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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소문자 한국인, 그러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한국인 모습 김윤석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소문자 한국인, 그러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한국인 모습 김윤석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1.05.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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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들리는 한국 사회의 다면체

추격자
추격자

 

 

변방성(Marginality)이란 본질이 아닌 시류적 혹은 이념적 생산물이다. 사람 몸의 두뇌와 같은 것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진 나머지 두뇌 외의 기관들은 그저 뇌의 부속물 정도로만 여기는 인식이 발생한다. 그 편견과 착오가 중심부/주변부(center/periphery) 이원론이다. 중심이 주변을 지배하고 유기체 전체를 지배한다는 생각. 그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은 건강하고 진보적인 사고일 것이다. 왜냐하면 뇌가 신경계통을 통해 몸 전체 기관을 지배하는 기능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부분이 불필요하거나 전혀 일을 하지 않는 무능력한 존재라고 보는 시각은 분명 오류고 잘못된 사고이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든 생물학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그런 뇌-중심사고는 잘못이고 착오가 분명하다. 보수적이고 불평등, 불공정한 생각의 시작은 바로 편향적 사고의 대표격인 중심부/주변부 분기적 사고다.

본래 지역적 안배의 개념인 변방성은 그러나,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한다. 한 가정에도 중심부인 가부장과 여성을 포함한 자식들의 변방부가 존재하고, 국가에서도 중심부인 대통령과 정치권이 있고 국민들을 지칭하는 변방부가 있다. 그야말로 본래의 의미라고 간주되는 국토의 중심부는 수도 서울이고 가까운 경기도부터 시작해 부산, 제주도 등 천리 만리 머나먼 지역, 시골이라 지칭되는 곳까지, 시도 읍면 동리를 떠나 무차별하게 수도를 떠난 곳은 너나 할 것 없이 변방이라 통칭된다. 이 편협한 사고, 동서를 분당하고 남북을 차별하는 이러한 사고의 발단은 분명 정치적 거버넌스의 공학적 사고, 설계적 사고에서 연유한 것임에 분명하다.

인간의 존재 역시 중상류층의 중심부와 중하류인 변방부가 있고,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 중심과 주변이 나뉜다. 젠더에서도 중심인 남성과 변방인 여성이,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도 크게 이성애자 중심과 나머지 모두 변방으로 나뉘고 더 정확히는 그 안에서 다시 젠더적 관점이 가미되어 남성이성애자 중심과 여성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소위 LGBT영역과 같이 취급되는 여성이성애자들은 중심에서 이탈되어 변방으로 취급 받는 억울하고 부당한 사회적 존재들이며 사랑의 방식이다. 이성애에 있어서도 여성은 남성에 의해 선택 받아야지 먼저 선택해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존재하는 모순지대. 만일 남녀가 동등하게 서로를 선택하는 평등한 사랑의 방식이 있다면 그건 분명 진보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보편타당한 인간의 권리를 구가하는 현대적인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

 

2. 한국 사회의 표출

거북이 달린다
거북이 달린다

 

김윤석이 연기한 인물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그 인물들은 우리 시대 한국 사회의 징후를 읽게 한다. <추격자>(2008)에서 엄중호라는 인물은 전직 경찰인데 지금은 포주로 일한다. 그는 출장 마사지를 운영하면서 불법적인 일을 하며 사는 존재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한국 사회는 법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직 형사가 왜 윤락업에 종사하며 살게 되었을까? 그 윤락녀들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 영화의 시선은 통념을 위반한다. 일단 그가 형사를 하면서 불법적인 일에 손댔다가 자기만 잘려나갔다는 설정이 또한 그를 경험적으로 설정한다. 영화가 그를 무작정 옹호하려는 의도를 보이진 않는다. 대신 권력의 뒷배가 없는 자는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하지 못한다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엄중호는 그 부분에서 반사회적 인간이 된다.

<거북이 달린다>(2009)의 조필성 역시 경찰이다. 이 영화는 한국사회의 변방성을 보여준다. 그는 충청도 시골의 작은 마을에 근무하는 경찰인데 정직하지는 않은 부패한 경찰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과 친한 조폭조직의 청을 받고 함정수사를 통해 경쟁자 윤락업자를 박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범인 검거 등의 실적이 없고 무능해서 집에서 거의 쫒겨나다시피 할 정도다. 현상금 1억이 붙은 탈옥범을 잡으려고 하지만 코미디언을 방불케할 정도의 무모함과 무능함으로 잡기는커녕 목숨이 붙어있기도 어려울 정도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부패와 결탁되어 있고 지역의 공권력은 도시에 비해 더욱 느슨하고 허술하다는 인식을 하게 한다.

