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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유라시아 인문 역사기행 - <겨울 바이칼과 러시아 세도시 기행 가이드 북>
2020 유라시아 인문 역사기행 - <겨울 바이칼과 러시아 세도시 기행 가이드 북>
  • 강태호(편집위원장)
  • 승인 2020.01.0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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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과 시베리아의 세도시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장엄한 호수 바이칼_ 시베리아의 진주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쪽, 이르쿠츠크(Irkutsk)와 브랴티야(Buryatia) 자치공화국 사이에 위치한 바이칼은 시베리아와 몽골의 접경지에 있는 바다 같은 호수다. 바이칼은 약 2천5백만-3천만년 전에 형성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담수호(淡水湖)다. 시베리아를 러시아라고 보는 건 3~4백년 전의 일이니, 바이칼의 역사에서 보면 어찌보면 하룻밤에 불과할 것이다. 시베리아에는 많은 민족들의 흥망성쇄가 있었고 아직도 살고 있다. 그들에게 바이칼은 저마다의 이름으로 그에 맞는 뜻이 있었다. 예컨대 바이칼은 몽골어로는 바이깔이고 깔은 바다라고 한다. 바이깔은 밝은 바다이며 빛나는 바다이다. 시베리아의 또 다른 유목민족인 타타르족들의 언어로는 바이쿨이고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바이칼은 여러 가지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수심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또한 저수량이 2만 2000㎦로 담수호 가운데 최대 규모이자, 전세계 얼지 않는 담수량의 20%, 러시아 전체 담수량의 90%를 차지한다. 이외에도 면적은 3만 1500㎢, 남북 길이 636km, 최장 너비 79km, 최단 너비 27km이며, 둘레는 2200km에 이른다. 수심이 깊을 뿐 아니라 물도 맑아서 물밑 가시거리가 최고 40.5m나 된다. 약 330여 개의 강이 이곳으로 흘러 드는데, 밖으로 나가는 수로는 안가라(Angara) 강 하나뿐이다. 호수 안에는 총 22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 72km인 알혼(Olkhon) 섬이다. 알혼 섬은 호수 내에 위치한 섬으로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바이칼 호수는 오랜 역사와 고립된 위치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 이채로운 담수 동물상을 보여주고 있다. 식물이 1080여 종, 동물은 1550여 종에 이르며, 이중 80퍼센트 이상은 이곳에만 있는 고유종으로, 이곳의 유일한 포유류인 바이칼바다표범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담비, 수달, 시베리아 족제비, 고라니, 흰꼬리수리, 새매부엉이 등 다양한 희귀동식물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풍부한 동식물상과 독특한 위치로 인해 진화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 ‘러시아의 갈라파고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해발고도 1,500∼2,000m의 산들로 둘러싸인 바이칼 호수는 낮은 지대에는 숲이 울창하고, 멀리 봉우리에는 만년설이 눈부시다. 물은 40미터 깊이까지 들여다보여 수정처럼 맑다. 여름이면 갖가지 색상의 야생화들이 호숫가를 뒤덮는다.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릴 만하다.

 

- 바이칼호 샤머니즘의 성지 '알혼섬’

면적 730㎢이며, 동시베리아 남부의 바이칼호 안에 있는 호중도(湖中島)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주에 속한다. 바이칼호 안에 있는 18개의 호중도 가운데 가장 크며, 섬 안에 또 호수가 있다. 섬의 외관은 수백만 년에 걸쳐 구조이동이 이루어졌으며, 들판과 대지 사이에 해협의 공동(空洞)이 형성되었다. 산지의 가파른 경사면은 수직융기의 결과이다. 지형이 빼어나고 타이가와 스텝지대, 작은 사막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최대 고도는 지마(Zhima) 산의 1,276m이다. 인간이 거주한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최초의 토착민은 부랴트족과 야쿠트족의 조상인 쿠리칸족이다. 17세기에 러시아 탐험가들이 처음 방문하였고, 구 소련 시기에는 추방지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 안가라 강과 샤먼바위

