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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열혈여아> ― 로맨스의 2% 법칙: 학교 폭력과 운명적 사랑의 매력적 함수관계
[서곡숙의 문화톡톡] <열혈여아> ― 로맨스의 2% 법칙: 학교 폭력과 운명적 사랑의 매력적 함수관계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1.07.1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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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웹툰 <열혈여아>: 폭력과 사랑의 결합


누구나 인생영화가 있다. 인생영화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혹은 계속 반복해서 보는 영화이다. 보통 좋아하는 영화도 3번을 보면 질릴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인생영화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인생영화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필자의 인생영화는 <매트릭스>(위쇼스키 자매, 1999)이다. <매트릭스>의 영화적 시간과 공간의 혁명, 장인의 정신이 느껴지는 미장센, 철학적이고 함축적인 대사의 매력으로 100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현재 필자의 인생웹툰은 <열혈여아>이다. 이 작품은 처음 봤을 때부터 흥미로웠고 계속 반복해서 보고 있지만, 여전히 볼 때마다 웃게 되고 흥미롭고 재미있다. <열혈여아>는 만화가 황미리의 작품이다. 황미리는 ‘대한민국의 순정 만화를 그리는 만화 작가(사실 한 인물이라기보다 브랜드)이며, 그녀의 작품은 보통 십대들의 다양한 일상생활들을 묘사하며, 다진문화사와 삼양출판사의 공동 브랜드인 꽃님을 통해 만화를 출간하고 있다.’[1] 만화가 황미리를 검색하면 <열혈여아>가 같이 검색된다는 점에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열혈여아>는 주먹으로 전국을 평정하려던 명성고 여짱 강하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이 된 후, 천상약골이자 얼짱인 아람의 몸으로 빙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황미리는 ‘공장만화가’라고 불릴 만큼 많은 작품이 있다. 황미리는 ‘<그놈에게 바치는 장미>, <왕가의 후예>, <네레이드의 전설>, <빙의>, <섹시한 못난이>, <여우가 늑대 되는 순간>, <열혈여아>, <오빠를 찾아가>, <5천원만 주면 키스해 주는 놈>, <Y를 위하여>, <이미테이션 러브>, <키스로 길들여지다>, <기다려!! 늑대>, <노비공주x주인님>, <후삼국고교> 외 다수의 작품을 그렸다.’[2] 만화가 황미리의 인기만큼 의혹도 다양하다. 한명의 작가가 창작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에 대한 의혹, 황미나·이미라·나예리에서 필명을 따왔다는 의혹, 작품마다 다른 그림체와 이야기의 수준, 한 명의 작가가 아니라 출판사의 대표 브랜드라는 의혹 등. 개인적으로 황미나의 작품들 중에서 재미있게 읽은 <네레이드의 전설>과 <열혈여아> 두 편 모두 캐릭터 설정, 스토리 전개, 그림체 특징이 비슷해서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적대자/조력자의 전도: 여짱 영혼과 얼짱 육체의 결합

 


<열혈여아>의 전반부에서 여주인공 강하지는 어릴 때 오빠들의 폭력으로 무술 훈련에 매진하게 되면서 학교 짱이 된다. 명성고 짱 하지는 부짱 한서와 함께 다른 학교의 짱을 깨면서 전국을 평정하는데, 어릴 때 소꼽친구이자 다른 학교의 짱인 태후를 깨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의식 불명이 된다. 사고 후 하지는 얼짱이지만 천상약골인 아람의 육체에 빙의하고, 미래 약혼자인 선우의 조종으로 학교에서 왕따로 괴롭힘을 당한다.

<열혈여아>의 여주인공은 빙의를 통해 주먹짱 영혼과 얼짱 육체라는 부조화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여주인공에 대한 적대자/조력자는 계속 변화하여 경계가 모호해진다. 여주인공 강하지는 터프하고 외향적 인물이지만,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람에게 빙의한다. 평범한 집안, 터프한 외모, 공부 열등생, 근육질 몸매인 하지는 좋은 집안, 아름다운 외모, 공부 우등생, 8등신 몸매인 아람에게 빙의되지만, 자신의 근육이 사라졌다고 속상해 함으로써 독특한 면모를 보여준다. 아람(하지)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지만 이전에 짱 하지일 때도 자신을 겁내어 아무도 곁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왕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하지의 빙의는 정신과 육체의 분리, 상반된 인물의 결합으로 성격의 아이러니와 부조화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또한 학교 짱인 하지가 왕따 아람으로 빙의하면서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변모한다.

