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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인천의 문화적 장소 보전을 희망하며
[이병국의 문화톡톡] 인천의 문화적 장소 보전을 희망하며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1.08.17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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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험하는 장소는 지리적으로 주어진 공간과는 다르다. 에드워드 렐프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가 융합된 것이자, 우리가 세계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의미의 중심이며 추상적이거나 개념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생활 세계가 직접 경험되는 현상이다. 그는 장소를 개인과 공동체 정체성의 중요한 원천이며, 때로는 사람들이 정서적·심리적으로 깊은 유대를 느끼는 인간 실존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1) 다시 말해, 장소란 자연물과 인공물, 활동과 기능, 그리고 의도적으로 부여된 의미가 종합된 총체적인 실체인 셈이다. 이때의 장소는 지리학적인 위치를 점유하는 실체이면서 실존적인 내부성을 통해 경험되는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인천 동구 화수동에 위치한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미문의 일꾼 교회’ 이하 ‘인천산선’) 철거와 관련한 일련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이다. 인천산선은 1961년 4월 감리교 인천 동지방 감리사인 조용구 목사(주안교회)와 인천 서지방 감리사 윤창덕 목사(내리교회)가 인천 동일방직(인천 동구 만석동 37번지)과 한국기계공업(대우중공업 전신, 인천 동구 만석동 6번지)에서 산업선교를 전개하기 시작하였고 그해 9월 오명걸 선교사(George E. Ogle)가 인천에 내려와 화수동 초가집을 매입하여 인천산선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이루었다.2)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민주화 운동의 산실로 평가받는 인천산선 철거가 포함된 화수·화평 주택재개발 사업을 인천시가 승인, 고시함으로써 논란이 일고 있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도시의 재개발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인구의 증가와 거주지의 노후화로 인해 재개발하여 시민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면 그 일은 그릇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재개발을 통한 부동산 투기가 만연한 현상으로 말미암아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사회, 문화, 역사적 장소의 상실을 강제하는 점은 문제 삼을 필요가 있다. 도시재개발이 도시 재생을 통한 장소화된 공간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단순히 아파트 건설과 그 주변의 상업지구 개발이라는 획일적 도시화의 범주에 머무는 것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에 인천산선은 다방면으로 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4대 총무였던 김정택 목사가 30일간 단식에 나섰으며 이후 인천의 시민단체들이 동조 릴레이단식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천산선에 관한 이야기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련 사항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다만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인천이라는 공간이 문화적 장소로서 자리매김한 측면들이다. 이를 문학과 연계하여 바라보고자 한다. 특히 인천항을 중심으로 한 일제 강점기 개항장과 차이나타운 그리고 화수동, 만석동, 수문통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 역사적 길을 따라가면서 인천이라는 공간이 시민들에게 장소로 기능하는지 문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1883년 1월, 인천은 부산, 원산에 이어 세 번째로 개항하였다. 근대 이후 외국인의 왕래와 외국과의 무역을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개항장 인천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으로 인해 서구의 신문명이 들어오는 전초기지이면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거점 도시로 성장하였다. 개항과 함께 조계(租界)가 설치되어 일본인과 중국인, 그리고 기타 외국인들의 거주와 경제활동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조처가 내려진 인천 개항장 일대는 그중에서도 일본인들의 입국이 가장 많았다. 1910년 일본에 대한제국이 강제로 병합되던 해에 인천의 인구 31,011명 중 외국인의 인구가 일본인 13,315명, 중국인 2,806명, 기타 외국인 70명 등 총 16,191명으로, 인천 전체 인구 가운데 52%를 넘는 비율이 넘는데 그중 일본인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을 짐작케 한다.3) 개항 초기에는 국제무역과 상업이 번성했으나 1899년 9월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서울의 관문도시 정도로 축소되기도 했다.

 

인천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근대 개항장에서 출발한다. 이는 한 평론가의 말처럼4), 바다로 상징되는 자연의 리듬과 근대 개항 도시로 한때 화려했던 국제도시 인천의 낭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정주와 이주가 맞물리면서 기회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으나 인천의 지리적 상황은 서울 중심의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서울 외곽도시에 머무르게 했고 결국에는 퇴락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항기 인천의 모습은 여러 신소설에서 발견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인직의 『혈의 누』이다. 주인공 옥련이 일본 군의관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는데 이때 인천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인천은 근대화를 위한 기항지라 할 만하다. 반면 같은 시기 이해조는 1907년 제국신문에 연재한 『빈상설』에서 난파선에서 구조되어 인천항에 내린 주인공 난옥을 통해 인천이 국적불명의 도시라는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5) 이후 인천을 배경으로 한 한국 근대 문학작품들은 어떤 양상을 보였을까. 우선 1928년 『조선지광』에 실린 박팔양의 시 「인천항」을 보자.

