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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한국 SF드라마의 고요한 외침 : <고요의 바다>(넷플릭스)
[문선영의 문화톡톡] 한국 SF드라마의 고요한 외침 : <고요의 바다>(넷플릭스)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2.01.10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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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극에서 과학을 주제로 다루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1960년대 라디오 시대에 연속극이 방송사 청취율의 중심이 되면서, 엄청난 성장 속도를 보이던 때에도, SF드라마는 제대로 된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라디오의 단막극에서 실험적인 소재로 다루기는 했지만, 흥미로운 단편적 차원에서 사용했을 뿐이지 본격적인 과학 드라마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방송에서 과학을 소재로 본격화 한 드라마가 등장한 것은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1990년대부터이다. 이 시기 인간개조와 뇌 공학을 소재로 다룬 <M>(MBC, 1994), 유전공학, 복제동물을 주제로 한 <거미>(MBC, 19945), 게놈 프로젝트와 관련된 드라마 <RNA>(KBS,2000) 등이 등장한다. 1990년대 SF드라마의 시작 배경은 1990년대 방송제도와 방송환경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는 뉴미디어 방송의 등장과 함께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 한 시기였다. 1991년 3월 서울방송(SBS)의 개국을 계기로 시청률 경쟁이 높아져 드라마 편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각 방송사들은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항공드라마, 스포츠 드라마, 법정 드라마 등 다양한 소재의 드라마들을 제작했는데 SF드라마의 형성도 이 흐름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1] 그러나 사실상 당시 SF드라마들은 주술이나 초능력, 종교 등과 과학이 애매하게 결합된 방식이어서, SF장르의 특성을 온전히 드러낸 작품들은 아니었다. 과학적 소재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공포나 판타지와 SF의 애매모호한 지점에 있었기에, 대중의 기억 속에서도 이들 드라마는 SF로 각인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30여년이 훌쩍 지난 현재 한국 SF드라마는 어떨까?

최근 넷플릭스의 한국 최초 우주 SF드라마를 내세운 <고요의 바다>가 오픈되었다.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고요의 바다>가 우주 주제 SF드라마의 첫 시도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디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단막극에서 우주를 소재로 한 작품이 종종 방송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중심으로 하는 ‘본격적’ SF드라마임은 분명하다. 여기서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한국 SF드라마는 여전히 ‘최초’, ‘본격적’이란 수식어가 작품의 고유한 특징이 된다는 점이다. SF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매번 첫 발을 내딛는 것처럼 시작되는 분위기라는 것, 지나온 콘텐츠가 축적되어 발전이나 변형을 이루는 것이 아닌, 매번 새롭게 ‘최초’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탄생 된다는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한국 드라마에서 SF는 대중적 호응을 얻기 쉽지 않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장르이다. 그렇다면 공개 이후 호불호가 갈리며, 양극단의 반응을 받고 있는 <고요의 바다>에 대해 기존의 수많은 SF소설, 영화를 떠나 한국 SF드라마라는 점에 주목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자취를 감춘 SF드라마는 최근 2~3년 전부터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다. 아주 많은 작품 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2017년을 전후로 단편 드라마가 아닌 시리즈 SF드라마가 지상파 방송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케이블 방송, OTT 플랫폼 등에서 SF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1990년대 새로운 방송 채널의 영향으로 다양한 작품이 등장한 것처럼, 웹드라마, OTT 플랫폼 시장의 확대 등도 SF드라마 제작의 한 가지 원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SF드라마에 대한 제작이 활발해지는 현상은 특정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길이기에 고무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SF드라마에서 주제에 대한 한계는 존재한다. 연속극을 기준으로 두었을 때, 2~3전부터 방영된 한국 SF드라마는 AI, 로봇, 시간여행에 관련되어 있다. 2017~2018년은 로봇 관련 드라마 <보그맘>(MBC, 2017)), <로봇이 아니야>(MBC, 2017), <너도 인간이니>(KBS, 2018) 등이, 2020~2021년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과학적이고 판타지적으로 풀어낸 <엘리스>(MBC, 2020), <카이로스>(MBC, 2020), <시지프스>(tvN, 2021) 등이 방영되었다. 연속극 이외 단편 SF드라마에서는 VR, 미래 사회의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여전히 안드로이드, 가상현실 등의 한정적인 과학적 소재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주를 배경으로, 근 미래 사회의 지구와 달이라는 공간을 다루는 <고요의 바다>는 SF드라마의 흐름에서 새로운 판도를 여는 작품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한국 드라마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SF드라마에서 우주를 주제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는, 시각적 장치의 확보가 필요하기에 거대한 제작비 투자가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에 과학적 고증까지는 아니어도 대중적 동의, 탄탄한 스토리 등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고요의 바다>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로운 창작, 제작비 투자 흐름이 확보되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었기에 가능했다.