<황해>(2010)의 면정학은 연변동포 조폭두목이다. 연변인 소재는 디아스포라, 다문화 주제를 끌어온다. <황해><해무> 두 편의 영화가 그러한 소재 및 주제를 토론하기에 적합한 영화들이다. <황해>는 연변인 내부의 문제를 그리고, <해무>는 한국 입장에서 연변조선족을 바라보는 시점을 취하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황해>의 주인공 구남(하정우)은 도망간 아내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오고 온 김에 조폭 면정학의 부탁을 받아 누군가를 살해하고 손가락을 확보해 오는 일을 수행하게 된다. 도망간 아내의 에피소드는 현재 중국에 속해있는 연변조선족의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아내는 왜 한국으로 도망왔을까? 중국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모든 사회주의적 전통과 규범이 느슨해지고 붕괴된 현상을 기반으로 하면서, 민족갈등 문제까지 가미된 혼란한 상황을 드러낸다. 도망간 아내 문제는 사회주의 가부장 권력의 붕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가치관의 침입으로 인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해체 및 조선족으로 대표되는 소수 민족과 지배적 민족 집단인 한족 사회주의 권력과의 거버넌스 갈등의 양상이라 볼 수 있다. 한국에 온 아내를 결국 찿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보게 되는 조선족 여성의 유린, 억압, 불법적 상황을 읽게 된다. 그 하층적 변방 사회에 자연스레 기생하게 되는 중국 조폭조직과 탈법적 활동 등의 사회적 질병이 번져간다.

<완득이>(2011)의 이동주는 다문화인 교회를 운영하는 고등학교 교사가 주인공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도완득이라는 다문화 학생이다. 학교에선 학폭 가해자, 문제아로 지목된 학습지진, 불량 학생이다. 그는 왜 불량학생이 되었을까? 그 원인도 알고 보면 납득할 만한 사회적 배경이 있다. 아버지는 카바레에서 춤추던 사람이었다가 폐업한 이후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쇼를 보여주고 물건을 파는 행상업에 종사하는 이다. 게다가 꼽추라는 장애까지 갖고 있는 가난한 사람이다. 어머니는 필리핀 이주민인데 별거한 채 식당종업원으로 전전한다. 장애인, 다문화가정, 일정한 정주처가 없는 떠돌이 장돌뱅이 날품팔이 직업, 혼혈이라는 사회적 조건은 한국 정부가 홀대하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영역이다.

<해무>(2014)의 강철주는 작은 배를 갖고 고기를 잡는 선장인데 영화의 배경은 근래의 자본주의 공황사태였던 아이엠 에프 시기와 그 이후다.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주제는 지방의 가난한 어촌이라는 변방성과 조선족 난민이라는 다문화성, 한국의 배타적 가족주의 및 남성성에 관한 것이다.

<미성년>(2019)의 대원은 50대의 중산층 가장으로 유부녀와 불륜을 저지르는 역할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두 집안의 여고생 1학년 딸들이다. 두 여고생은 각자 자신들의 가정과 부모에 대한 증오를 품게 되고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미성년자들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무책임한 기성세대와 산산조각난 가치관, 혼란한 사회를 반영하는 핵가족의 모습이다. 각각 계층을 대변하는데, 한 집은 중산층이고 다른 집은 중하층이다. 물질적으로 충족되었건 미충족되었건 고독한 건 매 한 가지다. 자식이 1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부모의 손을 벗어나 책임감이 느슨해진 틈에 유부남과 유부녀에겐 이중적이며 기만적인 생활의 잡념가 비윤리성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유부녀를 만나 진짜 순수한 사랑의 착각에 빠져 임신까지 하게 된 소시민 대원의 행각은 가족에 대한 가치관을 상실한 현대 한국인의 방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3. 악착 같이 물고 늘어지는 인간

황해
황해

 

김윤석이 표현하는 인물들의 형태는 하나 같이 한국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병폐와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중 대표적인 역할이 상대방을 끝까지 추적하며 물고 늘어지는 역할이다. 그런데 그 끈질김과 악착같음은 일종의 단순히 사실주의적 연기가 아닌, 사회적 상징, 즉 게스투스(gestus)로서의 연기다. <추격자>에서 엄중호는 전직 경찰이라는 습성 때문에 마치 범인 추적 하듯이 살인범을 추격하는게 아니다. 그 근성이란 것의 출처는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추적한다.