 

옛 인천항_사진출처-네이버
옛 인천항_사진출처-네이버

  조선의 서편항구 제물포부두

  세관의 기는 바닷바람에 퍼덕거린다

  젖빛 하늘, 푸른 물결 조수 내음새

  오오 잊을 수 없는 이 항구의 정경이여

  상해로 가는 배가 떠난다.

  저음의 기적, 그 여운을 길게 남기고

  유랑과 추방과 망명의

  많은 목숨을 싣고 떠나는 배다.

 

  어제는 Hongkong, 오늘은 Chemulpo, 또 내일은 Yokohama로

  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폴리턴

  모자 삐딱하게 쓰고 이 부두에 발을 나릴제,

- 박팔양, 「인천항」 부분.

 

박팔양은 각국 조계지가 있는 인천의 풍경을 “유랑과 추방과 망명”이라는 이미지로 제시하며 식민지 조선 내부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박팔양에게 인천은 홍콩, 요코하마 등으로 이어지는 코스모폴리턴이면서도 정착할 수 없는 식민지인의 비애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6) 1947년 발표된 박인환의 시 「인천항」에서도 항구에 펄럭이는 미군의 성조기를 보고 식민항인 홍콩의 운명에 인천을 겹쳐 바라보는 안타까움을 드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인천이라는 공간이 갖는 슬픔은 반복해서 다루어져 왔다. 이는 개항장이라는 항구 도시 인천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상실감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덕의 『남생이』(1938)는 인천의 부둣가에서 하역노동자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과 그 노동자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노마네 가족이 겪는 힘겨운 생활상을 그렸으며,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1979)에서는 석탄가루 날리는 항구도시와 고향마을을 비교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농촌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인천에서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나는 문학 작품은 강경애의 『인간문제』(1934)이다. 이 작품은 만석동에 위치한 동양방적회사(소설에는 대동방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1955년 민영화되었으며 1966년 동일방직으로 회사 명칭이 바뀌어 있다)를 중심으로 주인공 선비와 첫째, 신철 등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이 비교적 자세하게 그려졌으며, 건강하고 활기찬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인해 1930년대 항구 도시에서 공업 도시로 변화해 가는 인천의 활력이 잘 표현되어 있다. 동일방직은 1972년 한국 최초로 여성 노조지부장을 선출한 곳이기도 하며, 1978년 2월 일명 ‘똥물사건’이라 불리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한 곳이다. (인천산선은 당시 여성노동자의 피신처였으며 적극적으로 여성노동운동을 지원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과 관련해 발표된 이설야의 시를 읽어보도록 하자.

 

동일방직_출처-인천뉴스
동일방직_출처-인천뉴스

  하늘에 온통 붉은 눈발 내리던 날들이 지나고

  빙판길에도 봄이 들어서는

  꽃을 꽃이라고만 불러야 하는 계절이 돌아와

  내가 상고에 간신히 입학했을 때

  그애는 동일방직에 나갔지

  낮에는 공장 다니고, 밤에는 산업체 야간학교 다니고

  내가 밀린 납부금 때문에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을 때

  그애는 여공이 되어 솜뭉치로 매일 가슴에 돋는 상처를 봉했네

  커다란 기계 밑에서 나사못처럼 구부러지고 있었네

  나사못이 된 그애가 만든 실이 내 몸으로 감겨왔던가

  나는 밤마다 영혼의 올이 하나둘 풀려 가느다란 실로 집을 지었네

 

  전염병처럼 졸음이 오고 분홍 알약이 목구멍으로 사라지면

  잠 대신에 악몽 속의 귀신들이 따라다니며 실을 풀어갔네

  천사가 올 때까지만 다닌다던, 그애

 

  (중략)

 

  하늘이 내려앉은 그애의 가슴은 점점 더 큰 솜뭉치가 되어갔네

  눈물 먹은 솜뭉치는 얼어버렸나 쨍그랑, 얼음처럼 깨졌네

  그애의 질병 같은 사랑도 영 끝이 났다네

  산업역군이라던 그애의 가면 아래 썩어가던 일기장

  폐수가 흐르는 수문통에서 다시 그애를 만났을 때

  그애의 상처는 딱딱하게 굳어갔지

  밀랍 인형 몇이 따라다니며 상처를 닦아주었네

  인형들의 눈빛은 공장 굴뚝 연기처럼 흔들리고 있었네

- 이설야, 「동일방직에 다니던 그애는」 부분.

