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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의 세계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 리뷰
포스트 코로나의 세계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 리뷰
  • 이종훈 l 북에디터
  • 승인 2020.04.29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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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경제 위기, 누가 비용을 치르나

-코로나19, 솔루셔니즘은 해결책이 아니다

-판결 없이 국민을 감옥에

-기술만능주의는 만병통치약인가

-정신의학, 돌아온 독방의 시대

 

<캐스트 오프>, 2017 - 존 크로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월호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역점을 두어 구성되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필진은 코로나의 전대미문 충격에 휩싸인 서유럽과 아시아, 한국 정부가 앞으로 풀어야 할 경제적·사회적 문제의 핵심을 분석하고 해결 방향을 모색했다.

프랑스어판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는 ‘저항의 사춘기는 곧 도래하리라’(2면)란 제목의 컬럼을 통해, 코로나19 충격 속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와 무기력해진 시민들의 프랑스를 비교하면서 저항의 시간이 도래할 것을 예고했다.

한국어판 성일권 발행인은 ‘바이러스, 주술사, 또는 저널리즘?’(2면)이란 제목의 컬럼에서 머지않아 진정될 코로나 사태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에 대전환을 가져오고, 과거의 양적 맥시멀리즘에서 벗어나 질적 미니멀리즘의 가치가 점차 자리를 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성일권 발행인은 또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고 난 이후 미디어의 미래를 우려하면서, 저널리즘의 본질을 망각한 일부 미디어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진 그 자리에 더 견고한 ‘바이러스 덩어리’로 자리잡게 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로랑 코르도니에는 ‘코로나 경제 위기, 누가 비용을 치르나’(1면)는 제목의 머릿기사에서 생산 중단에 따른 노동자의 손실을 우려하면서, 남유럽에서 발생할 연쇄적인 국채 연장 위기의 징후를 경고했다. 필자는 현재 상황에서 주류 경제학의 해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정부와 중앙은행의 협의로 국채 일부를 화폐화하여 상각 처리하는 파격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디지털 세계에 대한 비판적 평론으로 유명한 예브게니 모조로프는 ‘코로나19, 솔루셔니즘은 해결책이 아니다’(12면)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술이 모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솔루셔니즘이 만연한 세태를 꼬집으면서, 코로나19 이후에도 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면, 사기업 권력에서 완전히 해방되기 위해 포스트 솔루셔니즘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 무기력해진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의 길을 답습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인권 변론에 종사해온 라파엘 켐프 변호사는 ‘판결없이 국민을 감옥에?’(8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코로나19 이후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시한 채 구금 연장을 명령한 프랑스 정부의 행정명령을 프랑스 법원의 판사 다수가 그대로 따른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필자는 프랑스 사법부 판사들의 이같은 처신으로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방어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채 구금상태에 처해 졌으며, 이같은 사태는 대혁명기간이던 1793년 이후 처음있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 사태이후 정부의 감시와 통제는 강화되지만 개인의 인권은 위축되는 상황에서, 라파엘 켐프 변호사의 지적에 우리 독자들도 많이 공감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산하 인터넷 사회 연구소의 펠릭스 트레게 연구원은 ‘기술만능주의는 만병통치약인가?’(9면)란 제목의 기사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례없이 강화된 감시의 시대에 대목을 맞은 영상 보안업체들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필자는 첨단 IT기술을 활용한 영상 보안업체들이 코로나 사태 이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새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정신의학 전문기자 파트릭 쿠프슈는 ‘정신의학, 돌아온 독방의 시대’(10면)란 제목의 기사에서 코로나와 관련된 정신질환자를 감금하고 격리하는 방식이 확대되면서 인권침해 문제가 이전보다 더 심각해진 점을 주시했다. 특히 기사 후반부에 “정신의학에서 인간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알아차리는 인간이 드물다. 인간이 점차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 철학자가 탄식한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커스]

-코로나 사태에 흔들리는 일본식 ‘자기책임론’

-휴머니티를 재창조하라

-순응주의적 지식인들의 ‘사르트르 거부’

-들러리로 전락한 부헨발트의 반파시스트들

 

프랑스 릴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연구한 야기시타 유타(독립 저널리스트)는 ‘개인 탓하기로는 최고인 일본’(3면)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일본 국민들에게 교묘하게 악용된 ‘자기책임론’이 인구고령화의 사회변화 속에 동요되는 상황을 진단했다. 필자는 “남탓하지 말고, 전부 네탓이야”는 식의 ‘자기책임론’이 언론 등의 주도로 일본 사회에 자리잡은 상황을 주목했다. 필자는 특히 일본 사회에서 성공한 엘리트층은 ‘자기책임론’을 환영했으나, 사회적 약자 계층은 이에 공감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명암이 엇갈린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문화비평가로 명성이 높은 에블린 피에예는 ‘휴머니티를 재창조하라’(4면)는 제목의 기사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넘어 생명간 상호의존성과 상호연결성에 바탕을 둔 휴머니티의 창조를 역설했다. 필자는 “생명은 하나의 협력체이며 연대주의 사상은 인간의 의무”라고 강조하면서, ‘세계화’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거부하는 소규모 공동체의 존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프랑스 로렌대학교 문학·저널리즘학과 조교수인 안 마티외는 ‘순응주의적 지식인들의 사르트르 거부’(14면)란 제목의 기사에서 사후 40주년을 맞은 사르트르에 대한 비판과 재평가를 조명했다. 필자는 특히 프랑스 공산당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사르트르가 1956년 소련의 헝가리 혁명 무력 진압 이후 지지를 철회하고,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지지하면서 펼친 반전운동 과정을 주목했다. 필자는 “사르트르가 오로지 자신의 사상과 연구, 저술, 결단에 의해서만 지식인이 될 수 있을 뿐, 결코 잦은 방송 출연과 넓은 인맥으로 지식인이라는 지위를 얻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고 평가했다. 사르트르의 메시지는 오늘날 위선적인 지식인들을 향한 날카로운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역사학자 소니아 콩브는 ‘들러리로 전락한 부헨발트의 반파시스트들’(26~27면)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2차 세계대전 종전후 냉전시대 동안 동독에서 승자의 지위를 누렸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들러리로 전락한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출신 공산주의자들의 명암을 파헤쳤다. 필자는 악명높았던 나치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지옥의 시절을 견디어낸 공산주의자들이 전후 동독 건설의 선전도구로 전락했으며, 통독 이후에는 이들의 공적이 서독 역사학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격하된 현실을 조명했다.

