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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살인자의 해피엔딩
[이주라의 문화톡톡] 살인자의 해피엔딩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0.06.08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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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1. 여자가 살인을 하는 이유

<와이 우먼 킬(Why Women Kill)>은 2019년 8월부터 10월까지 미국 CBS All Access에서 방영된 드라마다. 한국에는 2020년 5월 27일 OTT서비스인 왓챠플레이를 통해 독점 공개되었다. 미국의 시리즈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작가가 각본을 쓰고, 영화 <500일의 썸머> 감독이 연출에 참여하여,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한국에서도 왓챠플레이의 독점 공개 소식이 알려지자, 작품에 대한 기대를 표하는 기사들이 대거 쏟아졌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최근 왓챠플레이의 스트리밍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와이 우먼 킬>은 제목 그대로 여자가 살인을 하는 이유를 다루고 있다. “살인은 이혼보다 싸다.” 이 작품의 캐치 프레이즈가 암시하듯, 이 드라마는 부부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가정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와이 우먼 킬>은 패서디나의 한 집에서 생긴 세 번의 살인 사건을 보여준다. 첫 번째 사건은 1963년, 다음은 1984년, 마지막으로 2019년에 벌어졌다. 모든 사건은 완벽해 보였던 부부 사이에 끼어든 다른 이성의 문제로 인해 시작되었다. 전형적인 불륜·치정극이다.

불륜·치정극에서 여자가 살인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아마도 남편의 바람과 그에 대한 아내의 원한,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복수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우리의 전형적인 추측을 뒷받침해 주듯이, <와이 우먼 킬>의 오프닝은 바람피우는 남편, 권위적인 남편을 다양한 방법으로 죽이는 아내의 모습을 미국식 카툰으로 그려냈다. 길거리에서 불륜녀와 키스하고 있는 남편을 차로 밀어버리거나, 자신에게 소리치며 화를 내는 남편을 계단에서 굴려버리거나, 선물로 다리미를 주는, 여자에게 집안일이나 하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남자를 다리미로 내리친다. 그리고 여성들은 드디어 웃는다. <L.O.V.E>라는 달콤한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그녀들은 바람피운 남편을 죽이고 해피엔딩을 얻은 것일까.

<와이 우먼 킬>의 오프닝은 우리를 낚기 위한 낚시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이 작품에서 살인은 일어나지만, 여주인공의 범죄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하자. 남편과 그녀들 사이에 다른 이성이 끼어들었을 때,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들에 도전한다. 그러니 이 글의 제목인 <살인자의 해피엔딩> 또한 범죄자의 행복한 결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자. 이 드라마는 여성 범죄자를 옹호해주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부부의 문제를 개선시켜 나가려는 적극적 여성의 모험담이다.

 

Why Women Kill의 오프닝 (출처=왓챠플레이)
Why Women Kill의 오프닝 (출처=왓챠플레이)

2. 하나의 집, 세 번의 살인, 세 시대의 상징

<와이 우먼 킬>은 1963년을 살아가는 베스 앤(지니퍼 굿윈 분)과 1984년을 살아가는 시몬(루시 리우 분) 그리고 2019년을 살아가는 테일러(커비 하웰 밥티스트 분), 이 세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그 연출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이 살았던 집을 세 시대가 교차하는 하나의 무대처럼 활용하는 기법은 감탄할 수밖에 없다. 1963년 배스 앤이 현관에서 거실로 움직이면, 그 공간에 1984년 시몬이 계단에서 내려온다. 시몬의 차가 떠나가는 자리로 2019년의 차가 들어온다. 혹은 다른 시대의 누군가가 탁자 위에 올려둔 와인 잔을 또 다른 시대의 누군가가 잡으면서 드라마 속 시대가 전환된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의 시대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던 카메라는 최종화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이 세 시대 사람들을 한 공간으로 불러 모은다. 이건 진짜 이 드라마의 백미다. 그러니 안타깝지만,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봐야 한다.

이렇게 연결되는 세 시대는, 실제로 세 명의 여성들은 집 열쇠를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면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여성의 삶을 대표하게 된다. 1963년의 베스 앤은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현모양처인 전형적인 가정주부이다. 1984년의 시몬은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자유주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며 등장한 화려한 파티걸이다. 2019년의 테일러는 비독점적 다자연애(폴리아모리 polyamory)를 즐기는 능력 있는 변호사다. 한국의 시대적 변화에 적용해 본다면, 1960년대의 보수적인 가부장제가 완고했던 시대의 현모양처, 2000년대 초반의 칙릿(chick-lit) 열풍 속 소위 된장녀, 2010년대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의 능력 있는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Why Women Kill (출처=왓챠플레이)
Why Women Kill (출처=왓챠플레이)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불륜 서사의 클리셰를 밟아가는 인물은 1960년대의 베스 앤뿐이다. 베스 앤의 남편이 권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부장이기 때문에, 베스 앤은 결국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남편을 제거해야만 한다. 베스 앤은 이웃으로부터 자신의 남편이 근처 식당 웨이트리스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들은 후, 남편에게 버림받지 않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남편을 붙잡아 둘 매력적인 아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바람이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베스 앤은 남편에게 복수한다. 전형적인 원한과 복수의 서사다.

