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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라의 문화톡톡]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클리셰
[이주라의 문화톡톡]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클리셰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0.11.09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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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파리에 가다 ⒸNetflix
에밀리, 파리에 가다 /출처=Netflix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는 2020년 10월에 OTT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처음 방영되었다. 첫 방영 이후 지금까지 한국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 탑10 순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넷플릭스 이용자들에게 관심도가 높은 작품이다. 1회차 분량이 약20분에서 25분 정도로 짧기 때문에 10회로 구성된 시즌1을 하루 만에 독파할 수 있다. 물론 콘텐츠의 내용이 취향에 맞아 재미있다고 느낄 때에만 해당되는 사항이기는 하다. 공식포스터에서 내세웠듯이 <섹스 앤 더 시티>의 제작자 대런 스타와 동일 작품의 스타일리스트 패트리샤 필드가 다시 함께 팀을 이루어 만든 작품이라서, 미국 대도시 전문직 여성의 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즐기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일단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약간의 찝찝함이 남는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 올라오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대한 리뷰들은 다소 논쟁적이다. 대체로 주인공 에밀리 역을 맡은 릴리 콜린스의 연기는 좋으나 서사 진행은 진부하다는 평가이다. 그리고 서사가 진부한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프랑스 파리와 프랑스 사람들 혹은 파리지앵에 대한 클리셰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는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프랑스 언론 및 시청자들은 이 작품에 묘사된 프랑스 문화와 프랑스인의 이미지가 완전히 왜곡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작품 속 프랑스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외국인으로서 프랑스에서 겪었던 모든 ‘사실’을 200% 반영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문화권이 다른 문화권을 문화적으로 표상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문화 왜곡과 가치 충돌을 보여주는 작품인 것이다. 게다가, 이것 또한 다른 문화권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일 수 있지만, 미국에서 다른 문화권을 재현할 때 보여주는 미국 특유의 한계가 명확한데, (미국적 시각의 우월성이랄지, 다른 문화에 대한 과장된 동경과 비하가 뒤섞인 태도랄지)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이러한 미국 문화콘텐츠 특유의 전형성을 그대로 담지하고 있다. 

일단 이 작품을 보자마자 떠올릴 수 있는 클리셰들을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미국 시카고 마케팅 회사에 근무하는 우리의 주인공 에밀리는 직장 상사의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상사를 대신해 파리로 전근을 가게 된다. 파리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던 에밀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파리에 도착한다. 그런데 파리에서 경험하게 되는 몇 가지 불편한 진실들. 파리 건물들에는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없고, 배관이 노후하여 수도 및 전기 시설의 고장이 잦다. 파리의 길거리를 걸어 다닐 때는 질펀한 개똥을 늘 조심해야 한다. 사실 그것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은 파리 사람들의 까칠함과 오만함이다. 그들은 미국인들을 문화와 교양을 모르는 천박한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대놓고 못됐으며, 늘 부정적이다.

파리에 대한 이런 묘사는 이미 너무 많다. 개똥 이야기는 <섹스 앤 더 시티>에도 부각되었으며, 파리를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이 지하철의 노후함, 엘리베이터의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예상 가능한 여행 후기 중 하나다. 그리고 역시 파리지앵 혹은 범위를 조금 더 넓혀 프랑스 사람들은 오만하다. 클리셰는 경험을 단순화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형성이긴 하다. 문제는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예술적으로 재현할 때, 이런 클리셰에 의존하는 태도는 다른 문화에 대한 너무나 불성실한 태도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다른 문화를 표면만 묘사하여 쉽게 왜곡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좋게 봐 주면, 이 작품을 프랑스의 시각도 아닌, 미국의 시각도 아닌, 그저 제3자인 한국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 작품에서는 프랑스인의 이미지도 전형화되었지만 미국인의 이미지나 미국 문화도 전형화되어 있다. 그래서 두 문화의 시각과 가치가 충돌하는 모습이 꽤나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과 휴식의 균형에 대한 미국과 프랑스의 관점 차이. 에밀리는 일을 통해 성취를 이루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지만, 프랑스인 뤼크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는 것은 행복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 외에 다른 삶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는 미국식 성공과 성취에 대한 요구가 개인의 삶에 대한 착취와 압박이라고 느낀다. 또 다른 하나는 사물을 바라보고 상황을 판단하는 관점의 차이. 미국 본사에서 내려온 지침은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로 일하라고 한다. 이에 대해 프랑스 회사 사람들은 프랑스 정신을 무시하는 지침이라며 분개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늘 웃으며, 상황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며, 항상 파이팅한 상태에서 말하는 에밀리가 부담스럽다. 프랑스인들은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부정적인 측면까지 고려하는 태도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런 두 문화의 충돌 장면을 보면, 미국도 이상하고, 프랑스도 이상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맥락 속에서 미국의 이상함이 더 부각되어 다가왔다. 그것은 에밀리가 전해주는 미국적 삶의 방식이나 일의 스타일이 현재 한국에서 우리에게 강요되는 방식들과 너무나도 유사했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미국인 에밀리가 프랑스 문화와 접하면서 그녀의 문화적 배경이 상대화되는 장면에서, 저건 미국인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특히 워커홀릭 미국인의 모습은 서양 문화권에서 한국인을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시킬 때 전형적으로 그려내는 딱 그 모습 아닌가. 이미 옛날 영화 <택시>에서도 그랬고, 지금 캐나다에서 호평 받고 있는 <김씨네 편의점>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모든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 라는 구호는 자기계발서를 통해 우리 사회에 상식처럼 퍼져 있는 삶의 태도이지 않은가.