안가라강은 바이칼호에서 유일하게 흘러나오는 강이다. 여름에도 수온이 8도 정도로 차갑다. 강의 입구에 이르면 "샤먼 바위"라고 불리우는 유명한 바위가 있다. 오래된 전설을 가진 이 바위는 안가라강이 예니세이강으로 흘러들어가기 전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2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이다. 예전에 샤먼바위에는 죄인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 하루 밤동안을 그대로 방치 시킨후 만약 그 다음날 살아남으면 무죄를 선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바이칼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바이칼 할아버지는 336명의 아들과 어여쁜 외동딸 안가라를 두었다. 바아칼은 안가라를 이르쿠트라는 청년에게 시집보내려 마음을 먹었는데 , 바이칼에 사는 갈매기들은 안가라에게 멀리 북쪽에 있는 예니세이라는 멋진 용사가 있다고 속삭여주었다. 그때부터 앙가라는 예니세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를 눈치 챈 바이칼은 딸을 감시하였고, 마침내 그녀는 아버지가 잠든 사이에 몰래 도망을 시도했다. 그러나 바이칼은 잠에서 깨어나 놀라서 큰 바위를 집어던져 안가라의 하얀 목에 맞혔고, 그녀는 그만 죽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도 안가라강은 늘 예니세이를 그리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이칼 호수는 336개의 하천(강)이 바이칼 호수로 유입되는 데 호수의 물이 흘러나가는 것은 오직 안가라강이라고 한다. 이 안가라강은 이르쿠츠크 시를 관통해 예니세이에 합류해 긴 여정을 북극해의 카라해에서 마친다고 한다.

 

- 바이칼 박물관

바이칼 호수에 살아있는 생물들의 표본과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며, 또한 동식물들의 보호와 수질 새로운 생물의 보존을 연구하는 유명한 바이칼 호수 늪 연구소가 바로 옆 있다. 이곳에서는 바이칼 호수에 살고있는 생물들의 자료가 담겨져있는 시디롬이나 책자 등을 구할 수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바이칼 호수에 살고 있는 생물로 특히 유명한 것은 바이칼 바다표범(네르파)이 있는데, 이는 바이칼 호수에 유일하게 생식하고 있는 포유류다. 바이칼 호수는 1년중 반 이상이 얼음에 둘러쌓여 있기에 좀처럼 볼 수가 없으며, 여름 한때에 잠깐 이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 리스트비앙카 마을

바이칼호수를 옆으로 두고 있는 마을로 호반에는 작은 촌락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가옥을 그대로 볼 수있으며, 러시아고유의 농촌의 모습을 맛볼 수있다. 반농반어의 생활을 하는 이곳 마을의 사람들은 마당에는 닭들이 씨끄럽게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옛 농촌의 모습을 연상케해준다.

리스트 비안카마을은 구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슬루잔카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약 80킬로 시간적으로는 5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차가 느리고 정착역이 많다. 이 마을에서는 전통통나무집과 또한 개조된 통나무 집들이 있어서 숙박객들을 위한 시설들이 갖춰져있으며, 마을 근처에 있는 바이칼 생태학 박물관을 가기위해 하루 숙박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자임카 근처의 부두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약 210명정도이다.

 

- 오물 잡이

 

바이칼호에서 많이 잡히는 고기가 오물이다.

직접 구워먹거나 근처 부둣가에서 즉석으로 요리를 해주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요근래에는 시베리아의 전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 댐을 세워서 호수의 수면이 40센티 높아져버린 후 크기가 많이 작아졌다고 한다. 자연환경의 변화로 호수의 대류가 변하고 먹이 확보의 문제가 생겨서 생존의 문제로 까지 발전되었다고 한다

바이칼호 부둣가에는 배를 대여해주는 곳이 있으며, 즉석해서 잡은 오물은 차거운 맥주와 더불어 시식도 가능하다.

 

- 호수 박물관

리스트비얀카 못 미처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는 이 박물관은 1928년 설립된 후 1961년에는 소련 과학 아카데미연구소 부속 호수학 연구소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이칼 호수에 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갖가지 기록을 도표나 모형과 함께 전시하고 있으며 호수나 주변의 산악지대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의 표본도 진열하고 있다. 6개의 대형 수족관에는 바이칼 호수에 서식하는 민물 바다표범 '네르파'를 비롯한 희귀한 동식물의 실물을 볼 수 있다.

