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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 박노해 l 시인
  • 승인 2020.10.05 18:2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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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보면 눈물이 난다. 누군가 처음 걸었던 길 없는 길. 여러 사람이 걷고 걸어 길이 된 길. 그 길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앞서 걷다 쓰러져간 사람들. 자신의 흰 뼈를 이정표로 세워두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나간 사람들. 길을 걸으면 그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우리 모두는 길 위의 사람들. 길은, 인간 人間의 길이다. 인생이란 끝없이 갈라지는 두 갈래 길에서 고뇌하고 결단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하여 내가 걷는 그 길을 따라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쉬임 없는 생성의 존재가 나, 인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탄생의 순간 이미 나다. 누구라도 이 지구별에 목숨 받고 태어난 날, 이번 생에 꼭 해야만 할 소명 召命이 있어 자기 운명의 길 하나 품고 나오지 않았던가. 이 우주 역사에서 단 하나뿐이고 단 한 번뿐인 내 인생의 이유와 의미를 묻고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길’이 아닌가. 

아,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길을 잃어버렸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가장 많은 지식이 흘러 다니고 세계와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지구 끝까지 길이 이어졌으나, 정작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잃어버렸다. 나는 나 자신과 가장 먼 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나에게 가장 낯선 자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지금 세상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다. 

나는 고아, 우주의 고아. 길을 잃고 밤마다 꿈길을 걸어오는 내가 있다. 내 안의 나를 부르는 소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끝없는 중독과 도피와 마취가 아니면 불안과 공허로 견딜 수 없는 시대. 내가 정말로 무얼 원하는지도 모른 채 끝없이 원하고,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모른 채 무엇을 더해야 할까 찾아다니고, ‘어떤 내가 되어야 하나’를 모른 채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갈망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비참한 자는 길을 잃어버린 자다. 길을 잃고 나를 잃고 희망이 없는 자다. 우리가 길을 잃어버린 것은 길이 사라져 버려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이 깊어져서가 아니다. 너무 현란한 빛에 눈이 멀어서이다. 우리가 희망이 없다는 것은 희망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다. 너무 헛된 희망을 놓지 못해서이다.

그리하여 길을 잃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이 길이 되고 말았다. 다들 가니까 그 길로 달려가고, 다들 가는 그 길을 앞서가고자 비교 경쟁하고 인정 투쟁하고, 잠깐 흘러 가버리는 유행과 팔림에 휩쓸려 갈 때 길은 나를 지나쳐 버린다. 나는 나를 지나쳐 버린다.

 

<인도네시아 브로모 화산의 농부들>, 2013 - 박노해  

2020년 오늘, 세계가 재난 상황이라 한다. 재난 disaster의 어원은 ‘떨어지다’라는 뜻의 dis와 ‘별’이라는 뜻의 astro가 합쳐진 ‘별이 떨어진 상태’, ‘별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저 밤하늘의 별처럼 글썽이며 빛나던 나 자신과의 내적 연결이 끊어지고, 어둠 속 별의 지도와도 같던 성현과 스승과 시인과 탐험가와 수도자와 혁명가들이 떨어져 나간 세계. 그리하여 지구 중력권과 나 자신에게 갇혀버린 상태. 더는 나아갈 길이 없고 희망이 없는 처지가 재난 disaster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세상이 일제히 멈추고 인간의 길이 끊긴 지금. 역사상 처음으로 78억 지구 인간이 동시에 공포에 휩싸인 강렬한 체험. 실시간으로 목도한 세상 끝의 풍경. ‘불가촉 세계’의 날들. 지구 인류가 하나로 촘촘히 이어진 이 문명의 정점에서 인간의 길을 잃어버린 대재난의 상황이다. 

우리 인간은 위대한 여정 Great Journey로부터 사막과 고원과 동토를 걸어 여기까지 왔다. 길을 가면서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고 길이 이어져 하나가 되어갔다. 길 위에서 사상이 탄생하고 사건이 벌어지고 사물을 창출했다. 그렇게 길을 걸으며 만나고 함께하고, 살고 살게 하고, 사랑하고 잉태하고, 더 커진 나로 진보해왔다.

