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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문화톡톡] 아일랜드 큰 뿔 사슴과 ‘호모 헌드레드’의 주마가편
[안치용의 문화톡톡] 아일랜드 큰 뿔 사슴과 ‘호모 헌드레드’의 주마가편
  • 안치용(문화평론가)
  • 승인 2021.08.17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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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큰 뿔 사슴은 진화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화석을 통해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멸종생물인 아일랜드 큰 뿔 사슴은 발견된 화석에 근거하면 약 40만 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하여 7,700년 전까지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퍼져 살았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생물 진화의 역사에서 출현한 모든 사슴 중 가장 덩치가 큰 종이다. 화석이 발견되는 지역은 동()으로는 바이칼 호수 동안(東岸)에서 서(西)로는 아일랜드에 이른다. ‘큰 뿔 사슴의 화석이 처음 발견된 곳이 아일랜드이고,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들 대부분이 아일랜드의 늪에서 발굴된 것이어서 아일랜드 큰 뿔 사슴이라 불린다. ‘큰 뿔 사슴은 어깨까지 높이가 2.1m가량이고, 몸무게는 540~600kg으로 추정되며 큰 것은 700kg까지 나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중 뿔의 무게만 40kg에 달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뿔의 끝과 끝 사이 거리가 큰 것은 3.65m나 되었다.(위키피디아 참조)

아일랜드 큰 뿔 사슴은 큰 덩치와 큰 뿔 때문에 유명하지만 진화사(進化史)에서는 멸종의 이유 때문에 더 주목받았다. ‘큰 뿔 사슴의 뿔은 여느 다른 사슴들과 마찬가지로 해마다 떨어지고 다시 자랐는데 진화의 과정에서 점점 더 커지게 된다. 큰 뿔 선호 혹은 집착이 종 전체의 뿔 크기를 키운 셈인데, 그 이유는 암컷들이 수컷 사슴의 뿔이 더 클수록 더 잘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진화의 동인(動因)으로 뿔이 점점 더 커지면서 종국에 수컷들은 그 뿔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늑대 등 천적에 맞설 수 있는 보호무기의 기능을 상실하고 단순 장식용 혹은 엽색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너무 무거워서 적을 향해 뿔을 쉽게 휘두를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도망갈 때는 나무나 덤불에 자주 걸리는 또 다른 치명적 부작용을 노정하였다. 마침내 크기(size) 편집(偏執)’이 종의 멸종을 불렀으니 아일랜드 큰 뿔 사슴이야말로 다른 어떤 종보다도 향락적인 동물이라 할 만하다. 흥미롭게도 한자 고울 려()’에 사슴[鹿]이 들어있는데, 사슴이 잇달아 간다(사슴[鹿] ‘둘이 나란하다[]’가 합하여 려()가 만들어짐)는 해석과, ()자의 모양이 사슴[鹿]이 뿔 위에 덤불 같은 걸 덧붙여 꾸민다는 뜻이란 다른 해석이 전한다. 후자의 해석은 꼭 아일랜드 큰 뿔 사슴을 연상시킨다. 그러고 보니 려()자의 뜻 가운데 짝짓다가 들어있는 게 우연 같지 않다.

여담 하나 하고 지나가자면 크기, 특히 특정 신체부위의 크기에 관한 한 인간 수컷(어쩌면 암컷까지?)의 집착도 대단해 결코 아일랜드 큰 뿔 사슴에 뒤지지 않을 법한데 큰 뿔 사슴이 멸종한 것과 달리 인간이 아직 건재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런 근거가 없는 설명이란 전제를 깔고, 아마도 뿔은 암컷 수컷이 모두 볼 수 있는 신체의 공공연한 지점에 위치한 반면 인간의 특정 신체부위는 문명발생 이래로 은폐돼 있어 현실적인 비교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본래의 주제로 돌아가, ‘아일랜드 큰 뿔 사슴에게 종 전체를 멸종시킬 정도의 몰입을 초래한 동력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생뚱맞은지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지지자(知之者)는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 호지자(好之者)는 불여락지자(不如樂之者)니라.”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논어> ‘옹야편(雍也篇)’에 나온다. 약간 꺼림칙하지만 즐기는실례로는 아일랜드 큰 뿔 사슴만 한 걸 찾기 힘들어 보인다. 멸종할 정도로 즐김에 몰입했으니 즐김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커진 뿔은 명백한 그 증좌며, 뿔 키우기에 관한 한 전무후무한 성공사례이다.

