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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게 유대인 피가 섞였다는 사실이 입증된 후에도
히틀러에게 유대인 피가 섞였다는 사실이 입증된 후에도
  • 안치용/인문학자
  • 승인 2021.08.1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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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고전산책]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3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를 설명하면서 자본주의와 출판ㆍ인쇄술 발달의 영향을 매우 중요하게 거론하였다. 타당한 관점이다. 앤더슨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한 것 중에는 시장이 있다. 근대국가는 맹아 상태에서부터 자본주의적 시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역으로 자본주의적 시장이 근대국가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근대국가가 만드는 이 시장은 영어로는 ‘nationwide’한 시장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저 전국적인시장이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 nation이란 단어에 담긴 다양한 뜻을 감안하면 ‘nationwide’한 시장은 근대국가의 핵심 기제가 될 수밖에 없다.

반복하면 근대국가가 nationwide한 시장을 만들고, 시장 입장에서도 nation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고 하겠다.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어느 특정 nation에 속한 자본가는, 다른 언어를 쓰든 다른 인종이든 다른 nation의 자본가로부터 보호받으면서 자신의 상품을 팔 수 있는 고유한 시장을 필요로 했다. 민족국가 형성과 자본주의 발전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유럽은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성립 이후에 종교와 인종에 따라 지금의 유럽과 흡사한 모습으로 영역이 구분된다. 동시에 자본주의가 발흥하면서 영역별로 자신들의 시장과 자신들의 지배를 관철할 공통의 이해관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도출한다.

예컨대 조선의 이씨 왕조에 비견될 수 있는 독일의 호엔촐레른 가문이 베를린이 포함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되어 이 지역에 거점을 마련한 시기는 1415년으로, 조선왕조가 개국한 1392년보다 20여 년 늦다. 호엔촐레른 가문은 종교개혁 시기에 재빠르게 개신교로 개종하여 정치적으로 이득을 취하고 오데르 강과 슈프레 강의 수운을 이용한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다. 지금은 폴란드 영토에 속한 프로이센 공국을 흡수한 게 1618년이다.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귀결한 30년전쟁에는 신교도 편에 서서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으로 참전하였고 브란덴부르크가 30년전쟁의 주전장이 되면서 많은 인구가 사망하는 쑥대밭을 겼었으나, 종전과 함께 베스트팔렌조약을 통해 동부 포메른과, 마그데부르크, 할버슈타트, 카민, 민덴의 4개 주교령을 획득하는 보상을 받았다. 호엔촐레른 가문이 프리드리히 1, 프리드리히 빌헬름, 프리드리히 대왕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군주를 연이어 배출하면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1701년에 프로이센왕국의 왕이 되었고 나중에 독일제국의 황제에까지 오른다.

근대국가가 흔히 상비군과 관료제를 핵심 특징으로 한다고 할 때 프로이센이 여기에 해당한다. 호엔촐레른 가문을 포함하여 유럽의 많은 왕가는 신성이 부여한 하늘로부터의 정통성이 조용히 시들어 갈 때 민족이라는 표어에 손을 뻗었다. 계몽군주로 명성을 날린 프로이센왕국 3대 국왕인 프리드리히 대왕의 군대 지휘관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던 반면 프로이센왕국 6대 국왕에 해당하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군대의 지휘관은 클라우제비츠 등의 개혁 결과로, 전적으로 프러시아 민족만으로 구성된다.

민족에서 피는 사실 크게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유대인을 그토록 혐오한 히틀러에게 유대인 피가 섞였다는 의혹이 오랫동안 제기되었는데 실제로 21세기 들어 DNA 검사를 통해 의혹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히틀러처럼 외형상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피와 비교해 언어는 조금 더 신뢰할 만한 민족성의 지표이지만 당연히 언어라고 확고한 지표는 아니다.

