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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파탄’낼 수 있을까?
코로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파탄’낼 수 있을까?
  • 프레데리크 로르동 | 경제학자, 철학자
  • 승인 2020.03.3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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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주식시장에서의 황소와 곰> (황소는 주가 상승, 곰은 주가 하락을 의미), 1879 - 윌리엄 홀브루크 비어드

다시 시작된 것인가? 금융세계화와 함께 급격한 혼란과 시차를 둔 안정이 이어지는, 회전목마와 같은 순환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미 현재의 것이 돼버린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오래전부터 지켜봤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을 착각하면 위험하다. 대부분의 경우, 순전히 주식 폭락에 따른 파탄은 큰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크게 눈길을 끄는 성격이 강하다. 1987년에는 매우 쉽게 흡수돼 그 영향이 소멸된 데 반해, 2001년의 인터넷 버블은 한층 어렵게 지나갔다. 그러나 주식폭락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부채’ 위기의 파멸적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혼동의 여지가 있겠지만, 은행 가치, 즉 은행 주식 시세의 급락은 그 자체로는 어떤 위기도 초래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주식의 보유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은행 구제’ 필요성의 지표가 되지는 않는다. 일례로, 프랑스 최대 금융그룹 BNP 파리바의 주식 가치가 3주 동안 50% 하락한 것은, 해당 기업 경영진의 걱정거리에 불과하다.

 

핵분열처럼 일어나는 ‘채무 불이행’ 확산

금융위기는 ‘금리시장’ 혹은 부채시장(다소 오류가 있는 표현이지만, 여러 신용대출 시장(1)으로 지칭하기도 함)으로 확산됐을 때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된다. 금리시장 혹은 부채시장에서 위기는 필연적으로 (가장 주된 채권자인) 은행들로부터 유래되는 채무 불이행을 연쇄적으로 초래한다. 패닉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신용의 흐름이 동요하고, 은행들은 호황기에 보여줬던 과도한 관용과 대조적으로, 가혹하게 대응한다. 

은행들은 경기가 좋을 때는 대출을 권장하지만, 그들이 지닌 채권이 불안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 모든 자금조달의 통로를 막아버린다. 기업들로서는, 이 자금조달의 지속성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게다가, 은행들은 경제의 다른 부분들에 비해 비할 수 없이 긴밀하게 얽힌 채권-채무 관계에 의해 연결돼 있기에, 이 특수하게 분리된 집단 사이에서 채무 불이행의 확산이 핵분열처럼 일어난다.

시스템적 위험은 어떤 은행이 채무불이행 처지에 놓인 이후 현실화된다. 이 은행은 단독으로 은행 간 거래시장, 그리고 여러 신용대출 시장에서 핵분열을 일으키는 원자로 역할을 한다. 큰 은행이든 작은 은행이든, 파급력은 상당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초래했던 리먼 브라더스는(2) 소규모의 일개 법인이었지만, 이 작은 기업의 큰 영향력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영향력은, 규모보다는 기관들 간의 상호연관성에 의해 발휘된다. 물가상승이 통제를 벗어나 수백%씩 상승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 다음으로, 시스템적 위험은 경제적 재앙의 가장 극대화된 형태다. 신용 흐름에 의해 생산부문으로부터 경제에 미치는 모든 요소들 이전에, 은행은 민간화폐를 보유하고 지불수단을 관리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은행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부분적이 아닌 총체적인 문제들이 발생한다. 공급자에 대한 더 많은 유동성, 그들의 계좌에 대한 더 많은 접근, 더 많은 수표에 의한 지불. 이들 중 한 가지라도 보유한 이들에게는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밭이 주어질 것이나, 그렇지 못한 이들은 채소 한 쪽도 간신히 얻게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엘리트들은 경험에서 얻은, 명백하고 폭력적인 이치에 대해 눈을 감는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다. 그들은 되돌아온 금융시장의 재앙, 눈앞에 다가온 환경재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눈을 감는다. 이제, 12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때와 정확히 일치하는 요소들에 주목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위기상황에 직면하기 전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직면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나 될까? 바이러스 창궐 이전에도, 위기가 닥치리라는 예상이 만개했던 것은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단순하게 봐도, 현재 금융의 전반적인 상황은 2007년보다 ‘더 나빠지고’ 있다. 시장에서 순환하는 유동성 규모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고, 거품은 당연히 부풀어 올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이탈리아와 독일 등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이는 도이체방크를 비롯해 은행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취약한 지점으로 남았다. 2008년 이후 은행 부문에서 채무 안정화를 위한 움직임(회수 및 통합 등)이 일었다. 그러나 이는 사적 금융기관들에 의존하는 통제기구들의 규모를, 청산이 어려울 만큼 키워버렸다.

