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 최양국의 문화톡톡 ] 낭만 ~ 쓸쓸 그리고 스산
[ 최양국의 문화톡톡 ] 낭만 ~ 쓸쓸 그리고 스산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11.02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과 햇살이 나뭇잎에 일렁이며 신음한다. 11월이 한달살이 수명을 안고 종로에서 태어난다. 12명의 형제 자매중 가장 단순한 달력으로 자신의 일기를 쓴다. 나름의 색깔들로 아름다움을 치장하는 11명의 그들과는 달리 외톨이이다. 일요일 외에는 쉬지 않지만 평생 동안 종로3가에서 광화문까지 걷는 시공간 여행자의 삶을 산다. 상순~중순~하순을 거치며 종로를 걸어 광화문에 도착한다. 슬프지만 일상화 되어가는 거리두기를 하며 바라본다. 낭만~쓸쓸~스산의 모습으로 일생을 마치고 돌아간다. 우리는 검정과 빨강으로 이루어진 네모의 꿈속에서 다시 만난다.

 

11월 / 한달살이 / 검정과 / 빨강의 꿈

 가을의 햇살이 눈부신 어느 일요일 아침이다. 그 햇빛에 눈이 부시더라도 색안경을 쓰거나 애써 피하지 않는다. 가능한 오래도록 바라보며 문으로 들어간다. 종로3가 단성사 앞이다. 그 건너편은 피카디리 극장이며, 우리들 철수와 영희가 만나고 헤어진 만남의 광장이 보인다. 대각선에는 서울 미래 유산으로 지정된 서울극장이 있다. 오징어와 쥐포, 구워지는 밤들의 냄새와 함께 우리들 누군가의 푸른 시절과 함께 한 시공간은 낭만으로 넘친다. 지금은 영화 역사관과 복합상영관이 지하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그때의 빛, 온도와 색을 안타깝게 간직하며 연명하는 듯 하다. 이 계절에 피어나는 나뭇잎 꽃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시절의 낭만이 가져온 추억의 소리들일 수 있다.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는 어느 시인의 시를 읇조리며, 종로2가로 걸음을 옮긴다.

11월 Ⅰ - 노오란 우산깃과 은행나무/ 출처=Pixabay
< 노오란 우산깃과 은행나무>/출처=pixabay

바람이 불고 가을이 하나 둘씩 떨어지며 걸음걸이는 더욱 무뎌진다. 지나간 시간엔 서점을 통한 지식 공유와 찻잔을 사이에 둔 두근두근 만남의 시공간이었지만, 지금은 파고다공원을 중심으로 쓸쓸한 침묵으로 지나간 시간을 대변하는 우리들 현재와 미래의 자화상으로 같이 한다. 공원 근처 실버 극장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어스름한 불빛도, 이지러져가는 달빛에 견주기에는 쓸쓸하기만 한 듯 고개를 숙이며 밝기를 저어한다. 저만치 바라 보이는 나무 아래에는 아직 주인의 자리를 뜨지 못한 중절모 몇 개가, 이 밤이 만들어 내는 공간에 어울리듯 하염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오지 않는 자식의 방문을 기다리며, 가늘어져만 가는 의식과 두 다리를 곧추 세우지만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가게 놔둘 수 밖에 없는 쓸쓸한 시공간의 그들과 다름 아니다.

종로 1가를 거쳐 광화문으로 가는 동안 지나온 상순의 소리와 중순의 침묵이 낭만~쓸쓸의 시공간을 반추하게 하려는 듯 매서운 바람이 한바탕 몰아친다. 가을이 떨어져 홑몸으로 서서 버티며 지나간 꿈들을 떠 올리기에는 너무 스산한 광화문 광장의 찬 바람이 우리를 맞는다. 무엇을 위한 차벽과 누구를 위한 연단 위의 소음은 우리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내적인 / 충만함은 / 낭만~쓸쓸 / 종로 채색

 낭만~쓸쓸의 시공간을 여행하며 11월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내밀한 고민없이 외부와의 연결에만 연연하지 않고, 내적의 충만함을 통해 외부의 결핍마저도 극복 하고자 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외톨이인 11월은 그들 삶속에 아름다운 채색의 파노라마를 만들어 가는데 함께 하고자 하는 듯하다.

