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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 위대한 헛방 - <스탈린이 죽었다!>
[조한기의 시네마 크리티크] 위대한 헛방 - <스탈린이 죽었다!>
  • 조한기(영화평론가)
  • 승인 2019.12.02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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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죽었다!>는 권력에 짓눌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스탈린의 죽음 이후 권력을 쟁취하려는 자들의 진흙탕 싸움을 다룬다. 대부분의 사건이 과장되었지만, 일부 사건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어 경비원들이 두려움 때문에 스탈린의 방에 들어가지 못한 일과 독살을 염려해 의사를 제때 부르지 못했다는 일화가 그렇다. 사실 영화에서 유심히 살펴야할 것은 역사적 진위보다 권력이 야기하는 부조리한 상황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유치했던 권력자 간의 지배권 다툼은 갈수록 흉악해지며 권력의 폭력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물의 입체적인 성격과 처절한 몰락은 기이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사후적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모든 전일적인 권력에 대한 일갈로 읽히기도 한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스탈린이 죽었다!>에서 웃음은 폭압적인 시대를 살아내는 인물들의 긴장과 극심한 공포를 역설적으로 전시하는 데서 발생한다. 예컨대 스탈린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취했던 권력자들의 반응이 그렇다. 이들은 마음속으로 스탈린의 죽음을 애타게 바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스탈린에게 과잉 충성을 보인다. 영화에서 웃음과 비애는 그처럼 기괴한 불일치에서 발생한다. 때때로 영화 속 아이러니한 상황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기도 한다. 이 글은 영화를 조금 더 심도 있게 보는 방식으로서 서사무대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며 <스탈린의 죽었다!>를 지배하는 기묘한 정서에 대해 재구해 보려 한다.

“노동자 한 명이 5분 일찍 공장에 도착했다. 그는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다. 다른 노동자가 5분 늦게 도착했다. 그는 사회주의 건설 의무에 나태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세 번째 노동자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는 반 소비에트 선동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스위스에서 만든 시계를 차고 있었다.”(Bruce Adams, Tiny Revolutions in Russia: Twentieth-century Soviet and Russian History in Anecdotes, New York: Routledge, 2005, *88)

위에 인용한 스탈린 시대의 정치 유머는 서사무대 속 암울한 시대상을 엿보게 한다. 완벽한 사회를 꿈꾸던 소비에트연방은 모순을 은폐하기 위해 “인민의 적”을 기계적으로 재생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스탈린은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경찰들은 그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인민을 잡아들이고, 생존을 위해선 가족과 친구에게도 등을 돌려야만 했다. 고발을 위한 고발이 시스템화된 사회에서 신용은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러한 폭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소련 인민들이 스탈린을 대하는 태도이다. 총살을 당하기 직전 사형수들은 “스탈린 만세!”를 외친다. 또한 인민은 독재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진을 하다가 무참히 살해당하기도 한다. 폭압적인 세계를 만든 장본인을 향한 피지배 계급의 사랑은 기묘한 감각을 전달한다. 이와 관련해 역사학자 쉴라 피츠팩트릭은 스탈린을 향한 인민의 열렬한 지지에는 과거 독재 정치를 통해 이룩한 사회경제적 성공 신화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폭압적인 시대상을 견뎌내기에 앞서 위대한 지도자가 이룬 업적에 대한 역사적 감격과 자부심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양면성은 영화 속 인민의 집단의식을 이끄는 거대한 구심력이다. 이 같은 구도와 권력의 메커니즘은 어떤 동시대적인 감각을 견인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사건은 파국으로 향한다.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배신을 거듭하고, 종국에 몰락한 이들은 비감한 정서를 전달한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점은 권력자들의 진흙탕 싸움이 야기한 사회적 파급력이다. 이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의 생명을 도박 밑천처럼 이용했다. 영화는 그렇게 부조리한 세계를 블랙코미디의 문법을 따르며 톺아본다, <스탈린이 죽었다!>는 권력의 속성에 대해, 특히 복잡한 국제관계와 특수한 사회·역사적 상황에 놓인 한국인에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조한기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수료. 2018 영평상 신인평론상과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 2018 만화비평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문화와 스토리텔링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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