그는 하나 둘씩 사라진 윤락녀들을 보면서 자신의 업무, 생존 근거가 무너짐을 느낀 것이다. 악랄한 어떤 인간들이 자신의 여자들을 다른 업소로 팔아넘겼다고 생각한 나머지 엄중호는 삶이 그저 단순히 살아지는 헛바지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 눈을 부릅뜨고 있지 않으면 그야말로 코도 베가고 귀도 베가는 흉악한 세상이라는 걸 피부로, 온 몸으로 느끼고 그렇게 머리털 하늘 끝까지 솟구치는 지옥의 나찰 형상으로 자기 보다 더 나쁜 그놈들을 제끼고 이제 가족이 되어버린 윤락녀들을 되찿기 위해 달리고 또 악착같이 달린 것이다.

그렇게 달리기만 한 게 아니다. 그렇게 달리던 중 그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타자에게서 가족애를 느꼈다. 그의 의식의 근저를 맴돌던 실체는 다름 아닌 가족애였다. 일종의 박애일 것이다. 사라진 마지막 여자의 버려진 딸을 보는 순간 엄중호를 달리게 만든 악착같음의 에너지는 딸을 보호하고 그 딸을 위한 엄마를 되찿아 오겠다는 일념이었다. 그 일념이 그를 죽음 직전까지도 내몰 수 있는 처절한 달음박질로 내달음질치게 몰아댔던 것이다. 김윤석은 악하지만 악하지 않은, 지금 한국이 요구하는 남성상의 한 표상을 보여준다. 그건 아내와 딸을 위해, 가족을 위해 끝까지 자신을 헌신하는 너덜너덜해진 아버지 상이다.

<거북이 달린다>의 조필성도 소싸움에서 번 돈을 탈주범에게 뺏기고 범인에게 실컨 두드려 맞은 후 악랄하고 지독한 추격자가 된다. 눈 뜨고 코떼이는 상황이 도달하기 이전 그는 한가한 시골 마을의 어수룩한 시골 사람이었지 경찰 근성도 집요한 근성도 도통 없었다. 구멍이 숭숭 뜷린 사람으로서 살아가던 그가 180도로 변한 것은 생활 때문이었다. 아내의 돈을 훔쳐 그 돈으로 한 도박에서 세 배를 불려 의기양양해 있던 그가 돈을 몽땅 도둑 맞았을 때 그 심정은 가부장으로서의 생존 자체를 도둑맞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가 범인을 잡기 위해 뛰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건 생사의 추적이었다. 무술 경관 열 명도 당해내지 못한 탈옥범을 조필성은 목숨을 담보로 싸워 이긴다. 김윤석이 보여준 필사의 정신은 생활과 목숨을 저당잡힌 한국 남자의 밑바닥 분투를 보여준다.

 

4. 피칠갑과 혼비백산

해무
해무

 

김윤석 이전에 한국영화에서 필사의 정신을 보여준 배우로 대표적인 경우는 설경구와 송강호였다. 비록 자신은 부패한 형사지만 부모를 죽인 패륜아는 용서하지 못한다는 더 나쁜 악에 대한 응징의 캐릭터 설경구(<공공의 적>)와 배우지 못하고 막돼먹은 똘만이 양아치 조폭역의 송강호(<넘버 쓰리>) 같은 인물들이다. 김윤석의 등장이 그들의 연속으로 이해되면서도 그들과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은 단순한 공정, 정의, 생존 등의 공통분모 외에도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세기말적 분위기를 김윤석이 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이미지가 피칠갑과 혼비백산이다. <추격자>에서 그는 알 수 없는 어둠과 마주한다. 납치된 윤락녀를 찾는 여정은 애를 데리고 가면서 엄마를 찾는 여정으로 바뀌고 그는 실종된 엄마, 혼자 된 딸을 데리고 있는 마치 가부장이다. 그가 마주친 어둠은 한국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미스테리한 공포며 깊은 웅덩이다. 그 공간을 유영하는 몸짓은 눈물겹도록 휴머니스틱하다. 그는 형사도 형사 아닌 것도 아닌 신분으로, 사회에서 내몰린 사람으로 철저히 존재한다. 그는 포주 이전에 권력에 눌려 억압된 억울한 서민이다. 그는 오로지 실종된 아내와 내팽개쳐진 딸을 위해 맨발로 질주하는 나체의 가부장과 같은 처절한 모습이다. 마지막에 그는 온 분노를 담은 망치를 한국의 어둠을 상징하는 깊은 웅덩이 연쇄 살인범(하정우)을 향해 결국 내리치지 못한다.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공권력은 그에 비하면 훨씬 더 무능하고 간교하고 악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김윤석의 모습은 혼돈 그 자체다.