 

이설야는 현재 인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다. 첫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2016)에는 개항장 인천의 구도심, 수문통, 화평동, 양키시장 등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에서 이설야 시인은 ‘나’와 동일방직에 다니는 ‘그애’를 나란히 놓는다. ‘나’와 ‘그애’의 서로 다른 경험이 시 속에서 그려지면서 그것이 마치 ‘우리’의 경험이 되도록 만든다. 동일방직에서의 ‘그애’만의 경험이 아니라 ‘나’의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함으로써 시인은 사회적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딱딱하게 굳어”간 “그애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서 ‘우리’라는 공동체가 해야 할 바를 고민하게 만드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7)

 

김금희의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2018)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금희는 전작들을 통해 이주와 정주 사이에서 경험하게 되는 일상의 불안과 인천이라는 공간성에 주목(「아이들」, 「장글숲을 헤쳐서 가면」)한 바 있으며, 소외된 존재가 홀로 버티어 자신을 지켜내는 모습을 통해 우리 내면의 취약성에 대해 이야기(「세실리아」)해 왔다. 『경애의 마음』은 1999년 10월 인천 인현동에서 벌어진 화재 사건으로 비롯된 상실의 고통이 개인들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경애가 느끼는 죄의식은 현실의 여러 문제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애가 느꼈던 것은 모멸감이었다. 그런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경애는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게 된다.(이것이 노조 운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동일방직의 여성노동자의 투쟁을 연상하게 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노동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경애와 상수의 만남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변화된 인천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여러 모습은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찾아볼 수 있다. 한편에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작품들도 발견할 수 있다. 무성영화 시절 인천에서 변사로 활동한 ‘기담’이라는 인물을 통해 지금은 빛이 바랜 시절을 재현하는 양진채의 『변사기담』(2016)이 그렇거니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그래서 한편으로 낭만적인 무엇인가가 되어 애정을 품게 되는 인천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퇴락한 개항장 주변 구도심의 풍경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박일환의 시 「배다리의 밤」(2008)이나 문계봉의 시 「홍예문에서-익숙한 거리에서 기억을 줍다1」(2017)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

 

인천산선 주변 재개발과는 달리 최근 개항장과 신포동을 비롯한 구도심 지역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채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단지 뉴트로 열풍에 편승한 도시재개발 기획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 공간을 활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 중심이 아닌 과거와 미래를 잇는 시간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도시재개발로 인한 개발이익의 창출이 아니라 개발된 도시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존재들의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던 도시 속 의미 있는 장소들을 함께 보전하는 방향으로 도시 재생이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채 나이 들어가는 개항장 구도심과 그 일대를 보전한다면,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한 장소들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생활 세계의 공동체적 시간을 미래의 세대에게도 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이 글은 필자의 「인천이라는 문학적 현장」(『인더로컬』, 2020.)을 기반으로 하여 다시 쓴 것이다.

 

 

글 · 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제4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동시대 한국인이 쓴 시와 소설 읽는 걸 좋아함.


1)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김덕현·김현주·심승희 옮김, 논형, 2005, 287~288쪽 참조.

2) 이희환, 「재개발에 포위된 인천의 민주화와 노동의 가치」, 『인천in』, 2021. 8. 11. 인천산선과 관련한 역사 및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문제는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이준한·전영우, 『인천인구사』,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07, 81쪽.

4) 오창은, 「갯벌과 바다, 항구와 도시 속 생명의 리듬들」, 『작가들』, 2014년 가을호.

5) 이희환, 「근대도시 인천과 소설문학의 흐름」, 『작가들』, 2014년 가을호., 167~169쪽 참조.

6) 오창은, 앞의 글, 203~205쪽 참조.

7) 이병국, 「공간, 관계, 로컬 -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조건」, 『작가들』 2018년 가을호, 246~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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