출처: '고요의 바다'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출처: '고요의 바다' 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세계를 열광시켰던 전작 <오징어 게임>에 비해서 국·내외적으로 기대감이 충족되지 못한 점이 있지만 <고요의 바다>가 재현해 낸 근 미래 사회와 우주에 대한 상상력은 몇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고요의 바다>는 2075년, 환경오염이 심각해져 물 공급 문제를 겪고 있는 지구의 미래를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현상이 일어나 식수 공급을 중심으로 계급이 나뉘고, 공평한 분배와 차별 문제로 이어져, 퇴보하고 있는 근 미래의 지구를 그려낸다. <고요의 바다>의 내용에 따르면, 계급에 따라 식수 배급이 이루어지면서 사회적 갈등이 팽배해져 지구는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마저도 10년 후 40% 물 공급이 감소되어 곧 멸망하게 될 지구는 생존을 위한 해결을 우주, 달에서 찾고자 한다. 미지의 공간, 우주가 단순한 탐사, 개척의 의미를 넘어서 지구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 여기에 알 수 없는 달을 둘러싼 비밀, 진실들이 숨겨져 있다는 점은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배치하려는 전략이다. <고요의 바다>는 지구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에 세운 발해기지에서 발견한 달의 물, 즉 월수(月水)를 중심으로 생존에 대한 인간의 공포, 두려움, 이기적 욕망 등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5년 전 세운 발해기지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방사능 유출 문제로 죽게 된 사건 이후, 정부의 생존대책위원회에서는 발해기지에서 연구한 결과물 샘플을 확보하기 위한 팀을 선발한다. 드라마는 발해기지 연구원으로 일하고 그 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언니 송원경(강말금 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생존환경연구소의 동물행동학 박사이자 우주생물학자 송지안(배두나 분)이 합류하면서, 발해기지 내의 숨겨진 진실을 풀어가는 데 집중한다. 송지안은 발해기지 샘플 확보라는 목적보다 의문으로 남은 언니 송원경의 죽음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큰 인물이다. 그렇기에 송지안은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려는 한윤재(공유 분)와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인물 간의 갈등은 미지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된다. <고요의 바다>의 초반부는 발해기지에 도착하여, 발해기지 진실을 밝히려는 송지안과 임무 수행을 완수하려는 한 대장의 대립으로 일의 진행이 지연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발해기지에서 중요한 연구 결과, 즉 월수가 죽음의 원인이 되며, 발해기지의 임무를 수행할 대원들의 생명마저 위협하는 물질로 밝혀지는 과정은 드라마의 집중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동될 수 있다.

 

발해기지 연구원들이 물 부족으로 곧 멸망할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증식하는 물, 월수를 발견했지만 월수의 증식이 생명체에 흡수되어 증식을 멈추지 않음으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미지의 공간, 달에서 발견한 물이 인류를 구원할 결정체이기도 하면서, 인간을 멸망시킬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간의 기대나 열망 뿐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와 연결된다. 또한 인간의 신체에서 끊임없이 증식되는 물로 인해 익사한다는 설정 자체는 물 부족으로 생존 경쟁에 시달리는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이 재현된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만하다. 인간의 신체에 기생하고 번식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괴기 생명체를 다룬 SF영화 <에일리언>의 상상력과 유사한 지점은 있지만, <에일리언>이 신체에 기생하는 괴기스러운 우주 괴물의 형상에 집중한 것과 달리 <고요의 바다>는 풍족하게 물 공급을 원했던 인간이 죽은 순간까지 몸에서 증식하는 물을 쏟아내며 익사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긴장과 공포심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근 미래 사회의 환경문제, 생존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과 연관 되어 있기에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는 발해기지 월수의 비밀이 단지 생명체를 위협하는 증식하는 물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후반부 7~8회를 통해서 풀어간다. 월수를 인간에 유익한 결과물로 만들기 위해 발해기지 연구원들의 감행한 비윤리적 연구 행위, 즉 복제 인간 실험이라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 이를 독점하기 위한 권력 간 다툼 등이 드라마 후반부에서 드러난다.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비윤리적 연구 행위, 새로운 개발을 독점하려는 권력 사이에서 다른 입장을 가진 인물들이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점은 물 부족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는 미래 사회 뿐 아니라 현재 사회의 일면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드라마의 근 미래적 상상력은 대중적 동감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고요의 바다>는 달에서 새로운 물을 찾는다는 소재, 증식하는 바이러스와 같은 물, 복제 인간 실험 등 우주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SF장르의 고전 작품들과의 비교, 장르상의 엄격한 잣대를 떠나,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긴장감을 주는 스토리의 전략적 배치나 적절한 정보 제공에 대한 강약 조절은 SF장르를 떠나, 드라마적 완성도에 있어서도 아쉽다. 단편 영화의 호흡을 8부작으로 각색하는 데 있어서, 드라마적 리듬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요의 바다>는 2014년 미장센 단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최항용 감독의 한예종 영상원 졸업 작품 단편 영화가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의 바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드라마라는 점, 한국 SF드라마가 다른 방식으로 탄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SF드라마의 새로운 문을 두드리는 <고요의 바다>의 고요한 외침이 단지 ‘최초’에 그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 참고자료 [1]: 문선영, <TV드라마의 과학적 상상력>, <<극예술, 과학을 꿈꾸다>>, 지식과교양, 2019, 149~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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