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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서 성수대교와 세월호를 지나, 오늘을 담았다
5.18에서 성수대교와 세월호를 지나, 오늘을 담았다
  • 송아름 l 영화평론가
  • 승인 2019.11.2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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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선정한 ‘10편의 영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매년 선정하는 ‘영평10선’은 현재의 한국영화의 양상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결과로서의 ‘영평10선’은 그해 영향력 있던 영화들로 신속히 목록화·기사화되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영화를 고를 때, 그리고 그 목록을 볼 때 느끼는 감정에 있다. 아까운 영화들이 넘쳐나 영평10선을 뽑기 위해 10칸의 여백을 채우고 쓰기를 반복하는 해도 있고, 반대로 10칸을 채우는 게 곤혹스러운 해도 있다.
지난 1년간 개봉한, 150편을 상회하는 영평10선의 후보 목록을 보며 한 편 한 편 선택하는 순간의 희열과 아쉬움, 그리고 확정된 영화 10편에 대한 동의와 의아함은 한국영화가 지금에 머물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올해의 영화들이 바로 이 힘에 기여한 것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변호텔>
(홍상수, 2019.3.27. 개봉)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갑작스레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생의 전부였다고 생각했던 이가 나를 떠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변호텔>은 이 문제에 직면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한강변의 한 호텔이라는 공간을 빌어 풀어놓는다.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중년의 시인은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두 아들을 부르고, 실연의 상처가 깊은 여성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언니를 부른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주치는 듯하면서도, 거리를 둔 채 각자의 방식으로 부유한다.

시인이 호텔 로비에서 아들들을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두 아들은 어렵지 않게 호텔 커피숍을 찾아왔음에도 그들의 시간과 공간은 끊임없이 어긋나며 만남의 시간을 지연시킨다.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오랫동안 끊어져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실은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이 미묘한 어긋남과 엇박자의 대화들이 설명한다. 여자는 호텔로 찾아온 언니와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잠을 자고 설원을 걷는 것만으로 안정을 찾지만, 솔직한 이야기는 그리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 여성들을 만난 시인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알리고 경탄하지만, 시로 읊조리는 그 단어들은 사실 ‘공허함’에 가깝다. 죽음에 도달하는 <강변호텔>은 홍상수 감독의 어떤 영화보다 어둠이 짙게 드리워 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장률, 2018.11.08. 개봉)

장률 감독은 직전의 작품 <춘몽>에 이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이하 <군산>)에서 역시 꿈을 언급한다. 영화는 ‘개꿈’을 꾼 것 같다던 군산에서의 일정을 먼저, 그리고 그곳에 가게 된 이유를 뒤에 배치하면서 앞서 해명되지 않았던 장면들을 천천히 채워나간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타이틀이 중반을 넘어서 등장한다는 것인데, 이때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의미의 ‘영아(咏鵝)’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咏鵝’는 영화의 제목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시인 낙빈왕이 7세 때 지어서 불렀다는 시의 제목이며, 돌아가신 엄마가 극 중 윤영을 부르던 아명(兒名)이기도 하다. 그가 무엇을 기대하고 엄마의 고향인 군산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군산을 찾았을 때의 그는 7세 아이처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곳에서의 ‘잠시’는 마치 개꿈처럼 기대를 벗어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군산>은 영화의 이야기가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을 내놓고 있다. 이는 ‘원인’과 ‘결과’라는 순서의 전복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 내 장면들의 배치가 달라졌을 때, 익숙하지 않은 장면들끼리 부딪쳤을 때 보여줄 가능성을 가리킨다. 감독의 시도는 마치 그곳에 당연한 듯 자리하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와 군산의 미로와 같은 복잡한 일본식 가옥과 도심의 낡은 상점들의 쓸쓸함 등이 만나면서 불쑥불쑥 영화의 순간들을 완성한다. 영화는 아직 ‘개꿈’일 것을 모를 윤영의 군산행으로 마무리되면서, ‘咏鵝’가 만들어 갈 군산의 영화를 계속 기대하게 한다.

