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6월호 구매하기
에드워드 버네이스, 전지전능한 홍보업자?
에드워드 버네이스, 전지전능한 홍보업자?
  • 앙토니 갈뤼조 l 생에티엔 대학교 경영학 부교수
  • 승인 2021.01.29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인 홍보업자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1995년 103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 ‘전지전능한 기업 홍보업자’라는 그의 신화는 더욱 공고해졌다. 버네이스는 광고를 이용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여론을 뒤집을 줄 알았다. 민주당 출신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의 1차대전 참전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1917년 공공정보위원회(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 CPI)를 설치했다. 

버네이스는 당시 생소했던 직업인 홍보자문가로, 홍보 대행사를 차렸고 그의 경력은 공공정보위원회에서 시작됐다. 그는 저서 『Crystallizing Public Opinion 여론 집대성』(1923)과 『프로파간다.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1928) 덕분에 양차대전 사이 인지도를 얻었다. 하지만 그가 노년에 접어들어 연구원 스튜어트 이웬의 인터뷰에 응하던 당시에는, 대중은 그를 잊어버린 상태였다.(1)

그렇게 묻혔던 버네이스라는 인물이 최근 20년에 걸쳐 서서히 돌아왔다. 민심을 조작하는 새로운 기법의 창시자, 혹은 현대 프로파간다와 마케팅 기업의 아버지로 지목되기 일쑤였다. 2002년 BBC에서 방영된 애덤 커티스의 다큐멘터리 <더 센츄리 오브 더 셀프>에서 버네이스를 다뤘고, 해당 영상의 일부가 다양한 플랫폼과 소셜미디어에 퍼졌다.(2) 

2007년 라데쿠베르트 출판사는 그의 저서 『프로파간다.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1928)을 번역해 재출간했다.(3) 최근에는 아르테 채널이 지미 레이폴드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는데, 상당부분이 버네이스에 관한 내용이었다.(4) 그 영향으로 버네이스를 다룬 수많은 단신기사와 칼럼이 브뤼, 프랑스 앵포, 텔레라마 등 다양한 채널에서 쏟아졌다.

 

<담배 피는 여자>, 1907-1912 –오귀스트 엘리제 샤보

여성의 담뱃불은 ‘자유의 횃불’?

커티스의 다큐멘터리처럼 레이폴드도 버네이스의 눈부신 공로를 집중조명했는데, 바로 여성의 흡연을 촉진시켰다는 점이다. 버네이스는 1929년, 여성의 담배소비 촉진이라는 목적으로,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니와 손을 잡았다. 20세기 초,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보수적인 부르주아 계층이나 종교계의 눈에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었다. 이런 규범에 반기를 들면서 담배 제조사의 매출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담배회사의 의뢰로 버네이스는 1929년 뉴욕 부활절 퍼레이드에 가짜 이벤트를 계획했다.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던 여성 10여 명에게 담배를 피우며 퍼레이드에 참여하게 했고, 그들은 담배를 ‘자유의 횃불’이라 불렀다. 현장에 초대받은 기자들은 이 사건을 여성해방 운동의 해프닝으로 보도했다. 버네이스는 사건의 파급효과를 확신했다. 

“보스턴, 디트로이트, 윌링, 웨스트 버지니아, 샌프란시스코 등 각지의 신문이 뉴욕 퍼레이드 이후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에 관한 기사를 냈습니다. 극적인 연출이 매체를 통해 널리 퍼지며 낡은 사회규범을 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물론 터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전환점이 됐습니다.”(5) 커티스와 레이폴드의 다큐멘터리는 이 사건을 담배를 둘러싼 인식과 관습을 뿌리째 뒤흔든 천재적인 발상으로 다뤘다. “단 한 가지 상징적인 행동만으로 거부감을 없앴다.”, “낡은 사회규범이 단번에 무너졌다.”

흥미진진한 일화이긴 하지만, 널리 알려진 미국의 담배 문화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6) 버네이스가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니의 캠페인을 맡기 10여 년 전부터 미국 여성들의 담배 소비량은 이미 증가 추세였다. 여성인권 운동가들은 여성해방과 빅토리아 시대적 여성상에 대한 타파의 상징으로 담배가 사용되기까지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1920년대에 걸쳐 유행한 ‘톰보이’들은 남성성이 가진 힘의 상징인 담배, 술, 스포츠용품을 차용했다. 1910~20년 동안 미국인의 소비습관에 담배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전문가의 사회적 수완 때문이 아닌, 1차 세계대전 동안 발생한 일련의 사회·경제적 격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영역에 여성이 통합됐다. 여성의 임금이 인상되면서 구매력이 향상됐고, 실험의 기회가 많아졌다. 빅토리아 시대적 가치관이 후퇴하면서 소비주의가 널리 퍼졌다. 담배 제조사들도 상품을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특히 여성 고객을 겨냥해 ‘라이트’나 ‘소프트’ 같은 이름이 붙은 신상품을 출시했다. 