이렇게 미국 문화가 까이는 것을 보면서, 미국 문화도 별 것 아니었구나, 라는 느낌도 받는 동시에, 미국과 유사한 지점을 가진 우리 문화를 또 다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점검해 볼 수 있기도 하였다. 일에서의 성취가 삶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 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태도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 영어를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라도 있다는 것 등등. 아직도 한국은 미국 언론, 미국 문화의 영향력이 강력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언론에서 혹은 미국의 문화 시장에서 한국의 문화가 인정받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영향 관계 속에서 우리는 미국의 시각을 자연스럽게 상식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재의 문제들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미국적 문화의 시각을 상대화하며 비판해줄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는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나마 미국적 시각과 다른 프랑스적 시각의 차이를 보여준다.

 

파리의 광고 촬영 현장과 성차별주의 논쟁 ⒸNetflix
파리의 광고 촬영 현장과 성차별주의 논쟁 / 출처=Netflix

문제는 이러한 문화적 시각의 차이를 클리셰의 충돌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클리셰는 대중문화 창작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요소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나오는 클리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가지는 한계와도 맞닿아 있다. 넷플릭스는 초반부터 자체 제작 콘텐츠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의 힘을 보여주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의 제작 방식은 한편으로는 제작팀의 온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창작의 자유가 극대화된 방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구독자들의 시청 취향을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기획, 선택, 제작되는 계산 가능한 창작 방식을 따른다. 일견 넷플릭스의 제작 투자 방식이 작가주의적 창작을 지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미국이 아닌 다른 지역의 독자 콘텐츠를 계발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한국의 경우도 넷플릭스 제작 투자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나 김은희 작가의 <킹덤>이나 이경미 감독과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제작 콘텐츠들을 보면 그 성격이 달라진다. 미국 오리지널 콘텐츠도 제작팀의 완전한 자율을 보장하지만, 기획의 방향 자체가 고객 취향 분석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리지널 콘텐츠의 방향성이 대부분 비슷해진다.

대표적인 예를 로맨스 취향 여성 구독자 대상 콘텐츠에서 찾아보면 이런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로맨스 콘텐츠는 대부분, 미국 도시에서 살아가는 싱글녀가 주인공이고, 이들은 연애를 하라거나, 결혼을 하라는 주변의 압력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연애와 결혼과 로맨스의 불합리함에 대해 비판하며, 페미니즘에 기반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물론 그러다가 좋은 남자 만난다. 로맨스 장르니까 어쩔 수 없다. <어쩌다 로맨스>, <하우 투 비 싱글>, <홀리데이트> 등이 그 예다. 중요한 것은 로맨스가 여성들의 주체적 삶을 묘사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이고, 이를 통해 최근 이슈가 되는 페미니즘 정신을 담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도 이 페미니즘적 여성캐릭터 설정에서 멀지 않다. 에밀리는 프랑스에서 경험한 성차별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왜 여성의 질이 여성관사를 쓰는 ‘la vagin’이 아니라 남성관사를 쓰는 ‘le vagin’인가, 향수 광고에서 왜 여성이 나체로 남성의 욕망하는 시선을 받아내는 대상으로 묘사되어야 하는가, 등등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한다.

에밀리의 태도는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최근 트렌드에 맞춘 여주인공으로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다만 이런 에밀리의 문제제기는, 프랑스 문화를 도식적인 전형성에 맞춰 재현하는 것처럼, 도식적으로 표현된다. 이 작품은 미국인인 에밀리는 여성의 주체성을 훼손하는 성차별주의를 거부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으로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성차별주의를 섹시함이라고 포장하는 논리적 궤변론자로 그린다. 이렇게 올바른 나와 그렇지 못한 타인에 대한 이분법적 대립은 미국 문화와 프랑스 문화를 도식적으로 그려내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는 미국 도시 여성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트렌드를 주된 관점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도식적 묘사가 가진 장점도 있기는 하다. 도식성은 주체의 전형성을 증폭시켜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관점이 프랑스의 관점과 충돌할 때 둘 다 과장되어서,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지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클리셰의 충돌을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에 그치게 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와 충돌하는 양자 관계의 묘사는 문화를 상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니 문화의 충돌이 이분법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그런대로 문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획득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페미니즘 이슈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섹시냐, 섹시스트냐’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화하여 제시하는 것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슈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녀 사이의 자연스러운 욕망도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사람처럼 그려질 수 있으며, 이성애적 욕망을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차별주의자처럼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소비자 취향 분석을 통해 페미니즘이라는 트렌드는 잡았을지 몰라도,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이슈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사회적 이슈와 갈등을 문화적으로 형상화하는 방법을 흑백논리에 근거한 이분법에서만 손쉽게 찾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클리셰는 소재 선정 및 서사의 기본 구도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중들의 선택을 받는 대중문화는 언제나 정해진 클리셰를 조금씩 변형시켜나가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넷플릭스의 소비자 취향 분석 제작 방식은 현재 문화의 트렌드를 확정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 통계에만 매몰된다면 트렌드를 새롭게 바꿔나갈 동력을 지원받지 못할 것이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때, 통계에 근거하여 확정된 현실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현재의 문화를 단순화시킬 뿐이다. 통계는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소재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 소재를 어떻게 재현할 지는 통계가 아닌 인간의 고민이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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