 

<극한직업>
(이병헌, 2019.01.23. 개봉)

마약, 국제 범죄조직, 형사와 잠복근무. 분명 어둡고 무겁고 잔인한 영화에 어울리는 단어들이지만, 여기에 ‘치킨’이라는 단어가 끼어든다면 또 다른 장르를 기대할 수 있다. 영화 <극한직업>은 이 의외의 조합이 만들어낸 최고의 성과였다.

사실은 상당한 능력을 지녔지만, 뭔가 미흡해 보이는 마약반 형사 5명은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열정만은 대단하다. 이 과도한 열정이 범죄 수사보다 닭 튀기는 일에 집중됐다는 점이 문제지만, 바로 이 문제가 배우들 연기의 최대치를 보여줄 기회로 작용한다. <극한직업>은 엉뚱한 설정과 배우들의 연기가 최상의 시너지를 낸, 코미디 영화의 전형이자 모델이다.

무수한 패러디를 낳았던 류승룡의 대사는 특유의 진지한 톤과 만나면서 웃음을 유발했고, 고정된 이미지로 표현하는 인물의 범위가 넓지 않았던 이하늬는 그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했다. 전작에서 잔인함 그 자체였던 진선규는 순둥한 모습으로 기름 앞에서 징징댔고, 이동휘와 공명은 적재적소에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물론 오정세와 신하균도 빼놓을 수 없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완벽함이 창조한 인물들의 허술함을 반겼고, <극한직업>은 이 역시 분명 영화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점을 새삼스레 확인시켰다.

 

<기생충>
(봉준호, 2019.05.30. 개봉)

영화에서 냄새를 언급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시각을 우위에 둔 영화라는 장르에서, 스크린이라는 분명한 물리적 벽을 거쳐야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에서 후각은 가장 먼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생충>은 현재 한국사회의 자본과 계층의 문제를 무엇보다 냄새를 경유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는 기택의 집과 박 사장의 집이라는 전혀 다른 공간 속의, 전혀 다른 삶이 풍겨대는 이야기로 성취됐다.

<기생충>의 계층문제는 결국 최상위층과는 상관없이 비슷한 냄새를 가진 이들끼리의 아귀다툼으로 귀결된다. 냄새는 분명 공기로 확산되는 것임에도, 박 사장의 집이라는 ‘선’을 넘을 수 없던 기택 가족의 냄새는 오히려 깊은 지하로 고이면서 처절해진다. 기택 가족의 상대는 자신들이 들어가고 싶은 박 사장 가족의 삶이 아닌 이 집에 오랫동안 기생해 살아온 문광 부부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하고서야 싸움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기태네 집이 잠길 만큼의 폭우를 인지할 필요도 없이, 아니 오히려 ‘비가 내린 후라 상쾌하다’고 느끼며 사는 박 사장‘들’은 그들의 싸움을 목격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 이다지도 완벽하게, 냄새까지도 막을 수 있을 만큼 계급적 분리가 견고하다는 사실을 <기생충>은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시각의 최대치를 통해 풍겨냈다.

 

<김군>
(강상우, 2019.05.23. 개봉)

올해 영평10선의 유일한 다큐인 <김군>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을 다룬 영화들 중 유일하게 감정(죄책감)을 최소화하고 논리에 중점을 둔 영화다. 충분히 애도되지 않았기에 그만큼 희생자를 위해 슬퍼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태까지의 5.18을 다룬 영화들에서 죄책감으로 표현됐다. 그러나 죄책감 속에서 5.18은 과거에 있던 ‘그 일’에 대한 슬픔과 공분만을 남긴 채 현재와는 멀어지고 있었다. <김군>은 바로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며 5.18을 아직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아직 증언할 수 있는 이들이 설명할 수 있는 현재의 것으로 끌어온다. 무엇보다 감정이 아닌 5.18을 폭동이라 이야기하는 이들의 억지를 논리로 해명하고자 한다. 그렇게 감정이 배제된 바로 그 순간, 5.18은 지금의 문제로 다시금 자리 잡는다.