 

연금 기금이 있다. 이는 퇴직연금으로 쓰여야 한다. 그런데 수익성은 1%에 불과하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할까? 늘 하던 방식대로 할 가능성이 높다. 그 방식이란, 곡예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드물게도 제로(혹은 마이너스) 금리가 출현했다. 제로금리는 금융시장의 힘을 최후까지 끌어내어 지탱시키는 환경이다. 그러나, 제로금리는 수익성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의 성에 차지 않는 수익을 남긴다. 연금 기금이 있다. 이는 퇴직연금으로 쓰여야 한다. 그런데 수익성은 1%에 불과하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할까? 늘 하던 방식대로 할 가능성이 높다. 그 방식이란, 곡예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곡예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는 두 개의 코스가 있다. 하나는 최고수익을 제공하는 위험자산을 찾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금융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액의 일부를 부채로 조달하는 레버리지 투자에 집중하는 것이다(박스 기사 참조).

위험자산은 확실히 수익성은 높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그리고 레버리지 투자의 요체는, 투기적 거래의 자금조달을 위해 큰 규모의 부채를 지는 것이다. 그러나 부채를 감수하고 투자했음에도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채무불이행이 발생하고, 이는 레버리지 투자자들에게 매혹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자금을 빌려주던 은행들이, 도리어 빌려준 자금을 회수함에 따라 발생한다.

 

레버리지 투자가 유동성 위기로 번져

그 다음 문제는, 레버리지 투자자들이 그들의 지렛대(레버리지 투자를 위해 활용한 부채-역주)에 대해 상환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은행들이 빌려준 자금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는지다. 이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 다음 요소들에 의존할 것이다. 증권시장의 현재상황과 전망, 손실의 규모, 손실이 보전되는 시점에 대한 계획 기간(Time horizon), 투자자들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즉 상환을 위해) 새로 대출을 받는 리파이낸싱을 할 수 있는 역량 등이다. 실상 이는 은행들의 결정에 달린 문제다. 은행 측에서는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손실을 늘리지 않고 일정한 손해를 감수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이 손실을 멈추려는 시도가 도리어 완전한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금융 논리의 아이러니다.

유동성 압박은, 금융 부문 행위자들은 물론, 실물 부문의 행위자들에게도 나타날 것이다. 지역 경제활동에서는 물론, PME(500인 이하 중소사업장), 그리고 국제교역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세계화라는 것은, 40여 년 전부터 전문화, 다양한 경제활동 및 지역적 분극화(국제산업의 하청업자가 된 중국처럼), 국제 분업의 막대한 재구조화 과정으로 구성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하청업자가 파산한다면? 주문자들에게는 비용만 발생하고 판매할 상품이 없어지는 상황이 된다. 결과적으로, 세계적 규모의 경제활동이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그 다음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동자산들은 혹독한 어려움에 처하고, 새로운 차입을 통해 상환하려는 리파이낸싱 수요는 늘어난다. 그리고 무난하게 지속되던 주식시장, 원유 등 원자재 시장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유동자산까지도 위태로운 은행 시스템과 직면하게 된다. 비은행 부문 행위자의 유동성 압박은 은행의 유동성에 대한 압박으로 전환되며, 은행으로 전달된다. 은행들은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는 발권은행에서 해법을 찾게 된다. 즉, 초기에 사적 은행 시스템에 집중됐던 리파이낸싱 수요는 중앙은행에서 궁극적인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

 

