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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스터 존스> ― 세상의 외면 속에서 ‘하나뿐인 진실’을 향해 목숨을 건 기자의 이야기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미스터 존스> ― 세상의 외면 속에서 ‘하나뿐인 진실’을 향해 목숨을 건 기자의 이야기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3.0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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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영화와 <미스터 존스>

기자에 관한 영화는 대부분 진실의 추적과 폭로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건과 권력의 이면을 들추어낸다.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는 미국의 3대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 팀의 마이크(마크 러팔로), 샤샤(레이첼 맥아담스), 월터(마이클 키튼) 등이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하여 충격적인 스캔들을 밝혀내는 이야기이다. <더 포스트>(The Post, 2017)는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 벤(톰 행크스)이 베트남 전쟁의 진실이 담긴 정부기밀문서 ‘펜타콘 페이퍼’ 4천 장의 정보를 공개하고자 하자, 최초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이 회사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 공개를 지원하는 이야기이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2017)는 광주항쟁에 대한 독일인 기자(토마스 그레취만)의 진실 찾기와 한국인 택시운전사(송강호)의 각성을 담고 있다. 실제로 그 당시 공중파의 편파적인 방송으로 광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진실에 대해 무지 혹은 오인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장준환 감독의 <1987>(2017)의 전반부에서는 22살 서울대 대학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인해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 은폐하려는 경찰 박 처장(김윤석), 은폐를 거부하는 최 검사(하정우)가 갈등하는 가운데, 최 검사의 정보로 윤 기자(이희준)가 ‘물고문 도중 질식사’를 보도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스터 존스>(Mr. Jones, 2019)는 우크라이나의 기근과 죽음이라는 참혹한 현실에 대해 가레스 존스가 목숨을 건 취재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 1995) 등의 작품에서 섬세하고 박력 넘치는 연출을 보여준 폴란드 출신의 여성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가 감독을 맡았다. <미스터 존스>에서는 히틀러 최초 인터뷰 외신기자인 가레스 존스(제임스 노턴)가 스탈린의 막대한 혁명자금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되면서, 도청, 미행, 납치의 위협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에 잠입하여 참혹한 진실을 접하게 된다. 이 영화는 생명을 담보한 위험한 취재를 하며, 세상은 외면했지만 끝까지 진실을 추구한 기자의 삶을 그려낸다.

 

진실은 때로 두렵다: 「붉은 죽음의 가면」과 풍요/죽음
 

“진실은 때로 두렵다.” <미스터 존스>의 전반부에서는 가레스 존스가 런던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여정 속에서 독일의 동쪽 확대에 대한 염려와 소련의 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을 다룬다. 히틀러와 인터뷰한 최초의 외신 기자 가레스 존스는 독일의 전쟁과 동쪽 영역 확대로 소련의 대응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게 된다. 또 그는 세계경제가 무너졌는데 소련이 돈을 흥청망청 쓰는 이유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퓰리쳐상을 받은 뉴욕타임즈의 월터 듀런티와의 접촉 후 엄청난 결과를 찾았다는 모스크바 주재 기자인 파울 클레브의 전화를 받고, 존스는 스탈린과 인터뷰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한다.

소련 모스크바에서 파울 클레브의 죽음을 접한 존스는 스탈린의 황금인 우크라이나로 향하게 된다. 월터 듀런티는 소련 남부 곡창지대가 ‘스탈린의 창고’라며, 소련의 부가 사회주의 경제정책과 5개년 계획의 성공으로 인한 생산량 2배 증가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파울 클레브의 의문의 죽음과 기자들의 모스크바 격리로 존스는 이러한 주장에 의문을 느끼게 된다. 월터 듀런티의 부하 기자인 에이다 브룩스는 우크라이나가 ‘스탈린의 황금’이라는 정보를 존스에게 준다. 에이다 브룩스는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가레스 존스는 “진실은 하나이며 누구의 편도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로 잠입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영국 당수가 써준 자신의 추천서 서류에서 ‘나의 예전(previous) 외교 고문관’을 ‘나의 귀중한(precious) 외교 고문관’으로 고쳐, 기자가 아니라 외교관으로 우크라이나 잠입에 성공한다.

<미스터 존스>에서 다른 기자들이 가레스 존스에게 에드가 앨런 포우의 단편소설 「붉은 죽음의 가면」이라는 책을 언급하며 숨겨진 정보를 암시한다. 이 단편소설에서 성 안의 쾌락과 성 밖의 죽음의 대비는 소련의 풍요와 우크라이나의 기근의 대비와 닮아 있다. 이 소설에서 성 밖의 평민이 붉은 죽음(적사병)이라는 역병으로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기괴한 사건이 발생한다. 왕자가 물자가 식량을 충분히 비축하고 건강한 귀족과 하인을 불러들인 다음 성문을 걸어 잠근다. 성 안의 왕족과 귀족은 매일 사치스러운 파티를 즐기며 쾌락에 빠져든다. 이 책처럼 가레스 존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소련의 착취를 사회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풍요로 위장하는 거짓에 직면하게 된다.

