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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반교: 디텐션>, “영원히 잊지 않을게!”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반교: 디텐션>, “영원히 잊지 않을게!”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1.07.12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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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의 계절, 존 쉬 감독이 연출한 대만 영화 <반교: 디텐션>(2019)을 봤다.

먼저 이 영화를 보면서, 고등학교(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왔다는데,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2학년 때 경험했던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독서반 활동을 했는데, 어느 날부터 지도 교사였던 영어 선생님이 학교에 나오시지 않았다.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 시대에 아마도 시국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형사 같은 아저씨가 독서반원들을 하나씩 상담실로 불러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주로 “독서반에서 무슨 책을 읽었는지, 지도 교사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등을 물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독서목록에는 소위 ‘불온서적’도 없었고, 선생님 말씀에 ‘불온한 내용’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후 졸업할 때까지, 그 영어 선생님은 교단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소식도 듣지 못했다.

 

<반교: 디텐션>은 내가 겪은 그 사건의 공포 버전이라고 할만한 영화이다. 계엄령이 발동되던 1960년대 대만, 장제스 독재 정권은 1970-80년대의 대한민국처럼, 좌익 사상을 담은 서적과 자유를 외치는 서적(그러므로 엄밀한 기준에 의한 분류라기보다 마구잡이 식으로 분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을 모두 금지했다. 금서를 읽거나 소지했다 들키면 반역 분자로 몰려 엄벌을 받거나 심지어 사형까지 당했다.

등교 시간에 “간첩을 은닉하면 간첩죄를 적용한다. 사상 선동은 엄중 처벌한다. 국가 내란죄는 사형에 처한다...”는 살벌한 교내 방송이 흘러나오는 추이화 고등학교, 안추이한과 장밍후이 선생은 비밀리에 6명의 학생들과 독서회를 이끌다 학교에 상주하는 바이 교관에게 발각된다. 모두 체포된 상황에서 독서회 학생 중 하나인 웨이중팅(증경화)이 혹독한 고문을 당한 다음 악몽을 꾸면서 영화는 공포영화로 진입한다.

 

웨이중팅의 악몽 속에서 팡루이신은 잠들었다 깨어난다
웨이중팅의 악몽 속에서 팡루이신은 잠들었다 깨어난다

악몽 속의 공간은 폐허가 된 추이화 고등학교. 웨이중팅과 그의 1년 선배 팡루이신(왕정)은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그들이 탈출하려고 악전고투하는 과정이 한편으로는 일종의 플레이처럼 보이는 건 이 영화가 1960년대 대만 역사를 배경으로 한 호러 어드벤처 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인물은 그들이 왜 그 공간에 있게 되었는지,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돌아다니면서 마주치게 되는 귀신들과 괴물을 통해 무의식의 심연 속에 잠겨있던 그들의 기억이 퍼즐 조각처럼 하나씩 되돌아오면서 사건의 전모가 점점 드러난다.

 

장 선생은 팡루이신에게 사슴 목걸이를 걸어주며 위로해 준다
장 선생은 팡루이신에게 사슴 목걸이를 걸어주며 위로한다

부모가 매일 싸우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괴로워하던 팡루이신은 친절하게 대해주는 교사 장밍후이를 사모하게 된다. 안추이한은 장밍후이에게 “독서회 활동이 발각될 경우, 팡루이신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거리를 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팡루이신은 장 선생이 안 선생에게 마음이 있어서 자신을 멀리하게 되었다고 오해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군인인 아버지까지 엄마의 밀고로 인해 공금횡령 혐의로 잡혀가자 팡루이신의 정신 상태는 더욱 나빠진다. 그녀는 독서회 활동을 바이 교관에게 고발하면, 연적인 안 선생을 제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시책에 공헌한 대가로 아버지까지 구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웨이중팅에게 접근해 독서회에서 읽는 책을 빼돌려 바이 교관에게 바친다. 그녀는 안 선생이 전근 가는 정도에서 사건이 마무리되길 기대했지만, 결국 독서회 관련자 8명이 모두 체포된다. 그러므로 악몽의 상황은 팡루이신과 웨이중팅이 저질렀으나 무의식 속에 영원히 가두고 싶었던 사건에 대한 기억이 귀환한 것이다. 억압한 것은 부지불식간에 어떤 방식으로든 귀환하기 마련이며, 그것을 펼쳐내는 것이 공포영화의 핵심 모티브이기도 하다.