전염병이 오래 지속되지 않고, 확산지역에서 무난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 큰 피해 없이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중앙은행이 은행들에 대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금리를 통한 조절의 여지가 다했을 경우, 리파이낸싱 규모의 증가와 만기의 연장, 적정담보 기준의 완화(3) 등과 같은 양적조치 수단들만 남게 된다. 우리는 서서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때 넘쳐난 ‘비관습적' 조치들의 등장을 보고 있다. 전염병이 오래 지속되지 않고, 확산지역에서 무난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 큰 피해 없이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충격 그 자체가 이론적으로는 흡수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매우 악화돼있고 이미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틀 속에서 충격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은행들이 어떤 계약들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없으며, 모든 행위자들(투기적 시장에서 레버리지 투자를 하는 이들을 비롯해 실물시장에서의 행위자에 이르기까지)에게 곧 유동성 부족 상황을 초래할, 채무 불이행의 누적을 가져오는 지점 어딘가에 와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매우 활발한 여러 신용대출 시장과, 은행들 간 거래시장이라 불리는 부문에서 우리는 신용위험, 그리고 상대방의 위험을 측정하기 시작할 것이다. 즉, 상대방이 거래할 만한 상대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서로에게 의심의 시선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심은 잠에서 깨어난 대상을 발견하면서 사라진다.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하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속에 헐값으로 넘어간 베어스턴스와 파산한 리먼 사태에서 그랬듯이, 의심이 한 지점으로 모이면 곤경에 처한 행위자에게는 더 비싼 이자와 더 많은 담보가 요구된다. 한 마디로, 이미 어려운 삶이 점점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의심의 십자포화를 맞기 시작한 자는 치명상을 입는다.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의견은, 근거를 점점 강화시키기에 이에 대해 반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에 대한 집단적인 반응이 더욱 상황을 악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두 번 다시 없을 것을 바라며 모든 재앙으로부터 끌어냈을 규제에 의존해, 보호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이제 2007년과 같은 대규모 재앙이 시작된다. 두 번 다시 없을 것을 바라며 모든 재앙으로부터 끌어냈을 규제에 의존해, 보호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상징적인 규제들을 일부 재도입했으나, 이는 쓰나미가 발생할 경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올랑드 전 대통령이 투자은행과 일반 상업은행을 나누고자 했던 ‘은행분리법’이 실제로는 그 무엇도 분리하지 않고서, 다만 대중의 현금 보유를 금융거래에 새롭게 노출만 시킨 것을 기억한다. ‘유럽은행연합’이라는 환상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유로화에 대한 믿음을 윤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연합에 의해 설립된 예금보증기금은 약 1조 유로 규모의 금액이 보증돼야 할 시기에, 고작 수백억 유로를 보증하는데 그쳤다. 어이없는 솔루션이라고 할까? 

 

파탄의 일반화?

그럼에도 지금까지 금융 위기는 그들의 영역, 즉 시장이나 은행 등에서 고유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또 다르다. 금융위기가 고유영역에 머물지 않고, 모든 부문의 위기들이 되는 이례적인 특징을 보인다. 이는 중국 신드롬이 도래하며 병원, 학교, 연구부문 전체에서 ‘총체적 융합’이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다. 

금융과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추가적인 압력이 무너뜨릴 위협이 있을 만큼 이미 손상된 체제에, 매우 돌발적으로 발생한 충격이다. ‘코로나 파탄’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금융적 파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화된’ 파탄일 것이다. 모든 것은 이미 파열음을 내왔다. 그리고 이제 정말 붕괴 직전에 와있다.

금융에 앞서, 일반화된 파탄의 가장 충격적인 광경을 보여주는 곳은 다름아닌 병원이다. 신자유주의는 병원 부문에 집중했다. 조직의 해체는 전면적이었고 비합리성의 극치 속에서 신경영의 합리성은 완전히 ‘체계적으로’ 파괴됐다. 최근 한 신문의 논단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전 보건부 장관 아녜스 뷔장이 자랑스러워했던 ‘병상 관리’에는, 수요와 공급의 완전 일치, ‘유휴 병상 제로’라는 유일한 기준에 매몰됐다. ‘유휴 병상 제로’는 사기업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추구하는, 재고를 남기지 않는 제로-스톡과 유사하다. 

이런 병상 관리는 효율성은 높을지 모르나, 환자를 수용함에 있어서 크고 작게 발생하는 상황들에 대처할 수 없다.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한참 전부터, 의료계는 붕괴 직전에 처해있음을 외쳐왔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그 어떤 환상도 품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300억 유로 규모의 자산에 관한 연대세(ISF), 1,000억 규모의 경쟁력과 고용을 위한 세액 공제(CICE) 중 어떤 것도, 일부도 병원에 내주지 않을 것이다. 

