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김희경의 문화톡톡] 닫힘으로써 열린 감각-<블라인드>
[김희경의 문화톡톡] 닫힘으로써 열린 감각-<블라인드>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1.11.08 0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닫힘으로써 열리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감각, 그리고 감각과 감각의 연결은 이 모순된 지점에서 비로소 성립되는 것인지 모른다.

 영화 <블라인드>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미지로서 그 진정한 연결의 순간을 펼쳐보인다. 이 영화는 15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국내 팬들의 요청으로 지난 1월 처음 한국에서 개봉했다. 15년만에 도착한 편지와 같은 이 작품은 서정적이면서 문학적이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어둠 속에 갇히고 오랜 시간 닫혔던 감각을 열어젖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영화는 네덜란드 여성 감독 타마르 반 덴 도프가 한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모티프로 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이야기는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던 루벤(요런 셀데슬라흐츠)에게 마리(핼리너 레인)가 책을 읽어주는 사람으로 고용되며 시작된다. 시각이 사라진 곳엔 곧 청각으로 온통 채워진다.

처음엔 거칠고 난폭한 음성이 가득하다. 루벤은 앞을 보지 못하는 고통을 거친 행동으로 표한다. 하지만 마리는 그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로소 마리의 차분한 음성이 루벤, 그리고 관객들의 청각을 자극한다.

영화는 여기에 루벤이 보지 못하는 상대, 즉 마리의 얼굴을 소재로 적극 활용한다. 마리는 어릴 적 학대로 얼굴과 몸에 상처가 가득하다. 하지만 루벤은 마리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그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자신을 길들이는 당당하면서도 단호한 태도에 반한다.

 

루벤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을 열어 상대를 인지한다. 청각뿐 아니라 촉각도 되살아나는데, 감독은 이 과정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낸다. 특히 마리에게 손을 뻗어 손과 얼굴을 만지는 모습을 섬세하게 담았다.

영화는 감각이 인지하는 대상의 이미지도 적극 활용한다. 책을 읽는 마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이미지, 목욕을 할 때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한 이미지 등도 교차 편집해 관객의 감각을 확장한다.

 

하얀 색의 이미지를 살려 동화적 이미지도 극대화한다. 하얗게 펼쳐진 설원과 마리의 하얀 머리 색이 한데 어우러져 동화 속 신비로운 세계에 들어간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후 작품은 단순히 동화를 영화적 문법으로 풀어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사랑에 빠지지만, 루벤이 앞을 보게 될 수 있게 되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마리는 상처 가득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그를 떠난다.

그리고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위한 루벤의 애타는 마음, 그 사랑을 위한 루벤의 마지막 선택은 파격적이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에서 이 모든 과정을 경유하고 나면 마침내 닫힘으로써 열리게 된 감각, 그 감각과 감각의 미세하고 정교한 연결선에 다다르게 된다.

 

 

*사진: 네이버영화



글 · 김희경 (문화평론가)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