하지만 아일랜드 큰 뿔 사슴이 거둔 전대미문의 성공은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슬픔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효율성만 추구하며 한 방향으로 내닫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와 닮았기에 드는 생각이다. 사슴이 성욕을 숭배하듯, 인간은 물신을 숭배한다. 이 방향이 잘못되었고 이 경로를 고수하다간 아일랜드 큰 뿔 사슴처럼 공멸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생존시의 아일랜드 큰 뿔 사슴들과는 달리 인간은 적잖은 숫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아일랜드 큰 뿔 사슴과 마찬가지로 뿔 키우기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어 보인다.

인간은 물신숭배의 위험을 사슴과 달리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인식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일랜드 큰 뿔 사슴이 뿔에 미친 것보다 인간이 물신숭배에 더 미쳐있는 까닭은 왜일까. 위험을 인식함과 위험에서 벗어남은 별개 차원인 걸까.

허무맹랑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인식에 부합하는 행동을 인간에게 촉구하기 위해 아일랜드 큰 뿔 사슴의 뿔 화석을 대량으로 복제하여서 집집마다 거실에 걸어놓도록 법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어떨까. 아쉽게도 그런 생생한 교훈을 거실 벽에 걸쳐놓기엔 우리네 집들이 너무 좁다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한다. 사실 인간사회에서 고대광실 뿐 아니라 누옥(陋屋)에까지 들어찬 과도한 탐닉의 결말은 백수광부 처의 노래큰 뿔 사슴의 화석을 통하지 않아도 뻔하지 않은가.

 

 

주마가편이란 말이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것은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말을 가게 하려면 간단하게 끌 끌하는 입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물론 조련된 말일 때의 이야기다. 달리게 할 때는 고삐를 한 쪽만 확 낚아채든가 박차를 가하면 된다. 채찍질도 효과가 있는데 말이란 동물이 워낙 겁이 많아서 실제로 때리지 않고 채찍을 들기만 하여도 잘 훈련된 말은 알아서 달린다.

달리는 말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질주성향을 타고난 말이란 동물에게 주마가편은 폭주를 불러올 수 있다. 말은 원래 사람 태우기를 싫어하는데 조련을 통해 등에 억지로 사람을 태우도록 교육을 받았다. 질주본능과, 기승의 허용이란 훈육 사이의 균형점에서 승마가 이루어진다. 주마가편이 가능하려면 말 뿐 아니라 사람도 훈련을 받아야 한다. 달리는 말 위에서 말을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떨어지지 않고 가속하려면 적잖은 시간을 들여 말과 친해지고 동시에 승마훈련을 이수해야 한다.

승마에는 재찍보다 고삐가 더 중요하다. 말을 달리게 하기에 앞서 말을 멈추게 할 줄 알아야 하며, 너무 당연한 얘기로 멈추게 할 줄 모르고 달리게 할 줄만 안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한데 우리는 고삐 없이 채찍을 들고 말에 탄 사람 같다. 달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달리는 걸 즐기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는 게 먼저인데, 우리에겐 그저 즉각적으로 좋아하고 홀딱 즐기는 게 절대선일 따름이다.

다시 공자의 인용문으로 돌아가면, 공자의 불여(不如)’는 등급을 뜻한다. 공자의 인용문은 지()ㆍ호()ㆍ락() 가운데 락()에 금메달, ()에 은메달, ()에 동메달을 준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불여(不如)’가 대체로 여일(如一)’보다 못하다. ‘불여(不如)’의 세상은 갈등과 반목을 기본으로 땅따먹기에 열중한다. 반면 여일(如一)’의 세상은 화합과 상생을 바탕으로 나눠먹기를 도모한다. ‘불여(不如)’여일(如一)’불여(不如)’한 것이다. ()ㆍ호()ㆍ락()은 함께할 때 여일(如一)한 세상, 여일(如一)한 삶을 가능케 한다. 효율과 등급이 아일랜드 큰 뿔 사슴에게 비참한 말로를 열었듯, 주마가편은 우리에게 치명적 낙마를 불러올 수 있다. 주마가편은 쉬우나 달리는 말을 멈추게 하기는 어렵다. 만약 그동안 주마가편으로 달려왔고 아는 것도 주마가편 뿐이라면 지금이라도 달리는 말을 세우는 방법을 배우는 게 나쁘지 않겠다. 늦지 않았다. ‘호모 헌드레드시대이니 오래 달려야 하고 오래 달리려면 멈출 줄 알아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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