인류의 역사는 ‘접촉의 역사’다. 만남과 대화, 포옹과 사랑 없이 인류는 존재할 수도 진보할 수도 없다. 인간의 진보란 더 낯설고 다양한 존재와의 접촉의 확대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경계와 두려움, 손해와 죽음까지를 감수하고 낯선 이들과 기꺼이 접촉하고 받아들이는 결단과 용기, 인간의 길을 끊고 막는 자들에 맞선 저항과 모험. 우리는 그것을 사랑과 자비, 선과 정의, 우애와 환대라 불러왔다. 인간성의 절정인 사랑은, 위험을 무릅쓴 ‘끌어안음’이고 너에게로의 ‘투신’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인간성의 대변형’을 겪고 있다. 서로가 만나고 모이고 나누고 해내며 살아온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인간 人間의 길이 끊겨버렸다. 사람이 사람에게 공포가 되고, 조금의 위험과 손해도 거리두기로 차단해야 한다는 의식이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접촉의 역사’로부터 역행하는 것은 ‘사랑의 감축’이고 사랑의 소멸이라는 비상사태의 징표이기도 하다.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말하지만 ‘코로나 이후’란 없다. 코로나 이후는 더 독한, 더 잦은, 더 다른 코로나의 시대일 것이다. 언젠가는 코로나 저편의 검은 그림자가 드러나리라. 

 

“지금 인류는 일제히 마스크를 낀 ‘묵언수행’ 중이고, 자발적 강제로 문을 닫아건 ‘방안거’ 중이다. 그럼에도 코로나 시대 안에서 우리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 더 속 깊은 만남으로 나누고 모이고 얼굴을 마주 보며 생생히 살아야 한다.” 

 

지구 인류 문명의 정점에서 기습당한 코로나 시대를 기회 삼아, 새로운 철학과 삶의 양식을 찾는 길로 나아가야 하고, 이 재난 사태를 낭비하지 않고 ‘더 나아지는 나’로 도약해야 한다. 자기 시대의 진실을 보기 원한다면 멀리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한다. 완전히 다른 세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오를 때 현재로부터의 거리가 확보될 때, 그리하여 과거를 다 삼킨 시대의 높이에 설 때, 오늘의 세계가 가는 방향이 보인다. 오늘의 사회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이 길을 찾는 사람의 진정한 능력이다. 

나는 가능한 가장 오래된 시간, 가장 오래된 장소, 가장 오래된 사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 ‘앞선 과거’로 돌아 나오는 길을 찾아 나섰다. 인간의 길은 눈앞에서 보면 직선이지만 멀고 크고 높은 곳에서 보면 동그란 길이기에. 

세계 어느 도시나 똑같아진 이 ‘평평한 세계’의 삶의 방식과 유행과 우리 시대의 확실성으로부터 나 자신을 가장 멀리 떨어지게 하여, 두 세계의 공간과 시간 사이의 여정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고, 무디어진 나의 인간적 감각을 되살리고자 했다. 

하여 나는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곳을 찾아다니며 오래된 토박이들이 지켜온 인간의 길을 탐구하고 경청하고 담아왔다. 우리가 앞만 보고 달리다 놓쳐온 것, 진보했으나 결핍된 것, 무언가 온전하고 올바른 것, 잃어버린 시원의 순수, 수만 년 이어온 희망의 씨앗을 찾아 헤맸다. 우리에게 사라진 그 원형질을 품고 돌아 나와 진보한 오늘의 우리 안에서 새로이 살려내는 여명의 길 하나 찾고 싶었다. 그것이 살아남은 혁명가의 사명이라 생각하며 나를 내몰았다.

그러나 길 찾는 나의 유랑길은 ‘길을 잃는 일’이었다. 나는 기꺼이 길을 잃어버렸고, 비틀거리며 길을 헤맸다. 길을 잃어버리자 길이 내게로 걸어왔다. 