 

◈ 이르쿠츠크-시베리아의 파리, 데카브리스트의 고향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주요 정착역이며, 도시를 관통하는 안가라 강이 예니세이강까지 연결되는 특성으로 일찍이 모피· 목재· 중국 차·중국 비단 등의 무역이 이뤄지는 동방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바이칼호(湖) 서쪽, 안가라강(江)과 이르쿠트강(江)의 합류점에 위치하며, 안가라강(江)이 시가를 종단하고 있다. 동(東)시베리아의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시는 카자크가 만든 동영지(冬營地:1652)로부터 발달하였으며, 1661년에는 목조 성채가 지어졌다. 그후 러시아와 몽골·중국과의 교역로의 중심지로서 모피와 금 거래가 활발하였다.

시가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르쿠트강의 합류점보다 상류에 있는 안가라강(江) 우안(右岸)은 이르쿠츠크 국립대학교(1918)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를 비롯하여 많은 교육·연구 기관들이 모여 있다.

안가라강 좌안은 공업지구이고, 안가라강의 우안 하류지역에 있는 구릉 위에 도심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은 행정·상업 등의 중심으로 극장·공원·키로프 중앙광장 등이 있으며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안가라강과 바이칼호를 잇는 정기선 및 시베리아 철도가 통해 있고, 레나강(江) 상류와 몽골에 이르는 자동차도로의 기점이며, 중앙아시아와 모스크바에 이르는 민간항공로가 개설되어 있다. 안가라강의 상류에는 이르쿠츠크 인공호가 있고, 1956년에 완공된 이르쿠츠크 수력발전소가 있다.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 라고 불릴 만큼 유럽 수준의 문화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데카브리스트의 영향 때문이었다. 젊은 귀족 장교들인 이들은 봉기가 실패한 뒤 불모의 땅 이르쿠츠크로 유배됐고 처음에는 강제노동을 하였지만, 몇 년이 지난 후부터는 유배지에 정착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르쿠츠크에는 러시아 귀족 문화와 유럽수준의 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1825년 개혁을 부르짖으며 혁명을 일으켰던 귀족 청년장교들을 총칭하는 말 '데카브리스트'는 러시아어로 12월을 뜻하는 '데카브리'에서 유래한 말로써 그들이 12월에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에 '12월 혁명당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훗날 볼셰비키 혁명에도 영향을 미친 데카브리스트들의 혁명은 러시아 근세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었을 뿐만아니라 이르쿠츠크와는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데카브리스트 못지않은 그의 부인들의 얘기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부인들은 당시 황실로부터 두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명령받았다. 반역한 남편을 버리고 귀족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재가하거나 귀족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라는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데카브리스트들의 부인들중 11명과 그후 일부 약혼자들이 사랑을 쫓아 시베리아까지 따라 나섰다. 영하 수십도의 혹한 속 눈보라 길을 40여일 동안 썰매로 달려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옥바리지 또한 참혹했다.

상트빼쩨르부르그의 귀족 가문 후손들은 손수 육아나 가사일을 돌보며 이틀에 한번씩 오는 면회를 기다렸다. 일부는 혹한과 고통을 못이겨 숨을 거두기도 하고 그 부인의 뒤를 따라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데카브리스트들과 그들의 부인에 관한 이야기는 시베리아 유배문학의 다양한 소재를 제공함으로써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거듭 태어난다.

 

◈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Krai)’

우랄산맥에서 동쪽으로 태평양까지 일컫는 광활한 대륙 시베리아에서 사하공화국은 308만4천km²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큰 지역이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Krai)’이다. 면적은 233만9,700 km²로 러시아 전체 면적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하카시아 공화국과 에벤키 자치구, 타이미르스키 자치구가 포함돼 있으며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 남부 하카사 및 그 남부 투바 공화국의 사얀산맥 일대는 시베리아에서도 오지다.

