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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참으며 산다는 것 : 덴마크 수잔 비에르 감독 <인 어 베러 월드 In a Better World>(2010)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참으며 산다는 것 : 덴마크 수잔 비에르 감독 <인 어 베러 월드 In a Better World>(2010)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1.07.1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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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인 안톤은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는 의사이다. 역시 의사인 아내 마리안느와는 별거중이다. 두 아들을 두고 있고, 덴마크에서 살고 있다. 영화의 초반에는 안톤의 공간이 나온다. 아프리카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안톤은 절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 중간에 크리스티앙의 조사가 나옵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조사는 안톤과 상관은 없지만, 이후 이 두 개의 공간이 서로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영화는 두 개의 상관없는 운명이 서로 만나게 된다는 것을 이 장면을 통해 암시한다. 안톤의 큰 아들 엘리아스는 학교안에서 이지메를 당한다. 같은 반 크리스티앙은 엘리아스를 못살게 구는 급우를 때려눕힌다. 크리스티앙의 엄마는 얼마 전 암으로 죽었고, 현재 아버지 크라우스와 살고 있다.

엘리아스와 크리스티앙은 폭력죄로 조사를 받지만 이 일로 서로 친해진다. 어느 날 안톤은 이들과 같이 시내에 갔다가, 잘못도 없이 덴마크인에게 뺨을 맞는다. 분명히 오해가 있었음에도, 폭력적인 덴마크인은 안톤에게 스웨덴인 이라며 욕하고, 일방적으로 구타했다. 안톤은 애들앞에서 참으며, 참는 것이 이기는 거라는 교훈을 준다. 안톤은 덴마크인의 폭력을 참으며 엘리아스에게 겁쟁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도 인간인 지라 한편에서 참으면서도, 한편으론 고통스럽다. 갈등의 순간을 포착하는 영상은 흔들리는 카메라와 문득 나타난 거미줄이다. 마치 자신이 거대한 거미줄에 포획되어 있는 듯한 생각을 한다면? 이 장면은 시적 은유의 장치다.

하지만 이에 분노한 크리스티앙은 그 덴마크인의 차를 수소문해 그의 주소를 알아내고, 엘리아스에게 준다. 엘리아스에게 주소를 받아든 안톤은 덴마크인이 근무하는 자동차 정비소로 찿아간다. 안톤이 사과를 요구했지만 여전히 덴마크인은 안톤을 애들 보는 앞에서 구타했다. 안톤은 다시 한번 참으며, 애들에게 참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는 것이다.

 

크리스티앙은 그 덴마크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을 꾸민다. 그의 차를 폭파하기로 한 것이다. 엘리아스는 망설이다가, 결국 그에 가담한다. 새벽에 폭약을 설치하고 불을 붙인 순간, 어떤 엄마와 딸이 조깅을 하며 다가오는 것을 엘리아스가 발견한다. 엘리아스는 황급히 달려가 그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고함을 지르고, 폭발과 더불어 중상을 입게 된다. 그의 경고로, 다가오던 모녀는 전혀 화를 입지 않았다.

마리안느는 크리스티앙을 심하게 꾸짖는다. 크리스티앙은 크라우스에게 엄마 죽음의 책임을 묻지만, 엄마가 스스로 죽고 싶어 했다는 말을 듣는다. 크라우스는 당시 아내에게 크리스티앙을 위해 죽지 말라고 했다. 크리스티앙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아빠를 미워했던 자신을 증오하여, 자살을 결심한다. 엘리아스가 깨어나고, 안톤은 크리스티앙을 달래 자살을 막는다.

안톤은 다시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간다. 그 마을의 원성을 사던 추장이 치료를 받으러 온다. 그는 추장의 뻔뻔한 태도에 분노하여, 그를 치료하지 않는다. 안톤은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다 폭발하여 일순 멍해진다. 안톤은 별거중이던 마리안느와 다시 결합한다.