<김군>은 유사과학이라는 이름으로 5.18을 폭동이라 규정하는 이들의 주장을 훑으며, 그들의 논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김군’을 찾기 시작한다. 즉 <김군>은 상대의 주장이 틀렸다면, 눈물이 아닌 그에 합당한 대응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응을 위해서는 그때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설명할 수 있는 ‘현재’의 인물들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5.18은 <김군>을 통해 ‘여기’의 이야기로 다시 시작됐다. 5.18을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대항할 방법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말들의 조합, 그것을 통한 논리적인 구성과 자료, 실체에의 접근임을 <김군>은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미성년>
(김윤석, 2019.04.11. 개봉)

<미성년>에서 딸은 이미 아빠의 불륜을 알고 온 듯 현장을 확인한다. 이 첫 장면은 <미성년>이 그것이 무엇이든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 <미성년>은 그 숨길 필요가 없는 것으로 감정을 내민다. <미성년>의 인물들은 현재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혹은 버릇없게, 폭발하는 것을 보여주는 데 거침이 없다. 여고생 딸을 둔 부모의 불륜을 영화의 중심에 두면서도 으레 생각할 수 있는 뻔한 장면들을 모조리 걷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까발린 감정의 솔직함’에 기인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솔직함이 바로 영화 <미성년>의 섬세함을 유지하는 힘이다. 인물들의 감정은 큰 굴곡을 그리지만 때로는 작은 손짓, 미묘한 표정의 변화, 올이 나간 스타킹 같은 사소함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서 사장 중요한 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끈다. 어쩌면 좋고 싫음처럼 단순한 감정이 전부였을 텐데, 그로 인한 온갖 것들로 우리는 고민과 고난에 빠진다. 얼마나 감정을 숨겨야 하는지 또 얼마나 드러내야 하는지, 감성과 이성이 다른 길을 갈 때는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미성년>은 머무를 수 없는 감정을 최대한 붙잡으라고 말한다. 금세 사라져버릴 수 있는 감정이,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보라고.

 

<벌새>
(김보라, 2019.08.29. 개봉)

<벌새>가 그리는 1990년대는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쏟아져 나온 1990년대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우리가 과거를 ‘그땐 그랬지’라는 회상과 추억만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제하며, 그렇기에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벌새>는 1990년대라는 한 시대에 관한 이야기가, 특별한 사건이나 특별한 인물이 아닌 한 소녀와 그의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여기에는 ‘아련하게 떠오르던 그때’가 뭉개버렸던 고통과 공포와 불안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들로 그 시대의 역사와 정치는 새롭게 기입됐다.

<벌새>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중심에 대략 10년의 간격을 두고 1990년대에 이른 세 여성의 서사를 중심에 둔다. 이 작품은 1981년생인 은희가 주인공이지만, 실상 1950년대 후반생으로 추정되는 은희의 엄마, 그리고 1970년대 초반생으로 추정되는 한문 선생 영지를 통해서야 은희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다. 이 세 개의 기둥으로 만든 얼개는 각각의 인물들이 겪었을 시간을 가로지르면서 거대한 이야기로의 진입을 예고한다.

자신이 소외된 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엄마,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던 영지 그리고 가족 내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버텨내던 은희는 각자의 삶이 겪어내야 했던 시대의 폭력을 드러낸다. <벌새>는 이처럼 거대담론을 벗어나 한 시대를 다시 서술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했고, 이 자체가 ‘정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올 한해 가장 주목받은 독립영화로 빛났다. 이는 역으로 권력을 쥐려 암투를 벌이는 예의 그 ‘정치’의 표현들만이 정치가 아니며, 심지어 그런 것들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선언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생일>
(이종언, 2019.04.03. 개봉)

‘이후’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렵다. 모두의 기억 속에 상황을 서서히, 고통스럽게 각인시킨 내용이라면 더욱 그렇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는 검은 바다와 기울어진 배,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그로 인한 죽음에 관해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5년이 지나 다큐가 아닌 극으로 재현된 영화 <생일>은 굳이 담담하려 하지 않았다. 남은 자들의 공허함을 보여줬고, 공허한 이가 공허하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과 부딪히며 보듬어가는 과정을 그려냈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꾹꾹 눌러 담았던 분노와 눈물을 내보일 수 있게 했다.

