은 걸 그룹의 상업적 성공에 편승하여 인종적 평등을 실현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3. 2019년 서울에서는

 

10대 아이돌 그룹은 자본주의 경제적 풍요가 가져다 준 문화 감성에 편승한 음반기획자의 단골수법이 되었다. 현재 틴에이저 아이돌 그룹의 제작 시스템은 한국과 일본에만 남아 있는데, 거의 모든 케이팝 연예기획사들이 10대 아이돌 그룹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오늘날 케이팝 연예기획사=‘아이돌 메이킹의 교과서로서, 케이팝 제작 시스템의 수준은 이미 글로벌한 지위를 획득했다. 현재 한국의 SM, YG, JYP와 같은 대형 연예기획사의 스타제조 방식은 브릴빌딩의 표준화된 제작 양식의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케이팝은 공개오디션을 통해 노래와 춤에 재능을 가진 10대 청소년들을 모아 장기간의 혹독한 훈련과정 거쳐 육성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기획부터 데뷔까지 기획사의 관리에 의한 표준화된 아이돌 그룹을 집중적으로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의 레이블 시대가 오늘날 기획사의 시대로 변모했음을 뜻한다.

수많은 아이돌 스타들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내용은 혹독한 연습생 시절의 혼돈과 고통의 이야기나 데뷔 이후 기획사로부터 공개연애와 사회적 물의를 일이키는 행위를 금지 당함으로써 개인의 자율성을 스스로 저당 잡힌 이야기들이다. 아이돌 스타의 화려함이 연예기획사의 관리 시스템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대중은 아이돌 스타에게 온화하고 청결한 이미지를 강요하고 또 강도 높은 윤리적 도덕성을 요구한다. 청소년 인권 침해를 넘어선 합숙 방식과 혹독한 훈련, 성공우선주의에 기초한 자기헌신, 글로벌 위상에 따른 국민적 기대감과 사생활이 담보된 팬덤 등은 이들의 독특한 생존조건이기 때문에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는 시선은 더 이상 자연스런 것이 아니다. 시대도 세대도 이미 변했다. 이제 아이돌 스타 제작방식의 기능도 전환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아이돌 그룹에 대한 인식과 시선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우리가 대중으로 존재하는 한 인간 존엄의 보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볼티모어이며, 우리가 설리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에릭 홉스봄 지음, 이용우 옮김, <극단의 시대>, 까치, 2009.

밥 스탠리 지음, 배순탁 외 옮김, <모던 팝 스토리>, 북라이프, 2019.

임진모 지음, <, 경제를 노래하다>, 아트북스, 2014.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엮음, <누가 문화자본을 지배하는가>, 문화과학사, 2015.

 

: 이혜진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 제6회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음악비평상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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