그런데 이렇게 자주 회자되는 ‘자유의 횃불’ 우화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바로 버네이스 자신이다. 이 사건을 다룬 여러 보고서의 출처도 모두 한곳으로 수렴한다. 버네이스의 자서전과 인터뷰다. 많은 작가들이 마치 과거 사실을 충실하게 고증한 과학적 연구자료인 것처럼 버네이스의 저서를 참고한다. 하지만 그 문서들은 홍보 자문가가 작성한 홍보자료다. 아이디어와 업적을 그의 공으로 돌려 명성을 얻고 새로운 고객이 되어줄 기업을 유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비꼬려는 것은 아니지만 몇십 년 후, 홍보업계가 인간의 정신에 끼치는 영향을 고발한 여러 에세이와 다큐멘터리에서 버네이스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그 일화를 찾아볼 수 있다. 

‘자유의 횃불’ 우화가 그렇게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은 음모가들이 공공의 불행을 공모하는 하나의 연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우화는 피상적으로는 사회적 사회작용에 대한 비판의 성질을 띠고 있지만, 소설이나 신화 같은 면도 있다. 대중조작의 천재들이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낸 끝에 역사를 바꾼다. 공공 인프라로서 시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이상을 가진 개인의 위업이 이어지며 시장이 형성된다. 현실에서 이런 접근법은 정치적 책임이 결여된 역사관을 퍼뜨린다. 문제는 몇몇 개인의 악행이지, 구조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시험을 버티지 못한다. 버네이스가 공공정보위원회에서 활약하고 대기업의 홍보자문으로 일하며 익힌 기술을 이용한 것은 홍보업자 한 세대 전체가 겪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경력이다. 아이비 리나 칼 바이어 같은 업계의 다른 거물들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리는 버네이스보다 훨씬 이전부터 미국 대부호들의 홍보자문을 맡았는데, 특히 1914년엔 백만장자 기업가 존 록펠러를 위한 광고 캠페인을 기획하기도 했다. 콜로라도주 방위군이 루드로에서 파업 중이던 광부들을 학살한 사건이 터진 후였다. 

하지만 홍보업계가 피어나는 데에는 버네이스도, 리도, 어떤 특정 인물도 필요치 않았다. 19세기 중반부터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미국 철도회사들이 위장 광고를 언론에 유포하거나 치부가 될만한 보도를 사전에 방지하려고 신문사를 인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7) 홍보업계는 1890년대에 상당한 힘을 얻게 되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추문을 폭로하는 저널리즘이 발달했다. 업계의 신진 거물이나 대부호에 대한 조사와 폭로가 성행했다.(8) “추문 폭로의 부상과 초기 홍보업계는 명백한 공존관계에 있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경영학 교수인 리처드 테드로가 사기업 이미지의 역사를 다룬 자신의 저서에 쓴 내용이다.(9)

홍보업계의 탄생은 수많은 부서로 이루어진 대기업의 탄생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대기업은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세계규모로 물자의 흐름을 조정한다. 전대미문의 비율로 부를 축적하고, 떠오르는 매체란 매체는 모두 이용해 돈을 영향력으로 바꿀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진정한 주연은 바로 이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지, 조직을 위해 일하는 직원과 자문가가 아니다. 그들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말이다. 

 

 

글‧앙토니 갈뤼조 Anthony Galluzzo
생에티엔 대학교 경영학 교수. 『La Fabrique du consommateur. Une histoire de la société marchande 소비자 공장. 시장경제 사회의 역사』 (La Découverte, coll. ‘Zones’, Paris, 2020)의 저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Stuart Ewen, 『PR ! A Social History of Spin』, Basic Books, New York, 1996.
(2) Adam Curtis, <The Century of the Self>, BBC, 2002.
(3) Edward Bernays, 『Propaganda. Comment manipuler l’opinion en démocratie 프로파간다.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La Découverte, coll. ‘Zones‘, Paris, 2007.
(4) Jimmy Leipold, <Propaganda. La fabrique du consentement 프로파간다. 동의 제조기>, Institut national de l’audiovisuel – Arte France, 2017.
(5) Edward Bernays, 『Biography of an Idea : The Founding Principles of Public Relations』, Simon and Schuster, New York, 1965.
(6) Cassandra Tate, 『Cigarette Wars : The Triumph of “The Little White Slaver”』,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7) David Miller & William Dinan, 『A Century of Spin : How Public Relations Became the Cutting Edge of Corporate Power』, Pluto Press, Londres, 2007.
(8) Serge Halimi, ‘Quand la presse américaine était vivante 미국 언론이 살아있었을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3년 8월호.
(9) Richard Tedlow, 『Keeping the Corporate Image : Public Relations and Business』, 1900-1950, JAI Press, Bingley, 1979.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을 받아보시고, 동시에 모든 PDF와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PDF와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