이 영화의 두 개의 공간은 아프리카와 덴마크다. 두 개의 공간에서는 비슷한 뉘앙스의 폭력사건이 발생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잔학한 추장, 덴마크에서는 난폭한 인종차별주의 덴마크인이다. 안톤은 덴마크에서 비폭력을 주장하지만, 아프리카에서 결국 비폭력을 철회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이 두 공간은 관객에게 영화의 주제를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감독의 설정이다. 안톤의 차가 아프리카의 사막을 떠나고 그 이미지는 덴마크의 풍차로 이어진다. 분리된 것이 아니고 중첩되면서 연속되는 의미를 주고 있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세계를 결합시킨다. 대우주와 소우주다. 대우주를 구성하는 것은 아프리카의 국경없는 의사회 봉사활동이다. 그곳에서 안톤은 부족의 독재자를 만나고 나약한 부족민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목격한다. 소우주는 덴마크의 가족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다. 덴마크인의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대우, 학교안에서 아들 엘리아스의 차별. 이 두 개의 우주적 갈등은 서로 절충되고, 용해된다.

또한 제1세계와 제3세계간의 갈등이 전개된다. 덴마크 혹은 스웨덴으로 대변되는 유럽, 즉 제1세계와 아프리카로 대변되는 제3세계의 현실이 대립된다. 이 두 개의 서로 상관없는 듯한 이야기들은 달리 길을 가지만, 서로 어떤 연관을 갖는 것처럼 주인공 안톤의 의식속에서 작용한다. 그가 아프리카의 독재자 추장을 치료하지 않기로 결정한 행동은 분명 그 이전에 망설이던 그의 행동과는 구별된다. 비폭력주의자이고 박애주의자였던 그가 그처럼 분노하고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덴마크에서 그가 받았던 수모와 어떤 역학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된다. 아프리카에서 그의 행동이 어쩌면 위선적이고 애매한 것이었다는 반성속에서 취해진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개인과 사회를 교차시킨다. 개인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안톤을 중심으로 별거한 마리안느, 크라우스에 대해 반감을 갖는 아들 크리스티앙. 이들의 갈등과 문제의식은 나중에 눈녹듯 해결된다. 그 과정이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 이면에 사회적 주제의식이 달려가고 있다. 안톤의 스웨덴 국적과 폭력적인 차별주의자 덴마크인과의 갈등. 인종차별, 국가우월주의라는 개념이 지배한다.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라는 역사적 개념이 자리한다. 이 두 개의 커다란 흐름이 서로 달리 진행하지만, 어느 지점에 가면 둘이 서로 만나진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감독은 이 두 가지 요소를 별개가 아닌 하나로 보고자 의도했다고 볼 수 있다.

 

감독 수잔 비에르(Susanne Bier, 1960 - )는 유태계 부모 가정에서 태어나, 1987년 덴마크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여러 편의 영화를 찍었고, 이 영화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녀의 유태인 가계는 영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는 독일에서 나찌가 등장하던 1933년 도망 나와 덴마크로 이주했고, 거기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지만, 다시 나찌가 덴마크에서 극성하자 스웨덴으로 이주했다. 그녀의 어려서 소망은 유태인 남자와 결혼해서 여섯 명의 아이를 키우며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장을 갖으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녀는 두 번 결혼했고, 두 명의 자녀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그 가족과 아이가 없었으면 결코 영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한다.

그처럼 그녀의 가계는 영향을 주었으며, 영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 영화 역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아이의 관계, 스웨덴과 덴마크의 국가적 갈등, 우월감, 차별 등이 소재로 등장한다. 그녀는 가족이 영감을 주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가족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과 친하게 지내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한편으로 비에르는 제3세계의 현실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다. 그녀는 인도 및 아프리카 등지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 그녀는 유럽인으로서 이들 제3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통찰하고,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유태인 경험은 영화세계 및 인생 전반을 지배한다. 2차대전 때 부모가 겪었던 어려움은 곧잘 현대 사회에도 적용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녀 영화의 주인공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회가 변해서 자신들을 괴롭히고 억압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러한 해석이 그녀 영화의 핵심이 된 것은 부모님의 영향과 유태인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또한 좁은 국가주의를 벗어나 보편적인 세계주의를 갖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글·정재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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