예컨대 1066노르만정복으로 알려진 영국 정복을 통해 현재 영국의 기초를 쌓은 것으로 알려진 정복자 윌리엄’(윌리엄 1), 사실 큰 의미는 없지만 영어를 하지 못했다. 윌리엄 1세처럼 옛날로 올라가는 인물이 아니라, 지금까지 독일인으로부터 대왕으로 사랑받는 프리드리히 대왕을 살펴보면 그의 일상어는 독일어가 아니라 프랑스어였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정무 언어로 프랑스어를 썼고, 그가 남긴 모든 글도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의 발달, 근대국가의 형성, 새로운 통치이념의 필요성 등이 맞물리며 19~20세기의 히트상품이 되었다. 앤더스은 민족주의가 상상되자마자 표절되고 변형되었다고 말한다. 제정 러시아, 헝가리, 영국, 일본, 태국 등의 왕조 국가들이 신성이 아니라 민족으로부터 권력의 정당성을 가져오기 위해 신대륙의 민족주의를 표절했다는 것이 앤더슨의 설명이다. 관제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의 등장이다. ‘관제 민족주의에 관한 앤더슨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민족주의는 왕조적 원리를 침식했고,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모든 왕조에게 자체 귀화를 부추겼다. 이러한 관제 민족주의는 왕조 권력의 유지를 (왕족의) 귀화와 결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짧고 꽉 끼는 민족의 피부를 제국의 거인 같은 몸통에 늘여 씌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관제 민족주의’, 즉 의지를 품고 이루어진 민족과 왕조 제국의 합병의 위치를 고려하는 데 대한 열쇠는 이것이 1820년대부터 유럽에서 왕성히 자라나고 있던 인민적 민족 운동들 이후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발달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 영토에서는 민족주의의 마지막 물결이 일어나는데, 산업자본주의의 막대한 성취로 인해 가능해진 새로운 스타일의 지구적 제국주의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것이 앤더슨의 분석이다. 마지막 물결에 속하는 제3세계 민족주의에서는, 민족 구성원이 쓰는 모국어와 영어ㆍ프랑스어ㆍ독어 같은 식민국의 본토 언어를 함께 구사하는 이중언어 능력을 보유한 인텔리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방공간에서 영어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미군정청과 연줄을 형성하며 남한 사회의 주류로 성장한 것이나, 무엇보다 이승만이 남한 단독정부의 수반으로 미국으로부터 간택을 받은 데는 그가 영어에 능통한 미국 생활 경험자라는 사실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3세계의 이중언어 구사 인텔리들은 20세기 초반에, 이미 한 세기 이상 지속된 아메리카와 유럽의 사납고 혼란스러운 경험들로부터 민족과 민족됨, 민족주의를 증류하여 실현 가능성을 높인 여러 모델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들은 크리올 민족주의, 일상어 민족주의, 관제 민족주의 등을 복사ㆍ각색ㆍ개량하여 자국에 적용하였다.

1차 세계대전은 고귀한 왕조주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1922년쯤이면 유서 깊은 합스부르크, 호엔촐레른, 로마노프, 오스만 가문이 모두 사라졌다. 서구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 분할을 공식화한 1884~1885베를린 회의의 자리에 이제 민족(nation)들의 연맹,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들어섰으며, 국제연맹에서는 베를린 회의와 달리 비유럽인이 배제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정당성 있는 국제 규범은 민족국가였고, 그렇기에 살아남은 제국주의 세력들조차 국제연맹에는 제국의 제복이 아닌 민족의 의상을 입고 왔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변동 이후 민족국가의 조류는 만조에 이르렀다고 앤더슨은 말한다.

국제연맹을 계승한 국제연합(united nations)’ 또한 민족(nation)들의 모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명하였다. 이제 민족국가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이 되었고, 일상어의 공유 없이도 민족이 상상될 수 있는 정도에 도달하였다. 민족주의를 우회할 길이 더는 없다는 뜻이다.

민족주의는 근대국가의 초석을 놓았지만, 발칸반도 등지에서 그 심각한 부작용을 드러내곤 하였다. 따라서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흔히 민족주의의 병리를 지적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비판의 근거는 일반적으로 타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 과격한 인종주의 등이다. 앤더슨은 상상된 공동체로서 민족이 등장하기까지 다양한 음모가 개입하였지만, 무엇보다 바로 그 상상으로 인해 민족주의는 인종주의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앤더슨은 민족주의는 역사적 운명의 언어로 사고하는 반면 인종주의는 역사의 바깥에서 혐오스러운 교미의 끝없는 연속을 통해 시간의 근원으로부터 전달되는 영원한 오염이라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인종주의의 꿈은 그 기원을 민족 이데올로기보다는 계급 이데올로기에 두며 민족주의 이전부터 존재한 현상이란 차이를 갖는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임은 분명하지만, 민족주의를 오염시키는 다양한 병폐를 제대로 방어해내기만 한다면 민족주의는 무죄라는 앤더슨의 논지는 상당히 수긍할 만하다. “우리 자신에게 민족은 사랑을, 그리고 때로는 심원하게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고취한다는 앤더슨의 표현은 살짝 국뽕적인 냄새를 풍기지만 민족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수평적인 동지애 위에서 주권을 가진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상상한다는 정치행위의 결과를 표현한 것이라면 굳이 민족주의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우리 주변에 있고, 역사를 같이하고,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면서 그들과 우호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하려는 인식. 그렇다고 역사ㆍ문화ㆍ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절대로 배제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 이 인식과 의지가 결합한 공동체 의식을 민족주의라고 한다면 그런 민족주의는 권장할 만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전에 그 유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조작을 통해서 다른 유대에 속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공격하고 억압하도록 만든 장치들은 우리 내면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한다.

근대국가가, 특히 근대국가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통치의 필요성에 의해서, 또한 시장의 필요성에 의해서 고안된 장치임을 꿰뚫어 본다면, 어쩌면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상상의 공동체를 따뜻하게 포용하고 진보의 기지로 삼는 일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2006년 영미권에서 <상상의 공동체> 개정판이 출간되었을 때 영국 역사학자 티 제이 클라크(T J Clark)는 런던리뷰오브북스에 기고한 서평에서 “<상상된 공동체>는 우리가 (현대의) 여러 문제들을 생각하는 출발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덧붙이자면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글 안치용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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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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