<낭만~쓸쓸> / 출처=Pixabay
<낭만~쓸쓸> / 출처=Pixabay

스스로 내적으로 충만해지는 법을 깨우칠 때 그 충만함으로 인해 외부의 결핍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타자와의 흘러가는 일상적 접촉에 마냥 매달리거나, 대중의 가면을 쓴 현란한 매체나 특정 가치 체제의 기만에 마냥 노출되어 중독된 상태로는, 자아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집중력을 갖출 수 없다. 타아를 위한 무분별한 접촉이나 접속보다는, 자신을 위한 분별있는 연결이 더 중요하다. 나를 그들에게 무심히 던져 주지 말고 나에게 오롯이 돌려주어, 들려주고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타아와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거미줄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11월과 같은 외톨이의 여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와 그들만을 위한 하위 리그에서 멀어지며 나아가는 그 길 위에서 우리들은, 외로움도 낭만으로 여기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자연과 세상을 향한 자신감의 표출이며, 우리들 스스로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검정색과 빨간색의 이원색만으로도 깊고 넓은 삶의 여행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들과 자연의 의사소통에 의미를 만들고 기반을 마련하여 가는 11월과 같은 외톨이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쓸쓸함으로 대변되는 고독의 빛은 밝지 않고 기온도 낮고 색도 어두울 수 있지만, 그 맛과 멋은 음미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아를 위한다는 허울 좋은 능동적 피동적 갇혀가기는 우리가 왜 잃고 있고, 무엇을 놓치고 있으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특정한 가치만를 고수하고 지켜나가기 위한 관계와 타자의 내몰림에 중독되어 가는 것은, 어느날 저녁 갑자기 호롱불에 뛰어든 나방과 같다. 중독되어 가는 자아는 거미줄에 점점 얽혀 들어, 듣고 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영(零)으로 수렴되어 가는 사회문화적 거미집 이론의 실례인 것이다. 우리들 삶에 있어서 쓸쓸함을 동반하지만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우리만의 색을 창조할수 있는 힘은 정의 상관관계에 있다. 타아와 특정 집단과의 연결만에 만족하는 의례적 접촉이나, 단순한 말초신경적 오감만을 자극하는 ㅋㅋㅋ와 kkk가 넘쳐나는 것은 가끔으로 족하다. 그것만을 위한 선과 면 그리기는 의미 없는 종로 나들이에 다름 아니다. 11월의 종로거리 여행이 덧없이 흘러간 어느 유치한 시절의 11월로 사라질 뿐이기 때문이다.

 

돌아간 / 가을의 햇살 / 영혼 같은 / 하얀 꽃

 낭만~쓸쓸을 통해 스산의 시공간을 여행하며 광화문에서 11월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11월 Ⅲ - 스산 / 출처=Pixabay
<스산> / 출처=Pixabay

플라톤은 “정치적 무관심의 대가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람에 쓸려 사라져 간 가을의 색들이 남기고 간 것은 낭만과 쓸쓸함이다. 종로 3가와 종로 2가의 낭만~쓸쓸로의 시공간 여행을 대신하여 우리들은 너무 쉽게 특정 집단이나 군중에 속하고자 하는 무분별적 지향성을 나타낸다.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순장을 한 그 옛날 구슬픈 문화의 DNA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타아에 대한 어줍잖은 순응을 통해 자아의 색을 찾고 있고 영위하고 있다고 여기는 정체성의 혼돈 경향이 점차 커져간다. 자아의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하고, 타인의 합리적 기대에 의존하여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쓸쓸한 고독의 순기능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역기능적인 위험에서 조차도 벗어날 수 없다.

합리적 자아 중심의 일상으로 돌아온 11월의 어느 날, 외톨이는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서 왜 함께 하고 있는지를 문득 깨달을 수 있는 화두를 던진다. 자아가 아닌 특정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가는 것은, 자동차 여행시 빠르게 지나가며 스쳤던 그 어느 지역의 그 누구와 같은, 정물화속 풍경의 일부와 같이 의미없는 것일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쓸쓸함과 무력감, 그리고 연결성과 속도와 더불어 인간의 자연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2020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서슴없이 요구한다. 우리가 2020년 11월에 맞이하고 있는 회오리 바람 같은 패러다임의 등장은 권위와 집단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하며 개인의 이에 대한 귀속을 소용돌이의 장처럼 몰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 낭만을 위한 개인의 자유는 집단적 세몰이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들 각자의 쓸쓸함을 회피하지 않을 때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

우리들은 집단 역학속에서 다양한 대중매체와 문화에 둘러싸여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나와 그들 리그를 위한 이분법적 분류로 단순화 된다. 우리들 삶과 사회의 건강한 진화를 위한 중요한 린치핀을 도외시하고 방기하는 물타기의 다양성을 우리는 경험한다. 온갖 미디어, 정치 그리고 국제사회는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가치를 지키고 전승하기 위해 그렁그렁, 도란도란 그리고 저돌저돌의 방법으로 우리들 색을 분탕질 하는 듯하다. 이리하여 건강한 가치에 대한 무관심과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사고능력이 약해지고 둔해질수록 본질 보다는 비본질적인 요인이 중요해지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들 자신과 사회문화적 가치의 본질에 대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지속적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가을 햇살이 나무에 머무르며 일렁이는 순간,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우리만의 순수한 눈으로 눈부시게 바라볼 수 있다. 11월은 우리가 사랑하는 외톨이 이다. 우리는 낭만~쓸쓸~스산의 11월 여행을 통해 타인의 의지에 중독되지 않은 긍정적 극단주의자가 될 수 있다. 여의도 우리들 공간에서 벌어진 그녀와 그의 설전이 우리에게 주려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갖도록 하여야 하는가?

 가을 햇살 거리를 뒤덮은 노란색~시골집 굴뚝 한줄기 연무 뒤로 넘어간 주홍색 그리고 여의도 둔치를 밀어내며 어두어져 간 진회색의 옷을 예쁘게 차려 입고 11월이 자연으로 돌아간 다음 날, 12월의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들을 위해 한달살이의 영혼 같은 하얀 꽃이 내린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