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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음악은 '뮤직'이 된다 - <마니에르 드 부아르> 음악편 독자 리뷰 ⓹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음악은 '뮤직'이 된다 - <마니에르 드 부아르> 음악편 독자 리뷰 ⓹
  • 조승환
  • 승인 2021.04.09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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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에르 드 부아르> 음악편 독자 리뷰 ⓹

 

 

눈과 귀로 세계를 받아들이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Manière de voir)>는, 직역하면 ‘보는 방식’을 의미한다. 보는 것은 이해하고 사유하기 위해 세계를 받아들이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다. 즉, ‘보는 방식’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세상을 사유하는 방식과 직결된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 3호는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듣는 것’의 영역인 음악으로 그 눈길을 돌린다. 『뮤직, 사랑과 저항 사이』라는 호 제목은 음악이 다양한 차원에서 지닌 넓은 스펙트럼을 함축한다. 특히 표지는 제목과 어우러져 독자의 눈길을 끈다. 그림은 콜라주(collage)를 통해 ‘음악’으로 표상될 법한 존재들을 등장시킨다. 트럼펫, 드럼통 등의 악기의 얼굴을 한 역동적인 시위자의 모습이 등장하며, 그들의 손에는 새총, 화염병 대신 높은음자리표와 음표가 들려 있다. 한 시위자의 얼굴이 있어야 할 부분에는 스피커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이 저항하는 대상은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는 가위의 형상이다. 아마도 음악을 땅에서 뿌리 뽑으려는 누군가일 것이다. 한편, 가장자리에 걸어가고 있던 스포트라이트는 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다.  음악은 사랑과 저항 사이 그 가운데 어딘가에 위치한 점들의 집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무크지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눈에 익은 이름들이 몇몇 보인다. 책 『오리엔탈리즘』으로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에드워드 W. 사이드부터 싱어송라이터 하림까지. 세계적 평론가 23명은 각자가 지닌 '마니에르 드 부아르’로 ‘음악’이라는 거대한 총체를 나름대로 이해하고, 독자에게 설명한다. 국적도, 나이대도 다른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음악의 다양한 측면을 곰곰이 곱씹어보게 되기도, 색다른 측면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각 평론가가 다루는 분야도 굉장히 광범위하다. 컨트리뮤직, 재즈 등 음악의 흐름을 다루기도, 바그너, BTS 등 음악가 개인을 다루기도 한다. 다양한 방식 속에서 한 가지 어렴풋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음악은 세계를 이루고 있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이다. 청각적 차원의 현대 도시를 다루고 있는 쥘리에트 볼클레르(Juliette Volcler)의 글이 1부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는 듯하다. 

 

음악과 뮤직의 차이

<뮤직, 사랑과 저항 사이>에 실린 글들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 그리고 음악가의 삶을 조명한다. 아마 제목에서 ‘음악’이 아닌, ‘뮤직’을 사용한 이유도 그러한 맥락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음악'은 악기 및 소리가 자아내는 분위기를 칭한다면, '뮤직'은 음악과 음악의 주변부에 있는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포함하는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하나의 곡은 그 곡을 쓴 음악가의 삶, 그리고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모두가 포함된다. 인간의 삶에서 떨어져 나온 음악이라는 파편은, 필연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를 다루기도 하고, 세계의 구성원인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맡기도 한다. 

 

에릭 사티의 삶이 그러했다. 아가트 멜리낭(Agathe Mélinand)의 글을 읽으며 처음 독대한 그의 삶은 “복잡한” 삶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였으며, “신비주의를 추종하는 더러운 기생충”이라 평가 받기도 했다. 죽기 직전 “샴페인과 진통제 외에 입을 대지 않았던” 그의 삶은 그의 음악은 <짐노페디 피아노 1번>(1888)에 녹아들어가 있다. “느리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장중”한 곡조, 그리고 연주자의 연주에 의해 불규칙성을 띄는 저음의 베이스 노트(note). 음악에는 작곡가가 당대 사회와 맺었던 관계가 녹아들어가기도 한다. ‘뮤직’은 음계와 음정을 뛰어넘어, 세계의 자그마한 파편들과 음악을 통합하는 개념이리라 생각해본다.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음악, 뮤직이 되다

뮤직은 음악과 사회의 멜랑주(mélange 조화)를 이끌기도 하지만, 동시에 음악은 개인을 집단화하는 힘을 통해 뮤직을 구현한다. 소울이 그러했으며, 테크노펑크도 그러했다. 소울 음악은 “아프리카화의 특별한 형태”이자, “흑인 대중을 위해 만들어진 장르”였다. 이러한 음악 장르는 아프로-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집단화를 이루었다. 테크노펑크 또한 “흑인 음악의 흑인적 성격을 강조”했다.

 

음악은 시대와 국적을 초월하여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하나의 현상으로 ‘뮤직’이 확인되기도 한다. 예술 비평가 에블린 피에에(Evelyn Pieiller)는, 2003년도 프랑스의 ‘레트로 문화’에 주목했다. “그 시대의 정신에 다시 몰입하는 것”을 넘어, “새롭게 부활”시키는 흐름이 당시 에블린이 목격한 프랑스의 문화였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이러한 향수는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2년 ‘응답하라 1997’을 시작으로 과거의 한국 라이프를 현재로 가져오는 또다른 ‘레트로’ 현상이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으며, 그 당시 유행했던 음악들이 차트를 역주행하기도 했다. 음악의 작용을 통한 뮤직의 구현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지역적 차이를 뛰어넘기도 한다.

이렇듯, <마니에르 드 부아르>는 음악이 지닌 정치적 힘, 그리고사회적 총체와 음악이 형성하는 관계를 조명한다.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던 기본 텍스트가 <음악과 정치(Musique et Politique)>라는 사실은 무크지가 지닌 지식의 깊이와 전문성을 방증한다. 더불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뮤직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뮤직에 관련된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다시금 뮤직의 힘을 찬찬히 곱씹어볼 수 있게 한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표지로 되돌아온다면, 훨씬 더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뮤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글 · 조승환

서울대학교 2학년 재학.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고 예술 작품 감상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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