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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미’, 그들끼리의 ‘사회자본’
‘짬짜미’, 그들끼리의 ‘사회자본’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2.01.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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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도 능력이고 자산”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공공연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인맥 덕택이다. 같은 학교 출신의 학맥(學脈), 같은 고향의 향맥(鄕脈), 같은 직장의 직맥(職脈), 같은 씨족의 족맥(族脈), 같은 취미의 취맥(趣脈)...

자산이 두둑한 사람들은 인맥을 만들기 위해 한 학기 1천만 원에 달하는 대학 최고위 과정을 몇 개씩 수료하고, 일반 직장인들은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기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문회, 직장 기수 모임, 취미 모임을 돌면서 인맥 다지기에 한창이다. 연초가 되면 신문사들의 광고란은 자산관리, 상속세 절감, 골프인문학, 예술품 투자, 부동산 관리 등을 내세운 대학들의 최고위 과정이 즐비하고, 서점가에서는 인맥 만들기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들이 인기를 끈다.

 

<아파트, 사회자본과 소셜 믹스의 사이에서>

우리 사회의 인맥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법맥(法脈)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끈적끈적한 인맥은 판맥(判脈)과 검맥(檢脈)이 아닐까 싶다. 검사 출신의 야권 대권후보 선대위 본부에는 온갖 잡다한 상임위원장을 검사 출신들이 도맡아, 마치 수사본부를 꾸린 듯하다. 검맥의 동지애가 얼마나 끈끈한지 보여주는 예다. 대장동 스캔들에서 보듯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맥의 끈끈한 관계는 거액의 이권 앞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어쩌면 각종 소송사건에서 검사의 수사와 변호사의 변호, 판사의 판결이 이런 식으로 형님, 아우의 짬짬이 관계 속에서 이뤄져왔는지도 모른다.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합격한 고졸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이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전문가적인 법조인을 하고, 고시 낭인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고시 준비생들의 거센 반발속에 로스쿨을 도입했지만, 갈수록 그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 ‘잘나가는’ 로스쿨 입학을 위해 몇 년씩 공부하는 이른바 로스쿨 낭인이 늘고 있고, 3년 치 학비가 거의 억대에 달해 법조인은 넉넉한 집안의 자식들이 아니고서는 도전하기 힘든 꿈의 직업이 되고 말았다. 물론, 과거에도 사법고시 합격을 위해 많게는 10여 년의 고시낭인 생활을 버틸 경제력은 필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로스쿨 합격자, 신임 변호사, 신규임용된 검사 및 판사의 서울 편중현상, 특히 경제적 자산이 풍부한 강남 3구에 집중해 몰려있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찜찜하다. 예컨대, 서울 거주 신임 법관은 지난해 105명으로 67%를 차지했고, 이들 중 48명(31%)이 강남 3구에 거주한다. 강남 3구 출신 법조인들은 해마다 급격히 느는 추세다. 물론, 법조인들이 특정 계층, 특정 지역에서 많이 배출되는 그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판맥과 검맥 같은 법맥들의 동지애적 연대감이 유독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이같은 특정지역 쏠림현상은 예사롭지 않은 징후이다. 어디 법조인들 뿐이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행정을 책임지는 고위공무원, 그리고 이들을 감시해야 할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도 특정 지역에 몰려 살면서 ‘형님, 아우’를 외치며 맛집을 찾고, 골프 취미활동을 하며 어쩌다 시덥잖은 인문학(실제로는 처세학)을 함께 공부하는 모습은 ‘그들끼리의 인맥’ 만들기에 다름 아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멋진 학술용어로 말한다면, 사회자본 축적의 행위인 셈이다. 

<르디플로> 2월호 마감 당일, 서울시가 공공임대주택 사업 초기 기획단계부터 소셜믹스(Social mix) 차별요소 퇴출에 나서기로 했다는 뉴스가 눈에 띈다. 공공임대주택은 미분양 세대나 단지 내 별동으로 배치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동·호수 공개추첨제를 통해 공공주택과 분양세대가 함께 입주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공공주택 거주자들을, 과거 그들을 배제시켰던 사회자본 형성의 틀에 포함시키겠다는 의도가 보이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고급’ 인맥을 다지는 이들끼리의 사회자본에 공공주택 거주자들이 과연 융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르디외의 주장처럼, 사회구조 재생산 및 기득권층만의 자본 순환욕구가 절제되지 않는 한, 소셜믹스는 한낱 또 다른 구별짓기의 용어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그럼에도 소셜믹스는 필요하다. 거주지는 물론 교육, 취미, 직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섞여 살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짬짜미’ 문화가 조금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해본다. <르디플로> 1~2월호에 게재된 부르디외의 미발간 글에 독자들의 관심과 일독을 권한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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