이와 정반대의 인물이 2010년대의 테일러다. 테일러는 이성애 결혼을 하였지만, 사실은 양성애자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자기 삶의 신념 중 하나이다. 테일러는 남편과의 동의하에 각자의 연애를 즐기는 개방적 부부 생활을 한다. 이들 부부의 균열은 테일러의 여자 애인 제이드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테일러는 자신을 중심으로 남편과 여자 친구가 한 가족이 되어 멋지고 개방적인, 그래서 새롭고 진보적인 가정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평한 산수가 이루어지지 않는 감정의 세계 속에서, 특히나 누군가에 대한 감정적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연애의 세계 속에서, 세 사람의 관계는 질투와 불안으로 균열을 일으킨다. 테일러의 서사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다자연애가 전통적 부부 관계로 회복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굳이 일부일처제에 기반한 근대적 부부 관계의 ‘진보’를 따지자면,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진보한 관계는 1980년대의 시몬과 그 남편이다. 1960년대 베스 앤네 부부는 가부장제 하의 일부일처제가 가진 전형적인 문제를 노출시킨다. 남편의 경제활동과 아내의 가사노동이라는 역할분담 속에서 남편에게 의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성들, 그래서 남편의 폭력을 감내해야 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보여준다. 2010년대 테일러네 부부는 일부일처제의 타파라는 급진적인 구호가 어떻게 현실 앞에서 좌절하는지를 그려낸다. 대중적으로 소비되어야 하는 드라마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테지만, 테일러네 부부의 비독점적 다자연애는 사랑의 감정이 여럿에게 분산될 수 없기 때문에, 다자연애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근대의 낭만적 사랑의 문법이 설정한 상상력의 한계를 그대로 수용한다. 오히려 개방적 연애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1980년대의 시몬네 부부이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사랑 받고 살아야 하는 시몬. 그녀는 자신보다 술을 사랑했던 남편, 자신보다 돈을 사랑했던 남편과 이혼하고, 현재 세 번째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영위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을 독점적으로 사랑해 줄 수 없는 남편에게 화가 난 시몬은 다시 이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시몬을 여전히 사랑하며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남편의 말,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웃게 해 준 남편에 대한 시몬의 정, 이런 이유 등으로 시몬은 남편과 함께한다. 시몬은 남편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다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남편에게도 다른 파트너와의 사랑이 소중한 것임을 인정한다. 시몬과 남편은 서로의 성정체성을 인정하고, 각자의 애인과의 관계를 수용하면서, 더욱 안정적인 부부 생활을 해 나간다. 물론 이 서사는 2000년대 초반에 로맨스 영화에서 유행했던, 여주인공의 연애를 도와주는 멋진 게이 남자 친구 모티프를 연상시킨다. 이것 또한 클리셰이다. 하지만 게이 남자 친구를 중심으로 개방적인 연애 관계,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친밀한 공동체의 개방적인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3. 여자의 행복

<와이 우먼 킬>은 1980년대 가능했던 친밀한 공동체의 개방성을 2010년대에 닫아 버리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완전히 도식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말이다. 시몬과 게이 남편이 보여 준, 상대의 성정체성에 대한 수용과 우정을 바탕으로 한 다자연애의 가능성은 2010년 테일러로 넘어오면서 실패한다. 양성애자라는 성정체성을 바탕으로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신념으로 내세웠던 테일러가 남편과의 관계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테일러는 이를 ‘한시적’ 결정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작품은 테일러의 이 ‘한시적’ 결심 속에서 테일러와 남편의 해피엔딩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와이 우먼 킬>이 제작·방영되는 이 시대에도 대중적으로는 친밀한 공동체의 개방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단지 대중문화가 보수적이기 때문이라서 생긴 결과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국 대중문화 속에서도 폴리아모리에 대한 형상화가 이루어진 적이 있다. 2006년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2008년에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로 만들어지면서 폴리아모리에 대한 담론을 형성했다. 이 작품 자체가 폴리아모리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공교롭게도 우디 앨런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도 2008년에 개봉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적어도 문화의 영역에서는 일부일처제를 벗어난 친밀한 관계를 설정하면서, 성정체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계를 확장하는 방식의 사랑을 상상했었다. 최근에도 일부일처제 중심의 결혼 제도에 대한 반발과 개선의 움직임은 여전하다. 다만, 그 상상의 방식이, 적어도 한국의 경우에는, 결혼에 대한 거부, 연애에 대한 거부의, 관계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대적 차이가 <와이 우먼 킬>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 우먼 킬>은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결혼 관계의 전형에서 벗어나 여성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고전적으로는 2010년대 테일러의 선택처럼 남편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부부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혹은 1980년대의 시몬처럼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하는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 아니면 1960년대의 베스 앤의 선택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베스 앤의 선택은 이성애에 집착하지 않고도 친밀한 공동체 속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여성 간의 연대가 그것이다. 최근 페미니즘 진영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는 지점이다. <와이 우먼 킬>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여성들이 친밀한 관계 속 자신만의 해피엔딩을 찾아나가는 이런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유쾌하게 보여준다. 일부일처제 결혼제도는 계속 균열을 일으키고 있으며, 언젠가 가능해지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미래는 어떤 길을 통해 도래할 것인가. <와이 우먼 킬>은 그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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