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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꽃 - 패러디 그리고 변주
[최양국의 문화톡톡] 꽃 - 패러디 그리고 변주
  • 최양국 (문화평론가)
  • 승인 2021.06.0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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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뜰은 들을 지나 숲으로 흐른다. 만화방초. 향기로운 풀들과 어우러진 온갖 꽃들이 꽃풀놀이로 터진다. 사방은 풀로 이어지며 꽃으로 덮여간다. 뜰에 피운 꽃, 들에 피어나는 꽃, 그리고 숲에 피어있는 꽃. 들숨과 날숨의 향연으로 피고 지는 꽃, 그들 중에 생각나는 꽃은 무엇일까? 아마 장미, 파란 꽃, 들꽃. 그렇지, 이름 있는 꽃, 이름 없는 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 꽃의 이름은 고유명사, 대명사, 그리고 보통명사로 함께 하며, 비와 바람이 전하는 말을 찾으러 떨어지듯 스러진다. 영희, 철수 그리고 Dear Name. 이름이 흔들리듯 흩날린다. 우리들 이름의 시작은 꽃이며, 삶의 변곡점은 꽃들의 변주로 이어진다.

 

‘나’와 ‘너’ / 존재 본질 / 이름의 / 명명 행위

 

 우리들 이름의 시작은 김춘수의 시 <꽃>으로 찾아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꽃>(1952년), 김춘수 -

 

꽃(The Flowers), Pixabay

권영민은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년>에서 “이 시가 강조하는 것은 ‘꽃’이라는 사물과 ‘언어’의 관계이다. 시속의 화자가 말하는 대상은 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꽃은 감각적 실체가 아니라 관념, 말하자면 개념으로서의 꽃이다. 따라서 이 시가 노리는 것은 ‘꽃이란 무엇인가’ 혹은 ‘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다. 꽃은 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된다고 한다. 즉, 꽃은 인간의 명명 행위 이전에는 단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기서 유추되는 것은 사물과 언어의 관계이다. 명명 이전의 단계~명명과 동시에 ‘꽃’이 존재한다는 사실~‘꽃’에 비유되는 ‘나’의 존재~우리들의 존재를 말한다. 결국 이 시는 모든 사물들이 언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인식론적 세계를 노래하며, 이런 점에 이 시의 시사적 중요성이 있다.”라고 한다.

꽃은 우리들 존재가 지니는 가치와 특성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꽃은 타자적 대상에 불과한 무의미한 존재에서 즉자적 대상인 의미 있는 존재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구체물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 객관화하여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과정인 인식이라는 명명 행위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명명 이전의 무의미한 존재에서 명명으로 인해 의미를 부여받은 존재로 전이하기 위한 중간 단계인 '몸짓'은, 우리들 존재의 유의미한 출구를 열기 위한 갈망의 동작 언어(Body language) 이다.

뜰~들~숲의 꽃은 이 세상에서 의미를 부여 받고 존재하는 수많은 대상인 객체들의 총체적 자연 집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존재인 꽃은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본질(빛깔과 향기)에 부합되는 ‘그 이름’으로 불리며 인식되기를 갈구한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그 대상을 언어로 바꾸는 행위다. 즉, 일방향적인 주관화된 타아의 대상으로서의 언어 인식이 아닌, 양방향적인 대상과 주체 간 언어 인식에 따른 객관화된 자아의 대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로써 ‘나’와 ‘너’는 '우리'로 확장되는 공동 운명체로서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 즉 상호 존재의 근원적 생명체로서의 ‘그 이름’으로 인식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빛깔’과 ‘향기’는 대상에 대한 ‘정체성’과 ‘사랑’의 객관화를 위한 프리즘이다. 이를 통과한 ‘그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대상을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밈(Meme)’ 인 것이다.

<홍길동전>에서도 갈등의 마중물 기제는 이름(호칭)으로써, 길동의 ‘빛깔’과 ‘향기’는 율도국에서 피어난다.

"~(중략)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공맹을 본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병법이라도 익혀 대장인을 허리춤에 비스듬히 차고 동정서벌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만대에 빛내는 것이 장부의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찌하여 일신이 적막하고, 부형이 있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심장이 터질지라,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패러디 / 통한 <꽃>은 / 존재 본질 / 왜곡 묘사

패러디(parody)는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을 의미한다. 그 어원은 ‘paradia’(다른 것에 대한 반대의 입장에서 불린 노래) 또는 ‘paradio’(모방하는 것, 모방하는 가수)로써, 모방과 변용은 패러디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를 이룬다. 김춘수의 <꽃>으로부터 모방과 변용의 과정을 거쳐 그 존재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다수의 작품이 있다.