<생일>은 추모보다 축하가 당연했을 이들, 당연히 행복할 시간이 더 길었을 이들에게 바로 그 당연한 시간을 주려 한다. 그리고 이 노력들이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 남은 자들의 몫이라는 점을 되새긴다. 아들을 보낸 엄마는 깜빡이는 센서등에서 아들의 흔적을 찾으면서도 일을 하고, 어린 딸은 엄마의 예민함과 다그침 속에서도 엄마를 바라본다. 아빠는 가족들이 오랫동안 멀어져 있던 자신을 밀어내는 것을 알면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다. <생일>은 영화의 후반부를 이 하루하루의 삶들이 모여 만든 기억들로 채운다. 기다리는 이가 있음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과,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이들을 향한 위로는 그렇게 이뤄졌다.

 

 

<엑시트>
(이상근, 2019.07.31. 개봉)

용남이 시간과 정성을 쏟는 철봉운동은 그를 동네 바보로 만든다. 멀쩡한 젊은 청년이, 남들 모두 일하며 돈을 버는 시간에 놀이터에, 그것도 대낮에 나타나선 안 된다는 전제가 용남을 ‘바보’로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 <엑시트>는 남들이 바보라 부를 그 일에, 그러니까 ‘쓸데없는 일’에 쏟아부은 열정에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 ‘재난영화’라는 <엑시트>가 그 흔한 전문가도 희생을 자처하는 비장한 인물도 등장시키지 않은 채, 심마니가 되지 않을 거면서도 산악부라는 ‘쓸데없는’ 활동을 한 두 청년을 앞세워 재난을 해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엑시트>는 그만큼 투명하며 착하다. 여타의 재난 영화들이 자연재해 혹은 거대한 사고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이나 인재를 질책하는 것과 달리, <엑시트>는 재난에 맞설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을 알려주고 주인공을 돋보이려 누군가를 굳이 위기로 몰아넣지도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재난의 상황을 겪고 있을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응원을 <엑시트>는 매우 선한 방식으로 건네고 있는 것이다.

다들 잘 될 거라 그랬는데 이게 뭐냐며, 의연한 듯 구조헬기를 보내고 또 언제 오겠냐며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우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처연하고 또 솔직하다. 때문에 이들은 어떤 수식어도 점잖음도 생각지 않고 ‘우리를 좀 데려가’라고 외쳐댈 수 있다. 요구되는 조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더라도 분명 재난을 헤쳐나간 이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지금, <엑시트>는 유쾌함이라는 해답을 자신 있게 내밀었다.

 

<완벽한 타인>
(이재규, 2018.10.31. 개봉)

<완벽한 타인>의 원작인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Perfect Strangers)>(2016)는 18개국에서 리메이크돼 기네스북에 오른 특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는 타인과 그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이 국경을 넘나드는 본능이라는 점을 지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타인이라는 존재는, 모르기에 관심이 가면서도 내가 알던(실은 짐작하던) 모습에서 벗어나면 당황하게 만드는 이상한 위치를 점한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후자를 중심으로,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을 모아 서로의 예상을 넘어섰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중심에 둔다.

농담 삼아서라도 휴대폰이 울리면 무조건 그 내용을 공개하자는 제안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상대가 내가 알고 있는 그 범위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화벨이 울리면서 믿음은 우스운 것이 돼버리고, 심지어 수십 년을 만났어도 몰랐던 사실들까지 순간의 전화벨로 폭로된다. 서로가 맞물려 쉽게 해명할 수 없는 상황들이 중첩되며 긴장감을 높이고, 인물들의 난감함은 배우들의 완급조절로 불안의 정점에 선다.

이렇게 휘몰아치는 감정의 진폭과 다르게 영화의 공간은 집안을 벗어나지 않으며 심지어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들의 바스트 샷이 대부분이다. 마치 그곳에, 프레임에 갇혀 벗어날 수 없는 듯한 인상을 주는 연출은 급변하는 감정과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며 비밀의 공포와 답답함을 극대화하고, 비밀스러운 개인들의 불안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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