 

길을 잃어보았나. 몇 번이나 길을 잃어보았나. 여행길에서 길을 잃어보았나.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보았나. 일상 속에서 길을 잃어보았나. 신념 속에서 길을 잃어보았나. 그때, 길을 잃어버린 그 막막함 속에서 무엇이 찾아오던가. 여정의 놀라움이, 느닷없는 마주침이, 전혀 새로운 길이, 불꽃의 만남이, 또 다른 내가 마주 걸어오지 않던가.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은 계획이 아니다. 먼저 세워야 할 것은 내 삶의 목적지다. ‘나 어떻게 살아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다. 내가 결코 놓지 말아야 할 나의 첫 마음, 그 첫 마음의 불빛은 내 생의 최종 목적지에 놓여 나를 비추고 있고, 내가 가야만 할 길을 가리키고 있다. 나머지는 다 ‘여정의 놀라움’과 ‘인연의 신비’에 맡겨두기로 하자. ‘계획의 틈새’와 ‘비움의 여백’ 사이로 걸어올 나만의 다른 길을 위해.

하나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반드시 다시 열린다. 주어진 길 밖의 모든 길이 그대의 것이다. 심어진 꿈 밖의 모든 꿈이 그대의 것이다. 길을 잃고 길을 찾는 그 발길들이 세상의 판을 흔든다. 

그러니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나만의 빛나는 길은 잘못 내디딘 발자국들로 인하여 비로소 찾아지고 길이 되는 것이니. 

 

이 지상에 나는 단 하나뿐이듯 진정한 나의 길은 하나뿐인 길이다. 비교 경쟁할 수 없는 나만의 길, 진정한 자신을 사는 용기, 우리에겐 지금 ‘결정적 한 걸음’이 필요하다. 수많은 경험을 소유해도, 백 걸음 만 걸음을 앞서가도, 결정적 한 걸음이 없이는 다 헛된 진보이다. 수많은 걱정과 불안도 수많은 문제와 대책도 결정적 한 걸음으로 정리되고 소멸된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삶의 목적을 향해 온 존재를 정렬시킨 결정적 한 걸음을 내딛을 때, 자신의 두 발로 인생의 대지를 걸어가는 한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 순간 세계에 고요한 파동이 일고 거기 이어진 인간의 마음으로 공명된다고 나는 믿는다.

지구의 중력에 맞서 직립한 인간, 이 불편하고 비효율이고 갖은 질병을 가져오는 직립보행의 인간 종. 직립한 인간의 두 발은 두 길을 동시에 걷는다. 함께 가는 길 속에서 나만의 다른 길을. 밖으로 펼쳐가는 운동 속에서 안으로 걸어드는 운동을. 오래된 길을 거슬러 새로운 여명의 길을. 지상의 길로 한 걸음 걸으며 하늘로 오르는 한 걸음을. 그리하여 길은 세상에 있으나 이미 내 안에 있는 길이 아닌가.

돌아보면 이미 먼지처럼 사라진 내 발자국, 내가 걸어온 길들에 남은 건 눈물 어린 사랑뿐이다. 그러나 아직 길은 끝나지 않았고 내 발은 아직 다 닳지 않았으니. 나에겐 가야만 할 길이 있고 찾아야만 할 무언가가 있으니. 나는 먼 곳으로, 더 먼 곳으로, 더 깊고 먼 곳으로, 다시 길 없는 길을 떠나는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지친 나를 걷게 하는가. 사랑만이 나를 다시 걷게 한다. 나는 사랑 안에서 나를 잃어버린다. 사랑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그러면 사랑이 어디론가 나를 데려다주리라. 나를 향해 마주 걸어오고 있는 너에게로, 아직 내가 모르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로.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 

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가라.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2020년 9월

 

 

글·박노해

1957년 출생. 16세 때부터 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1983년 <시다의 꿈>, <하늘> 등 6편의 시를 발표하며 ‘얼굴 없는 시인’으로 혜성처럼 등장, 27살이던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내며 1980년대를 관통하는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 7년여의 수배 생활 끝에 1991년 군사독재정권 하의 안기부에 의해 체포, 참혹한 고문 후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1998년 석방되고,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 하고, 2000년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을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왔다. 이 글은 올해 9월에 출간된 그의 세 번째 사진에세이집 『길』에 실린 서문으로, 출판사의 승낙을 받아 본지에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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