 

[환경]

-생태계를 위협하는 북극, ‘콜드 러쉬 Cold Rush’

-석유와 디지털의 결합, 환경파괴 부른다

포토 저널리스트 상드린 바카로와 기자 필립 데스캉은 북극해 항로를 둘러싼 주요 국가의 쇄빙선들이 지정학적으로 배치된 상황을 분석하면서 생태계를 위협하는 실태를 진단했다. 필자는 미국, 캐나다, 러시아,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의 북극권 항로 전략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면서, 각국별 쇄빙선들의 증가 현황과 북극권의 주요 항로를 인포그래픽을 곁들여 설명해 독자들의 이해를 한결 도왔다.

파리8대학 정보통신학과 교수인 세바스티앙 브로카는 ‘석유와 디지털의 결합, 환경파괴 부른다’(24면)는 제목의 기사에서, 석유산업과 결합한 디지털경제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천문학적인 환경파괴를 초래하는 실태를 고발했다. 필자는 이같은 피해를 세계 여러 나라가 불공평하게 분담하는 현실을 주목하면서, 세계화 흐름 속에 중심부와 주변부 국가들간에 천연자원이 비대칭적으로 교환되는 현실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한국]

-정의당은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재난지원금, 사회주의자들만의 정책인가?

 

<매번 그때마다>, 2016 - 존 크로슬리

핵심을 파고드는 직선적인 필력의 작가 목수정은 ‘정의당은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32면)란 제목의 기사에서, “노동자들의 도시 울산에서의 패배는, ‘노동자’라는 정의당의 본류가 얼마나 허술한 현실기망이었는지를 명확히 드러내 주는 성적표였다”고 규정했다. 필자는 “심상정을 정조준하는 목소리가 이제 당내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와야 할 것이다”고 주장하면서, “정의당의 결정적 실수는 숱한 위조로 자녀들의 불법적인 대학진학을 지휘한 조국 부부를 감쌌다는 사실이다. 집권 정당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그들의 거수기 노릇을 해주기 위해 <정의>를 부러뜨리는 모습을 사람들은 목격했다”고 매섭게 지적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유승경 부소장은 ‘재난지원금, 사회주의자들만의 정책인가?

’(33면)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정부의 재난지원금은 본래적 의미의 ‘헬리콥터 머니’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유 부소장은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에 미국, 영국, 유럽은 양적 완화와 병행하며 재난지원금 지급 등의 과감한 재정 지출을 단행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 정부는 재정 건전성이라는 미명 아래 낡은 정책을 고집하며 세계적인 추세를 따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화]

-취향의 시대, 관계를 다시 묻다

-“선한 사람이 승리하는” 판타지의 현실성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

예술 에세이스트 김지연은 ‘취향의 시대, 관계를 다시 묻다’(35면)란 제목의 기사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달라진 문화적 모임의 형태를 진단했다. 필자는 독립적인 개인의 관계에 역점을 둔 문화적 모임이 서울의 살롱 문화 등을 비롯해 다양하게 확산되는 추세를 예의주시했다. 나를 잃지 않고 간섭을 피하며 각자의 영역에 서서 원하는 속도와 강도로 느슨하게 유대의 끈을 당기는 문화적 모임의 새로운 방식을 필자는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문화비평가 이서라는 ‘선한 사람이 승리하는 판타지의 현실성’(38면)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의 한국사회의 문법을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모색했다. 필자는 이 드라마를 통해 선한 대통령의 선한 방법은 이 나라 국민에게 어울리지 않는 통치방식이며, 이들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임을 알리고, 이런 속성을 암암리에 이용하는 현재 정치계의 민낯을 주목했다.

영화평론가 김경욱은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39면)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칠드런 오브 맨>, <설국열차>, <노스텔지아> 등 3편의 영화를 통해 종말의 과정에 직면한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이 열 새로운 가능성을 조명했다. 필자는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이 2008년 세계적인 독감으로 인류가 희생되는 재앙 속에 한 소녀가 여인으로 성장하면서 새롭게 도래할 미래의 가능성을 주목했다. 필자는 또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 빙하기에 계급투쟁 속에 파국을 향해 질주하는 열차에서 탈출한 소녀와 소년이 새로운 아담과 이브가 될 개연성에 의미를 부여했다.

 

 

글·이종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북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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