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성장기 <더 프롬>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성장기 <더 프롬>
  • 송연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1.04 0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더 프롬>(The Prom, 2020)은 여자 친구와 프롬에 갈 수 없게 된 시골 소녀 에마(조 엘런 펠먼)와 에마를 도와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재기하려는 브로드웨이 스타들의 이야기다. 2016년 아틀랜타에서 초연되고, 2018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글리>를 제작한 라이언 머피가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원작은 2010년 미시시피주 18세 여고생인 콘스탄스 맥밀런이 고등학교 졸업 파티(프롬)에 여자 친구를 동반하고 싶고, 자신은 턱시도를 입고 참석해도 되는지를 교육위원회에 문의했다가 거절당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맥밀런은 이후 법원에 소송을 냈고, 미 연방 지방법원으로부터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당했다’라고 판결을 받았다.

 

레즈비언을 배제하기 위해 취소된 프롬

영화는 인디애나주 제임스 메디슨 고등학교 PTA(Parent-Teacher Association)의 의결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자 친구를 프롬에 데려가려는 레즈비언 에마. 그녀 때문에 PTA와 대표인 그린 부인(케리 워싱턴)은 올해의 프롬을 취소하기로 의결한다. 각 지역의 PTA는 자치적으로 운영되며(영화 속 그린 부인은 “이곳은 미국이 아니라 인디애나주이다”라고 말한다), 프롬에 대한 규칙이 정해져 있는데 여학생은 노출을 삼가할 것, 남학생은 양복이나 턱시도를 입을 것, 파트너는 반드시 이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규칙에 어긋난 학생을 프롬에서 배제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서 PTA는 이번 프롬을 취소하기로 한 것이다. 교장 호킨스(키건 마이클 키)도 에마도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러한 문제 상황은 타이틀백으로 짧게 보여주고, 영화는 브로드웨이로 배경을 옮겨간다.

 

엘리너 루스벨트를 꿈꾸는 뮤지컬 배우

화려한 브로드웨이 거리 속, ‘ELEANOR’라는 글자가 간판에 반짝이는 극장. 뮤지컬 배우 디디 앨런(메릴 스트립)과 배리(제임스 코든)는 뮤지컬 ‘ELEANOR’에서 각각 엘리너 루스벨트와 플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역할을 맡아 개막 공연을 한다. 엘리너 루스벨트는 인도주의적 사회운동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힘쓴 것으로 유명하다. 디디와 배리는 자신들의 연기로 세상을 바꾸는 힘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했지만, 극찬 평론에 축하파티를 한 것이 무색하게 공연 후 곧바로 악평을 듣게 된다. 배리는 ‘최악의 발연기에 루스벨트를 잘못 해석했다’는 평가, 디디는 ‘늙어가는 드랙퀸(유희를 목적으로 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성)’이라고 평가받는다. 디디와 배리 모두 비호감에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

낙담하는 디디와 배리는 극장 클럽에서 트렌트 올리버(엔드류 라넬스)와 앤지 디킨슨(니콜 키드먼)를 만나게 되고, 배우로서 존재감을 잃은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트렌트는 줄리어드를 졸업하고 배우가 되어 한때 TV 드라마에도 출연했지만, 지금은 배역이 없어 극장클럽 웨이터를 하고 있다. 앤지는 뮤지컬 ‘시카고’의 코러스를 20년간 했음에도 1934년생 배우 티나 루이스에게 밀려 록시 역을 맡지 못하고 방금 일을 관둔 상황이다.

