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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21세기의 분노, 21세기의 <레 미제라블>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21세기의 분노, 21세기의 <레 미제라블>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1.04.12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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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삼색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
프랑스 삼색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

21세기 장발장은 어떻게 탄생 되는가

영화는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프랑스 삼색기를 두른 소년 이사(이사 페리카)가 달려가 도착한 곳은 결승전에 진출한 프랑스를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시민들이 모인 파리의 심장 개선문이다. 이사를 포함해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프랑스의 승리를 응원한다.

하지만, 현재 '이사'가 살고 있고,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된 '몽페르메유'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15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하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불쌍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장발장은 빵 한 덩어리를 훔친 혐의로 19년의 옥살이를 했다. 자베르 경감의 눈에 장발장은 엄한 벌을 받아야 할 범죄자에 지나지 않았다.

 

쓰레기 취급 받는 쓰레기 더미 위의 ‘이사’
쓰레기 취급 받는 ‘이사’

자베르 경감에게 장발장이 평생 범죄자로 낙인찍혔듯이, 현재 공권력의 눈에는 ‘이사’와 같이 몽페르메유에 사는 빈곤층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은 과거의 문제아이자, 미래의 범죄자이므로, 현재 범죄자 취급을 해도 되는 인물로 취급당하고 있다.

지방에서 몽페르메유로 전근 온 스테판 경감은 "단합 없인 팀도 없고 팀 없이는 우린 혼자야"라고 외치는 크리스와 그와다와 같은 순찰팀에 배정받는다. 물론 경찰이 외치는 단합은 자기들만의 단합이지 이민자와 빈민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 지역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 이민자들과 파리의 빈민이 얽혀 사는 곳이다.

경찰들은 이 지역을 무법자처럼 통치하려 들고, 각 구역을 관할하는 리더들은 경찰들과 결탁해 사리사욕으로 부패해 있다. 이곳 청소년들은 사고뭉치, 골칫덩어리나 문제아 취급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분노의 씨앗을 키우며 자라고 있다.

 

인종차별과 공권력과 그것에 기생하는 어른들
인종차별과 공권력과 그것에 기생하는 기성세대들

영화는 2005년 아프리카계 이민자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폭동을 간접 조명하며, 몽페르메유의 현재를 보고 있다. 2005년 시위는 이민자 사회에 만연했던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했고, 그 시작에는 문제아로 규정된 청소년이 있었다. 

 

‘문제아’라고 규정짓는 잣대

문제아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다. 문제를 안고 있는 청소년의 비뚤어진 행위 뒤에는 반드시 문제의 원인이 숨어있다. 이 사실은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상처로 얼룩진 아이들, 그 상처는 대개 어른들이 지운 얼룩일 경우가 더 많다. 태어나면서부터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없다. 환경이 중요하다. 영화는 문제아 속에 문제 있는 사회를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을 잘 살피지 않으면 이 사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하지만 몽페르메유에 사는 청소년들은 새끼 사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래서 이곳 청소년들은 권위로 누르고, 겁박만 일삼는 경찰을 신뢰하지 않는다. 경찰은 자기들이 부당한 취급을 한 청소년에게도 “넌 원래 사고뭉치니까, 늘 이런 취급을 받는 거고, 이 모든 건 네 잘못”이라고 말한다. 결국 인간적인 사과도 정의로운 절차를 밟을 기회를 놓친 경찰과 지역의 기성세대는 어린아이들에겐 조롱의 대상이 되고, 청소년들에겐 분노의 대상이 된다.

 

드론을 이용해 제3의 목격자를 내세워 새로운 미디어 대안 제시와 변화하는 시각
드론을 이용해 제3의 목격자를 내세워 새로운 미디어 대안과 변화하는 시각 제시

21세기 <레미제라블>을 만든 레드 리 감독은 자기가 나고 자란 곳의 기가 막힌 상황을 세상에 알리고 보여주려고 작정하고 만들었다. 어느 미디어도 주목하지 않았던 빈민과 이민자, 경찰과의 긴장 관계를 밀도 있게 보여주며, 21세기 경찰 스릴러이자 새 시대의 묵시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파리 외곽의 낙후된 몽페르메유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사건을 통해 이곳에 사는 다양한 인종, 연령, 계급을 카메라에 굉장히 통찰력 있게 담아낸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같은 생생한 앵글과 서로 다른 계층의 분노가 만들어낸 충격적인 서사를 통해 이 시대에 가장 의미 있는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던진다. 

 

21세기 분노의 노래

국가라는 조직 문화는 암묵적 신념 위에 표방하는 가치를 인공물로 형성하며 만들어 간다. 프랑스 국민은 국가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암묵적 신념과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만들어간다고 믿고 있다. 물론 이 신념과 가치는 이상 문화이다. 우리 현실 문화는 이것과 상당히 다르다. 이 둘 사이에 간극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상을 내세워놓고 현실이 점점 더 뒤로 가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때가 문제다. 이 격차가 벌어지면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국민들에게 국가는 마치 위선자처럼 느껴진다. 표리부동한 것이다. 겉으로는 정의롭고 청렴한 것처럼 굴지만, 속으로는 자기들의 욕심만을 채우는 음흉한 위선자들로 보인다.

 

“21세기 레미제라블, 폭탄 같은 작품”
“21세기 레미제라블, 폭탄 같은 작품”

자유, 평등, 박애가 프랑스가 표방하는 가치라고 했는데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국가 권력인 경찰은 전혀 다른 태도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을 보며 자라는 프랑스 청소년들의 가슴에는 불신과 분노가 자라난다. 경찰들의 잘못된 태도와 판단, 이에 따른 행동들이 반복되자 청소년들은 공권력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물론 프랑스가 지키려고 했던 가치가 현실에 완전히 적용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구성원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이상에 근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 구성원들은 긍정한다. 이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상과 가깝게 만드는 노력, 그것이 진짜 구성원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이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병을 들고 한 소년이 네 앞에 서서 말할 것이다. “조심해, 곧 폭발한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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