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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정약전은 왜 흑산도를 떠났을까 - <자산어보>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정약전은 왜 흑산도를 떠났을까 - <자산어보>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1.04.0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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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스틸컷.
'자산어보' 스틸컷.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는 표면상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약전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정약전이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집필한 과정을 세밀하게 다룬다. 하지만 서사 전체를 유심히 살펴보면,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창대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정약전과 창대의 이야기가 교차 되고, 중반 이후에는 창대의 비중이 높고, 창대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사대부인 정약전과 어부인 창대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의 역할은 두 가지이다. 그는 주인공으로서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그는 임금과 독대할 정도로 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명문가 사대부 출신이다. 하지만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외딴섬 흑산도로 유배된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흑산도 생활에 초점을 맞춘다. 당대의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저항하던 인물이 백성들의 삶에 천착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이준익 감독의 최근 연출 방향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정약전은 또한 ‘정신적인 스승’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학문에 관심이 많은 창대의 삶과 영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흑산도 어부 청년 창대는 정약전이라는 ‘정신적인 스승’을 만남으로써 학문의 발전을 이루고, 뭍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마침내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한다. 따라서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자산어보’ 집필 과정을 탐색하는 스토리지만, 창대의 삶과 내면의 변화를 추적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자산어보' 스틸컷.
'자산어보' 스틸컷.

<자산어보>는 인물, 주제, 서사구조 등에서 이준익 영화의 종합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선 인물 면에서 폐쇄적이고 엄혹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희생되는, 그러면서도 시대의 파고에 온몸으로 맞서는 인물을 다룬다. <사도>, <동주>, <박열>의 흐름을 이어간다. 또한 굵직한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과 정서에 집중한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그가 어떻게 사상의 누각을 허물고 백성의 실질적인 삶에 다가가는지를 탐색한다. 이때 한양에서 흑산도로 옮겨간 공간의 이동이 인물과 서사의 변화를 이끈다.

<자산어보>의 서사구조는 복합적이다. 정약전은 출발한 곳으로 귀환하지 못한다. 그러한 점에서 정약전은 불우한 인물이다. ‘출발-입문-귀환’으로 정리되는 일반적인 영웅 서사와 어긋난다. 창대는 흑산도에서 뭍으로 건너와 양반의 삶을 일부 경험한 뒤 섬으로 돌아온다. ‘흑산도-육지-흑산도’의 이동 경로다. 창대의 행적은 <왕의 남자>의 남사당패 광대 장생과 비교할 수 있다. 장생은 권력의 심장부에 들어가서 왕과 사대부를 희롱하고 풍자한다. 저잣거리의 광대 장생은 궁궐에서 한바탕 광대극을 벌이다가 다시 저잣거리로 돌아온다. ‘저잣거리-궁궐-저잣거리’의 이동 경로다.

정약전이 귀환하지 못한다고 해서 주인공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성리학자에서 민중의 삶을 중시하는 지식인으로 변모한다. 구중궁궐의 권력 투쟁을 질타하고, 추상적인 성리학 담론이 아니라 실용적인 지식을 추구한다. 당대의 지식인이 중시해야 하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깨닫는다. ‘자산어보’는 그 책에 실린 내용뿐만 아니라 집필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고, 영웅 서사의 핵심 요소인 ‘영약’에 해당한다.

 

'자산어보' 스틸컷.
'자산어보' 스틸컷.

정약전과 창대의 행적은 곧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며, <왕의 남자>와도 비슷하다. 저잣거리 광대가 궁궐에서 경험한 임금과 사대부들의 행실, 외딴섬 어부 청년이 나주 관아에서 경험한 사또와 아전들의 행위가 인물에게 미친 영향은 거의 유사하다. 두 영화는 서사구조뿐만 아니라 주제 측면에서도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셈이다. 즉 <자산어보>는 이준익 영화의 인물, 주제, 서사구조가 집약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산어보>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대해서는 몇 가지 고민해볼 점이 있다. 정약전은 ‘사람 공부’에서 ‘사물 공부’로 방향을 전환한다. 탐구 대상이 성리학에서 물고기로 바뀐다. 그런데 정약전은 후반부에 흑산도에서 인근 섬으로 이주하면서 ‘임금과의 거리’를 거론한다. 이는 그의 내면이 여전히 성리학의 세계에 발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공부하는 창대에 대한 질타는 일종의 허위가 될 수도 있다. 정약전이 실제로 흑산도 인근의 우이도에 머무른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자산어보>가 이를 굳이 수용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정약전이 흑산도를 떠난 순간부터 갓 잡은 생선처럼 펄떡거리던 인물인 가거댁이 생기를 잃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산어보' 스틸컷.
'자산어보' 스틸컷.
'자산어보' 스틸컷.
'자산어보' 스틸컷.

한편 창대는 정약전과 달리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창대는 자신이 나고 자란 흑산도 어민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인가? 그는 돌아오는 배 위에서 “흑산”이라는 아내의 말을 수정한다. “흑산(黑山)이 아니라 자산(玆山)”이라고 말한다. 이때 창대의 의상이나 말투는 영락없이 양반의 그것이다. 뭍에서 잠시나마 관아의 일을 배우던 시기의 언행이다. 그는 왜 아내에게 양반의 언어로 말하는 것일까. 아마도 ‘정신적 스승’인 정약전을 추모하고, 그의 영향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 ‘양반의 피가 흐르는’ 창대가 여전히 남아 있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창대의 귀향은 불완전한 귀환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자산어보>의 정약전은 성리학의 추상적인 세계에서 민중의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실학자로서 물고기학(學을) 새로 정립하고, 유배의 세월을 배움과 자기완성의 시기로 삼는다. 영화는 정약전이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인간 승리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담아낸다. 그런데 <자산어보>는 많은 장면에서 ‘힘’이 들어간 모습을 보여준다. 창대의 서사가 강화되는 순간부터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대사들, 정약전과 정약용의 형제애를 강조하는 장면들, 아전들의 횡포를 반복하는 에피소드들은 과유불급으로 느껴진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집필한 동기나 과정과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절제와 간결함의 미학이 빛났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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