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학교 가는 길> - 어머니의 이름으로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학교 가는 길> - 어머니의 이름으로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5.13 10:1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 가는 길>은 몇 해 전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벌어진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인근 학교를 다닐 수 없어 하루 3시간 이상 스쿨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는 현실에서 빈 학교 부지에 학교를 설립하자는 당연한 요구가 당연하지 않게 돌아가는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 먼 길을 통학하는 학생들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더 배려하는 게 아니라 더 배척하는 기이하지만 실재하는 현실을 기록하면서 이를 풀어나가는 여정을 다룬다.

 

엄마-되기

<학교 가는 길>이 흥미로운 점은 그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거나 발달 장애인에 대해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이 사건의 당사자로 발달 장애우의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장애인을 다루는 다수 작품에서 장애인을 당사자로 두고 어머니는 이를 대변하거나 장애 당사자의 주변인으로 장애 자식의 돌봄 노동에 매인 피해자로 다루어져 왔다. <학교 가는 길>은 장애 아동의 어머니를 당사자로 두고 그녀들의 주체적인 삶과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처음 지현이 엄마, 재준이 엄마, 혜련이 엄마, 현정이 엄마로 시작하지만 곧 이은자, 정난모, 장미희, 조부용으로 자기 이름을 가진 여성으로 소개된다. 네 명의 여성은 장애를 가진 지현, 재준, 혜련, 현정을 각자 소개한다. 네 여성 만큼이나 네 아이도 각자 개성과 고유함을 가진 존재들이다. 영화는 아이를 낳은 부모가 마주하는 돌봄 노동을 평생 해야한다는 책임감에서부터 점에서, 우리 사회 장애 혐오를 최전선에서 만나면서 이를 풀어가는 여정을 담는다.

 

영화는 미디어에서 흔히들 재현하는 장애인 가족이 갖는 연민피로 (정서적 고갈로 인한 번아웃)을 논하는 대신, 세상에 맞서는 네 여성의 성장기를 담는다. 이들은 아이를 가족으로 만나 자기 안의 자신과 자기 밖의 자신을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환경을 성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조금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엄마-되기’ 영화이다. 엄마-되기는 희생과 헌신을 전면에 내세운 모성 이데올로기 속 납작하고 당위론적 엄마가 아니라 한 인간이 사회에서 가지게 되는 역할로서 엄마 역할을 다층적으로 풀어간다. 여기서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서 그런 엄마-되기의 연대를 보여준다.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만들어갈 수 있는 길과 그 가능성을 도전한다. 이즈음 되면 무엇을 이뤄냈느냐 보다 함께 길을 만들어가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다.

 

일그러진 정상성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부유한 엘리트만 있는 것이 아니거늘, 어찌된 셈인지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는 자꾸만 시선을 부유한 엘리트에 초점을 맞추고 욕망하게 한다. 욕망하면 할수록 나의 방식으로 나의 상태에 따라 나를 긍정하며 더불어 살기가 어려워진다. 오히려 스스로를 ‘결여의 존재’로 인지하고 상대적 상실감과 박탈감에 휩싸이게 된다. <학교 가는 길>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강서구 주민들의 반응이 그러하다. 반대가 아니란다. 왜 강남이 아니고 강서구에 기피시설을 다 모아놓느냐는 논리 아닌 논리를 당당하게 주장한다. 영화는 그런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을 가까이서 담아낸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게 한다. 영화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언론과는 다르게, 그 상황을 어머니들 자리에서 가만히 지켜본다. 영화에서 짧게 지나가는 어머니들의 한숨의 순간이 그래서 그 어떤 강한 투쟁의 언사보다 힘 있고 와 닿는다. 상대적 결핍과 상실감에 절어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는 시선과 태도 속에는 우리 모습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스스로를 정상성의 범주에 두고 상상하는 지, 그럴수록 얼마나 쉽게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고 밀려나는 지를 말없이 일깨운다.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발달 장애인 어머니의 자리를 강서구 주민과 대척되는 적군과 아군의 모습으로 자리 매김하지 않는다. 어머니들 역시 무관심했지만 자신의 일로 다가와 경험하고 풀어가기 위해 세상을 만나면서 점차 활동가가 되어간 것이다. 그녀들의 여정이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나와 아이를 지키기 위한 작은 한 걸음들이 모여 세상에 나아가게 한 것이다. 한끝 차이이지만 사실은 그 차이가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이 자리는 바로 이런 한 끝의 차이로 인한 정치적 투쟁에 크게 빚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