<거북이 달린다>의 초반부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심지어는 종말론적이다. 그는 지난 밤 먹은 술기운 때문에 녹초가 되었고 양치질을 하며 너덜너덜 그 특유의 어기적 어기적 걸음걸이를 보여준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삶의 피곤함에 쩔어 있는 현대인의 무기력을 대변하는 이 연기는 김윤석의 특기중 하나다. 영화는 서민적이며 흐트러진 모습으로 인해 그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사실 이런 그의 모습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의 연기가 주는 게스투스는 경찰이라는 계급성이 아니라 녹아내리는 서민성이고 평범함이고 상투성이다. 그는 한 순간 꼬여버린 인생을 사는 미스테리와 어둠의 한 복판에 놓여 있다.

<황해>에서 그는 다혈질의 흉포한이지만 순수한 양심이 있다.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소뼈다귀를 잔인하게 휘두르며 적들을 무찌른다. 그는 자신을 공격하는 적들을 향해 온몸으로 저항한다. 이때 그의 손에 쥔 것은 소뼈다구였고 그는 그 소품으로 수 십명을 때려죽이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이때 뼈다구와 김윤석의 일체화는 영화의 미장센이 지향하는 주제의식을 잘 표출한 장면이라 보여진다. 뼈다구는 두 가지 상징성을 갖는다. 무시무시한 크기로 인한 공포며 동시에 뼈가 갖는 원초성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한 몸에 담고 무기로 휘두르며 자신의 생존을 방어한다. 말하자면 소뼈로 인해 김윤석은 공포와 원초 두 가지 요소로 무장된 신격화된 존재가 된다.

<해무>에서 그는 살기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배의 동료들도 죽인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중국인 난민을 실어나르는 밀항일을 하게 되면서 문득 깨닫게 된 사회적 현실이다. 그가 연기한 선장 강철주는 그런 점에서 사회적 캐릭터다. 한국의 어려운 삶의 한 귀퉁이를 연기한다. 아이엠에프를 견뎌내는 서민의 강인한 의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모비딕Moby Dick]에 나오는 에이하브 선장처럼 고래를 잡으려는 광기적인 집념 대신 배를 살리고자하는 초인성을 보여준다. 배는 침몰하고 죽음이 그를 삼키지만 그는 부릅뜬 두 눈으로 어둠속에 빠져들어간다. 그에게 삶과 죽음은 더 이상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요, 살아도 산 게 아니다. 바다 안개, 즉 해무는 범죄를 은닉하는 요소며 이상한 징후다. 그 해무속에서 오직 두 명만이 생존한다. 한 사람의 한국인과 한 사람의 중국인 홍매. 하지만 둘은 결코 화합하지 못한다. 영화는 지금 시대 한국과 조선족에 놓여진 미스테리한 경계를 탐구한다. 장율의 영화속에서 많이 다뤄왔던 소재다. 한국과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다른 국가적 경계 및 역사를 통해 더 이상 피를 나눈 형제처럼 보이지 않는 낯설음의 공간속에 서로를 넘나든다.

<완득이>의 이동주 선생은 그 역시 이기적이고 물질적이고 자본주의 정신에 철저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자유를 위해 저항하고 반항하며 자본의 배분과 사랑의 적선을 실천하는 선생이다. 완득이의 사연을 지켜주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기능한다. <미성년>에서 딸로부터 도망간 가장과 집에서 내몰린 두 명의 미성년이 변주하는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 붕괴와 기성세대의 비윤리, 탈도덕 현상의 어둠을 직시한다.