주인공 선우는 전교회장, 재벌 아들, 킹카, 짱으로서 공부, 주먹, 외모, 집안 모두 완벽한 인물이다. 선우는 미래 약혼자인 아람의 음침한 성격을 싫어해서 다른 아이들을 조종해서 왕따를 시키며 괴롭히지만, 빙의된 아람(하지)의 터프하고 솔직담백한 성격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적대자에서 조력자로 변모한다. 한편, 부짱 한서는 처음에는 하지의 조력자였으나, 하지의 사고 이후 태후에 대한 적개심에 태후와 친한 아람(하지)에게 복수하고자 하면서 적대자가 된다. 내러티브가 진행됨에 따라 선우/한서의 적대자/조력자 관계는 계속 바뀌며, 두 사람은 항상 정반대의 위치를 점하면서 폭력이 심화된다.
 

욕망의 충돌과 변화: 폭력과 사랑의 딜레마

 

 

<열혈여아>의 중반부에 허약한 아람(하지)은 육체를 단련시키고 선우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한서의 복수로 사고를 당하게 된다. 왕따 아람(하지)은 허약한 육체를 단련시켜 정상 이상의 체력으로 만들고, 학교 짱인 선우에게 도전장을 내밀면서 선우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트게 된다. 선우는 터프하고 무심한 성격의 아람(하지)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적대관계, 조력관계를 거쳐 연인 사이가 된다. 한편, 한서는 하지의 의식불명으로 태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아람(하지)을 괴롭히다가, 아람의 정체가 하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부짱 한서는 자신이 남몰래 사랑해왔던 짱 하지가 선우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질투심을 느껴, 선우를 해치려다가 선우를 지키려던 아람(하지)이 사고를 당하게 만든다.

여주인공이 욕망하는 대상이 짱에서 사랑으로 바뀌게 되면서 폭력과 로맨스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빙의는 욕망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욕망의 주체는 영혼의 하지인가 아니면 육체의 아람인가? 여기에서는 영혼의 소유자로 주체를 상정함으로써 육체에 대한 영혼의 우위를 보여준다. 여주인공 하지가 욕망하는 대상은 세 가지, 즉 짱, 음식, 사랑이다. 하지의 식탐은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천진난만한 본성을 드러내어 순진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아람(하지)은 짱이 되고자 현재 짱인 선우와 대립하지만, 나중에 선우에 대한 사랑으로 짱을 포기하게 된다. 짱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욕망이 충돌하면서 폭력과 로맨스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빙의와 낭만적 사랑: 육체에 대한 영혼의 우위

 

 

<열혈여아>의 후반부에서 하지는 사고 후 선우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지만 다시 선우를 사랑하게 되고, 한서의 질투로 다시 사고를 당하지만 결국 선우와의 사랑을 지키게 된다. 하지(아람)는 자신을 혐오하던 선우가 아람(하지)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질투를 느껴, 한서를 조종해 선우와 아람(하지)을 괴롭힌다. 하지(아람)는 태후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태후에게 자신이 다시 태어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약속한다. 아람의 육체에 머물던 하지는 사고 후 다시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고, 하지의 육체에 있던 아람은 다시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 죽음을 맞게 되지만 다시 환생한다. 하지는 빙의 때의 기억을 모두 상실하여 선우와의 사랑을 잊게 되지만, 아람(하지)을 죽게 만든 한서와 하지(아람)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나타난 선우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하지는 선우와 대립과 갈등을 거쳐 다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둘 사이를 질투한 한서에 의해서 다시 사고를 당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선우와의 사랑을 지키게 된다.

