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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시적인 언어의 힘 :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김시아의 문화톡톡] 시적인 언어의 힘 :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1.09.06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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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말해요. 단순히 말을 더듬는다고 말해 버리기 힘든 면이 있어요. 단어와 소리와 몸을 가지고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노동을 하는 셈이거든요. 내가 말을 더듬는 것은 나만의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날 유창하게 말하지 못한 여러 입이 만들어 낸 거대한 흐름의 일부이기도 해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날씨 이야기를 가볍게 주고받거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그런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흐름 말이에요. 말을 더듬으면서 나는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 동시에 철저히 혼자라고 느끼기도 해요. 말을 더듬는 건 두려움이 따르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이에요. 물론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게, 세련되게, 당신이 유창하다고 느끼는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 (Jordan Scott, 2020)

 

캐나다 시인 조던 스콧이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들려준 말이다. 어릴 적, 발표를 망치고 속상해하는 조던을 강가로 데려가 함께 걸으며 아빠가 해 준 이야기. 아이는 말하기 싫고 울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가 해준 말을 떠올린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말하기 어려울 때”마다 “당당한 강물”과 "강물도 더듬거릴 때"가 있다는 걸 깨달으며 아빠가 해 준 말을 떠올린다. 마침내 “학교에 가서 발표 시간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서 말했어요”라며 강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강물처럼 말해요.”라며 이야기화자 ‘나’는 말을 끝맺는다.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책읽는 곰, 2020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책읽는 곰, 2020

나도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동안, 수없이 말을 더듬으며 프랑스 사람들과 대화를 했었던 경험이 있다. 모국어를 잘해도 외국어를 배울 때 더듬기 마련이다. 내게 친구로 다가온 사람들은 더듬거리는 나의 언어에 집중하지 않았다. ‘나’ 자신과 내가 가지고 있는 문화를 교류하며 우리는 우정을 쌓아갔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외국어를 쓰면 모국어도 쉽게 잊힌다. 모든 외국인은 외국어를 더듬거리며 배워간다. 하지만 언어장애가 아닌 사람의 고유성에 집중해야 그 사람이 온전히 보인다.

그림책에서 주인공이 “아이들은 내가 저희들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것에만 귀를 기울여요. 아이들은 내 얼굴이 얼마나 이상해지는지만 봐요. 내가 얼마나 겁을 먹는지만 봐요.”, “그 많은 눈이 내 입술이 뒤틀리고 일그러지는 걸 지켜보았어요. 그 많은 입이 키득거리며 비웃었어요.”라며 슬퍼할 때, 아이를 위로하는 아빠의 말, 어른의 말은 아이에게 수없이 많은 좌절을 딛고 일어날 힘을 준다. 시적으로 말한 비유가 평화를 안겨준다. 단 한 문장이 울고 싶을 때마다 지속해서 힘을 준다. 시드니 스미스가 그린 강물의 평화로운 물결과 빛 속에서 독자도 함께 평화를 마주한다. 강물의 시청각 이미지가 어느덧 반짝인다.

조던 스콧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독자가 쉽게 감정 이입되는 이유는 어쩌면 시드니 스미스의 그림 덕분이다. 주인공의 얼굴이 그림 작가를 닮았는데, 글 작가의 이야기에 완전히 동화된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느덧 어린 조던이 되고 강물이 된다. 걱정하던 주인공이 강물 앞에서 평온한 마음이 될 때 눈을 감고 강물의 “물거품이 일고 굽이치다가 소용돌이치고 부디”치는 소리를 듣는다. 시드니 스미스는 강물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눈감은 소년의 얼굴을 카메라가 가까이에서 촬영하듯 클로즈업하여 그렸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에서 가장 절정인 이 장면에서 독자는 소년의 내면과 마주한다. 소년의 얼굴이 크게 그려진 페이지에서 독자의 손 동작은 습관처럼 오른쪽 페이지를 왼쪽으로 넘기는 게 아니라 두 손으로 게이트 폴드(접어 넣은 양면 페이지)로 제작된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를 밖으로 동시에 열어젖혀 네 면에 펼쳐진 드넓은 강물 속에 서 있는 소년의 등을 본다. 드넓은 강물은 아버지의 품과 같다. “아빠는 말했어요. 내가 강물처럼 말한다고.” 시적인 이 문장의 힘에 압도되는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독자는 주인공에게 완전히 동화된다. 다른 아이와의 비교나 비난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비유를 통해 아버지는 아들을 위로한다. 독자의 다른 몸짓이 요구되는 이 장면을 그리기 위해, 시드니 스미스는 스무 번이나 다시 그렸다고 한다. 햇빛에 빛나는 강물의 웅얼거림이 들리는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그리기 위해 반복해서 다시 그리는 몸짓도 어쩌는 창작을 향한 ‘더듬는’ 몸짓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말을 더듬는 걸 아이의 언어장애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고유함으로 바라본 아버지의 시선과 시적인 말의 힘으로 어린 조던 스콧은 커서 시인이 된다. 시인은 인터뷰에서 ‘말 더듬기’라는 몸짓은 더듬거리며 말할 때 단어를 느끼는 흥미로운 감정이라고 말한다. 시드니 스미스도 이 그림책의 메시지를 ‘고유함을 간직하는 것’으로 보았다. 언어장애가 아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실수를 경험한 일로 바라본다. 많은 사람 앞에서 떨리고 불안한 감정은 모두가 느껴보았을 감정이다.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는 상황과 급변하는 포스트 코로나 환경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부모를 지켜보며 아이가 위로를 줄 수도 있다. 누군가 불안해하고 실수할 때, 우리는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는 힘이 있는가? 이 그림책을 통해 나는 “아침마다 낱말의 소리”를 듣는 아이를 만난다. 강물처럼 말하는 아이와 마주한다. 어느덧 막막한 두려움은 사라진다. 썼다 지웠다 하는 문장도 어느새 짧은 글이 된다.

 

 

글. 김시아 KIM Sun nyeo

문학·문화평론가. 파리 3대학 문학박사.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등을 번역했다.


* 참고 인터뷰: <I Talk Like a River by author Jordan Scott and illustrator Sydney Smith>, EricCarlesMuseum : https://www.youtube.com/watch?v=k16g9h_Umlk&t=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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