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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샐리 포터(Sally Potter) 감독 <탱고 레슨 Tango Lesson>(1997)
[정재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는 너고, 너는 나다 - 샐리 포터(Sally Potter) 감독 <탱고 레슨 Tango Lesson>(1997)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1.11.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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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샐리 포터(Sally Potter) 감독이 만든 <탱고 레슨 Tango Lesson>(1997)은 탱고춤을 통해 남녀가 어떻게 화합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영화다. 전작 <올란도>에서 400여년에 걸쳐 남자, 여자를 넘나든 올란도에 대한 소설을 영화화했던 것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 포터 감독은 남성과 여성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을 연금술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단지 표면적으로 남자, 여자가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화학결합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남녀의 갈등

샐리는 탱고댄서 파블로의 공연을 보고 그의 매력에 빠진다. 샐리는 파블로에게 탱고레슨을 받기 위해 말을 건다. 여자는 영어, 남자는 스페인어. 둘은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밖에 모르니 난감해진다. 이때 그는 여기는 파리니 불어로 하자고 통일시킨다. 상대의 언어로 말하지 않으려는 자존심 대결이 펼쳐진다. 남녀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서로가 자존심을 세운다. 이 부분은 그런 대목을 잘 설명해 준다. 여자는 남자의 춤솜씨를 칭찬한다. 그러자 남자는 영어로 말한다. 여자가 먼저 낮추니까 남자도 자존심을 버리고 여자의 언어로 말을 한 것이다. 여자의 나라는 영국, 파블로는 아르헨티나. 그들이 있는 곳이 제 3국인 프랑스 파리라는 설정은 남과 여의 중립지대로 그럴 듯 하다. 둘은 유대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남녀로 분리된 마음이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서 친연성을 갖는다.

무대에서 공연을 한후 파블로는 화가 나있다. 화면의 앞에 그의 얼굴이 크게 보이고 뒤에 조그맣게 샐리의 모습이 잡힌다. 이 구도는 남성에 종속된 혹은 복종을 강요하는 남성과 그 상대 여성을 묘사한 것이다. 샐리는 관중에게만 신경 쓰며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는 남자에 대해 불만이다. 여성이 묻는다. 당신은 어디 있냐고. 그러자 남성은 말한다. 나는 여기 있다. 그때 그의 모습은 단독 쇼트이다. 이어 일행들이 들어와 남성을 감싼다. 그는 군중속에 있고 여성은 혼자 버려져 있다. 이때의 단독 쇼트는 독립 자존적인 의미가 아니라 고독한 여성의 모습이다.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대표작 <올란도>

여성심리의 공간

샐리가 탱고레슨을 받으려는 첫날 파블로 집의 계단은 나선형이다. 이 나선형 구조는 더 반복된다. 집을 수선하느라 잠시 집을 비운 후 다시 파블로를 만나러 가는 날 이 구도가 반복된다. 나선형계단은 미스테리와 혼돈을 상징한다. 샐리는 처음 만나는 남자와의 탱고레슨이 설레는 반면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대사설명 대신 영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영화는 12장으로 나눠져 있고 12번의 레슨처럼 구성되어 있다. 12는 완성의 수다. 12번의 레슨은 12번을 통해, 탱고레슨을 통해 남녀가 하나가 되는 방법이 숙련된 것을 암시한다. 둘이었던 그들은 마지막엔 하나가 된다.

 

탱고의 은유

파블로와 싸우고 이별한 후 샐리는 성당에서 벽화를 본다. 그것은 성서에 나오는 천사와 싸우는 야곱의 모습이다. 그 도상은 탱고를 추는 남녀와 닮아있다. 그 내용은 천사와 씨름하여 이긴 야곱이다. 야곱은 마지막에 환도뼈에 상처를 입어 절뚝이기까지 했다. 야곱은 천사를 이김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것은 하느님이 야곱을 시험 한 것이다. 샐리는 이 그림이 곧 자신의 운명처럼 느껴진다. 샐리는 파블로와의 어려운 상황이 마치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의 경우처럼 자신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거라 자위해본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탱고라고 생각한다. 그 그림의 모습은 탱고 추는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이러한 은유는 둘이 화해한 이후 장면에서 나타난다. 샐리는 분수대의 물에 머리를 담군다. 다음 영상은 물속에서 연미복을 입고 수영하는 파블로의 모습이다. 장면은 칼라이다. 그건 샐리의 영화적 상상이다. 파블로는 그녀의 영화속에서 연출되고 있다. 이제 그녀는 파블로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작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가지 않은 길>(2020)

둘이면서 하나인 춤

파블로와 친구들이 계단을 내려갈 때 파블로는 맨 뒤로 쳐져 내려온다. 계산은 나선형이다. 이 구도는 혼돈을 준다. 파블로는 혼란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어 친구들은 샐리와 춤을 추고 파블로는 혼자 거울 앞에 앉아 있다. 그의 앞에 춤추는 친구들이 보인다. 그의 자아는 분열되어 있다. 이때 샐리가 거울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의 자아에 샐리가 개입하고 있다. 파블로는 묻는다 “당신은 나를 보는가? ”샐리는 대답한다. “스크린속의 당신을 본다.” 파블로는 말한다. “그럼 당신은 샐리가 아니라 카메라군.” 파블로의 혼돈은 극에 달한다. 다시 그녀에게 묻는다.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왜 만난 걸까?”

 

둘은 서로가 둘이 아니면서 하나인 존재라는 걸 느낀다. 그건 춤이 주는 느낌이다. 춤은 남녀 둘이 서로 조화되어야만 성립하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 강하면 실패한다. 춤은 서로를 배려하는 가운데 존재한다. 춤에서 남녀는 둘이면서 하나다. 그 이치가 파블로에게 서서히 와닿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그는 항상 혼자라는 생각으로 춰왔다. 파트너로서 여자는 자신이 리드해 가는 부속물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샐리를 통해 비로소 그의 고집은 허물어지고 마침내 허공이 되었으며, 이어 둘의 반이 되었다. 허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부도 아니다. 정확히 반이다. 반을 나눠갖는 것 뿐이다. 샐리는 그것을 노래로 표현한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글·정재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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