팡루이신과 웨이중팅이 기억을 되살리게 될 때마다, 영화는 악몽의 공간에서 현실의 공간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두 인물이 죄책감으로 억압한 기억이 귀환할 때의 공포 어린 상황과 그들이 실제 겪었던 과거의 사건이 뒤섞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억압적인 실제와 무시무시한 악몽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그러므로 실제 공간의 미장센은 공포영화의 느낌이 나는 진한 녹색이거나 낙엽 같은 색채로 연출된다. 그런 억압이 존재하는 세계는 사실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표현이다.

교관이 등교하는 학생들을 매서운 눈길로 감시하면서 뭔가 수상하다 싶으면 바로 책가방을 뒤지는 상황, 학생들이 군인들처럼 일사불란하게 발맞추어 운동장에 나와 일렬로 서서 조회를 하는 상황, 타고르의 시집이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을 읽었을 뿐인데 국가전복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고 끔찍한 고문을 받고 처형까지 당하는 상황, 미성숙한 소녀의 나이브 한 소망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 등등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라면, 공포영화보다 더 끔찍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1970-80년대의 대다수 한국인들처럼, 그러한 현실이 지속되면 그것의 공포는 표면 아래 억압되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 듯이 살아가게 된다. 공포영화에서 괴물이 등장할 때 평범해 보였던 일상이 억압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듯, 이 영화의 인물들이 비극을 겪는 과정에서 인권을 말살하는 독재 정권의 폭력성이 가시화되고 정상 같았던 일상의 소름 끼치는 정체가 표면화된다. 악몽 속에서 폐허가 된 학교 또는 독재 정권의 하수인인 바이 교관이 끔찍한 괴물로 변형되어 등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 실제이기 때문이다.

 

너무 큰 죄책감에 시달리는 팡루이신은 악몽의 공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너무 큰 죄책감에 시달리는 팡루이신은 악몽의 공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팡루이신과 웨이중팅의 깊은 죄책감은 그들을 계속 악몽 속에 가둬놓는다. 장 선생은 팡루이신에게 “살아있기만 하면 기대할 일이 많이 생기고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끝내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반면 웨이중팅은 “누군가는 살아남아 이 모든 걸 기억해야한다”는 장 선생의 설득에 따라 살아남기로 결심하고 그 악몽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가 겪은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트라우마는 그 시대를 살았던 대만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까지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모든 국민이 가해자와 피해자 또는 방관자로 분류된 채 인권을 말살하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 놓였던 기억은 무의식의 심연 속에 영원히 묻어두고 싶은 상처가 된 것이다. 따라서 그런 상처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는 건 쉽지 않으며, 치유가 필요한 집단 트라우마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장 선생의 설득에 따라 웨이중팅은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장 선생의 설득에 따라 웨이중팅은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존쉬는 『씨네21』(2020/08/20)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잊은 것입니까, 아니면 기억해내기가 두려운 것입니까?”라는 질문(원작인 게임에서 반복된 대사)을 던지면서, “이 이야기는 팡루이신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고통받은 이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처를 치료하려면 먼저 상처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대만 관객이 영화를 통해 묻어둔 과거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기를, 그것이 트라우마 치료의 첫 단계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중년이 된 웨이중팅은 비로소 용기를 내어 장 선생의 무덤과 진짜 폐허가 된 추이화 고등학교를 찾아간다. 그리고 여전히 교실에 갇혀있는 팡루이신의 영혼을 불러내어 장 선생이 남긴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 생은 인연이 없으니 다음 생에서 만나자.” 팡루이신은 장 선생이 걸어준 사슴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면서 눈물을 흘린다. 웨이중팅이 “영원히 잊지 않을게”라고 다짐할 때,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장면은 피해자들이 무지한 상태에서 가해자가 된 이들, 그러므로 그들 또한 역사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용서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공포영화는 관객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장르이다. 이 장르가 다만 공포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심장해지는 순간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는 공포를 적절하게 다룰 때뿐만 아니라, 특정 개인이나 사회가 억압한 것이 무엇인지를 포착할 때이다. 따라서 <반교: 디텐션>은 공포영화의 가치를 너무나 적절하게 활용한 매우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 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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