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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배우 강동원의 강렬한 등장과 끊임없는 변신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배우 강동원의 강렬한 등장과 끊임없는 변신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1.06.21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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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은 매우 강렬하게 등장한 배우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인 시절에 출연한 영화 속 모습을 17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할 정도로 강렬하게 등장한 배우다. 혹시 그 모습을 기억하시는지?

 

- 비와 우산과 그리고 강동원

강동원의 두 번째 영화 <늑대의 유혹>(김태균, 2004)의 초반부, 비 오는 거리에서 갑자기 패싸움이 벌어진다. 아수라장이 된 순간, 누군가 여자주인공의 우산으로 뛰어든다. 곧이어 그를 가리던 우산이 천천히 올라가고, 세상 해맑은 표정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늑대의 유혹>에서 우산이 올라가자 보이는 얼굴

당시 영화관에서 이 순간 관객의 탄성이 터졌다든지, 폰으로 사진을 찍더라는 등의 목격담도 들려왔다. 아마 이 영화는 못 봤어도, 이 장면, 이 스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이후 수많은 패러디가 양산됐다. 얼마 전에도 TV 드라마에서 비슷한 연출을 발견했다. 비, 슬로우 모션, 가려진 얼굴, 올라가는 우산, 클로즈업, 로맨틱하거나 신비로운 음악이라는 공식이 또다시 활용됐다.

강동원의 우산 속 등장은 모델 출신 신인 배우의 외모가 극대화된 등장이었다. ‘순정만화 주인공’, ‘꽃미남’ 등의 수식어가 붙었고, 연기력에 대한 의심도 따라붙었다. 그의 외모는 배우로서의 장점이자 약점으로 여겨졌고, 강렬하게 등장한 그의 이후 행보는 의심과 기대를 함께 받았다.

 

- 사형수에서 경찰, 도사에서 신부까지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그리고 배우 강동원은 더 이상 의심 받지 않는다. 그동안 끊임없는 변신을 통해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강동원은 자신에 대한 의심을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캐릭터를 선택하며 벗어났다. 자기 외모를 활용하는 대신 배우로서 끊임없는 시도를 감행했다. 

강동원은 2004년 <그녀를 믿지 마세요>(배형준), <늑대의 유혹>을 시작으로 2020년 <반도>(연상호)까지 총 21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몇 개의 장르로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연기한 캐릭터 역시 비슷한 캐릭터를 찾아보기 힘들다. 캐릭터의 나이, 직업에다 극적 설정까지 살펴보면, 강동원이 선택한 영화와 캐릭터의 범위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 포스터

대략 정리해보자면, 먼저 현실적인 드라마, 멜로드라마, 코미디로 <그녀를 믿지 마세요>, <늑대의 유혹>,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송해성, 2006), <M>(이명세, 2007), <두근두근 내 인생>(이재용, 2014), <검사외전>(이일형, 2016) 정도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실존 인물인 이한열 열사를 연기한 <1987>(장준환, 2017)도 빠뜨릴 수 없다.

 

<1987> 포스터

데뷔 첫해 영화인 <그녀를 믿지 마세요>, <늑대의 유혹>이 20대 약사, 10대 고등학생을 연기한 상대적으로 가벼운 멜로드라마, 로맨틱코미디였다면, 20대 사형수를 연기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조로증 걸린 아들을 둔 30대 택시 기사 아빠로 나온 <두근두근 내 인생>은 진지한 조금 무거운 드라마였다. <M>에서는 작가, <검사외전>에서는 사기꾼을 연기하며 매우 다른 결의 영화와 캐릭터도 선보였다. <1987>은 오랜만에 강동원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탄성이 터지기도 했는데, 홍보 과정에서 강동원의 출연을 몰랐던 관객들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학생이 강동원이라는 점에 놀라고, 그 학생이 이한열 열사라는 것에 또 놀랐다.

스릴러나 액션 요소가 가미된 드라마로는 <그놈 목소리>(박진표, 2007), <의형제>(장훈, 2010), <더 엑스>, <마스터>(조의석, 2016), <골든슬럼버>(노동석, 2018)가 있다. 강동원의 다섯 번째 영화인 <그놈 목소리>에서는 유괴범 그러니까 ‘그놈’을 연기했다. 더 정확하게는 ‘그놈의 목소리’를 연기해 모습은 거의 드러내지도 않았다. <의형제>에서는 임신한 아내를 북에 두고 온 남파 간첩을 연기했는데, 연민이 느껴지는 스파이를 만들어냈다. 반면에 <마스터>에서는 냉철한 지능범죄 수사팀장인 경찰로 등장해 희대의 사기범을 추격했다.

정통 사극은 아니지만 <형사>(이명세, 2005), <군도: 민란의 시대>(윤종빈, 2014), <전우치>(최동훈, 2009)에서 갓 쓰고 도포 입은 강동원을 볼 수 있었다. <전우치>는 판타지로도 분류할 수 있는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도포와 가죽점퍼를 입고, 도술을 부리며 날아다니는 코믹한 도사 전우치를 연기했다. 액션과 춤, 악역과 과장된 코믹 연기가 모두 가능하다는 걸 흥미롭게도 비현실적인 사극을 통해 증명했다.

 

<전우치> 스틸

현실을 벗어난 영화는 더 있다. <카멜리아>, <초능력자>(김민석, 2010), <검은 사제들>(장재현, 2015), <가려진 시간(엄태화, 2016)>은 초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판타지물이다. <인랑>(김지운, 2018)과 <반도>(연상호, 2020)는 SF면서 재난영화다. 강동원은 초능력을 가진 인물, 구마 의식에 참여하게 된 가톨릭 신부, 또 다른 차원의 시간대에 다녀온 인물, 특수기동대 비밀 요원 인랑, 좀비와 인간성을 상실한 무리로부터 탈출해야 하는 전직 군인 등을 연기했다.

 

<가려진 시간> 포스터

현실과 환상,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다양한 영화 속에서 강동원이 연기한 캐릭터 역시 별의별 일들을 겪는다. 유난히 극단적인 상황에서 고군분투해서인지 매 영화마다 인상적으로 등장했고, 여백이나 선, 움직임, 색감 등의 미장센을 활용한 인상적인 인물 이미지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사극에서는 도포 자락의 펄럭임조차 춤곡과 함께 아름다운 선으로 표현된다. 현대극에서는 ‘사제복 입은 강동원’, ‘죄수복 입은 강동원’ 등으로 화제를 모으며 옷 테를 드러냈다.

 

<검사외전> 포스터
<검은 사제들> 포스터

데뷔 이후 배우 17년 동안 강동원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비일상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을 맞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주인공을 연기해왔다. 출연작 선택 기준에 대한 질문에 강동원은 현실에서는 하지 못하는 것, 새로운 것, 재미있는 것이 좋다고 답해왔다. 배우로서의 욕심이 엿보인다.

강동원의 실험적인 선택은 계속되고 있다. 강동원은 미국영화 <쓰나미 LA>(스콧 만, 2020) 촬영을 끝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를 촬영 중이라고 한다. 강렬한 등장만큼이나 과감한 시도와 변신을 지속하고 있는 배우 강동원의 이후 행보를 기대해 본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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