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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하는 것이 노동이기에 –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 보호되길 바라는 <언더그라운드>
[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하는 것이 노동이기에 –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 보호되길 바라는 <언더그라운드>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1.08.17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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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의 투쟁을 담은 <그림자들의 섬>에서 당시 김진숙 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오랫동안 이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이 노조로 모여들었던 단 하루의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있고, 함께 싸울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그 동질감 혹은 안정감이 아마도 그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가 더 이상 활동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해도, 다양한 이유로 대열을 이탈해도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함께 한 이들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지금 그의 행동이 적어도 본심은 아닐 것이라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 준 과거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그들의 끈끈한 연대가 어떤 면에서는 나에게 절망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GV에서 그런 질문을 던졌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런 연대의 기억이 없거나 가질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우리 세대들은 어디에서 함께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느냐고.

사실 이 질문은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이에게는 의아한 질문일 것이다. 버티는 것이 문제였지 정당성과 그것을 위한 행동의 존재 자체를 의심할 상황은 상상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연대조차 불가능해진 현 노동의 구조 안에서 과연 무엇을 통해 함께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답을 듣고 싶었다. 질문을 정확히 관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들은 흥미로운 답변은 이런 것이었다. 그가 처음 노조를 만들고 노동운동을 시작했을 때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고. 당시에는 어디엔가 소속되지 않고 이 회사, 저 회사 다니면서 오히려 돈을 많이 버는 이들이 비정규직이었기에 비정규직이 이러한 착취의 구조에서 언급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 대답 뒤에 감독이 말을 보탰다. 이 ‘다음’에 대해서도 역시 고민하고 있다고.

 

<언더그라운드>는 아마 그 고민의 결과물일 것이다. 부산의 지하철, 그곳의 곳곳을 살피며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언더그라운드>는 과거 내가 받던 대우가 너무도 열악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해 개선을 외쳤던 이들, 그리고 자신들이 받던 처우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의 개혁을 외쳤던 이들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그것을 향해 함께 목소리를 냈던 이들의 뒤, 비정규직 계약이 당연하고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과는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게 따라붙는 지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의 시작이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한 고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이 장면은 노동의 기형적인 구조가 <그림자들의 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연령으로까지 내려왔다는 것을 매우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는 기간제 노동자가 늘어나고 힘든 작업을 외주로 돌리는 상황들을 직접적으로 판단하여 강조하거나 그들의 고단함을 전시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 보여주고 들려줄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 속에는 비정규직의 권리 주장에 대해 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쏟아졌던 날 선 시선들이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는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한 젊은 노동자는 자신이 일을 하고 돌아오는 동안 한 정규직 노동자는 웹툰을 보고 있었다며 비정규직으로서 느꼈던 간극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의 어조는 상대를 비난을 하거나 억울하다는 투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덧붙인 이야기는 아마 그분은 그때 할 일이 없었을 거라며 최대한 이해하려 했고,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해 정규직으로 들어왔다면 좀더 편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이 노동자의 인터뷰는 그것에서 끝난다기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다른 이들이 시험을 선택할 때 그는 실무를 선택했고,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시간들에 대해 자신의 처우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쏟아졌던 많은 비난들을 내면화한 것에 가깝다. 정규직화까지는 바라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대답이나 무기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으로의 요구에 스스로 자격을 따지는 듯한 노동자들의 모습은 이 사회가 일하는 이들에게 어떤 태도로 일관해 왔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하철이 움직이는 것이니 자신이 하는 바퀴를 닦고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냐며 웃는 노동자나 내가 맡은 구역에는 책임감을 가지고 청소하며 깨끗하면 뿌듯하다고 이야기하는 환경 미화 노동자의 자부심을 사회는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편안한 그들의 대화 속에 날카롭게 도사리고 있다.

 

이렇게 <언더그라운드>는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 다루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질문할 뿐이다. 현장견학을 나간 아이들이 비정규직은 걷고 정규직은 카트를 탄다며 두 집단을 구별해 내는 이야기를 별스럽지 않게, 지하철 터널 속에서 야간작업을 하며 땀을 흘린 노동자들이 친한 감독관에게 정규직만 사용할 수 있는 샤워실의 키를 빌려 샤워했다는 이야기를 별일 아닌 듯 흘려 보낸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들은 도대체 이 사회가 사람들에게서 노동의 가치를 어디까지 떨어뜨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고민하게 한다. 또한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조건으로 계약하는지도 모른 채 면접을 보고 취업을 하는 고등학생들의 등장은 이 노동 환경이 어도대체 디까지 뻗어 나갈지에 대해 착찹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주목할 것은 <언더그라운드>가 이러한 노동의 문제가 뉴스에 집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비정규직이라 이름 붙은 노동자들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까지를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노동의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퍼져나간 노동의 가치절하가 결국 우리에게 부정적으로 도달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함께 현장일을 하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언제부터인가 관리하는 일만 담당하고 외주 계약직 직원들이 박봉으로 선로를 관리하는 일을 담당했을 때, 노동자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는 결국 안전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한 노동자의 지적은 노동 환경의 문제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현장직에 외주가 늘어나고 티켓 판매소가 기계로 바뀌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사라졌지만 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일 것이라 생각했다는 기관사는 무인 시스템 앞에서 힘을 잃는다. 나한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이는 이제 노동의 문제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언더그라운드>는 지적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노동이 젊은 혹은 중년 성인들의 범주의 문제로만 상정되어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특성화고 학생들이나 노년층의 노동자에 주목한 책이 유독 많이 출간됐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저),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허태준),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허환주), 『임계장 이야기』(조정진)과 같은 책들은 그들이 노동 안에서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천천히 풀어나갔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차분히 이야기하고 있다. 투쟁의 현장이 등장하지 않는 노동 다큐 영화의 신선한 시도는 이 사회가 노동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이 기회를 누군가 꼭 잡기를, 그래서 미약하게라도 실천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언더그라운드>(2021.8.19. 개봉)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영화사연구자. 한국 현대문학의 극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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