기억상실에도 상관없이 주인공에 대해 일편단심인 여주인공과 영혼/육체의 뒤바뀜과 상관없이 여주인공에 대해 일편단심인 주인공은 운명적 상대와의 낭만적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는 아람의 몸일 때 선우에 대한 마음이 관심, 도전, 대립, 사랑의 순서로 변화하며,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서도 선우에 대한 마음이 관심, 도전, 대립, 사랑의 순서로 변화하면서, 선우에 대한 사랑에서 일관성을 보여준다. 선우도 아람(하지)에 대한 마음이 혐오감, 호감, 사랑으로 바뀌고, 하지에 대한 마음도 증오, 애증, 사랑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육체적 외모와 상관없이 하지의 영혼을 일관되게 사랑한다. 선우는 천상의 선녀같이 아름다운 외모의 아람(하지)일 때도 사랑했지만, 아무도 여성으로 보지 않는 터프한 외모의 하지일 때도 사랑하여 진정한 로맨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폭력에서 사랑으로: 강한 여성과 소심한 남성에 대한 호응


<열혈여아>는 터프한 여주인공과 소심한 주인공의 결합, 폭력에 집착하는 여주인공과 사랑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특이한 설정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폭력과 로맨스를 결합함으로써 폭력 장르에 호응하는 남성 독자와 로맨스 장르에 호응하는 여성 독자 모두에게 어필한다. 터프한 성격의 여주인공은 짱(주먹)에 대해 집착하는 단순무식한 캐릭터로서 사랑에 대해서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여주인공 성격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한편, 아람은 부유한 집안, 뛰어난 머리, 아름다운 외모, 얌전한 성격으로 전형적인 여주인공 캐릭터이지만 여기에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선우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소심한 성격의 주인공도 보통 로맨스에서 흔히 보이는 포용력 있고 넓은 마음의 주인공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이 웹툰의 주인공은 외면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가졌지만 내면적으로 소심한 성격으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특이한 캐릭터 설정을 보여준다. 일상적으로는 주인공이 우위에 있지만, 결정적인 위기에서 대범한 여주인공이 소심한 주인공을 구해주면서 두 사람 사이에 포스의 균형이 생긴다. 이 작품은 로맨스 웹툰과 학교 폭력 웹툰을 결합한 작품으로 여주인공이 짱이라는 설정이 참신하다. 일반적인 로맨스 웹툰에서는 연약한 여주인공이 위기에 처할 때 짱인 주인공이 나타나 구해주지만, 이 웹툰에서는 여주인공이 자신에게 닥친 육체적 위기, 대결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맞는 강한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

<열혈여아>의 남녀 주인공은 로맨스의 2% 법칙을 보여준다. 사회의 기준으로는 평범한 중산층에서 태어나 주먹을 빼고는 외모·성적·성격 모두 내세울 게 없는 여주인공과 국내 최고의 재벌집에서 태어나 주먹·외모·성적 모두 최고인 주인공은 평범녀와 킹카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없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성격 면에서 보면 대범한 여주인공과 소심한 주인공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주인공은 여주인공이 아니고는 사랑을 이룰 수 없다. 98%를 가졌지만 2% 부족한 주인공과 그 주인공이 못 가진 2%만을 가진 여주인공의 결합으로 완벽한 합일을 보여줌으로써 로맨스의 2% 법칙을 확증한다.

<시크릿 가든>에서 완벽한 주인공의 유일한 트라우마는 폐쇄공포증이며, 그 폐쇄공포증은 일으키게 만든 화재사건, 자신을 구하고 대신 죽은 소방대원에 대한 죄책감에 기인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혼자 남은 가난한 고아인 여주인공은 그 죽은 소방대원의 딸이라는 점에서 주인공의 부족한 2%를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도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계에서도 완벽한 주인공의 유일한 트라우마는 조선시대 때 자신이 사랑했지만 지키지 못하고 죽게 만든 여인이다. 여주인공은 뛰어난 외모를 제외하고는 지성·성격 모두 평균 이하이지만 그때 죽은 여인이 환생한 존재라는 점에서 주인공의 부족한 2%를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이런 점에서 <열혈여아>는 로맨스의 2% 법칙을 통해 우연적 만남과 필연적 사랑을 통해 운명적 상대와의 낭만적 사랑을 보여준다.
 

 

*참고자료
[1] ‘황미리’, 《위키백과》, 2021.07.11.
https://ko.wikipedia.org/wiki/%ED%99%A9%EB%AF%B8%EB%A6%AC
[2] ‘황미리’, 《나무위키》, 2021.07.11.
https://namu.wiki/w/%ED%99%A9%EB%AF%B8%EB%A6%AC


사진 출처: 네이버 웹툰, 카카오페이지 웹툰


 

글 · 서곡숙

문화평론가 및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생활ESG영화제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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