연구부문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코로나바이러스 전문가 브뤼노 카나르가 ‘프로젝트에 의한’ 연구 관리의 경이로움에 대해 말한 것을 들어보자.(4)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 연구의 불가능성, 이른바 ‘인기 지상주의’에 홀린 주제 선정, 유행에 대한 종속, 연구제안서의 관료주의에 대한 연구원들의 맹종 등이 그 내용이다. 한 마디로 2000년대 초반 착수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그의 연구는, 학술연구기관이 다른 부문에 ‘꽃히면서’, 기금지원을 잃고 방치되었다. 

연구와 관련해서는, 그 성과가 언제 날 것인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려면, 최소 15년의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병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결국 연구 분야에도 관리의 파괴가 뒤따를 것이다. 즉 우리는 10년 후에야 표출될 다른 연구들을 고사시키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만 전력을 다해 반응하고 있다.

학교는 어떤 상황일까? 전염병 확산의 시기에, 학교는 예방교육을 위한 장소가 되는 일반적이다. 그런데, 교사들은 비누와 수건을 두는 게 무리한 주문인지 묻고, 학교 어디에도 단 한 병의 손소독제도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미디어의 위생지침을 떠올려본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아마 관절염에 걸렸거나, 다른 곳에 동원됐음이 분명하다.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며 휴교령이나 휴업령을 내리지 않는 것은, 학생들의 학업성과를 고려하기 때문이 아니다. 임금노동자들을 일터에 묶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병에 걸렸는지는 정부에게 중요하지 않다. 

교육부 장관 장-미셸 블랑케는 기자들에게 “휴업령을 내리지 않는 것은, 간호사들이 사람들을 돌보러 갈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간호사는 경제활동인구의 2%에 불과하다. 브라보, 장-미셸!  

 

코로나 파탄, 모든 파탄의 제왕

일반적 파괴의 국면은, 긴 시간 일반화된 파탄의 요건을 충족시켜왔다. 예상했던 대로, 결국 혼란과 동요가 닥쳤다. 늘 그렇듯, 금융은 광범위한 파괴 속에서 두각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금융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 다르다. 전체가 함께 장관을 이루며 쓰러질 것이다. 12년 만에 찾아오는 파탄 속에서, 대중은 40년 넘게 이어진 신자유주의의 수혜 및 그 후원자에 대해 숙고하게 될 것이다.

   

단어의 모든 의미로 봤을 때, 코로나 바이러스는 고발자다

 

단어의 모든 의미로 봤을 때, 코로나 바이러스는 고발자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정치의 영향, 그것이 조직을 파괴하는 과정과 독성을 고발한다. 그와 동시에 일상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이끌었고 오늘날 이끌어가는 모든 것들을 고발한다. 과장 없이, 이것은 ‘열린 무덤으로 가는 길’이다. 신자유주의 정치는 전염병 관리체제를 해체하는 것은 물론, 여러 집단들이 공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정치의 기본적 조건들을 해체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무시무시한 외계의 힘이 인류와 지구를 약탈하고 가장 고도의 무기에 맞서게 된다. 그리고 예고 없이 아주 작은 생명체들(병원균과 바이러스)에 의해 격퇴되는 ‘우주전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 ‘고발자’로서의 역량 및 소동의 가능성으로 괴물을 쓰러뜨리는 예기치 못한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코로나 파탄’, 명실상부하게 왕관(일식 때 태양을 둘러싸는 왕관 모양 바깥층을 ‘코로나(Corona)’라고 한다-역주)을 쓴 이 파탄의 제왕은, 파괴자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파괴력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  

 

 

글·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c Lordon
경제학자, 철학자. 주요 저서로 『언제까지? 금융 위기를 끝내기 위하여 Jusqu’à quand ? Pour en finir avec les crises financières』, (Raisons d’agir, 2008), 『자본주의, 욕망, 예속, 마르크스와 스피노자 Capitalisme, désir et servitude. Marx et Spinoza, (La Fabrique, 2010), 『또 다른 전환을 향하여 D’un retournement l’autre』, (Seuil, 2011), 『정서의 사회 La société des affects』 (Seuil, 2013), 『임페리움, 정치적 육체의 구조와 정서Imperium. Structures et affects des corps politiques』 (La Fabrique, 2015) 등이 있다. 