 

5. 변방성을 상징하는 사투리들

완득이
완득이

 

영화 세상에 처음 김윤석이 나타났을 때 김윤석을 인상적으로 알린 작품은 <타짜>(2006)의 아귀 역할이었다. 검은 선글라스에 실실 흘리는 웃음과 한쪽 뺨에 그어진 칼자국, 그러면서 난 모가지를 걸겨, 넌 뭘 걸래등의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가 관객들이 평생 잊지 못할 이미지로 그를 각인시켜 버렸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의 역할은 단지 조역일 뿐이었다. 이후 이어진 메인 연기에서 그는 어쩌면 한국의 연기자 가운데 가장 다양하게, 출중하게 팔도 사투리 연기를 잘 소화하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정말 팔색조의 사투리 연기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배우로 등장했다. 김윤석 연기의 특징은 팔도 사투리를 단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그 점에 있는 게 아니라, 또한 특유의 내면적 캐릭터를 형상화한다는 데 있다. 바로 사투리가 한국 사회의 상징적 이분법에 해당하는 중심/변방의 갈등에서 변방의 성격을 단적으로 잘 드러낸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투리는 한국에서 그저 구수한 토속성의 상징이 아니라, 권력에 짓눌려 억울하고 억압받는 소외 계층 전형의 은유적 형상인 것이다.

<거북이 달린다>의 주제는 영화의 무대인 충청도 시골의 변방성으로 나타나고 그 지역성과 소수성의 게스투스가 김윤석 신체를 통해 기호화 되어 표출된 것이다. 충청도 사투리, <타짜>의 전라도 사투리, <황해>의 함경도 섞인 연변 사투리, <추적자> 등 여타 영화에서 기본적으로 그의 고향인 경상도 부산 사투리, 일부 영화에서의 서울 표준말 까지 그는 실로 다양한 사투리 구사의 달인임에 분명하다. 사투리도 연기화술의 일종이므로 김윤석이 사투리를 구사하는 건 확실히 연기적 기술임을 입증한다.

<황해>에서 김윤석은 연변의 조폭 역할을 하면서 특유의 소탈하고 진솔한 마음의 연장선상에서 연변 조선족의 정감적이며 구수한 서민적 모습을 보여준다. 서민적이라 함은 특유의 연변사투리가 풍기는 시골스럽고 순박함인데 그 억양이 주는 풍미가 관객으로 하여금 무장해제하게 하고 고향의 맛을 느끼게 만든다. <거북이 달린다>에서 어린 딸과 나눈 맹탕의 시골 사투리와 어리숙하고 순박한 시골 토박이 정서의 우스꽝스런 행동은 이미 영화의 주제가 어떤 이분법을 지향하며 문화적 대비를 보여주는지 짐작케 한다. 도시와 시골의 문화적 갈등의 주제가 김윤석의 몸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다.

 

6. 아픈 자들에 대한 위로

미성년
미성년

 

김윤석 얼굴의 특징은 일단 눈에 있다. 그의 눈알은 탱글거리며 부리부리하고 눈매는 늘 긴장되어 있다. 눈은 뭔가를 경계하듯 섬뜩하고 무섭다. 전반적으로 그의 눈표정은 관객을 긴장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그가 역할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미스테리를 경유하면서 한국 사회의 어둠과 만나고 김윤석은 연기라는 허구에서 벗어나 사회라는 현실의 안으로 들어간다. 안과 밖은 이렇게 교환된다. 연기자 김윤석은 감독의 시선속에서 해석된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연기해 낸다. 그것은 다시 관객의 해석을 통해 실재 현실속 한국 사회의 모습으로 환원되고 김윤석이라는 메시지로 채색된다. 여기서 관객은 감독의 의지완 상관 없이 직접 김윤석의 목소리를 듣는다. 김윤석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요동치는 억울함과 슬픔과 고독의 현장에서 괜찮다, 괜찮다를 외치면서 서 있거나 달려갔다. 그건 아픈 자들에 대한 위로면서 동시에 그 역시 아픈 사람의 역할을 통해 모든 힘든 사람들이 사실은 알고 보면 지극히 정상이고 안 아픈 사람들이 비정상이었다는 논리를 설명함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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