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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 타인과의 거리, 그 낙차가 남긴 생채기 - <썸원 썸웨어>
[김희경의 문화톡톡] 타인과의 거리, 그 낙차가 남긴 생채기 - <썸원 썸웨어>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0.05.25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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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의 거리는 종종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다. 나와 타인 사이의 간격을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알면서도, 기대했던 것보다 더 먼 거리를 인지하는 순간 그 낙차에 휘청이게 된다.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의 영화 <썸원 썸웨어>(2019)는 이 흔하디 흔한, 그러나 결코 작지 않은 생채기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좁은 간격, 어긋난 시선

카메라는 오프닝에서부터 반복적으로 지하철 안 수많은 사람들을 비춘다. 지하철을 타러 이동하는 과정, 또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기까지의 움직임이 자주 담긴다.

이같은 평범한 일상의 움직임은 나로부터 시작해 타인들을 향하는 일련의 과정과 같다. 그리고 다시 오롯이 나로 돌아오며 하루를 마무리 하게 된다. 지하철을 타고 누군가를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듯 말이다.

그러나 지하철 안 사람들은 좁은 간격으로 붙어 있지만, 서로를 응시하지 않으며 외면한 채 서 있다. 영화는 이를 통해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타인과의 신체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를 함축해 보여준다.

불과 5m거리의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는 레미(프랑수아 시빌)과 멜라니(아나 지라르도)도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지하철 옆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다. 레미와 멜라니는 지하철, 상점 등에서 동선이 겹치곤 하는데, 줄곧 공회전 하듯 상대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다다르는 과정은 꽤 지난하게 전개되는데, 두 사람 모두 거리의 낙차가 준 충격을 오랜 시간 털어내지 못한 채 켜켜이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처에 갇힌 두 인물을 통해 타인과의 거리에 대한 깊은 고민을 파고들고, 이 틀을 벗어나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법을 제시한다.

 

켜켜이 쌓여온 낙차의 충격

레미와 멜라니의 방황은 표면적으로는 현재의 낙차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각자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과거의 트라우마와도 깊숙이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레미는 자신들과 일하던 동료들이 정리해고 되고, 자신은 남아 다른 일을 하게 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감정은 오랜 시절 세상을 떠난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과도 이어진다. 매일 함께 하던 사람들은 불행과 마주하며 사라졌는데, 자신은 혼자 살아남아 덩그러니 남을 것에 대한 죄의식이다.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주변 환경에 의해 벌어진 타인과의 거리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멜라니는 자신을 떠난 연인에 대한 상처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실패를 곱씹으며 고통 안으로 파고든다. 이는 자신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존재에 대한 상처다. 그 간격이 상대에 의해 갑작스레 벌어진 순간의 충격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다. 이 충격은 과거 어머니에 대한 상처와도 연결된다. 멜라니는 일찌감치 가족을 떠난 아버지보다 자신의 곁에 충분히 있다가 훗날 다른 남성을 만난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렇듯 멜라니는 거리에 대한 기대와 현실의 괴리에 큰 혼란을 느낀다.

생채기를 끌어안은 두 인물의 움직임은 무겁고 더디다. 둘다 이동을 할 때면 대부분 바닥이나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회피하거나, 극단적으로 좁히거나

타인과의 거리로 인한 상처에 레미와 멜라니의 대응 방식은 약간 다르다. 영화는 두 인물의 행동을 교차 편집해 보여주며 비슷한 듯 대조적인 모습을 부각시킨다.

레미는 거리를 더욱 멀리 두며 관계를 회피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여성에 대해 서투르게 반응하고, 또 서로 마주하며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돌아선다. 그리고 줄곧 부모와의 접촉도 피해 왔다. 여동생의 죽음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홀로 지내고 있다.

반면 멜라니는 극단적으로 거리를 좁히는 방식을 취한다. 아무런 신뢰도 심리적 교류도 없는 남성들을 만나 순차적으로 만남을 갖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즉흥적이고 산발적인 만남이다. 거리를 급작스럽게 좁힌 상태의 일회성 만남은 오히려 중요한 일을 앞둔 그녀에게 아슬아슬한 장애물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멜라니는 어떤 부분에선 레미와 비슷하게 회피의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어머니와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피하며 원망의 생채기를 홀로 끌어안고만 있다.

 

한 프레임 안, 조심스레 뻗은 손길

영화에서 두 인물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쇼트는 드물다. 두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순간이 등장하긴 한다. 담배 연기, 음악 등이다. 하지만 각자의 상처 안에 갇힌 상태에서 연결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착점에 다다르면 이 작품이 ‘로맨스’ 영화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두 인물은 한 프레임 안에 들어와, 상대를 응시하고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다. 이 또한 왠지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 이전 상태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자 정신과 상담을 통해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고, 거리에 대한 낙차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그 낙차가 누구의 탓도 아니며, 우리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상대를 기꺼이 어루만질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들은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종착점에 이르러서도 완벽한 결론을 낼 순 없다. 그러나 타인과의 거리에 대한 생채기를 훌훌 털어버린 상태에서 내딛는 첫 걸음은 이전과 다른 결말을 기대하게 한다.

 

*사진:네이버영화

*글:김희경(문화평론가)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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