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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예순 살 오복의 인간 권리 투쟁기 <갈매기>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예순 살 오복의 인간 권리 투쟁기 <갈매기>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1.11.15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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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딸의 상견례를 무사히 마치고 기분이 좋아진 오복은 시장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낸다. 이른 아침, 문이 열리지도 않은 시장에서 오복이 걸어 나온다. 오복은 자신의 바지에 피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중목욕탕에서 피 묻은 속옷을 빤다. 그녀의 등에는 멍이 들어 있다. 병원에 찾아가 진료를 받고 돌아온 후에도 계속해서 피가 난다. 오복은 장사하러 시장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 두문불출하고 드러누웠다.

 

“뭔 일인지 몰라도 눈 한 번 꼭 감고 지나가”

 

시장의 재개발 대책 위원장 기택은 오복이 시장에 나오지 않자 문안차 왔다면 자연산 해산물 한 통을 던져 주고 간다. 오복은 그제야 몸을 추스르고 시장의 한 가게 안에 오줌을 싸고, 돌을 던져 유리를 깬다. 그리고 시장에서 나이가 많은 어른인 동원을 찾아가 기택에게 사과를 받아달라고 한다. 동원은 “뭔 일인지 몰라도 눈 한 번 꼭 감고 지나가”라고 한다. 오복은 뭔 일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지나가라는 말에 더 억울하다.

 

“말을 해야 알지 말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딸 인애의 결혼식에 입을 한복을 맞추고 돌아오는 길에 인애는 엄마에게 “말을 해야 알지 말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라는 말을 한다. 그 말에 용기가 난 오복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딸에게 처음으로 털어놓는다. 도대체 오복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선 가게를 운영하는 예순 살 오복은 재개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시장의 재개발 대책 위원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영화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는 호기심으로 영화에 빠져들게 하다가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

영화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나아간다. 충격을 충격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을 행동하게 하고 반응하게 하고 그 반응에 따라 다시 행동하게 한다. 이 기나긴 싸움에 함께하기에는 가족도 힘겹다. 결혼 준비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딸은 오복의 문제에 같이 아파하는 데 힘에 부쳐 한다. 가족이라도 성인지 감수성이 낮을 경우 성폭행당한 피해자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대처가 미숙하거나 심지어 2차 가해를 하기 쉽다.

 

“성폭행이라는 것이 여자가 응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여. 그게 진리야.”

“좋았냐.”

- 성폭행 피해자의 남편

“그러니까 내가 술 마시고 다니지 말랬지. 술 마시고 어떻게 했길래. 그런 험한 꼴을 당하냐고.”

- 큰딸 인애

 

시장 보상 문제로 어수선한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 상인들은 혹시라도 ‘보상’에 차질을 빚을까 봐 오복이 문제를 덮고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란다. 여자 상인들조차 대놓고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를 볼까 봐 오복이 덮고 넘어가도록 요구한다. 시장 개판 쳐 놓고, 딸 결혼식 개판 날 텐데, 이렇게 여러 사람 괴롭혀서 언니가 얻는 게 뭐야. 눈 딱 감고 넘어가면 될 일 갖고, 이렇게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겠어.

 

“한강에 배 한 번 지나간 걸 갖고 뭘 그래”

“똥 밟았다고 생각해”

“젊은 사람 발목 잡아서 좋을 게 뭐가 있어”

-  시장 상인들

“딱히 증거랄 것도 없고 그래서 무혐의 날 확률이 높은데, 증거가 있어야 해요. 혹시 증인 있어요? 정 안 되면 시장에 오는 사람들 상대로 호소문 같은 거라도 좀 돌려보세요.”

- 경찰

 

오복의 인간 권리 투쟁

오복은 억울하다. 성폭력을 당했고, 가해자에게 사과도 받지 못하고 법으로 처벌도 할 수 없다. 깊은 상처를 받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는 오복. 상처받은 상태로 치유되지 못한 채 곪게 내버려 둘 것인가. 이것은 진짜 개인의 문제로만 묻어둘 수 있는가.

 

성폭력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성폭력은 약 50%가 아는 사람, 나와 가까운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여자들이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술자리에서 동료들과 즐겁게 술을 마시고 화합하는 것은 공동체 생활에 좋은 자질이다. 남성은 그저 그 자리를 즐기면 된다. 하지만 여성은 그 자리에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술자리에서 누가 성폭행범이 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여자들이 조심한다고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을까.

억울한 사람은 있는데 국가가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하자, 오복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에 팻말을 두르고 기택 앞에 당당하게 두 발로 선다. 팻말을 두른 주오복의 얼굴에 묻어나는 오래 억눌려 지내온 삶 위에 싹 틔운 용기와 두려움이 뒤섞인 얼굴과 그 눈물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오복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던 투쟁가는 그녀가 마지막에 선택한 행동이 어떤 국가적인 이슈나 거대 담론보다 더 중요하게 성취해 내야 할 인간의 권리 투쟁임을 일깨워 준다.

김미조 감독은 말한다. “오복이 갈매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겪고 있는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되게 가혹하기까지 할 수 있지만 결국 오복은 그 팍팍한 현실에서 두 발 딛고 살아내야 하는 현실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오복은 지겨운 현실을 벗어나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만 계속 육지 주변 즉 삶의 터전을 맴돌아야 하는 존재이다. 오복은 (시장이라는) 공동체에서 건강한 구성원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고, 사회는 그것을 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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