<미스터 존스> 전반부의 스타일은 창문과 거울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우선, 창문은 반영, 관점, 분열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을 집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창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되며, 밖의 정경을 보여주는 창문에서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저자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시선의 객체와 주체를 보여준다. 존스와 비자 발급 직원의 모습이 창문을 통해서 여러 개의 모습으로 나뉘는 장면은 혼란에 감싸인 진실을 암시한다. 에이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존스가 우크라이나로 떠나겠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두 개의 모습으로 분리시키는 창문은 두 인물의 갈등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거울은 쾌락, 방종, 갈등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모스크바의 술집 장면에서 티팬티, 술, 마약, 성행위를 흔들리는 카메라, 빠른 편집으로 보여줘 쾌락, 방종, 풍요를 강조한다. 존스가 우크라이나로 출발하는 장면에서 떠나는 가레스 존스의 뒷모습과 고개 숙인 에이다 브룩스의 모습을 거울에서의 두 쌍으로 나누어지는 반영된 영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사상적 억압에서 복종 혹은 일탈하는 기자의 두 갈래 삶을 보여준다. 소련 당국에서 나온 요원의 시점 장면은 가레스 존스에 대한 감시와 시선의 카메라를 표현한다.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우크라이나의 기근과 죽음/식인
 

“우리 문제에 대한 대답은 바로 거기에 있소. 인간이오.” <미스터 존스>의 중반부에서는 우크라이나의 기근과 죽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길바닥의 죽은 시체, 아이들의 노래와 도둑질, 농가의 죽은 부부, 나무껍데기, 아이들의 식인 등으로 우크라이나 기근의 참상을 보여준다. ‘스탈린은 왕좌에 앉아. 너무 열심히 연주해서 줄이 끊어지네. 굶주림과 추위가 우리 집에 찾아왔네. 먹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구나.’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노래가 그 실상을 나타낸다. 아이들이 준 고기를 가레스 존스가 먹는 장면에서, “고기가 어디서 났어?”라는 존스의 질문에 아이들이 “콜랴.”라고 답변한다. 이에 존스는 ‘아이들의 오빠인 콜랴가 고기를 구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존스가 “콜랴는 어디에 있냐?”라고 묻자, 아이들이 고기를 뜯어먹으며 문 밖을 가리킨다. 존스가 문을 열고 눈 속에 있는 콜랴의 시체와 잘려진 신체부위를 보자마자 먹었던 고기를 모두 토해낸다. “콜랴.”라는 아이들의 답변은 바로 “콜랴(오빠의 고기).”라는 의미였다는 점에서 식인을 할 수밖에 없는 끔찍한 기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탈린이 곡식을 잡고 있는 그림은 바로 우크라이나의 식량 약탈과 소련의 풍요를 상징적으로 대비시킨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표현으로 이러한 실상을 고발한다. 소련 요원이 영국인 기술자 6명의 목숨을 담보로 협박하자, 체포된 가레스 존스는 ‘농부들의 행복한 얼굴, 풍요로운 환경. 기근은 없습니다.’라고 답변한다. 가레스 존스를 찾아온 듀런티는 “용감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면 안 된다.”라고 위로하는 한편, “스탈린에게 반항하는 것이 기자의 직분은 아니다.”라고 충고한다. 가레스 존스는 듀런티에게 여행기념품이라며 나무껍데기를 주면서 “먹을 게 이것밖에 없었다.”라며 그를 비판한다. 이에 듀런티는 “살다보면 그럴 때가 오는 것이다. 보잘 것 없는 명분을 합한 것보다 더 큰 명분이 있다.”라는 말로 자신을 변명한다.

<미스터 존스> 중반부의 스타일에서는 익스트림롱숏에서 바스트숏으로의 카메라 변화를 통해 상황에서 정서로의 시선 변화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에서 존스가 도망치는 장면에서, 익스트림롱숏, 롱숏, 미디엄숏, 바스트숏으로의 변화는 점점 다가오는 카메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존스가 눈 속을 헤매다가 늑대를 보고 놀라는 장면에서 익스트림롱숏과 풀숏을 통해 인간의 미약한 존재를 강조한다. 어머니가 살던 집에서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안에서 밖을 내다보게 되는 장면은 존스가 우크라이나가 처한 상황의 외부(관찰)에서 내부(체험)으로 변화해가는 것을 표현한다. 존스가 식인 행위를 깨닫고 구토하는 장면에서 미디엄숏에서 바스트숏으로 갑자기 다가가는 카메라로 충격을 표현한다. 존스가 죽은 부부와 나무껍데기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통해 기자의 시선과 참담한 현실을 함께 보여준다. 듀런티가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은 권력과 타협하는 기자의 비굴함을 표현한다.