 

▶예니세이 강변의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의 주도인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노보시비르스크와 옴스크에 이어서 3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 100여만명.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홉이 시베리아 여행기에서 시베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은 곳. 1985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소련의 아태정책의 비전을 밝힌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을 한 곳. 1997년 11월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10루블 지폐

크라스노야르스크를 기념하는 그 어떤 엽서 보다도 크라스노야르스크를 잘 보여주는 것이 10루블 지폐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명소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10루블권 전면에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상징 파라스케바 피아트니차(Paraskeva Pyatnitsa) 정교회 성당, 전면에서 찾을 수 있는 두 번째 장소는 예니세이 강을 가로 지르는 철교(Communal Bridge)와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전망이다. 지폐의 뒷면에는 세계 5위의 댐인 크라스노야르스크 발전소(크라스노야르스크로부터 30km 북부)가 있다.

 

-크라울니(Karaulny)언덕과 예니세이강 철교

카차강 근처 크라울니언덕에 있는 파라스케바 피아트니차 성당은 1805년에서 상인 노비코프( Novikov)가 급류의 소용돌이에서 구출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나무 예배당을 건설,1852-1855 동안, 건축가 알페에프(Alfeev)와 나바로프(Nabalov)에 의해 석조건물로 재건되었다. 이곳 출신 러시아 화가 바실리(Vassily Surikov)에 의해 성당의 교단이 만들어졌으며 1887년에는 위대한 러시아 과학자이자 라디오 발명가 알렉산더 포포프가 일식을 보기위해 직접 찾아왔다고 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시의 남과 북을 잇는 철교(Communal Bridge)는 1961년 준공됐다. 20세기 중반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건축됐다. 예니세이강의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다. 자동차 및 오토바이만 통과. 총 길이는 2,100m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 박물관(Krasnoyarsk Regional Museum)

1889년에 문을 연 시베리아와 극동지방의 가장 오래되고 큰 박물관이며, 시베리아와 극동지방의 대한 연구와 정보를 공유하는 박물관이다. 2008년, 박물관이 변해야, 세계가 변한다 경쟁에서 우승했으며 2002년에는 러시아내 최고의 지역박물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세기 러시아 화가 바실리 수리코프의 자화상

▶화가 바실리 수리코프의 박물관 Surikov, Vasily Ivanovich, 1848.1.24.~1916.3.19.

19세기 러시아의 화가. 러시아 역사에 대한 심오한 지식과 사실적인 표현, 장대한 스케일, 역사의 풍물을 섬세하게 재현한 장식성을 특징으로 한다.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역사화가로 칭송받으며 많은 후배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848년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태어났다. 시베리아 카자크 가계 태생인 그는 186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1875년까지 그곳의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바실리 수리코프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예술이 나아갈 길을 찾았다. 그것은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주제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붉은 광장에서 일어난 역사의 한 장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표트르 대제의 군 개혁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폭동에 대해 황제의 단호한 대처를 다룬 《수비대 처형 날 아침》이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수리코프는 과거의 인물을 통해 당대의 민중이 느끼고 있는 문제의식을 간접적으로 표현했으며, 이 작품은 1881년 이동파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수리코프는 러시아 민중 예술을 부활시키려고 했던 아브람체보 그룹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1881년부터 1907년까지 이동파의 회원으로, 1908년부터는 러시아예술가연합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러시아의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한 그의 작품은 많은 후배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사후 모스크바는 가장 중요한 미술학교를 수리코프에게 헌사했다. 모스크바의 수리코프 미술대학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레핀 미술대학과 더불어 가장 유능한 미술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스톨비 국립자연보호 구역

크라스노야르스크 남쪽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Stolby 국립 자연 보호 구역은 동부 사얀 산맥의 북서부와 고원 서쪽 시베리아 평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약 200평방 마일의 규모를 자랑하며 약 5평방 마일이 방문 가능하다. 이곳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심장,폐,영혼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할 정도다. 다양한 방문객이 활동적인 여행을 위해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도 찾는 곳이기도 하다.

스톨비 공원은 2015년 모두 32만 8천명이 방문해서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국립공원이 됐다. (According to TurStat, Stolby was visited by 328,000 tourists in 2015.)