 

꽃의 패러디(The parody of lavender), Pixabay

오규원의 <꽃의 패러디>는 이름을 붙이는 명명 행위에 의해 그 대상의 존재가 왜곡되고 있는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이 아닌/ 금잔화, 작약, 포인세티아, 개밥 풀, 인동, 황국 등등의/ 보통 명사나 수 명사가 아닌/ 의미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 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의미의 틀이 완성되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될 그 순간/ 그리고 기다림 그것이 되었다.”

- <꽃의 패러디>, 오규원 -

 

누군가를 인식하고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대상의 본질적 ‘빛깔과 향기’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거나 자신과의 상관성 강도에 따라, 그 대상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비판 없이 수용하거나 자신의 기준에 의존하는 확증 편향을 나타낸다. 이는 대상에 대해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된 명명 행위를 하게 한다. 상대방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아닌, 자신의 주관적 기준으로 상대방을 규정 짓는 우를 범한다. 대상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상에 대해 왜곡하지 않고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어 부를 수 있는 그 순간(The moment of truth)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편제되어 남는다. 어쩌면 우리들은 관계의 연결고리가 가까울수록, 그의 빛깔과 향기로부터 더 멀어진 외형적 이름으로만 인식하거나 내면적 이름에 대해 오해하는, 왜곡을 향한 무분별한 탈진실(post-truth) 게임의 맹목적 추종자들은 아닐까?

힘의 논리에 따른 이합집산으로 극도로 혼란한 중국의 춘추시대에, 제자인 자로(子路)의 물음인 ‘이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정명(正名)’ 이다.

정명(正名)은 ‘이름을 바르게 한다’라는 의미를 갖는 언어로써, 이에 대한 후대의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이름(개념)의 바른 정립 또는 각자의 직분에 충실한 행동을 통한 질서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던, 선행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체는 대상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통해, 왜곡되지 않은 그 본질적 ‘빛깔과 향기’에 부합하는 명명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주로 / 함께 한 <꽃>은 / 소통으로 / 진화해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하여 새롭게 형상화한 작품 중, 장정일의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이 있다. 이는 현대인의 사랑을 라디오를 켜고 끄는 것과 같은 가볍고 편한 행위로 표현함으로써, 쉽게 만나고 더 쉽게 헤어지는 자유도 높은 일회적이며 찰나적인 인스턴트식 사랑을 풍자하고 있다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1988년), 장정일 -

 

단추~전파~라디오로 이어지는 현대인의 사랑 풍속도를 사랑을 전하는 행위인 단추와 사랑하는 유의미한 존재인 전파로 형상화하여 나타내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라디오에 담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김춘수의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과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것은 ‘라디오의 단추를 누르는 행위’와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로 바뀌어 나타난다. 이는 명명 행위에 의한 인간 관계의 지속적 친밀도에 대해 <꽃>과 상호 대척점에 서 있도록 배치함으로써, 상호 다른 사랑의 가치에 대한 시공간적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 호모 커뮤니쿠스(home communicus), Pixabay
* 호모 커뮤니쿠스(homo communicus), Pixabay

단추를 통한 전파 사랑의 시작과 끝은 스마트폰을 통한 초연결사회로의 진화 속도와 상관성을 가지며 단선적인 보통 명사 문화, 역설적인 단절 문화 그리고 물질적인 신 공유 문화로의 전이를 추구한다. FOMO(소외불안증후군, Fear Of Missing Out; 소외되고 놓치는 것의 두려움)는 다른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심리적으로 불안해하거나, 보편화한 세속적 욕망의 대상에 대해 자신만 뒤처지거나 소외되어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는 증상으로써 빛깔과 향기가 사라진 보통 명사 문화를 추구한다. JOMO(소외향유증후군, Joy Of Missing Out; 소외되고 놓치는 것의 즐거움)는 고유한 빛깔과 향기 추구 외에 각자의 빛깔과 향기들이 함께 어우러지지 않는 단절 문화의 일면을 부각한다. 공유경제의 개념이 사랑과 결혼의 논리로 확대되며 속도와 효율을 우선시하는 신 공유 문화를 만든다. 바야흐로 다양한 ‘밈(Meme)’들의 전성시대인 듯하다. 우리들의 이름은 또 다른 주제에 의한 변주를 하며 6월의 ‘빛깔’과 ‘향기’를 갖는 꽃으로 피어난다.

 

"내가 그의 어플을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스마트폰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어플을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5G가 되었다.

내가 그의 어플을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피, 땀 그리고 눈물 속 종을 울려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종을 울리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호모 커뮤니쿠스(homo communicus)가 되고 싶다.

망각하고 싶을 때 연민하고 놀고 싶을 때 놀이할 수 있는

니체의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

- <I am as I am> -

낙타~사자에서 어린아이로 사는 삶의 변신을 위해, 나는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와 함께 한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 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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