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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두 여성의 기억과 공간 <유키코>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두 여성의 기억과 공간 <유키코>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0.05.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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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달이다.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달이기도 하다. 가족기념일과 처참한 한국 현대사가 나란히 배치된 달이다. 지난 해 영화제에서 발견한, 그러나 영화제 밖으로는 미처 나오지 못한 <유키코>(노영선, 2018)는 가족사와 시대사를 독특한 시선으로 엮어낸 에세이 형식의 다큐멘터리이다. 강화도에 거주하는 ‘여자’와 오키나와에 살았던 ‘유키코’를 다룬 영화는 가족사 속에 내재된 한국사를  “기억”을 키워드로 풀어낸 수작이다.  

 

두 여자의 두 공간 

<유키코>는 두 여자의 두 공간을 다룬다. 현재 강화도에 살고 있는 여자는 평양에서 태어나 5살에 월남하여 군인아버지와 학교에서 반공과 반일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여자는 어머니가 일본인이며 한국전쟁을 피해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이어, 영화는 오키나와의 여자로 향한다. 여자는 도쿄에서 태어나 오키나와 요양소에서 삶을 마감한다. 일제강점기에 한국 남자를 사랑했고 한국에서 아이를 낳았으나 광복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영화는 시작하고 한참 후에야 두 여자가 모녀 관계이고, 두 여자가 감독의 어머니와 외할머니임을 알린다.

영화는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인물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인물을 재현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영화는 다만 그녀들이 현재 혹은 마지막으로 거주한 공간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영화는 강화도의 역사나 오키나와의 역사로 향하지도 않는다. 두 공간은 두 여자의 현재 일상과 흔적과 기억을 품고 있는 곳이다. 영화는 두 여자의 얼굴과 목소리 대신 두 여자의 공간 위에 딸이자 손녀인 감독 자신의 목소리로 둘을 이어낸다. 그러나 역시 영화는 두 여자의 삶을 애써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3인칭 ‘그 여자’나 ‘유키코’로 호명하면서 간접화법으로 그들의 삶과 말을 ‘전달’한다. 전달자, 영화 <유키코>는 과거사를 후세가 기억하는 방법으로 '전달'을 제시한다. 

 

괄호 안에 묶인 기억

전달하는 자의 화법과 위치, 영화는 시종일관 그 거리와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감독은 차분한 목소리로 두 여자의 삶을 전달한다. 그러다 딱 한순간 한 여인의 얼굴과 목소리에 멈춘다. 그녀는 오키나와 나고에서 태어나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전쟁의 경험을 말한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마치 자신의 경험인양 생생한 기억을 풀어낸다. 할머니의 기억을 전달받은 이 여자는 감독과 닮은 듯 다르다. 이전 세대의 기억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지만, 감독은 이전 세대 두 여자에게서 기억을 전달받지 못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딸에게 외할머니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외할머니 유키코도 한국 딸과 한국인 남편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기록도 부재하고, 전달되기는커녕 말조차 되어지지 않은 (개인의) 역사는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될 수 있을까? 혹은 기록 되어야 할까? 영화는 개인사에 내재된 역사의 기억을 풀어내면서, 기억의 전달을 제안하는 동시에 기억 전달의 한계에 봉착한다. 아니 질문한다. 그렇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두 손녀의 목소리는 같지만 다른 목소리이고, 두 사람이 말하는 오키나와의 그녀는 유키코이기도 하고 유키코가 아니기도 하다. 유키코는 겹쳐졌다가 분산되고 실종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가만히 묻는다. “추억할 수 없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을까?” 

 

기억일까? 역사일까? 영화일까?

이즈음 되면 영화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유키코>는 엄마의 엄마일까? 엄마가 제안한 영화 속 인물일까? 아니면 감독의 외할머니일까? 감독의 영화 속 인물일까? 영화는 강화도의 여자 (엄마)에게서 오키나와의 여자 (외할머니) 에게로 넘어가기 직전 마치 유성영화의 자막처럼 유키코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풀어낸다. 그리고 오키나와 방문을 마칠 즈음 영화는 말한다. “찾지 못했다”고. 찾지 못한 사람의 기억과 흔적은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기억의 터

영화는 검은 화면 위에 작게 움직이는 불빛으로 시작한다. 어둠 속에 묻혀진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인 셈이다. 영화는 반공과 반일 교육을 받아온 여자가 사실은 북한 출생에 일본인 어머니를 가진 경계인의 삶을 담는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남자의 아이를 낳은 일본인 여성으로 해방정국에 아이를 두고 일본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분법적 세계에서 어머니는 “시작을 찾을 수 없는” 혹은 “시작부터 안개 속을 걸어온” 인생을 살고, 그녀의 어머니 유키코는 “딸을 두고 온 곳에서 길이 멈춰”진 채 살아간다.

영화는 역사의 산물이자 역사의 잔여물로 인생을 구비구비 살아내야 했던 두 여성의 삶을 담는다. 두 여자의 공간이 강화와 오키나와라는 구체적인 지명과 달리, 길, 바다, 임시거주지와 같은 정주하지 못하는 공간의 이미지로 기입되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역사와 개인사가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기억의 터로서, 영화는 이동하는 공간 이미지를 통해 공간의 표면과 개인의 기억을 접속하여 역사적 상상력을 구현한다.

 

응답할 수 있는 능력 

감독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공간이지만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삶을 묘하게 닮도록 배치한다. 두 여자는 오랫동안 살던 곳을 갑작스럽게 이사하고, 새소리를 좋아하고, 요양소 혹은 유사 요양소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며, 궁극적으로는 딸과 이별해 살아가야 하는 삶조차 닮은 꼴로 이어낸다. 공간화된 여성은 멈추어진 채 닮거나 반복하고 있다는 말일까? 그보다 부름에 응답하는 “책임”을 말하고 있다. 책임은 한자로는 잘못을 떠맡는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영어로는 response와 ability가 합쳐진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영화는 두 여자를 애써 이해하거나 이해시키기 위해 설명하지 않는 대신, 서로의 상황과 감정에 응답하는 방식을 취한다. 두 공간을 오가며, 두 여인을 이어내며, 서로가 “상상”가능하며 “이해”가능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여성 삼대의 가족사를 다루고 있는 <유키코>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내밀한 경험 속에 내재하고 있는 역사적 기억을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식 역사의 이분법적 대립에 대항하는 풀뿌리 기억의 새로운 방법과 한계를 드러내고 실험한다. 영화는 관습적인 방식으로 인물과 역사를 엮어내는 영웅담과 무관하게, 현재 공간에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를 기입하여 과거를 '전달'하고 '책임'지는 방식을 선택한다. 괄호 안에 묶인 그래서 “찾지 못한” 기억을 말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유키코>는 지난해 디아스포라 영화제와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등에서 상영되었고, 그 해 야마가타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경쟁작으로 상영된 작품이다.

 

 

글: 이승민

현장 비평가이자 기획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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