 

말하는 게 당신의 의무이고 듣는 게 우리의 의무이다: 『동물농장』과 진실의 외침
 

<미스터 존스> 후반부에서는 영국으로 돌아간 가레스 존스가 우크라이나의 기근과 죽음을 폭로한다. 스탈린의 기근인 ‘홀로도모르’로 우크라이나인 수백만 명이 사망한다. 우크라이나의 참혹한 기근과 끔찍한 식인을 겪은 가레스 존스에게는 영국 런던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고기를 먹는 모습이 낯설게 보인다. 전반부에서는 듀런티가 에이다의 기사에 빨간 줄을 긋는 반면, 후반부에서는 에이다가 듀런티의 왜곡 기사에 빨간 줄을 긋는 모습에서 에이다의 변화를 보여준다. 가레스 존스가 실상을 폭로해, 허스트 신문에 ‘인간이 만든 기근에 숨지다. 우크라이나에 내린 죽음.’이라는 기사가 실린다. 하지만 가레스 존스는 소련 경찰과 연루된 가이드에게 내몽골에서 납치되어, 30세 생일 하루 전날 총에 맞아 살해된다. 반면에, 월터 듀런티는 미국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플로리다에서 73세까지 장수하였고 그의 퓰리쳐상은 철회되지 않았다.

<미스터 존스>에서는 스탈린의 인위적 기근에 대한 보도와 『동물농장』의 비판이 평행구조로 펼쳐진다. 가레스 존스는 무고한 기술자 6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기사(논픽션)를 쓸 수 없게 되자, 소설가 조지 오웰에게 소련과 우크라이나의 실상을 전하면서 소설(픽션)로 써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조지 오웰은 “말하는 게 당신의 의무이고 듣는 게 우리의 의무이다.”라며 진실을 외치는 존스를 경청하고 격려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사를 통해 진실을 보도하려는 가레스 존스와 소설을 통해 그 진실을 풍자적으로 전달하는 조지 오웰을 평행구조로 보여준다.

<미스터 존스> 후반부의 스타일에서는 더블링, 사운드, 교차편집, 상징을 통해 왜곡/저항, 진실/광기, 세상/시선의 대비를 보여준다. 기사 문구에 빨간 줄을 긋는 장면에서는 듀런티가 에이다의 기사에 빨간 줄을 긋는 모습(전반부)과 에이다가 듀런티의 기사에 빨간 줄을 긋는 모습(후반부)의 더블링을 통해 에이다의 태도 변화를 보여준다. 가레스 존스가 우크라이나 어린이의 노래를 환청으로 들으며 괴로워하는 장면도 표현주의 기법의 사운드와 흔들리는 카메라로 표현한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실상(중반부)과 미쳤다고 조롱당하는 존스(후반부)의 대비를 보여준다. 존스가 허스트지에 진실을 알리러 자전거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패스트모션, 교차편집, 날카로운 음악소리로 다급한 주인공의 심정을 표현한다. 창문은 세상의 창, 반영, 진실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전달한다.

 

사회주의/자본주의의 그림자: 스탈린의 기근 ‘홀로도모르’와 퓰리처상
 

<미스터 존스>는 내러티브와 스타일에서 대비와 평행을 강조한다. 이 영화에서 창문은 목숨을 걸고 참혹한 실상을 보도한 기자의 진실을 상징하며, 거울은 현실과 진실의 분열과 왜곡을 상징하면서 대비를 보여준다. 가레스 존스의 우크라이나 기근에 대한 기사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소설의 평행구조로 논픽션과 픽션의 상호텍스트성을 보여준다. 소련의 풍요와 우크라이나의 기근의 대비는 퓰리쳐상 수상자인 듀런티의 현실 타협과 가레스 존스의 목숨을 건 진실 찾기의 대비로 이어진다. 사실상 제목인 <미스터 존스>는 퓰리쳐상이라는 명예도 없고 안락한 삶도 없이 자신의 이름(가레스)을 알리지 못했지만 자신의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기자의 처절한 외침을 표현한다.

<미스터 존스>는 진실에 대해 드러내기/은폐하기라는 기자의 두 가지 길을 보여준다. 가레스 존스는 스탈린의 기근 ‘홀로도모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건 취재를 한다. 반면에 ‘언론과 문필 분야에서 뛰어난 대중적 공로와 업적을 지닌 사람에게 수여하는 퓰리쳐상’[1]을 수상한 월터 듀런티는 진실을 은폐한다. 가레스 존스는 사실의 전달, 사회적 쟁점 규정, 권력의 남용 억제라는 언론의 세 가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래서 이름(명예) 없는 ‘미스터 존스’는 그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바치게 된다.


참고자료
[1] ‘퓰리처상’, ≪다음백과≫, 2021.02.10.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3p4213a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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