 

◈ 시베리아 최대의 도시 노보 시비리스크(뉴 시베리아)

-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의 첫 삽을 뜨던 1893년, 오비 강에 놓을 철교의 부지를 찾다가 마침 강폭이 좁고 바닥이 자갈인 이곳이 선택되었다. 철도 건설자들이 인가를 이루면서 형성된 이 도시는 러시아의 중앙부에 위치한다는 지정학적 특성과 유리한 자연환경에 힘입어 20세기 초부터 극동 지역과 우랄산맥 너머의 수도권을 연결하는 물류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 인구 150만명을 거느리는 러시아 제3의 도시로서 인근 위성도시들을 통합해 대도시군을 형성하고 있다. 급기야 러시아의 정중앙,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장 큰 도서관, 가장 큰 기차역, 가장 큰 비행장, 가장 큰 댐 등의 기록을 가진 도시가 됐다.

-노보시비르스크 지역에는 대학 17개와 기술전문학교 20개가 있다. 시베리아 지역 과학자의 반수 이상이 노보시비르스크 과학 센터와 아카뎀고로독에 몰려 있다. 아카데미 정회원과 준회원이 100여명, 이공학분야의 박사 600여명과 준박사 3500명이 연구소와 대학에서 일한다. 대학생 수는 7만여명. 이 도시는 대덕연구단지를 낀 대전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아카뎀고로독’ 첨단 실용과학의 메카

아카뎀’은 ‘아카데미’, 즉 ‘과학(기술)’이고, ‘고로도크’는 ‘작은 도시’란 뜻이니, 아카뎀고로독은 ‘작은 과학도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러시아어로 ‘동반자’란 뜻, 1957년 10월 발사)와 전투기 대표주자인 수호이 기종도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오페라-발레극장은 '시베리아의 볼쇼이'라고 불릴 만큼 이름난 곳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다 전통있는 극단과 발레단, 발레학교에서 배우와 무용수를 양성한다. 또 1957년 세워진 시비리 발레학교는 시베리아에서는 가장 오래된 발레학교.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는 물론 유럽 등지까지 이 학교 출신 유명 발레리나 500여명이 활약중이다.

- 2000년에 개관한 야외 철도박물관은 러시아의 3대 철도박물관 가운데 가장 큰 박물관이다. 나머지 두 개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 가장 클 수밖에 없는 것은 TSR(시베리아 횡단철도)·TMR(만주 횡단철도)·TMGR(몽골 횡단철도)·투르크-시베리아 철도(중앙아시아의 알마티와 비쉬켁, 타슈켄트 행) 등 주요한 철도가 다 이곳을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3000여 평의 공간에 67대의 열차가 진열되어 있다. 전시품의 위용도 위용이거니와 종류가 그렇게 다양할 수가 없다. 2002년에 전 구간의 전철화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달리던 각종 증기기관차며 디젤기관차 100여 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차종별과 시기별, 용도별로 잘 정리해 놓았다.

-이 도시의 시립역사박물관과 지하철. 역사박물관은 작지만 알찬 박물관이다. 15만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소비에트 해체ㅜ시기까지의 시베리아 역사발전 과정을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구분해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횡단철도 건설을 비롯해 시베리아 개척사에 눈길이 모아진다. 쟁기와 낫, 맷돌을 비롯한 여러 가지 농기구가 우리의 것과 흡사하다. 도시에는 3개 노선의 지하철이 있다. 러시아 지하철은 어디 가나 지하의 깊은 곳을 운행하므로 플랫폼까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상당히 길고 속도가 빠르다. 역 벽면 장식은 화랑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하다.

 

- 노보시비르스크 명소/노보시비르스크 맛집 - 레스토랑 '스꼬모로히'

첼류스킨체프(Chelyuskintsev)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레스토랑 스꼬모로히(Skomorohi)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 중 하나로 도시의 중심부인 나림스키(Narymsky) 광장에 근처에 있다. 시베리아 전통과 퓨전음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러시아 가정요리 뿐 아니라 유럽음식 또한 맛볼 수 있으며, 레스토랑의 우아한 인테리어는 멋진 분위기를 조성하며 15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 25페이지가 넘는 메뉴판에는 전채요리, 일품요리, 스프,디저트 등 단품요리 뿐 아니라 코스요리, 뷔페, 연회요리, 요리사 특별메뉴 등 다양한 식사가 가능하다.

 

 

글: 강태호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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