‘ELEANOR’ 간판 조명마저 꺼져버리는 극장에서, 이들은 배우로서 재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우리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면서 괜찮은 인간으로 보이게 할 방법. 마치 뮤지컬에서 소화하지 못한 엘리너를 실천하려는 듯, 셀럽 사회운동가가 되기로 하고 이슈를 찾다가 트위터에서 인디애나주에 사는 레즈비언 에마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타이틀백에서 이어진 기자인터뷰로 보이는 영상 속 호킨스 교장은 인디애나주 검사장에게 에마의 일이 민권 Civil Rights 문제임을 알릴 것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현대판 엘리너 루스벨트가 쳐들어와서 여길 박살 낼 테니 두고 보라 말한다. 엘리너 루스벨트 역할을 맡았던 디디는 그의 말에 이끌려 에마를 돕는 사회 운동을 하기로 한다. 이제 극장 간판에는 ‘ELEANOR’가 아닌 ‘EMMA’가 켜진다.

 

나르시시스트의 낙관주의

이들은 동성애자가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세상을 바꾸리라 꿈꾼다. 에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집회를 열고, 피켓을 들고, 문구가 적힌 티셔츠도 입기로 하자는 노랫말은 이들이 그릇된 낙관주의에 빠져있음을 보여준다. 인디애나주 시골마을 사람들은 연예인에게 굽실댈 것이고,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그곳을 쉽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디디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를 가지고 토니상을 받으려 꿈꾼다. 배리는 그동안 억눌려왔던 일생을 이번 기회를 통해 토니상을 받음으로써 해소하고 싶다. 배리의 경우 디디보다는 실패를 두려워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등장에 일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디디의 예상은 빗나갔다. 호텔에서는 디디와 배리보다 TV 드라마에 나왔던 트렌트를 알아보고, 학교 간담회 현장으로 들이닥쳐서는 에마의 이름도, 에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영향력을 가진 사회운동가로 보이기 위한 노래를 한다. 에마를 위해 벌인 공연행사에서는 야유를 받을 뿐이었다. 진심으로 에마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던 디디는 마음을 접고 떠나기로 한다. 그런데, 뜻밖에 프롬이 ‘포괄적 프롬’이라는 컨셉으로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호킨스가 전한다.

 

친절하게 풀어내는 치유의 과정

디디, 배리, 트렌트, 앤지는 에마를 만나 자신의 결핍을 채워가는 시간을 갖는다. 이혼녀에 드랙퀸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디디는 자신의 오랜 팬이자 민권을 중시하는 호킨스와의 만남에서 자신의 욕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자신의 연기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되며 설레고, 배리는 에마를 통해 어린 시절 동성애자로서 겪었던 아픔을 공유하게 된다. 트렌트는 에마를 비난하는 아이들을 설득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알게 되고, 앤지는 에마와 당당한 자신을 끌어내는 방법을 나눈다. 겉으로 자신만만하고, 호들갑에 들떠 보이기까지 하는 나르시시스트인 만큼, 모두가 결핍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풀어낸다.

인물들 개인의 서사가 풍성할수록 의미 없이 등장하는 인물을 줄이는 장점은 있지만, 핵사건과 거리가 있는 개인의 서사가 등장하고 그것까지 마무리하려면 제한된 시간에 소화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뮤지컬의 경우 스코어들까지 소화하기 때문에 다른 장르에 비해 많은 서사가 들어가기 어렵다. 친절한 만큼 갈등과 사건이 첨예하기 어렵고, 풀어놓은 것이 많을수록 급하게 봉합하여 서사가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진심으로 엘리너가 될 수 있을까.

엘리너와 프랭클린의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악평을 받고 출발한 여정이었는데, 영화 후반부에 다시 한 번 엘리너와 프랭클린이 언급된다. 에마 혼자서 인디애나주 친구들에게 포괄적 프롬을 열자고 선언했는데, 이미 학교에서는 프롬을 개최해버렸고, 에마가 다시 주최하는 행사이기에 예산이 없다. 예산을 고민하는 호킨스와 네 사람. 이때 디디에게 배리는 “엘리너”라고 부른다. 디디는 슬픈 표정으로 “프랭클린, 왜 착해지는 데는 이렇게 큰돈이 드냔 말이야” 라고 말한다. 디디와 배리가 서로 ‘엘리너’와 ‘프랭클린’으로 지칭하며 첫 여정의 목표를 내적으로 이룬 셈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