번역·온명근
번역위원


(1) 오류가 있는 표현이라 한 이유: 신용거래란 순전히 장부상의 것으로,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은행에 의해 실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채권) 시장에서는 유가증권만이 거래되고, 이것의 취득이란 사전적인 저축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 리먼의 파산은 2008년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Frédéric Lordon; ‘Le jour ou Wall Street est devenu socialiste 월스트리트가 사회주의자가 되던 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10월호.
(3) 민간 은행들이 재대출(리파이낸싱)의 대가로 중앙은행에 저당 잡힌 유가증권을 ‘담보’라 한다. 통상적으로 최상급의 우량채권(AAA 등급 국채)이 중앙은행에 적정한 담보가 되지만, 위기 국면에서 중앙은행은 중간 등급의 채권으로까지 범위를 넓혀야 하는 처지가 된다.  
(4) 에볼라 바이러스에 관해: Bruno Canard; ‘Des treillis sous les blouses blanches 흰  블라우스 아래의 격자’,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12월호 참조.

 

레버리지 효과란?

금융적 수익(rf)을 확대할 목적으로 투기적 거래에 필요한 자금을 차입하는 전략을 '레버리지(Leverage) 투자'라고 하며, 이 때 유도하는 효과를 ‘레버리지 효과’라고 부른다. ‘레버리지(Leverage)'는 영향력, 지렛대 사용이라는 뜻으로, 부채를 지렛대처럼 활용함으로써 활용하지 않을 때보다 높은 수익성을 끌어낸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자산(A)이 100, 내부수익률(ri)이 10%라 할 때, 이 자산은 10의 내부수익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자산(A)를 매수하는 과정에서 부채(D)를 활용해 자금조달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때 활용한 부채(D)가 80, 차입 시 이자율(t)이 5%라고 가정하자. 이처럼 부채를 활용했을 때의 금융수익성(rf)은 순자산만 활용했을 때의 내부수익률(ri)과 구분된다. 이 때의 고유자본은 총자산(100)에서 부채(80)를 뺀 20이다. 그리고 부채에 대한 이자부담은 80 x 5% = 4 이며, 순수익은 총수익(10)에서 이자부담(4)을 뺀 6이다. 이 수익(6)을 고유자본(20)으로 나눈 결과(30%)가 금융 수익성(rf)으로, 부채를 활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높다(3배).
이처럼 레버리지 투자는 내부 수익률이 10%인 자산으로부터, 30%의 금융 수익성(고유자본 기준)을 이끌어내는 마법과도 같은 투자다.  

“다들 감염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런던은 16세기와 17세기에 페스트와 같은 많은 전염병을 겪었다. 1597년에 썼다고 추정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전염병이 비극을 이끄는 주범이다. 원수 사이인 캐풀렛과 몬터규 가문의 자녀들이 결혼할 수 있도록 로런스 신부는 계획을 세운다. 줄리엣에게 죽음을 가장할 수 있는 묘약을 주고 이후 로미오와 다시 만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로런스 신부는 줄리엣의 죽음이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을 편지에 써서 다른 신부를 통해 로미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로미오가 편지를 받았다면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편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제5막 제2장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로런스 신부
장 신부의 목소리 같군. 만토바에서 잘 오셨습니다. 로미오는 뭐라고 합니까? 혹시 답신이 있으면 저에게 주세요.
 
장 신부
맨발로 다니는 우리 수도회 신부님 중 한 분과 동행하려고 찾아다녔는데, 시내에서 환자들을 문병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도시 검역관들이 우리가 전염병에 걸린 집에서 왔다는 혐의로 대문을 봉쇄하고 나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만토바로 서둘러 가고자 했으나 갈 수 없었습니다.
 
로런스 신부
그러면 누가 내 편지를 로미오에게 전해주었습니까?
 
장 신부
전하지 못하고 아직 갖고 있습니다. 신부님께 편지를 되돌려드릴 수 있는 심부름꾼도 찾지 못했습니다. 다들 감염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로런스 신부
이 무슨 불행이란 말인가! 이 편지는 사소한 것이 아니라, 정말 심각하고 중대한 용건이 들어있었습니다. 편지가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말미암아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제5막 제2장
 
번역·이정민 minuit15@naver.com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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