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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의 무한 능력 : <니키라라고도 알려진>과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로 재확인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의 무한 능력 : <니키라라고도 알려진>과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로 재확인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1.07.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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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에 개봉한 <니키리라고도 알려진>(리키 리(이승희), 2006)을 보면서, 다큐멘터리 영화의 매력을 새삼 느꼈다. 무한 능력을 재확인했다고 할까? 

그리고 2005년 부산영화제에서 만났던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그레이스 리, 2005)도 생각났다. 두 영화는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제작된 1시간 안팎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감독 이름이 영화 제목에 들어가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두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여러 능력도 드러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

<니키리라고도 알려진>과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는 일종의 자화상 같은 영화다. 두 영화는 감독 자신에 집중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식으로 개인적 차원의 설명만 하는 건 아니다. 대신 수많은 사람을 등장시키면서, 감독의 고민과 의도에 집중한다.

<니키리라고도 알려진>은 감독 스스로를 ‘니키리’라고 단순명료하게 칭하는 대신, ‘니키리라고 알려진 사람’이라고 느슨하게 칭하며 자신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뉴욕에서 주목받던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니키 리가 작업하는 모습과 여러 나라 여러 도시에서 전시회나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모습, 혼자 혹은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걷고,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고, 춤을 추는 등 다양한 상황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 중인 여러 버전의 니키 리를 보여준다.

사진 촬영 현장에서 니키 리는 카메라를 잡는 대신 다양한 모습을 한 채 카메라 앞에 선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시리즈에서는 스스로 스트립 쇼걸, 뉴욕의 여피족, 레즈비언, 노인 등으로 분장하고, 일정 기간 그들 속에 섞여 지내면서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냈는데, 덕분에 사진 속 니키 리의 모습은 말 그대로 다양하다. 이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니키 리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다양한 모습의 니키 리를 만나게 된다. 또한 다양한 니키 리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한편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가 다루는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는 감독 본인과 이름이 같은 수많은 그레이스 리를 찾아 나선 프로젝트다. 한국계 미국인인 감독은 영화 초반에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그레이스 리’라는 이름의 아시아계 여성을 여럿 만나봤을 거라며, 과연 다른 그레이스 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 나선다. 영화에 소개된 한국계, 중국계 그레이스 리들은 학생, 언론인, 사회 운동가 등으로서 각자의 일상을 살고 있는데, 그 모습이 참 다양하다.

두 영화는 각기 다른 의도와 방식으로 많은 사람의 모습을 담아냈다. 사실 극영화든 다큐멘터리영화든 영화는 참 많은 사람을 담아낼 수 있다.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잘 몰랐던 사람뿐만 아니라 사건이나 세상도 담아낸다.

<니키리라고도 알려진>를 통해 뉴욕 예술계의 일부를 엿보며 사진의 피사체이자, 작가인 니키 리와 영화감독 니키 리를 모두 목격할 수 있다. <그레이스 리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아시아계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일상을 엿보며, 그들을 촬영하고 있는 영화감독 그레이스 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엿보기와 목격, 발견은 영화가 지닌 매력적인 능력 중 일부다.

 

- 재구성된 현실

그렇다고 영화가 담아내는 사람과 세상이 현실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이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사전에 상황을 설정하고, 대사를 정한 것이 아니라 해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현실 자체의 포착보단 현실의 재구성이 시작된다. 하필이면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촬영했다는 것 자체에서 이미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Projects)’ 시리즈, ‘파츠(Parts)’ 시리즈, ‘레이어즈(Layers)’ 시리즈 등을 통해 누군가의 정체성을 주변, 상황,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하며 표현했던 니키 리의 사진 작업 방식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 과정에서도 활용된다. 니키 리는 영화 카메라 앞에 서서 ‘니키리라고도 알려진’ 사람의 모습을 연기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연기가 아닌지 구분하긴 어렵다. 굳이 구분할 필요도 느껴지진 않는다. 그 모든 모습이 바로 ‘니키리라고도 알려진’ 사람의 모습일 테니 말이다.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여러 모습을 연기한다. 상황에 따라, 상대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넓은 의미에서 연기이다. 그저 가식이나 가짜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함께 하는 사람에 따라 말수가 적어질 수도 있고, 많아질 수도 있다. 일터에선 냉철한 사람이지만, 친구와의 자리에선 그저 웃음 많은 사람일 수 있다. 그때그때 다르고, 동시에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도 세상도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에는 감독이나 만드는 이의 의도에 따라 재구성된 현실이 담기기에 조금 단순해지는 경향도 있다. 스크린이나 화면이라는 창문을 통해 보게 되는 사람과 세상이다 보니, 특정 방향으로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좀 더 집중해서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현실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 또한 영화의 매력적인 능력 중 일부다.

 

- 관객의 태도

그렇다면 영화를 통해 재구성된 다양한 사람과 세상을 보는 관객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 그저 영화의 매력에 빠지면 되는 걸까?

사실 많은 걸 감쪽같아 보이게 하는 영화의 능력에 비해 인간의 이해 능력은 좀 떨어진다. 예를 들어 스스로 내 마음도 알기 어렵고, 눈앞에서 이야기 하는 친구의 마음을 알기도 어렵다. 하물며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사람을 알고 세상을 안다는 건 더 어렵다. 사람과 세상이 워낙 다차원적이고 복잡하기에 한두 시간 영화를 봤다고 다 알 수는 없다.

게다가 관객에겐 어디까지 현실이고 비현실인지, 진심인지 거짓말인지, 연기인지 아닌지 등등을 명확하게 구분해낼 능력도 부족하다. 빠른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 빵빵한 배경 음악 등까지 다양한 시청각 요소들이 배합되면 더더욱 구별 능력이 상실되고, 착각 능력은 배가된다. 덕분에 영화에 빠져들고, 감정이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영화를 만든 이의 의도든, 보는 이의 의도든, 빠져들 땐 빠져들면서 느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극영화든 다큐멘터리 영화든, ‘이런 식으로 보길 원하는군.’ 정도의 생각을 잠시 해보는 태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혹시 편견의 늪에 빠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니키리라고도 알려진>은 카메라와 피사체,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을 다양한 재구성 방식으로 담아내는 영화의 무한 능력을 재확인하게 된다.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영화는 이달 말까지 상영 예정이다. 즐겨보시길!

 

 

이미지 출처: 아트나인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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